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9. 산티아고

알다쿠바쿠바 여행

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9. 산티아고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킨지

누가 그를
2인자라 했는가 

이번 주 떼아모 쿠바에서 함께 여행할 도시는 쿠바의 동남쪽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 주의 주도(州都)인 산티아고 데 쿠바(줄임 : 산티아고)이다. 산티아고는 1515년에 건설된 도시로,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1607년 아바나로 천도되기 전까지 쿠바의 제1도시이자 수도였다. 산티아게로(Santiaguero, 산티아고 사람)는 지금도 본인들의 땅이 쿠바 최고의 도시라는 자긍심과 포부가 대단하다. 비록 수도는 아바나에 내어주었을지라도 말이다.  

산티아고는 식민지 당시 노예제도 폐지 및 국가의 해방을 위한 1, 2차 독립전쟁의 중심지였고, 쿠바의 혁명영웅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군이 주로 활동했던 중심지이기도 했다. 1959년 1월 1일 혁명에 성공한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의 시작점이었던 이 곳 산티아고의 시청 발코니에서 승리의 첫 연설을 남기기도 했었다. 

산티아고 혁명 광장

그 뿐만이 아니다. 이 곳 산티아고는 혁명의 불씨만큼 화끈한 음악과 춤의 도시이기도 하다. 쌀사(Salsa) 음악의 조상님이라 할 수 있는 쏜(Son) 음악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 산티아고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거장 꼼빠이 세군도 역시 산티아고 출신이며, 그의 마지막 작품 찬찬(Chan Chan)도 쏜 장르의 음악이다. 이렇게 팔방미인인 산티아고를 감히 누가 2인자라 부를 수 있을까.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산티아고 

만일 산티아고가 위치상으로 조금 더 서쪽에 있었다면, 여행자들이 필수로 찾는 세 도시 안에 당연히 손꼽혔을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멀다. 아바나에서 출발하는 비아술버스(외국인 탑승 가능 버스) 기준 자그마치 15시간이 걸린다. 물론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는 2시간이면 금세 날아갈 수도 있긴 하다. 

도시마다 들리는 완행버스에서 정신줄을 붙들고 있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길고 긴 여정을 맨 정신으로 버티기보다는 자면서 가는게 훨씬 낫기때문에 여행자들은 주로 밤버스를 이용하곤 한다. 비몽사몽 멍한 정신에 도착하여 짐을 찾으면 두번째 멘붕이 시작된다. 쿠바에서 두번째로 큰 대도시답게 아바나만큼 악명 높은 호객꾼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비아술 터미널에서 산티아고 중심가까지는 거리도 있거니와 중심가로 갈수록 경사가 높아지는 언덕길이라 도보로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큰짐이 있는 여행자는 선택의 여지없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만일 짐이 크지 않다면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옵션이 있다. 바로 산티아고만의 특징적인 교통수단, 모또(Moto, 오토바이 택시)이다. 아바나의 코코택시처럼 좌석이 따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운전기사의 뒤에 올라타야 하는 합승형태의 로컬 교통수단인데, 중심가까지 10쿱(700원)이면 이동이 가능하다. 물론 운전기사들은 가격을 속이려 들 테니 반드시 탑승 전 요금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이다. 

택시 또는 모또를 타고 중심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이 있다. 바로 세스페데스 공원과 공원 사방에 놓여진 웅장한 건물들이다. 세스페데스 공원은 1차 독립전쟁 영웅의 이름을 딴 공원이다. 산티아고 관광의 랜드마크로서, 여행정보, 예약, 택시, 환전 이 모든 것이 이 공원을 중심으로 몇 걸음 내에 이루어진다.  

세스페데스 공원 동서남북

공원의 동쪽에는 호텔 까사 그란다(casa granda)가 있다. 5성급 호텔로 1층에는 여행사와 테라스 카페 같은 편의시설이 있다. 이곳 옥상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산티아고의 뷰가 매우 아름답고 화장실이 깔끔하여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들락거렸다. 

호텔 까사 그란다 옥상 풍경

공원의 서쪽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집이 현재 역사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1522년 쿠바의 식민통치를 위해 파견된 스페인 귀족이다. 쿠바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집이자 스페인계 무어양식으로 지어진 산티아고 유일의 가옥이라 한다. 

공원의 남쪽에는 성모가정성당이 있다. 산티아고의 풍경에 별 같은 역할을 하는 아름다운 외관을 지녔다. 이 성당은 1520년대에 건축된 뒤 지진에 의해 무너졌었다가 오랜 보수 끝에 1922년 재완공 되었다. 공원 북쪽에는 피델카스트로가 발코니에서 혁명 성공의 첫 연설을 진행했던 산티아고의 시청이 있다. 

그 밖에 공원 주변으로 낮이고 밤이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까사 데 라 트로바(Casa de la Trova), 카니발과 관련된 자료와 아프로-쿠반 댄스 공연을 볼수 있는 카니발 박물관, 럼 공장 사장님이 세운 시립 박물관인 바카디 박물관 등 볼거리가 지천에 깔렸다. 이 일대만 둘러봐도 산티아고 관광의 30%는 완료한 셈이다. 그래서 산티아고에 오면 일단 세스페데스 광장으로 올 수 밖에 없다. 

까사 데 라 트로바

세스페데스 공원 기준 남서쪽 방향으로 가다보면 엽서에 단골로 출연하는 장소가 있다. 띠볼리 마을로 이어지는 빠드레 삐꼬(Padre Pico) 계단이다. 계단 자체도 유명하지만 열심히 계단을 올라가서 바라보는 산티아고 시가지의 풍경도 일품이다. 

빠드레 삐코 계단
계단에서 본 산티아고 풍경

이 계단을 따라 위로 곧장 올라가서 노란 벽면을 따라 계속 따라가보면 루차 끌란데스띠나 박물관(지하 투쟁 박물관)이 나온다. 이 곳은 1956년 11월 30일 그란마 호의 상륙을 돕기 위해 혁명군들이 당시 경찰서였던 이 곳을 습격하는 위장 작전을 펼쳤던 곳이다. 당시의 상황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고, 영어와 스페인어 무료 가이드도 해준다. 이 곳의 발코니가 까사 그란다 호텔과 더불어 산티아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이다.  

박물관에서 나왔으면 내리막길을 따라 알라메다 거리까지 쭉 내려가본다. 그 끝에 작고 소담한 말레꼰이 있다. 다른 도시와 달리 규모가 매우 작고 그 앞에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현지인들의 휴식장소로 이용된다. 산티아고의 햇볕은 서쪽과 격이 다르게 따가우므로, 이곳까지 걸어내려왔다면 다시 중심가로 올라갈 땐 모또나 택시를 탑승하는 것을 추천한다. 

쿠바 여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7월26일(JULIO de 26)" 깃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날짜의 배경을 알고 싶다면 모또를 타고 몬까다 병영을 찾아가보면 된다. 이 곳은 과거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군사기지였던 곳이다. 1953년 7월 26일,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군 135명은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하여 이곳에서 교전하였다. 사상자가 80명 이상 생기고 모두 체포당했지만, 쿠바의 1차 혁명운동이자 혁명가들이 목숨 건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쿠바노들이 길이길이 기억할 날짜이다. 

몬까다 병영

이 곳은 현재 총격전의 흔적이 있는 건물만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그 외는 학교로 이용 중이다. 운동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면 축구하는 아이들, 하교시간에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님들의 모습 등 평화로운 쿠바노의 일상을 덤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장소는 산타 이피헤니아 공동묘지이다. 여행지 소개에 웬 공동묘지냐, 의아한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는 쿠바 혁명의 아버지 호세 마르띠(José Martí), 전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 음악 거장 꼼빠이 세군도 등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매시 30분마다 호세 마르띠 묘 앞에서는 경비대의 경건한 교대식도 진행된다. 

M언니와 S바(Bar) 

산티아고가 동쪽 끝에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관광객이 찾지 않는 건 아니다. 쿠바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로서 여행의 인프라가 제법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까사 시설도 아바나에 비해 깨끗하고, 공간도 큼직한 편이며, 심지어 수압도 좋다. 

대도시의 여행이란 작은 마을처럼 주민의 따뜻한 관심이나 순수한 시선을 기대하기는 조금 어려운 법. 나는 아바나에서처럼 장기체류를 한 적은 없기에 산티아고에서는 크게 이렇다 할 인맥이 없었다. 대도시보다는 소도시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바라코아까지 갔다가 산티아고를 생략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곳 산티아고도 내게 꼭 다시 들를 이유를 선물한 사람들이 몇몇 생겼다. 첫번째는 M언니다. M은 산티아고 중심가에 위치한 까사의 주인이다. 이 까사는 오래 전부터 산티아고를 찾는 한국인들에게 입소문이 난 곳으로 한 때 "아바나에 J까사가 있다면 산티아고에는 M까사가 있다" 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몇 년 전 까사 리모델링을 마친 뒤 예전처럼 도미토리 형식으로 운영을 하지 않자 예전보다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줄었으나, 아직도 그의 숙소를 찾는 한국인들이 꽤나 있다. 

M까사의 웰컴 드링크

M은 나와 그리 각별한 사이는 아니다. 그저 그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성격과 까사 운영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 뿐이다. 그는 호들갑스럽게 여행자에게 다가와 농담을 건넨다든지,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야간 버스를 타는 여행자에게 무료로 체크아웃 시간을 늦춰준다든지, 빈 방에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다. 

내게 쿠바노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M은 차분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오미. 어떠한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절대 결혼을 진행하지마. 1년을 만났건, 10년을 만났건 말야. 특히 너희 같은 외국인들은 쿠바 남자와의 관계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해."

무덤덤하지만 진지한 그의 성격이 좋았다. 관광지로만 느껴지던 산티아고에 약간의 정이 생긴 건 M덕분이었다. 

M의 까사 바로 옆에는 작은 카페테리아가 있다. 이름은 'S바'이다. 2018년 여행 인솔을 하며 일행 중 한분께서 관심을 보이셔서 들어간 게 인연이 되었다. 

S바

S바는 마이애미와 산티아고를 오가며 거주하는 산티아게로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테리아이다. 공간 자체는 협소하지만 분위기는 꽤나 힙하다. 주인인 L이 요리를 하고, 직원 두 명이 하루씩 돌아가며 서빙을 돕는다. 멕시칸 타코부터 후라이드 치킨, 쿠바 가정식 요리까지 못 하는 게 없다. 신나는 음악과 맛있는 칵테일, 그리고 활발한 바 분위기에 지나가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기만점 공간이다. 

190cm 가까이 되는 이 키 큰 남자가 협소한 주방에서 작은 칼을 들고 조리하는 요리들은 하나 같이 천국의 맛이었다. 늘 같은 소스와 조리법에 질려 있던 우리 일행은 쿠바에서 맛보기엔 너무나 '문명의 맛'이 나는 S바의 음식에 모두 반해버렸다. 산티아고에 체류하는 동안 매일 한 끼는 이 곳에서 먹었고, 식사를 다 마친 뒤에도 칵테일을 주문하여 이 곳 직원들과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들은 가끔 우리에게 시가를 나눠주기도 했고, 비싼 12년 산 럼을 한 잔 서비스로 내어오기도 했다. 산티아고를 떠날 때 느꼈던 아쉬움의 10퍼센트 정도는 S바였던 것 같다. 

S바 특제 칵테일

2019년 가이드 인솔을 위해 산티아고에 갔을 때 나는 S바를 다시 찾았다. 1년 간 수많은 여행자들이 거쳐갔을테니 그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당일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았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분 전환을 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내가 S바에 들어섰을 땐 이미 만석이었다. 조용히 들어가 '올라' 하고 인사를 건넸을 때 주인인 L과 그의 직원이 나를 보자 함박웃음을 짓고 두 팔을 벌려 환영해주었다. 

올라 아미가(안녕 친구)!!!!!! 산티아고에 언제 왔어!! 정말 반가워. 앉아 봐, 어서! 내가 맛있는 모히또 한 잔 대접할게!

그들의 환대에 하루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눈녹듯이 날아갔다. 청승맞게 눈물도 살짝 맺혔던 것 같다. 나는 S바에서 사진을 찍어 2018년 함께 했던 일행들께 전송했다. 모두 하나같이 S바를 그리워 했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행복해했다. 언젠가 다함께 다시 S바를 방문하자고 약속했다. 가게를 나서며 나는 그에게 자연스레 인사를 건넸다. 

나 갈게, 안녕. 그럼 내년에 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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