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온 편지 6. 혼자는 좋다

생각하다여성 청년

목포에서 온 편지 6. 혼자는 좋다

황달수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안녕! 올 해 겨울은 유난히 춥지 않아. 지구 기후 위기 때문일까? 정말 인간으로 살면서 많은 편리함과 죄책감들을 지고 살아야 하는 2020년이야. 그래도 감기는 조심해야 해! 감기에 걸리면 일상이 마비가 되잖아. 혼자 사는 사람에게 아픈 일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는 ‘일' 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어. 부디 혼자 살고 있는 모든 여자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길.

베타라는 물고기를 알고 있니? 관상용으로 많이들 기르고 접하게 되는 열대어야. 수컷 베타는 지느러미가 길고 몸 색깔이 알록달록해서 상품성이 좋지. 그래서 마트나 수족관에서 종종 보게 되는 건 대부분 수컷 베타라고 해. 수컷 베타는 투어(鬪魚)이기 때문에 한 마리 이상 키울 수가 없는 물고기야. 두 마리 이상이 같은 어항에 있으면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공격을 한다고 하지.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말이야. 혼자인 게 편한 게 생존을 위한 진화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혼자 있어야만 하는 물고기가 바로 베타야.

가게를 운영하면서 혼자 온 손님들이 ‘바 어항'에서 ‘베타' 물고기처럼 여유롭지 못하고 지칠 때 자신의 영역과 시간을 지키길 바랐어. 그래서 ‘바 어항' 이라고 이름 짓기를 잘했다고 생각해. 저런 의도로 지은 건 아니지만.

'혼술집'이라고 불리면 싫어

가게 이름을 ‘바 어항’이라고 지은 이유는 시시콜콜한 술자리 농담이었어. 가게 동업을 하려던 친구 A와 다 함께 아는 친구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인생이 안풀려서 답답하다 취직이 안된다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냐 라며 신세 한탄을 하다 자연스레 사주 이야기가 나왔어. 금이니 나무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A가 자기 사주엔 물이 많이 부족해서 꼭 사주를 보면 방에 빈 어항이라도 갖다 두라는 말을 듣는다는 이야기를 했지. 다른 친구가 “그럼 너네 가게 이름 어항으로 하면 대박나는거 아니야?” 라고 말을 했고 바로 스마트폰으로 네이버에 어항/어항술집/바어항 등을 검색해 보니 아무것도 안 나오는거야. “그럼 가게 이름은 어항이다!” 그 날 부터 우리의 가게의 이름은 ‘바 어항'이 되었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내 가게의 이름이 되었어. 그리고 A는 훗날 ‘바 어항'의 소중한 단골이 되었지.

‘바 어항'이란 세 글자가 쉽사리 기억하기는 어려운지 비어항 이라고 읽고 말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생맥주를 팔았기 때문에 비어항 이란 이름도 꽤 창의적이게 느껴졌어) 바어 항 으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어 “목포가 항구라 그런가요?” 라는 질문도 받았어. 대부분 왜 어항으로 가게 이름을 지었는지 궁금해 하셨지. 구구절절 말씀드리기엔 머쓱해 “어감이 예뻐서요.” 라고 말할 때가 더 많았지만 말야.

목포시 공무원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혼술집' 사장님인데 이렇게 불리는게 몹시 싫었어. 그래서 꼭 ‘바어항’ 사장 또는 청춘창업 합격자 황달수 라고 정정하곤 했어. 물론 혼자 오는 여성 손님들에게 딱 맞도록 가게를 만들었지만, ‘혼술’ 만을 위한 가게는 아니었거든. ‘혼술' 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정이 안가. ‘혼술' 이란 말을 싫어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근거를 들어 설명하려니 좀 어렵지만 해볼게. 마치 ‘시발비용'은 좋아하지만 ‘소확행' 은 싫어하는 이유와 같아. ‘혼술' 이라는걸 트렌디하게 만들어놓고 어떤 소비를 부추기며 포장하는 부분이 기만적이라고 느껴졌어. 물론 나도 자영업자니까 소비자들이 가게에 오도록 만들고 싶었지만 ‘혼술' 이라는 단어를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은건 굳이 “‘혼술'이 요즘 대세잖아!” 혹은 “‘혼술’ 몰라?” “‘혼술' 안하면 인싸가 아니지 아냐!” 라며 세련된 양 요즘 세대를 다 이해하는 양 마케팅 수단으로 그 단어를 꼰대들이, 대기업들이 사용했기 때문이야. 태극기 부대가 태극기를 사용함으로 태극기의 이미지가 달라진 것 처럼 말이지. 그래서 그런 오염된 단어로 내 가게와 나를 부르는게 불쾌했어.

일러스트 이민


또 다른 베타 물고기를 위해 

나에게 혼자 술을 먹는 행위는 이 사회에 대한 반항이자 내 자유를 누리는 권리야. “뭐 먹고 싶어?”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대답하는 것. 혼자 술을 마시면서 본인이 마시고 먹는 것을 마음대로 주문하고 즐기는 행위를 어색해 하는 사람이 분명 있으니까. 나도 몇 년 전 까지는 그랬고. 남들의 시선과 말들에 신경 쓰다 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먹고싶은지 내가 뭘 하고싶은지 잊게 돼. 특히 목포에서 혼자 편안하게 술을 마시러 갈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아. 물론 아예 없지는 않아. 허나 그런 곳의 여자 단골 손님들은 남자 단골 손님과는 달리 그 수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에게 대체적으로 성적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마음 편하게 마시고 먹는 행위에 집중하기 힘들어. 술 한잔 마시려고 똥파리를 신경써야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특히 ‘술' 하면 보통 소주를 떠올리고 여럿이 다양한 안주와 맥주와 소주를 마시는게 디폴트인 목포에선 혼자 위스키를 마신다고 하면 “역시 서울에서 와서 다르네.” 라던지 “진짜 특이하다.” 같은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대답이 뒤따라와.

‘바 어항'에서는 맥스 생맥주를 팔았는데 이것조차 선입견을 가지고 보시는 분들이 몇 있었어. 왜 병맥주가 아니며, 카스를 팔지 않지? 그럼 나는 되묻곤 했지. 왜 병맥주여야 하고, 카스여야 하는지. 뭐 저런거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묻지 않기에 대답은 없었어. 목포에는 맥스 생맥주를 의아해 하며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하고 시도해 보는 걸 의외로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나는 매일같이 생맥주 기계 청소를 했기 때문에 날씨나 기계 이상 등의 예상치 못한 변수를 제외하곤 300일 정도는 맛있는 생맥주를 제공했었거든. 맥스 생맥주를 선택한 이유도 내 입맛에 가장 잘 맞기 때문이었어.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절대 시키지 않았어. 콜라를 마실지언정.

의외로 목포는 보수적인 도시야. 유교사상과는 다른 결로 보수적이야. ‘시도해봤자 뭐가 바뀌겠어, 지금처럼 서로 좋게좋게(?) 살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도시. 그래서 가게에 혼자 오시는 여자 손님들이 멋지다고 생각했어. 사실 영업 중에는 ‘베타' 물고기 손님보다는 ‘금붕어'들 처럼 귀엽게 두셋씩 놀러오는 손님들이 더 많았지만 기억에 남는 단골 손님들은 전자가 더 많아. 본인의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며 주어진 시간을 마음대로 쓰고 갔던 ‘베타' 손님들 말야. 목포는 아직 혼자 다니는 걸 쑥쓰러워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그렇게 혼자 용기 내서 와 주신 분들이 무척 고마웠지. 단골 손님들은 메뉴가 대부분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재료를 체크하고 제공 순서나 동선을 생각하기도 좋았고.

혼자 와서 간단한 식사와 술을 즐기는 여성 손님들은 꼭 한 마리의 베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 같아. 우아하게 지느러미를 살랑거리며 어항 안을 홀로 헤엄치는 베타 물고기 말야. 책을 읽으시는 분들도,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나 스트리밍 사이트를 보시는 분들도, 여행을 왔는지 이것 저것 물어보시고 검색해보시는 분들도, 화상통화를 하면서 친구와 대화를 하시는 분들도, 밀린 과제를 하던 분들도, 노트를 가지고 와서 무언가를 끄적끄적 적으면서 보시는 분들 등등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은 다 달랐지만 혼자라는건 같았어. 혼자여서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을 제공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어.

그렇지만 늘 ‘베타' 나 ‘금붕어' 같은 손님만이 있진 않았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큰입배스' 나 ‘블루길' 같은 물고기들도 있었으니까. 100%는 아니지만 95%의 비율로 생긋생긋 웃지 않는 나에게 불만을 가지는 남자 손님들이 많았지. 메뉴판 글씨가 작아서 안보인다고 읽어달라고 했던 아저씨도 있었고 ‘아가씨' 라는 호칭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니까 불쾌해 하며 소리 지르던 남자도 있었고 신문에서 보고 왔다며 타지에서 온 내게 친한 척 하는 아저씨도 있었고 나랑 잘해보라며 삼촌 뻘인 자기 친구를 두고 가는 아저씨도 있었고 페미니스트에 대해 욕하던 남자도 있었고 기모띠라는 단어를 물마시듯 쓰는 남자도 있었고 화장실 변기에 본인의 흔적을 남기는 남자와 손을 씻지 않는 남자도 있었어. 이런 생태 교란 물고기 같은 사람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으니 여기까지만 할게. 

그래서 난 인스타그램 바이오에 [노아재존 : 예의바르고 조용한 아저씨만 입장가능] 이라고 써 둘 수 밖에 없었어. 인스타그램을 보고 오는 아저씨들은 0.2%도 안되었겠지만, ‘바 어항'은 조용히 헤엄치고 싶은 물고기들이 안심하고 오길 바랬으니까. 물론 난 특유의 무표정으로 많은 아재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내보내기는게 주특기라 큰 사건 사고는 없었어. 난 지옥에서 온 크레이지 코리안 장녀 페미니스트니까. 여차하면 ‘돈까스용 고기 다지는 도구나 무쇠팬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했어. 어떤 순간에는 그런 걸 손에 쥐고 있기도 했었고.

너의 삶에서 네가 ‘베타' 물고기가 되는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어.

자, 오늘은 맥스 생맥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맥주랑 마시면 좋을 안주를 추천해줄게. 정말 쉬워. 바로 손이가요 손이가의 주인공 새.우.깡!!! 시원한 맥주는 노래방 새우깡이나 매운 새우깡 한 봉지 옆에 두고 밀린 드라마나 보고싶던 영화를 보면서 마시는게 최고잖아. 그런데 새우깡만 먹기엔 좀 아쉬울 때가 있어. 아쉬울 때 금방 만들어서 먹기 좋은 소스를 알려줄게. 이건 포스틱이나 야채타임이랑도 잘 어울리는 딥소스라구. 특히 탄산이 있는 음료와 먹기 좋아. 적당한 느끼함을 탄산음료나 맥주가 잡아주니까 말이지. 이 소스는 오징어 튀김이나 구운 오징어와도 잘 어울려. 식빵이나 바게트에 발라 구워먹어도 좋으니 한 번 만들 때 많이 만들어 놓는 걸 추천해. 냉장고에서 숙성이 되는 소스라 방금 만든 것과 다음 날 먹는 것이 미묘하게 다른 것도 재미지.

다진마늘 마요네즈


재료

마요네즈 세 숟갈 (일반 식당 스테인리스 숟가락 사이즈)

다진 마늘 ⅓ 숟갈 (일반 식당 스테인리스 숟가락 사이즈)

레몬 주스 취향껏 (생략가능)

꿀 취향껏 (생략가능)

 

  1. 마요네즈를 소스볼에 짜 줍니다.
  2. 마요네즈에 다진 마늘을 취향껏 넣고 섞어줍시다. 다진 마늘은 너무 많이 넣으면 매워질 수 있으니 매운 걸 싫어하면 아주 조금씩 더해 가며 넣어요. 이 때, 다진 마늘을 볶아서 넣으면 고급스러운 맛이 납니다. 마늘을 볶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3. 레몬 주스와 꿀을 적당량 넣고 섞으면 끝!
황달수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목포에서 온 편지

여성 청년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