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온 편지 1. 왜 목포에 갔냐면

생각하다여성 청년

목포에서 온 편지 1. 왜 목포에 갔냐면

황달수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일러스트 이민

잘 지내? 나는 이제야 독립을 했어. 아직 독립이라는 단어보다는 혼자 산다는 말이 더 어울리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난 취직을 못했잖아. 네가 가끔 놀러오던 카페랑 바 기억나? 알바 중엔 뭐 하나 더 챙겨줄 수 있어서 놀러오라고 했는데. 사장님들도 알면서 눈감아 주시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20대 중후반엔 뭐가 좋은지도 싫은지도 모르고 게으른데 열심히 살았어. 그렇게 평생 살 줄 알았는데, 엄마아빠가 서울에 살고 있으니 얹혀 살면서 내 용돈만 벌면 되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더라.

30대로 접어드니까 자신이 선택한 삶을 꾸려나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깊은 우울에 빠졌어. 너는 몰랐겠지만 여러 번 자살 시도도 했어. 그런데 남한테 피해주기 싫어서 그만뒀어. 난 그냥 사라지고 싶었을 뿐인데. 자살도 포기하고 속 빈 강정처럼 살았어.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 없이 산다는 생각으로만 살다가 친구를 보러 갔던 목포는 정말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었어. 그게 좋더라. 난 서울 토박이로 나고 자라서 사람이 사는 곳은 늘 시끄럽고 붐빈다고만 생각했거든. 목포사람들이 들으면 좀 재수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너도 우리집 알잖아. 내부순환도로 근처라서 한밤중에도 시끄러운 거.

목포는 정말 조용했어. 정작 보러 갔던 친구는 일이 있으니까 혼자 이곳저곳 돌아다닐 시간이 많았는데, 어딜 가든 조용했어. 야트막한 해변가조차.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순간을 만났어. 그래서 목포로 내려오게 된 거야.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내 작고 귀여운 수입으로도 혼자 살 공간을 구할 수 있었다는 거야. 서울 살 때는 결혼을 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는 한 집을 구해 독립하는 건 어렵잖아. 여기는 결혼, 취직 없이도 독립을 할 수 있었어. 보증금이 없대. 월세만 내면 된대. 세상에! 그런데 그 월세도 말이 안 되는 가격인 거 있지.

그래서 목포에서 독립했어. 독립이라고 말하면 굉장히 어엿한 성인의 경제적 독립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나에게는 독립보단 혼자 산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요즘 난 뭘 하냐면, 사실 이 이야기 하려고 한건데. 말이 너무 길었네!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경력을 살려 작은 술집을 하나 하고 있어. 우연히 기회가 잘 맞아 떨어져서 '도시재생' 명목으로 나온 목포시 사업에 내 제안서가 선정이 됐거든. 작은 가게지만 우여곡절이 참 많았고 여전히 많아.

그래도 혼자 산다는 거 되게 산뜻하고 좋더라. 오이랑 참깨소스 처럼 말이야. '혼자살이'의 맛이 궁금하면 이렇게 해서 먹어봐. 레시피를 첨부할게.

다음에 또 보자. 안녕.

<오이와 참깨소스>

재료

오이 한개 혹은 두개

시판 참깨소스

고춧가루 혹은 카이엔페퍼 파우더 약간

통참깨 약간

 

1) 오이를 맥주병이나 나무 밀대로 내려친다. 과거의 실수들을 떠올리면서! 너무 물러터지게 내려치면 안되고 살짝 금 가는 정도로만.

2) 한 입 크기로 잘 내려쳐진 오이들을 접시에 담는다.

3) 시판 참깨소스를 원하는 만큼 오이 위에 뿌린다. 집에서 먹을 거라면 이걸로 끝. 사진을 찍거나 손님 대접을 한다면 4)까지.

4) 통참깨, 고춧가루 혹은 카이엔페퍼 파우더를 살짝 뿌린다. 보기도 좋고 맛도 풍부해진다. 매콤, 고소, 시원, 아삭. 여기에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 한 캔을 곁들이면 완벽한 ‘혼자살이’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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