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18. 뭐 해 먹고 살 거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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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 이민갈까? 18. 뭐 해 먹고 살 거냐면

유의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커튼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뜨거운 볕이 얼굴에 내리쬔다. 그 눈부신 열기에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조금 열고 커튼을 확 젖히면, 태양 빛이 방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함께 침대에 누워있던 고양이들은 신이 나서 한달음에 뛰어올라 창가에 앉는다. 저 뜨거운 태양 덕분에 뉴질랜드는 겨울에도 때때로 덥다. 물론 흐리고 비가 오는 종일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날도 있지만 말이다. 밤에는 차가워서 맨발로는 밟을 수도 없었던 거실도, 날이 밝으면 따뜻하게 데워진다. 시리얼, 요거트,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고양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준다. 틈틈이 던져 넣어둔 빨래가 꽤 쌓인 게 보이는 날에는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인간의 머리카락이나 고양이 털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게 눈에 띄는 날에는 청소기를 돌린다. 그런 다음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해보려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오후가 되어 애인이 집에 오면 함께 늦은 점심을 준비해서 먹고 조금 대화를 나누다가 해가 지고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하면 다시 침실로 들어가 각자 책을 읽거나 트위터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씻고 잔다.

비슷하고 단순한 하루

이곳에서는 태양을 따라 돌아가는 늘 비슷하고 단순한 하루가 반복된다. 때때로 거실에 나와 할 일을 하다 늦게 자는 날도 있지만, 해가 진 뒤에는 보일러가 없어서 담요를 두르거나 꽁꽁 싸매며 버텨보지만 어떻게 해도 춥다. 그런 추운 밤을 겪고 싶지 않다면 대체로 하루의 리듬은 태양에 맞춰야 한다. 오클랜드의 겨울은 오후 다섯 시가 넘으면 해가 지기 시작하고 여섯 시만 넘어도 휴대폰 플래시를 켜지 않고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하다. 한국도 겨울에는 일찍 해가 졌던 것 같은데, 서울은 밤에도 불빛이 많아서 밖에 나가도 앞이 보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원한다면 언제든 보일러를 켜서 실내온도를 27도로 맞출 수 있었기에 해가 지는 시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살았다. 

요즘은 출근이 없어서 더 비슷한 하루하루가 되었지만, 출근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뉴질랜드의 카페는 점심 때가 지나면 문을 닫기 때문에 나는 바리스타로 일하며 새벽 6시에 출근하여 정오에 퇴근했다. 그 시간 이후로는 지금의 일상과 다를 게 없다. 간단히 식사하고 집안일을 하고 고양이를 돌본 다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요가를 하다가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에서도 원한다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내가 바라는 하루는 소박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충분히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하루에 만족하기는 조금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고, 각자 속도가 차이가 날 뿐이라고 나 자신에게 아무리 말해봤자 공허했다. 스스로 그 말을 믿어주려면 외면해야 했던 수많은 반례가 있어서였다.

일러스트 이민

합리적으로 불안해서

아무리 천년만년 바리스타로 커피를 내리며 살고 싶고, 소소하게 입에 풀칠하는 게 좋아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고 취업에 관한 질문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꼭 사람들에게 휘둘리기 때문은 아니다. 당장 알바 사이트에서 공고만 봐도 나이 제한이 걸려 있어 30대만 되어도 지원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는 걸 확인해보면, 재취업이 어려워질 거라는 불안은 합리적이다. 쉬지 않고 탄탄한 경력을 쌓아가고 월드 챔피언이라도 된다면 나이쯤은 상관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대단히 잘할 생각까지는 없다. 뉴질랜드에서는 사람마다 속도가 다를 뿐이라는 게 경험을 통해 피부로 느껴진다. 카페에 들러 만나는 바리스타들의 나이대와 피부색이 다양하고, 공고에서도 성별이나 나이를 제한하지 않기에 좀 더 안심이 된다. 한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남의 커리어에 참견하며 불안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여기서 느낀 뉴질랜드 현지의 구인 사이트와 한국 교민 사이트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한인 사이트에는 공고마다 원하는 성별을 적어 놓는다는 점이다. 뉴질랜드 사이트에서는 수백 개의 공고를 살펴봐도 특정 성별을 구한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으나 한인 사이트에서는 첫 페이지부터 절반 이상이 성별을 표기한다. ‘업무 특성상 남성분을 구합니다.’, ’여직원 구합니다.’가 많고, 애초에 모집인원을 남자 몇 명, 여자 몇 명으로 구분해서 올려놓기도 한다. 이유가 있다고 성차별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강도 높은 육체노동 직무라면 백번 양보해 이해해보려 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 나라에는 건설 현장처럼 근력을 요구하는 포지션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꽤 보이는데 말이다. 

한인 사이트에서만 여전히 커리어를 쌓으며 탄탄한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일, 임금이 높은 일에서 남성을 구하고, 허드렛일로 여겨져서 경험이 쌓여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무나 저임금 일자리에 여성을 원하고 있다. 물론, 이건 한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공고에 성별을 구분해서 표기하지 않더라도 좋은 일자리에 공공연히 남성을 선호한다. 나는 남성과 결혼하지 않을 여성이면서 평생 저임금으로 생활할 자신도 없어서 시시때때로 미래가 불안했다.

사는 나라를 바꾼다는 건 한 번 쯤 선택을 한 것이다. 주어진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한번 생각해본 거고, 여러 조건을 비교해보고 직접 선택을 하고 비행기표를 끊고 도착한 곳이 여기다. 그렇게 선택한 나라니까 예상과 다르더라도 만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태어난 곳이라는 이유로 임의로 정해진 나라보다는 직접 기후와 언어도 조사하고 지도도 살펴보고 내가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룰 수 있는지도 살펴보고 택한 나라에 더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뉴질랜드가 한국보다 살기 좋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모든 면에서 누구에게나 좋은 나라는 없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더 유리한 곳이 있을 것이다. 이 삶을 택하기 전에 내가 고려했던 건, ‘뭐 해 먹고 살 것인지’와 ‘무엇이 더 죽도록 싫은지’였다.

뭐 해 먹고 살 거냐면

어떤 직종은 한국에서 더 유망하거나 고임금일 수도 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끼리도 생활이 다 같은 게 아니듯 어느 나라에 사는지보다 그 나라 안에서 어떻게 살 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바리스타로 서비스직에서 오래 일하고 싶었다.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며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에 신물이 났다. 그래서 커피를 만드는 게 좋았다. 돈을 받고 커피 한 잔을 내주는 일에서는 번지르르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누구도 이미 만들던 커피를 갑자기 뒤집어엎자고 하지 않았고, 사내 정치 같은 건 조금 소홀히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빠르게 많은 음료를 만들어낸다면 인정받을 수 있었다. 스스로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글을 써가며 월급을 받던 회사 생활보다 쉬웠다. 

이 일을 하며 나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서비스업이 절대 맞지 않을 거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일상에서 사람들과 소통이 적은 만큼 일터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활력이 되었다. 서비스업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건 사회에 잘 소속되어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간단한 대화를 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계속 확인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에 크게 소리치고 빠르게 움직일 일이 없었는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카페 일을 하자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게 느껴져 안심도 되었다. 그리고 종일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에 있을 때와 달리 앉을 때마다 온 몸이 아프지도 않아서, 쉴 때 책을 읽기도 좋았다. 다만 한국에서는 때때로 서비스 노동자에게 인격모독과 폭언이 돌아오고, 양심과 다르게 사과를 하거나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때가 있는 것만 빼면 다 좋았다. 그 점에서 나는 이 일을 하려면 한국이 아니어야 했다.

일러스트 이민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것

뉴질랜드에 와서 행복해졌다기보다는 타이밍이 잘 맞았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부터 계속 여러 직장을 시도해봤고, 나에게 더 맞는 조건과 환경을 깨달은 지 얼마 안 됐다. 예를 들어서 나는 주말에 근무하는 건 싫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게 더 싫었다.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버티는 것과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 쉬는 것 중에서는 단연 후자가 나았다. 모든 걸 갖춘 신의 직장은 없고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나는 늘 뭐가 더 싫은지 스스로 묻곤 했다. 한국에서는 손님들과 로봇처럼 반복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동료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더 힘들었다. 인기 있는 영화가 때때로 쓰레기라고 생각했고(성범죄자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이슈에 관한 생각이 달랐고(살인자를 사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월드컵 같은 범국가적 이벤트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 친해지면 쉽게 화제가 되는 이성 연애와 이성 결혼이 관심사가 아니었고, 끊임없이 소개팅을 주선하는 사람들 때문에 늘 곤란했다. 차라리 업무강도가 높아서 대화할 시간도 없는 게 더 편했다.

싫은 건 훨씬 더 많았다. 적정 월급을 주지 않는 것도 싫고, 월급이 밀리는 것도 싫고, 회사가 먼 것도 싫고, 적당한 복장을 갖추고 출근해야 하는 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싫은 건 아무도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낭비나 다름없는 회의가 끝도 없이 늘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에 더해 휴일이나 퇴근 이후의 시간을 계획할 수 없는 건 최악이었다. 나는 차라리 고된 노동을 하고 제시간에 끝나는 게 나았다. 계획에 없던 야근이 발생하는 게 정말 죽도록 싫었다. 일상과 하루를 주도적으로 계획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싫었던 것 같다.

가장 싫은 게 주말 출근이나 높은 업무 강도나 육체노동이라면 이민을 다시 생각해봤을 것 같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는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은 그런 일을 포함할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일이 고되더라도 제시간에 퇴근하고, 업무 범위에 쓸데없는 비효율과 한국식 ‘사회생활’이 없는 게 중요했다. 나는 한국에서는 바리스타로 경험을 쌓아 카페 매니저로 진급하고 싶었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터마다 다르겠지만 비 오는 날이면 아프다고 결근하는 직원이 많고, 정당한 지시사항에도 쉽게 따르지 않고 항의하는 등 한국보다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다반사인 분위기인 것을 많이 봤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한국보다 더 많이 일할 때도 있지만, 삶에 죽도록 싫은 것이 없어서 그런지 나는 지금 행복하다. 사실은 한국에서 한 번도 도달해본 적 없는 상태다. 나만 여기에서 행복하게 생활하는 걸까 궁금해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으며 한국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하고 공부하며 분주하게 지내는 파트너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봤다. 그는 나와 달리 ‘행복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바쁘다’고 했지만, 뒤이어 나온 말에는 나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일러스트 이민
그래도 한국에서는 삶이 낭떠러지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 같아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손을 놓으면 떨어질까 봐 하는 수 없이 열심히 살았어. 여기서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들판 같아서 떨어지면 잠시 누웠다가 또 하면 되니까 여유롭지.

퇴사와 힐링 책이 아직도 베스트셀러인 걸 보면 우리가 다녔던 직장만 혹은 우리의 삶만 하필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미 열심히 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젖먹던 힘까지 다해 간신히 해내고 있는데도, 알지도 못하면서 더 잘하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여기라고 다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프면 일찍 집에 가서 쉬고 기분이 좋으면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곳이다. 적어도 성과를 내서 다른 지점을 이겨야 하고, 언제까지 서비스 점수가 몇 점이 되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만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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