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나는 화장은커녕 일주일째 같은 옷을 입기도 하고, 신발에 흙이 묻어도 개의치 않고, 씻지 못했어도 대충 눈곱만 떼고 5분 안에 외출 준비를 마칠 수 있다. 출근을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더 신경 쓰기는 해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잘 씻는 정도였고, 늘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외투를 입고도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뉴질랜드가 외모주의에 관한 대단히 진보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이곳에서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이고, 다양한 체형과 머리색과 피부색이 뒤섞인 사람들이 지내고 있어서 생김새의 스펙트럼이 넓어 한국에서처럼 획일적인 잣대로 외모의 등급을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욱 한국에서라면 결코 경험해볼 수 없었을 자유로움이 아닐까?
한국의 외모 관리 문화는 워낙 과열된 것도 사실이다.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한국의 뷰티 산업은 13조 원의 규모를 자랑한다. ‘K뷰티’라는 말도 있을 만큼 한국은 화장품과 성형수술이 유명한 나라다. 그런 나라 안에서 여성들은 비현실적인 기준의 아름다움을 지녀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타인과 자신의 외모를 조각조각 재단하고 평가한다. 안부 인사로 외모 평가를 건네고 미용시술과 화장품 정보를 검색하며 우리가 모두 고통받고 있는 건 자명하다.
거울이 없는 삶
뉴질랜드 사람들은 출퇴근 길에 그냥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 마트 직원도 카페 직원도 각자 자기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나는 한국에서 2년 동안 유니폼을 입는 직장에 다니면서 정말 아팠던 날 하루를 제외하고는 유니폼을 그대로 입은 채 출퇴근을 해본 적이 없다. 다른 동료들도 모두 도착하자마자 유니폼으로 갈아입더라도 화장을 하고 별도의 외출복을 입고 출근했다. 근무를 마치고는 귀찮아도 꼭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고 퇴근을 했다. 뭐가 그런 차이를 만드는지 궁금해진다. 나도 여기 와서 유니폼을 입은 채 돌아다니다 보니, 최근에는 잠옷으로 입는 수면 바지를 입은 채 집 앞에 나갈 만큼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지내는 나의 일상도 한국에서와 많이 달라졌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유롭다. 뉴질랜드의 우리 집에는 거울이 없다. 물론 욕실에 얼굴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 붙어 있지만, 잘 닦지도 않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한국에서는 전신거울도 있었고 손거울도 들고 다녔고 화장대에도 옷장에도 거울이 있었다. 여기서는 욕실에 있는 거울마저도 잘 보지 않는다. 대개 거울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로션과 선크림을 세수하듯 대충 바르고 옷 입고 신발을 신는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그 뿌연 거울을 보며 십 분 정도 머리를 손질하고, 또 십 분 정도를 들여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른다. 집에 전신거울이 없었던 건 한 십오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전신거울이 필요했다. 나는 꽤 이사를 여러 번 다녔는데 어디로 이사하든 전신거울을 제일 먼저 주문했다. 당장 머리를 손질하고 옷을 입고 외출하기 위한 필수품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그럴 필요 자체가 없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한국에 다녀오면 한동안 화장도 하고 머리도 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에 갈 때마다 주변에서 건네는 내 외모가 초췌해졌다는 걱정을 듣고 와서 아차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상황이 한국과 달라서 그런지 마음먹고 꾸미려고 해도 잘 안된다. 한국에서는 외출하면 백화점, 식당, 영화관 등 주로 실내에 머물렀는데 여기는 오래 머물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전혀 없다. 카페조차도 몇 시간씩 앉아 있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몇 층씩 건물 전체가 다 프랜차이즈 카페로 구성되어 있거나, 한 층이어도 테이블이 100석도 넘는 한국의 카페와는 달리, 이곳에는 테이블도 몇 개 없는 좁은 가게가 대부분이고, 손님들은 식사나 커피를 즐긴 후에는 길어도 한 시간 이내에 바로 일어선다. 한국의 카페처럼 그렇게 따뜻하거나, 반짝반짝 빛날만큼 깨끗하거나, 안락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친구를 만나도 서로의 집으로 초대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주로 야외에 머문다. 한국보다 햇빛도 강하고 바람도 세차게 불고 비도 많이 와서, 화장이나 머리에 공을 들여도 쉽게 망가지니까 불편하다. 게다가 밤늦게까지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해가 지면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꾸밈 노동의 시간에 비해 밖에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 의지가 잘 생기지 않는다. 잠깐 나가서 두 시간 있을 건데 두 시간 동안 화장과 머리를 할 의욕이 생길 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마음 먹고 꾸민 모습이 주변과 잘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다. 파티에 참석하는 날이라면 다르겠지만, 일상적으로 짙은 색조 화장이나 액세서리나 신경 써서 세팅한 머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눈에 띄고 딱 봐도 한국인처럼 보여서 나는 이제 멀리서부터 한국인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 꾸밈은 때때로 기이해 보이기도 한다.
외모가 자원인 사회
나는 학벌주의에 반대하지만, 대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 신념과 실천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졸업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탐났다. 그렇듯이 외모가 자원인 사회에서 외모 관리를 멈춰야 할 이유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외모 관리를 강요하는 사회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여성에게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에 반대하지만, 당장 내 생존에 직결되는 무언가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내가 시민단체에서 일하거나 진보적인 분위기의 학계에 있다면 좀 다를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에서 오랜 시간 성노동에 종사했고 그 다음 오랜 시간 동안은 서비스업에 종사했다. 성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서비스업에서도 꾸밈 노동은 중요했다. 단정한 머리와 깔끔한 옷은 물론이고, 여성 직원들은 화장도 해야 했다. 보이지 않게 강요될 뿐 아니라 상사가 대놓고 화장을 하라고 말했고, 부지런하게 일찍 일어나서 화장하고 출근하는 것은 자기관리이고 실력으로 여겨졌다. 시험 전날 일부러 공부를 안 하지 않듯이, 나는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화장을 더하면 더했지 일부러 덜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나는 외모와 여성성을 이용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알지 못했다. 학교에서 잘 모르는 부분을 도와주는 선배들은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도움을 마다할 만큼 충분히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근력이 약해 꽉 잠긴 뚜껑을 잘 열지 못하고,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고, 길을 잘 잃고, 매사에 서투르다. 남자든 레즈비언 부치든 나타나서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평생 레즈비언이었고, 남자에게 잘 보이려는 꾸밈 노동을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 꾸밈이 온전히 자기만족인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나는 자발적으로 외모를 관리하고 있고, 이게 내 욕망이고 주체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워지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다.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살아남고 싶다는 욕구에 가까웠다. 이렇게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무엇도 잘 해내지 못하는 내가 누군가의 인정과 도움을 받기 위해 가져야 할 덕목이 바로 외모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나는 능력을 인정 받으며 회사 생활을 했지만, 내 능력을 인정하는 줄 알았던 대표는 나에게 부적절하게 접근했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다. 다음으로 일했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남자 점장은 직원을 뽑을 때 외모를 중시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했고, 사회적 여성성과 그의 취향에 맞는 외모를 갖추고 있는 직원들을 편애했다. 덜 힘든 스케줄을 배정하고 강도 높은 업무를 덜어주는 등 편의를 제공했고, 나 또한 그 편애하는 그룹에 속해있었다. 나는 늘 내 능력으로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 능력 때문인지 외모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건 나를 끝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실력으로 얻은 성과인지 외모로 얻은 결과인지 헷갈리기에 자존감이 오르락내리락했고,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업무적인 역량을 끌어올려야 할지, 그럴 시간에 ‘사회생활’을 하며 여성성을 갖추어 살아남아야 할지 모호해졌다. 어쩌면 내가 외모를 자원화할수록 내 다른 능력과 장점을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거울의 함정
한정된 용돈으로 음식 대신 옷을 산 적이 있고, 몸무게에서 3kg 정도를 줄이기 위해 물만 마신 적이 있다. 화장하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못했던 때가 있고, 머리를 손질하느라 지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외모 중 어디가 부족한지 잘 알고 있고, 어떤 시술을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해 시간이 날 때마다 늘 검색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내 몸을 파편적으로 바라보았다. 스스로 외모를 하나하나 등급을 매기고 고깃덩이나 사물처럼 대상화하여 바라보느라 인간으로서 갖는 생각이나 욕망에 주목하기 어려웠다. 허벅지가 굵고 가는지가 아니라 내 다리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기능에 집중해본 적이 없다.
여전히 K뷰티의 기준으로 내 모습을 볼 때도 있다. 인스타에 뜨는 광고 때문에, 늘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사진 때문에 한 번씩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가끔 내가 외모를 관리하지 않는 게 무언가 굉장히 잘못된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당장 바깥에 나가면 쇼핑몰 모델처럼 꾸민 여자들이 걸어 다니는 것은 아니라서 이를 현실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 아무리 내가 외모지상주의가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하루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이 립스틱 좀 바르라고 하면 내가 문제인가 고민하게 된다. 지금은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외모에 신경을 덜 쓰게 되면 거울 앞에서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도 사라진다. 쓸데없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면, 외모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굳이 나를 돌아보며 초조해하는 일도 줄어든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어떤 존재인지가 말할 것도 없이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어디에 갑자기 가야 하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애인과 한창 연애하던 시절, 우리가 싸웠던 이슈를 모아 발생 빈도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면, 이 ‘갑자기’는 아마 한 랭킹 2위 정도에는 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때 나는 외출 계획이 있다면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해서 시간이 필요했고, 열심히 준비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집에 들어가야 하면 화가 났다. 민낯으로도 잘 다니고 브라를 안 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외출을 할 수 있는 외모와 그렇지 않은 외모의 기준은 명확히 있었다. 갑자기 즐거운 일이 떠오른다고 해서 휙 나가기에는 신경이 쓰였고, 적어도 씻고 렌즈를 착용하고 비비크림 정도는 바르고, 적당한 외출복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갑자기’ 일어나서 장을 보러 갈 수 있다. 애인과 둘이 ‘저녁 먹으러 나갈까?’ 하고 마음이 맞으면 5분 안에 현관에 나가 신발을 신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보다 외출을 할 수 있는 외모의 기준이 많이 낮아진 탓이고, 이게 매우 기분이 좋고 자유롭게 느껴진다. 이제는 나 또한 갑자기 흥이 났을 때 외출하는 걸 좋아하게 되어 싸울 일도 없어졌다. 내 성격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지금 한국이 뉴질랜드보다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 내가 좁은 곳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기분이다. 여기 와서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하고 깨달았다. 사람은 로켓처럼 빠른 배송과 음식배달 앱이 없어도 살 수 있고, 전신거울 없이도 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