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여자
누가누가 잘 했나 상 줘서 한 해를 기억하는 연말이다. 지극히 사심으로 패션계에 눈부신 순간을 선사한 여자들을 뽑았다. 그들의 멋진 공통점은 파격적인 노출, 남성의 판타지에 맞는 섹시한 모습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
새로운 메이크업을 보여주마, KYLIE JENNER
언제나 그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지상 최고의 이슈 메이커, 카다시안 패밀리. SNS를 장악한 이 가족 중 올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건 단연 막내 카일리 제너다. 1997년생, 올해로 만 19세인 그가 공을 세운 분야는 뷰티다. 초록색 헤어, 산처럼 뾰족하고 새까만 눈썹, 지네의 다리처럼 속눈썹을 강조한 마스카라, 마네킹을 보는 듯 극단적인 컨투어링, 팥을 삶아 먹은 듯 두툼한 보라색 립까지. 그의 이름만 들어도 자연스레 떠오르는 메이크업은 전지구적으로 흥행했고, 곧 출시된 립스틱 시리즈인 ‘카일리 립 키트’는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 티켓팅보다 빠른 속도로 완판을 이어갔다. ‘순해 보이는 일자 눈썹 튜토리얼’이 즐비하던 국내 뷰티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으니, ‘센 언니’ 메이크업에 목마르던 한국 여자로서 그저 고마울 뿐.
눈과 귀를 호강시킨, BEYONCE
비욘세의 6집 <레모네이드>
우아한 페미니스트, MARIA GRAZIA CHIURI
리한나를 뮤즈로 삼고 쫙 붙는 라텍스 소재의 부츠를 내놓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가 떠난 디올은 조금 심심했다. 몇 시즌 간 공석이던 디올에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건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그는 발렌티노의 오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발렌티노에 우아한 발레리나 이미지를 심어 넣었던 장본인이다. 디올의 첫 여성 수장으로 첫 데뷔전을 치른 2017 S/S컬렉션이 공개됐을 때, 파격을 기대하긴 글렀구나 싶었다. 펜싱에서 영감을 얻었다지만, 펜서의 복장을 한 발레리나들이 사뿐사뿐 걸어오는 모양새였으니까. 하지만 아쉬움은 잠시, 중반을 지나선 쇼에 등장한 티셔츠는 그의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는 그동안 어떤 패션 하우스의 쇼에서도 볼 수 없던 강력한 메시지였던 것. 좀처럼 예상할 수 없던,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페미니즘의 만남을 목도한 순간이다. 이토록 우아한 페미니스트라니!
내 머리가 어때서, 한예슬
‘나이아가라’ 파마를 한 한예슬이 공항에 나타났다. 꼭 붙는 스키니 진 대신 배꼽까지 올라온 듯한 피트의 ‘맘진’을 입고 온 것 까지 그의 모습은 90년대 TV에서 튀어나온 여배우를 보는 듯 했다. 연예인의 공항 행엔 화보 촬영, 행사 참석 등 다 저만한 이유가 있기에, 한예슬의 행선지도 궁금했다.
그가 향한 곳은 파리, 샤넬의 패션쇼장이다. 한국을 대표해 샤넬의 패션쇼에 참석해 쇼를 보고, 한 패션 매거진의 커버를 장식할 동안 그 폭포수같은 머리는 변함이 없었다. ‘공개 연애와 이별’ 후 마치 자숙이라도 하듯 활동이 뜸해지(길 강요받)던 여자 연예인의 행보와 사뭇 다른 그의 유쾌한 모습에 어쩐지 통쾌한 생각마저 들었다.
내 몸은 나의 것, 김혜수
한 트위터리안(@sangseek_kim)이 남긴 말로 그가 올해 남긴 중요한 퍼포먼스를 기억할 수 있다.
“투사하기위한 도구로써, 섹스 어필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로 여성들에게 몸을 드러내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되자, 김혜수는 오히려 남성 풍의 단정한 정장으로 자신의 몸을 감추어 버린다. 김혜수의 패션 코드는 바로 여성의 몸에 주어지는 억압에 대한 저항 그 자체다.”
언젠가부터 여배우의 노출 지수에 순위마저 매기던 연말 시상식에서 김혜수가 입고 나온 팬츠 수트를 보고 한 말이다. 더욱이 김혜수는 오래도록 청룡 시상식의 MC로 군림하며, 과거 파격적인 드레스로 늘 화제에 오르던 배우. 이번엔 어떤 드레스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까 궁금증을 모으던 그가 선사한 반전 ‘한 방’에 제대로 치인 건 나뿐일까.
주인공은 바로 나! MICHELLE OBAMA
영부인은 그저 내조의 여왕 자리가 아니다. 힐러리 지지 연설로 바다 건너 한국인까지 ‘미국 뽕’이 차오르게 만든 미셸 오바마의 연설 솜씨가 이를 증명한다. 영부인은 대통령 못지 않은 영향력으로 각계각층과 소통한다. 그렇기에 영부인의 패션은 유행이 되기도, 질타를 받기도 한다. 미셸 오바마의 패션은 정숙하기보단 실용적이고, 때론 대통령보다 돋보였다.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그를 위해 특별 제작한 샴페인 골드 빛 드레스를 입고 마지막 국빈 만찬 행사의 호스트가 된 모습에서 ‘이토록 스타일리시한 퍼스트 레이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