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 2.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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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 2. 좋아하니까

김지양

영화 <우동>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히트를 낳는 것은 가능하지만, 붐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채 몇 년 전만 해도 한복은 불편한 옷, 비싼 옷, 자신의 돌잔치나 결혼식 때 맞춰 딱 한 번 입고는 다시는 꺼내입지 않는 정도의 옷이었다. 곡선의 아름다움과 한복의 우수성을 아무리 이야기한들, 영화에서와 같은 붐은 누군가가 일으키고 싶다고 해서 일으켜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2016년 한국은 바야흐로 한복 전성시대다. 종로의 고궁과 인사동 일대에서는 한복을 입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명절이나 경복궁 야간개장과 같은 행사가 있을 때면 거리는 한복을 입은 사람으로 가득 찬다. 생활한복 브랜드가 여럿 생겨났으며, 20대를 중심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한복을 입는 것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Photo by minlee

이런 상황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한복 붐이 딱 10년 전에 왔더라면, 나도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세터가 되었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였다.

한복이 유행일 때 한복을 입는 것은 별다를 것이 없지만, 내가 오늘 이야기하려는 ‘대체 이런 옷’은 딱 10년 전, 내가 대학교 1학년일 때의 한복이다.

그 당시 내 한복은 ‘생활한복’도 아니요, ‘전통한복’도 아닌, 무려 ‘개량한복’이었다. 

그 한복은 개량한복계의 독보적인 선두주자였던 돌실나이에서 만든 것으로, 나의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인(다른 한 사람은 엄마다) 이모가 입다가 내게 준 옷 중 하나였다. (그 당시 나는 정말이지 내 손으로 내 옷을 산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엄마와 이모가 본인들 생각에 내게 어울린다고 느끼거나, 본인들이 안 입는 옷을 내게 투척하고 간 덕분이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청록색 긴 저고리는 매듭을 단추처럼 사용해서 여미는 방식이었고, 베이지색 치마는 허리에 훅을 채우는 스타일이었다. 지금이야 매듭이나 옷고름, 디자인과 패턴 등이 더 많이 개발됐지만, 그 당시에는 저고리의 길이나 치마의 여밈만 현대식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매우 파격적인 형태의 한복이었던 때였다.

사실, 나는 한복을 정말 좋아했다. 좀 더 정확히는 전통복식에 늘 관심이 많았고, 한복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도 한 번은 해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한복을 입고 고궁에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일상복으로 입는 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복을 입는 것은 학교 선생님이거나 할머니들, 혹은 절에 다니는 보살님들 정도였던 시절이었다. 특히 지리 선생님이나, 도덕 선생님(혹은 윤리 선생님), 국사 선생님, 한문 선생님 등등이 여름이면 모시 생활 한복, 겨울이면 누빔 한복 패션을 뽐내시곤 했었고 개량한복은 일종의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개량한복’이 썩 맘에 들었다. 

나는 대전에서 대학을 다녔고, 지금처럼 한복을 입고 어딘가에 놀러 가거나 그럴 일이 없으니 수업에 그 ‘개량한복’을 입고 갔다. 마침 우리 과 한식교수님 한 분이 간간히 한복을 입으시곤 했는데 강의실에 들어선 나를 친구들은 그 교수님으로 생각하고 아주 잠깐 인지장애를 겪는 것 마냥 아무 말이 없었다. 본인 강의가 아닌데 교수님이 강의실에 들어오시니 친구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빵 터진 것은 그 어리둥절 이후의 일이었다. 게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선배들도 개량한복을 입은 나를 보고 교수님으로 착각하고 인사를 하다 멈칫하곤 했다. 인상착의에 입은 옷도 비슷하니 뭐… 괜한 오해를 사는 일이 잦아지자 겸연쩍은 맘이 든 나는 학교에 갈 때 ‘개량한복’ 입기를 슬그머니 그만뒀다. 그리고 살이 점점 찌면서 그나마도 맞지 않는 옷이 되어 그것을 주변의 누군가에게 선물하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Photo by minlee

그러다 이 한복 붐에서조차 플러스 사이즈는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에 히읗한복과 손잡고 66100에서 66사이즈 이상의 한복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한복을 입을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제품이 나오던 첫날 66100 필름파티 사회를 보게 되어 빨간 철릭 원피스를 입었는데, 그날의 주변 반응은 10년 전의 그것과 180도 달랐다. 어디서 샀는지 묻거나, 너무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하는 등 온통 긍정적인 것들뿐이었다.

지금이야 공장에서 만든 한복도 많이 나오고 가격도 저렴해졌지만, 개량한복이라고해서 가격이 싸진 않았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개인의 체형에 따라 맞춤으로 제작해야 하는 한복이야말로 소위 ‘부내나는’ 옷의 최고봉에 있음이 너무나도 명확했지만, 그 당시 한복의 대중적인 인식이 ‘구식’, ‘촌스러운 것’, ‘나이든 사람들이 입는 옷’이었기에 한복을 입는 개개인의 선택과 취향은 쉽게 평가절하되곤 했다.

입고 싶은 대로 입는 트렌드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가 새삼스레 조명받는 요즘, 한복을 입는 것이 각자의 개성이 존중하고 각자가 원하고 좋아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것 마저 하나의 트렌드로 삼는 기현상은 아닌가 싶은 의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 유행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또 얼마나 유행을 따르지 않거나 따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냉담해질까 싶어 조금은 우울해졌다.

그렇다면 이토록 급변하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가지려면 어째야 할까. 어떤 것을 좇을 때, 잠시 멈춰서 이게 유행이어서 좋은지, 그저 좋아하니까 좋은지를 생각해보시길 권한다. 연예인 누가 입었다더라, 이게 유행이라더라, 명품이라더라 등등의 요소가 아닌 이 옷이 나에게 대체 불가능한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붐이 지나가고 나서도 흔들림 없는 ‘나만의 스타일’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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