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6. 돌고도는 유행 속의 꽃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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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6. 돌고도는 유행 속의 꽃무늬

김지양

해일

바야흐로 꽃무늬 전성시대다. 포털사이트 쇼핑란에 ‘꽃무늬’를 검색하니 2017년 3월 20일 23시 58분을 기준으로 781,056건의 꽃무늬를 키워드로 한 상품들이 나를 사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꽃무늬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해온 나로서는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을 달래기 어려웠다.

평소에 내가 꽃무늬 원피스를 입으면, ‘엄마 옷이냐’, ‘촌스럽다’, ‘좀 잔잔한 꽃무늬를 입지 그랬냐’, 그래서 잔잔한 꽃무늬를 입으면 ‘꽃이 너무 작아서 징징그럽다’며 혹평 일색이었던 사람들이 ‘꽃무늬 넘나 좋은 것’하고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벚꽃엔딩이 울려퍼질 봄날에 입을 꽃무늬 원피스를 검색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그 사람들을 일일히 찾아가 “내가 꽃무늬 이쁘다고 그랬지!!!!!! 이 빵꾸똥꾸들아!!!!!!” 라고 소리쳐주고 싶은 심정이랄까. (빵꾸똥꾸를 모르는 당신… 젊군요…)

photo by minlee

큰 꽃, 작은 꽃, 빨간 꽃, 자수 꽃 등등 꽤 많은 꽃무늬들과 함께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꽃무늬 아이템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엄마가 원피스와 함께 사줬던 핑크색 꽃무늬 볼레로다. 

싸이월드를 뒤져 겨우 찾았다. 아. 참 꽃 같았다.

원피스를 좋아하지만 민소매는 아직 쭈뼛거리던 대학시절, 봄의 시작부터 여름의 끝무렵까지 나와 그 꽃무늬 볼레로는 늘 함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을 입다가 옷은 멀쩡한데 이제 나와의 인연을 다했다는 기분이 든 어느 날, 친한 친구에게 기꺼이 선물로 떠나보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꽤 많은 꽃무늬 아이템들과 함께했고, 봄이고 여름이고 꽃무늬만 보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photo by minlee

꽃무늬가 사람들의 옷장을 휩쓰는 지금, 꽃무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거리의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사람들과 쇼핑몰 장바구니에 꽃무늬 아이템을 담아둔 사람들 중에서 유행아이템이나 남의 스타일에 유난히도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계속해서 꽃무늬를 사랑해달라? 주변사람들을 이해해달라? 뭐 이런 건 바라지도 않으니 ‘내 꽃무늬에 고나리질 하지 말라’다. 

photo by minlee

사실, 네가 꽃무늬를 입든 말든 나는 별 관심이 없고 내가 입는 꽃무늬가 어쩌네 저쩌네 말아주기만 해도 좋겠다. ‘유행템’이 되고서야 “어머, 너 ‘유행하는’ 거 입었네?”하며 ‘너도 유행하는 거 입을 줄 아는구나?’하는 표정으로 날 보던 너의 눈빛이 어제의 나를 ‘패션고자’ 혹은 ‘취향 나랑 안 맞는 독특한 애’ 취급하던 눈빛과 교차되어 매우 거북스러운 것은 백번 양보해서 참아주겠지만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것을 볼품 없는 것,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만둬 주기를 바란다. 아마 당신은 이 계절이 끝나고 유행이 지나가면 그저 한 철 입었던 옷으로 그 꽃무늬를 기억하겠지만(혹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래 고심해서 고른 색, 무늬, 크기의 꽃무늬고 옷이란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한철이면 지고 없는 꽃이지만 지지않는 꼿꼿함으로 거기에 늘 있는 모습이 좋아서, 좋아했던 애가 예쁘다고 했던 옷이 꽃무늬여서, 그냥, 좋아서 등등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애정하는 마음은 다 같을 테니 말이다. 나도 당신이 무엇을 입든, 당신이 그 옷을 좋아하는 이유를 존중할 테니, 이 봄이 가고 유행이 가더라도 부디 나의 꽃무늬에게도 그래 주기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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