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 4. 푹 파인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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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 4. 푹 파인 드레스

김지양

그래. 나 가슴 크다. 

내 가슴이 홍길동도 아니고, 큰 걸 크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하고 싶지만, 국민 정서상 자신의 가슴이 크다고 말한다는 것은 일종의 과시이자 자랑으로 여겨지곤 해서 큰 가슴의 장점보다는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음에도 큰 걸 크다고 말하는 게 쉽지 않다.

가슴이 큰 여성들은 모두 공감하리라. 어깨가 얼마나 아픈지, 소화는 얼마나 안 되는지,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생리 때는 발사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부어오르는 이 젖 두 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존재인지. 그럼에도 나는 ‘내 가슴 큰데 부라자라도 하나 보태 줘 봤냐’고 소리치지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곤 한다.

불편은 신체적 고통에서 그치지 않는다. 교복 시절부터 블라우스의 앞섶에는 똑딱단추가 늘 달려 있었고 그나마도 위 아래 단추가 실종되는 일이 부지기수라 안에는 티셔츠를 입고 아예 단추를 풀어헤치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옷을 고를 때 가장 신경 쓰게 되는 것은 가슴이었다. 가슴이 너무 지나치게 커 보이지는 않는지, 혹시나 가슴골이 보이지는 않는지, 보인다면 안에 슬리브리스 탑을 입을 수 있을 만큼 여유있는 사이즈인지 등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My Little Black Dress

그리곤 몇 해 전, 네일 브랜드 런칭 행사에 초대받아 포토월에 서게 된 일이 있었다. 아이돌, 연예인도 오는 큰 행사여서 특별히 블랙 미니드레스를 빌렸는데 앞 뒤로 V넥으로 목 부분이 많이 파져 가슴골이 도드라지는 옷이었다. 긴장을 하긴 했지만, 그날의 포토월은 환상적이었다. 단 한 가지 사건을 빼곤 말이다. 

보통, 그런 행사에는 연예인들 대부분이라 자신이 운전을 해서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리무진이나 누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오기 마련인데, 나는 리무진도 없고 면허도 없으니 그냥 택시를 타고 행사장에 갔다.

문제는 다시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일어났다. 옷이 좀 민망하긴 해도, 사람이 적은 낮 시간이니 괜찮을거란 생각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어떤 50대 중년 남성이 내 가슴을 계속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참다못해 “아저씨, 그만 좀 쳐다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적반하장으로 “아니, 보라고 그러고 다니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게 아닌가. 평소 같으면 아무 말 못했을 텐데, 그의 말이 어지간히 기가 막혔던 나는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계속 쳐다보시는 건 좀 아니죠.”라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꾸했다. 그제서야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 그런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실 불쾌한 경험이긴 했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나는 푹 파진 옷을 입는데 당당해졌다. 내가 그런 옷을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나의 특정 신체부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확실히 자각해서다. 덕분에 앞으로 파인 블라우스, 뒤로 파인 원피스, 옆으로 파인 맥시 스커트, 앞으로 터진 스커트 등등을 열심히 사 모으게 됐고 더욱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게 되었다.

'푹 파인 드레스'

Photo by minlee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운명처럼 이 ‘푹 파인 드레스’와 만났다. 핀업걸을 연상시키는 빈티지한 디자인에 가슴부분의 주름장식, 허리는 잘록하고 길게 퍼지는 A라인. 수줍음이란 1g도 섞지않은 순도 100%의 섹시함. 나는 이 드레스의 당당한 매력에 빠져 66100 신상으로 무려 해외 바잉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 여름, 처음으로 이 ‘푹 파인 드레스’를 입고 외출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팀이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내 몸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을 서로 나누는 ‘시선파업’ 퍼포먼스를 하게 되었고 그 자리의 사회를 부탁 받았던 날이었다. 행사에 앞서 상암동에서 미팅이 있어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로비에서 담당자를 기다리는데, 뭔가 미묘한 기류를 느꼈다. 

거짓말처럼 아무도 내 가슴을 쳐다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곤 여전히 면허가 없던 나는 퍼포먼스가 열리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행사를 마치고 전철을 타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야 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아무도 내 가슴을 쳐다보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쳐다볼 엄두를 못 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어지간한 노출이었다면 흘깃거리기라도 할 텐데, 이건 대놓고 ‘자, 옛다. 여기 가슴’ 이런 느낌이었는지 눈알을 함부로 굴리다가는 현행범으로 철창 신세를 못 면한다는 것을 모두 안다는 눈치였다.

나는 그때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간 숱하게 들어왔던 ‘네가 노출 있는 옷을 입었으니 그럴 만 하지’류의 모든 말과 사회의 규제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영화 마스크에서 마스크를 쓴 주인공이 평소와는 다른 성격과 힘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그 드레스를 입었을 때 그 드레스가 가지고 있는 성격과 힘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은 선녀의 날개옷을 빼앗아 숨겨둔다. 그녀가 날 수 있는 ‘힘’을 되찾아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내게는 그날의 드레스가 날개옷이자 전장에서의 갑옷처럼 든든하기까지 했다.

날개옷  / 갑옷

Photo by minlee

나처럼 많은 여성들이 사회와 남성들의 시선에 억눌려 자신의 날개옷이자 갑옷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찾을 의지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단적인 예로 뱃살과 엉덩이, 두꺼운 허벅지와 종아리, 팔뚝은 가려야 하는 신체의 결점, 결함으로 치부되어 개인이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옷을 제한하게 만든다. 날씬한 몸만이 무결한 몸이라는 견고한 전제가 그 안에 깔려 있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시선의 규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쇼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끔 쇼룸에 오시는 분들에게 시도해보지 않았을 법한 옷을 권하면, ‘이런 옷을 입고 갈 데가 없어요’, ‘이런 건 저랑 안 어울려요’라고 손사래를 친다. 나는 그 대답을 들은 채 만 채 일단 입어보고 이야기 하라고 탈의실에 들여보내지만, 대다수가 그 옷을 입은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옷을 벗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나는 더욱 힘주어 새로운 시도를 해 보기를 권한다. 내 신체일부를 가려서 나를 완벽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옷이 아니라, 당신을 있는 그대로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느끼게 해주는 옷을 찾는 시도를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홍대의 어느 보세 옷가게와 명동 어귀의 SPA 브랜드, 혹은 인터넷 쇼핑몰을 열심히 뒤져 산 옷들에 실패하고 안 맞는 옷, 안 어울리는 옷, 그저그런 옷의 협곡을 지나 내공이 쌓이면, 언젠가 당신에게 더 이상 날개옷이 필요 없어 질 순간이 올 것이다. 당신이 입는 모든 옷이 날개옷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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