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 1. 스팽글 그라데이션 맨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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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 1. 스팽글 그라데이션 맨투맨

김지양

한껏 신나서 새 옷을 입고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이 두 가지 있다. 

“대체 이런 옷은 어디서 사는 거냐?”
“이런 옷은 대체 누가 사나 싶었는데 네가 사는구나”.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집에는 폭 90cm의 옷장이 4개가 줄지어 서 있고 친구들이 위에서 언급하는 옷들만 모아두는 옷장이 그 중에서 하나에 꽉 차고 넘치게 들어 있다. 이를테면 전신 비즈&백 오픈 드레스 라던지, 원 숄더 태슬 드레스랄지, 뱀 피 무늬 스키니진이랄지… 뭐 이런 것들 말이다.

무조건 특이하기만 하면 되느냐, 그렇진 않다. 내게 옷을 고르는데 특별한 기준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1. 입고 스테이크가 나오는 3 코스 디너를 먹고도 소화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편할 것
  2. 원단과 마감이 튼튼할 것
  3. 누가 봐도 김지양 옷이라고 생각되는 옷일 것

이렇게 세 가지를 꼽는다. 그리고 위에 말한 옷들이 위의 조건을 충족하느냐고? 놀랍게도 그렇다.

나라고 처음부터 이런 도전적인 옷들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일단 입어만 봐도 반은 성공인데, 거기까지 가기가 정말 멀고도 험했다. 보통 딱 봐도 과해 보이는 옷들은 입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데다 처음 보는 낯선 것에는 선입견을 품게 마련이다. 좀 더 정확히는, 우리에겐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내게는 특히 스팽글과 비즈가 그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필요 이상으로 반짝이며 세탁은 물론이거니와 입을 때도 비즈가 행여나 뜯길까 조심 또 조심해야 하니 입어 보기도 전에 이미 손사래를 치곤 했다.

Photo by minlee

그러다 이 옷을 처음 본건, 몇 해 전 망고(ZARA와 더불어 스페인의 대표적인 SPA 브랜드로 여성복부터 아동복까지 토털의류 및 잡화를 취급한다) 홈페이지에서였다. 첫 눈에 유려한 색감과 부드러운 반짝임에 ‘우와, 예쁘다!’라고 생각했지만, 앞서 얘기한 선입견에 나는 주저하고 말았다. 사실 이 옷은 지금이야 봄/가을이 되면 일상적으로 입는 ‘대체 이런 옷’ 축에도 못 끼는 평범한 옷이지만, 스팽글에 그라데이션이라니. 세탁할 생각을 하자, 덜컥 겁부터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옷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다 한 달여 후, 여의도 IFC 몰 망고 시즌오프 세일에서 이 옷과 운명처럼 재회했을 때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이 옷이 원단을 코팅처리해서 반짝거리게 만든 옷인 줄만 알았는데, 진짜 스팽글을 옷 전체에 한 땀 한 땀 수놓은 거였다. 게다가 옷감을 만져보니 스팽글과 원단이 따로 노는 느낌이 전혀 없었고 몸에 닿는 옷감 안쪽이 까끌까끌하지도 않았다.

더욱 멋졌던 것은, 색색의 스팽글이 그라데이션으로 흰옷에 붙어 있던 것이 아니라, 그라데이션으로 나염된 옷에 투명한 스팽글이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사진에서 봤던 자연스러운 반짝임은 거기에서 온 것이었다. 스팽글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질지 모르지만, 옷의 색은 빠지지 않으니 설령 스팽글이 일부 떨어지더라도 외관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165를 넘지 않는 키에 긴 허리, 똥배까지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 체형을 가진 나는 아래로 갈수록 진해지는 그라데이션 컬러는 나를 더욱 짜리몽땅하게 보이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하의와 매치하느냐에 따라 나의 키는 170을 웃돌게도 보였다. 그리고 그라데이션이 몸의 굴곡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오히려 자연스럽게 옷이 몸을 타고 흐르는 듯 보이게 했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이 나처럼 지레 겁을 먹고 만져볼 엄두조차 내지않아 사이즈별로 상당량의 제품이 남아 있어 너무나도 마음 편히 옷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만족감과는 별개로, 한동안 사람들은 내가 이 옷만 입고 나가면 배를 잡고 웃었다. 

클럽에 미러볼 대신 아르바이트를 뛰러 가느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고, 엄마는 눈이 부셔 죽겠다고 호들갑을 떨며 대체 어디서 그런 옷을 샀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꾸준히 이 옷을 입었고, 나름의 코디도 여럿 만들었다. 깃이 넓은 라이더 재킷에 블랙 스키니를 매치해서 바이커룩으로 연출하기도 하고, 끝단이 해진 핫팬츠와 매치해서 늦여름 밤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Photo by minlee

그렇게 이 옷과 추억을 하나 둘 쌓아갔고 그 덕분인지 이 옷을 입고 <66100>의 개국공신과도 같은 은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66100>을 도모하던 최초의 그날 만났던 지인은 이 옷을 두고 “톡톡 터지는 별사탕이 들어간 민트 아이스크림”을 입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물론, 스팽글이 전체에 붙은 덕분에 옷에 냄새가 배면 잘 빠지지 않아 주의해야 한다. 원단 자체는 얇지만, 아주 더운 날에는 입기 어렵고 세탁에도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옷을 입은 날이면,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늘 기분이 좋았다.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핏감이 나를 더욱 자신감 있게 만들어 주었고, 더도 덜도 아닌 딱 나 자신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었다. 어느 순간, 이 옷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딱, 김지양 옷’이 되었다.

처음은 누구나 어렵다. 

쇼핑에 실패할까 두렵고 누군가에게 쇼핑메이트를 부탁한들, 나의 안목을 저울질당하게 될까 봐 아무 옷이나 집어들기 쉽지 않다. 설령, 이 옷이 정말 괜찮은지 아닌지 봐줄 누군가가 없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입어봐야 한다. 어느 옷이 나와 잘 맞을지는 입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고, 입어보면 입어볼수록 안목이 늘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옷도 마찬가지다. 이 옷은 어떤 옷과 어울릴까, 어떤 장점이 있을까, 자세히- 그리고 찬찬히 살펴보아야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자꾸 입어보다 보면 당신도 언젠가 나처럼 어느 옷 가게, 어느 행거 한편에서 당신에게 맞는, 당신을 위한 ‘딱, 내 옷’과 마주칠 날이 올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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