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기 멀리 해외에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게 있다'고 말하던 시절은 멀어져가는 듯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다양한 아름다움에 열려 있지 않다. 내년에는 조금 더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기를 기대하며 2016년 우리가 놓쳤던 플러스 사이즈 패션 뉴스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본다.
올해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 애슐리 그레엄
올 한해 패션계에서 손에 꼽히게 핫 한 아이콘으로 부상한 애슐리 그레엄. 굳이 과장을 보태지 않고도 올해는 그녀의 해로 부를 만 했다. 가장 섹시하고 핫한 여성을 발탁하는 것으로 유명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 비키니 특집호에 플러스 사이즈로는 최초로 표지모델로 발탁된 것을 시작으로 <맥심> 커버, <코스모폴리탄> 커버에 연달아 등장했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2016년 수영복 특집호 / ⓒ맥심 2016년 4월 / ⓒ엘르 캐나다 2016년 10월 / ⓒ코스모폴리탄 8월 커버
최근에는 마텔사에서 그를 모티브로 한 바비인형을 제작해서 헌정했다. 또한 그는 도전슈퍼모델 새 시즌의 메인 호스트로 발탁되었으며, 파리에서 열린 h&m 패션쇼에 런웨이 모델로 서는 등 아이코닉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논란과 아쉬움도 있다. 그가 등장했던 화보들은 그의 튼 살과 셀룰라이트를 포토샵으로 지워버려 빈축을 샀고, 아이러니하게도 도전 슈퍼모델의 호스트는 플러스 사이즈인 애슐리 그레엄인데, 단 한 명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도 프로그램에 등장하지 않았다. 다음 시즌에도 그녀가 호스트를 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내년에는 제2, 제3의 애슐리 그레엄을 다양한 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올해의 드레스: 레슬리 존스
힘세고 강한 남자 영웅/주인공이 등장하는 원작을 비틀어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이 영화에 출연한 코미디언이자 배우 레슬리 존스가 영화 시사회에 입을 드레스를 아무도 협찬해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트윗을 해서 화제였다. 영화 스파이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멜리사 매카시와 영화 토르의 크리스 햄스워즈가 씬스틸러로 등장하는데다 전작의 인기를 등에 업은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의 인기를 가늠해 볼 때 대체 누가 그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드레스 협찬을 마다하겠냐고 생각하겠지만, 흑인이고 샘플사이즈(런웨이에 오르는 모델들의 사이즈를 기준으로 보통 우리나라 기준으로 44 이하의 사이즈로 만들어진다)가 아닌 그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협찬하기를 꺼리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그러나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시리아노였다. 레슬리 존스의 트윗에 손을 흔드는 제스쳐로 러브콜을 보낸 그는 레드카펫을 연상시키는 멋진 빨간 드레스를 그녀에게 선사했고 그녀의 레드카펫 드레스는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불편을 그저 삭이지 않고 소리 내 이야기하고, 이런 문제가 비단 유명인들이 하루 입고 마는 드레스에 그치지 않음을 수면위로 드러낸 그녀의 행동은 66, 77 사이즈는 만들지 않는 대형 브랜드에 아무 불만도 이야기하지 않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올해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시리아노
그의 이름은 샤넬이나 캘빈 클라인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이력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기네스 펠트로, 제니퍼 로페즈, 스칼렛 요한슨, 레이디 가가 등의 유명 배우들이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앞다투어 그의 드레스를 입었으며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에 미셸 오바마가 그의 드레스를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퍼스트레이디의 드레스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그런 그가 올해, 뉴욕 패션위크에서 별 다른 설명 없이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자신의 런웨이에 세웠고 플러스 사이즈 패션 브랜드 레인 브라이언트와 손잡고 플러스 사이즈 라인을 런칭했다. (그리고 그 패션쇼를 했던 장소는 UN이었다)
또한 그는 유명 플러스 사이즈 패션 블로거를 위한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게 뭐 별건가 싶지만, 이것은 충분히 수고로운 일이다. 플러스 사이즈를 위한 새로운 패턴과 디자인이 필요하며,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에게 맞춰 피팅을 해야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의 다양한 체형을 가진 여성들을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고 수고를 마다하지도, 그것을 내세워 뽐내지도 않는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년에는 그 말고도 다양한 후보들이 올해의 크고 아름다운 디자이너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 아델
베스트 드레서란 무엇일까.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저 옷을 좋아하고,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조합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고 패션산업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것? 엄청난 양의 옷을 옷장에 가지고 있는 것?
처음 아델을 베스트 드레서로 꼽은 이유는, 1월 타임, 3월 보그, 그리고 12월 베니티페어 표지를 장식한 그녀의 의상들과 무대에 입고 나온 각각의 드레스들이 세련되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델을 정반대의 이유로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로 꼽았다.
그녀는 지난해 앨범 25를 발표하며 10개월간 전 세계에서 107개의 무대에서 라이브를 펼쳤다. 세계적인 팝스타 아델이라면 투어의 규모만큼이나 다양하고 멋진 드레스를 하루에도 여러 벌 갈아입었으리라 예상했겠으나, 그녀는 2015년 뉴욕 NBC에서 열린 라이브 이후 10개월간 딱 한 벌의 드레스와 플랫 슈즈를 신고 각각의 무대에 섰다.
그녀의 투어 의상을 담당한 버버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애초에 여러 벌의 드레스를 입는 것을 논의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단 한 벌의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드레스를 만드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전했다.
새로운 옷을 입는 것은 신나는 만큼 긴장되는 일이다. 이 옷이 내게 어울릴지 아닐지를 신경 써야 하고, 몸에 잘 맞게 길이 들 때까지 시간이 든다. 그걸 알기에 아델도 단 한 벌의 드레스를 고집한 것은 아니었을까.
스스로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무언지 아는 것. 그리고 그 스타일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베스트 드레서가 아닐지.
올해의 구루(GURU): 팀 건
리얼리티 쇼 <프로젝트 런웨이>의 프로 잔소리꾼이자 조력자 팀 건. 참가자들에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사기를 북돋워 주는 존재인 그는 패션 컨설턴트이자 방송인으로 파슨스 미술 대학의 패션디자인학과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레슬리 존스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미국 PBS NewsHour에 출연해 디자이너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는 플러스 사이즈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디자이너와 패션산업을 향해 '체격이 큰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멋져 보이지 않을 이유는 없다'며 그의 유행어인 "Make it work!"를 인용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PBS 뉴스 앵커는 그를 패션 구루(GURU)라고 칭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분야의 단순한 권위자가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고 지혜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지도자와 같은 존재라는 뜻으로 그가 실제로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낼 주체인 디자이너들에게 행동을 촉구할만한 영향력 또한 갖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그의 말 한마디로 세상이 뒤집히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목소리를 내는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기로 용기를 낸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 마디가 의미 있는 이유는, 그가 가진 지위를 세상을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구루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는 패션계의 원로. 우리는 언제 그와 같은 진정한 의미의 어른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