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한 지 3년 이내인 사람들에게 “요즘 인생의 재미가 뭐에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나도 그랬다. 문득 내 인생의 재미를 잘 모르겠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 사람도 내 마음 속의 표정을 거울처럼 짓곤 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힘든가보다. 어느 여름날, 한참 연상의 선배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도 PT를 꾸준히 다니면 최소한 한 가지는 대답할 수 있다. “운동이요! 저 요즘 PT 다녀요.”
“그래? PT 비싸지 않아? 얼마 정도 해?”
“1시간에 5만원이요. 비싸요. 저 이제 PT푸어에요.”
“와, 생각보다 비싸구나.”
“네. 여성 전용 헬스장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헐, 왜 헬스장이 여성 전용이야?”
선배가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른 건 가수 박진영의 <어머님이 누구니> 뮤직비디오다. 중년의 남성 가수가 젊은 여성을 빤히 훑어보다가 다짜고짜 신체 사이즈를 묻는다. 여성은 존댓말로 대답한다. 그 배경은 헬스장. 대중매체에서 헬스장은 운동하는 여성들을 ‘눈요기 거리’ 취급하는 게 자연스러운 공간처럼 그려진다. 지하철을 배경으로 비슷한 광경을 그리는 뮤직비디오는 본 적이 없다. 만약 있다고 해도 치한 이외의 맥락으로 읽히지 않으리라 감히 장담한다.
민망하지 않은 옷
뮤직비디오에서 끝나는 이야기면 얼마나 좋을까. 여성이 헬스장에서 마주치는 불쾌한 경험은 대중매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운동만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에서조차 여성의 몸은 운동하는 몸이 아니다. 남성의 ‘시선 권력’은 순식간에 여성의 몸을 주체에서 객체로, 운동‘하는’ 몸에서 성애화‘되는’ 몸으로 바꾼다. 이건 여성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이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보면 간단하다. 내가 예전에 다녔던 남녀 공용 헬스장은 회원들에게 운동복을 나눠줬다. 찜질방에서 주는 옷처럼 헐렁하고 품이 큰 ‘무성적인’ 옷이었다. 주민센터가 운영하는 헬스장을 다녔을 때도 여성들의 옷차림은 비슷했다. 반팔 박스티에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
그 때는 ‘민망하지 않은 옷’을 고르는 게 중요했다. 운동을 할 때 다양한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그 어떤 자세에서도 ‘민망’하지 않으려면 나의 ‘여성적인 몸’을 최대한 감춰야 했다. 목이 너무 파이면 데드리프트를 할 때 가슴 골이 보일 거야. 다리를 움직이기 편하도록 사타구니가 올라붙은 옷을 입으면 ‘Y라인’이 보일 거야. 덥지만 반바지를 입으면 속옷이 보일 거야. 딱 붙는 상의를 입거나 상의가 펄럭여 배와 허리 부분의 맨살이 보이면 순식간에 성적 대상으로서 평가당하게 될 거야.
이건 망상이 아니다. 나는 남성들이 인터넷에서 여성 연예인이나 트레이너가 운동하는 장면을 1초 단위로 캡쳐해서 성기나 가슴, 엉덩이 부분을 확대해서 돌려 보는 일이 매우 흔하다는 것을 알고 경악한 적이 있다. 수많은 남성들이 전문가 여성이 운동 자세를 알려주는 영상을 포르노로 소비한다. 시원한 민소매 옷, 몸에 착 달라붙어 움직이기 좋은 옷, 기능적으로 우수한 옷은 남성의 시선 권력에 의해 ‘섹시한 옷’이 된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들이 헬스장에서 원치 않은 시선으로 불쾌한 경험을 하고 있다. 친구 A는 한 때 열심히 PT를 받았다. 운동은 만족스러웠다. 어느 날 트레이너와 1대1 수업이 끝나고 혼자서 스쿼트를 하고 있는데, 이상한 시선이 감지됐다. A의 뒤에서 한 중년 남성이 A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참고로 스쿼트는 엉덩이를 뒤로 쭉 빼는 운동이다. 거울을 통해 이를 확인한 A는 진저리를 치며 자리를 옮겨서 다시 운동을 하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중년 남성은 A의 뒷모습이 보이는 위치에 있는 운동기계에 앉았다. A는 당장 PT를 그만뒀고 다시는 그 헬스장에 가지 않았다. ‘시선 강간’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A는 말했다.
어떤 여성도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남성의 시선이 권력인 이유는 이렇게도 쉽게 여성을 대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이 폭력적인 시선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모든 여성혐오가 그렇듯이, ‘불편해 하는 내가 예민한 걸까’라고 자책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운동하기 편한 옷
여성 전용 헬스장은 딴판이다. 많은 여성들이 운동용 레깅스와 스포츠용 민소매 브라탑을 입는다. 물론 헐렁한 옷을 입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건 다양성이다. 스포츠 브라에 얇은 오픈숄더 티셔츠만 걸친 사람, 헐렁한 반바지를 입은 사람, 딱히 운동용이 아니어도 적당히 움직이기 쉬운 옷을 입은 사람. 나부터가 운동하러 갈 때 옷을 고르는 기준이 이전보다 훨씬 단순해졌다. ‘운동하기 편한 옷’. 그게 다다. 더 이상 시선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 트레이너들은 직업병이라서 운동 복장의 기능을 더 중시하는 건지, 서비스업이라서 고객 관리를 하는 건지 몰라도 이런 부분에서 권력은 덜하다.)
선배에게 친구나 나의 경험을 들어 여성 전용 헬스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선배는 경청해 주었지만 여전히 가벼운 태도도 덧붙였다.
“그런데 솔직히 나 같은 아줌마도 젊고 몸 좋은 남자가 운동하면 쳐다볼 거 같긴 해.”
나는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 젊은 남자가 중년 여성의 시선을 느낄 때, 저나 제 친구들이 중년 남성의 시선에서 느끼는 위협을 느낄까요?”
비로소 선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선배는 더없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사실 우리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여성이 얼마나 기울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헬스장 같은 곳에서는 이런 성별 권력 차이가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을 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과연 여성 전용 헬스장 없이도 여성이 마음 편히 운동할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당당한 여성들과 조심하는 남성들이 많아진다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