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와 나: 삐걱대는 몸

생각하다운동

트레이너와 나: 삐걱대는 몸

신한슬

'국민이 정치에 피로를 느낀다’라는 말은 상투적 표현인 줄만 알았다. 진짜로 정치가 내 신체에 꽤나 장기적인 피로를 투척하는 날이 오다니.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벌써 6주 가량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가서 촛불이 되고 목소리가 되었다. 청와대의 한 재택근무 전문가가 100m 앞까지 다가온 촛불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동안, 내 관절은 한계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버틸만 했다. 

나 말고도 12시간 가까이 아스팔트를 뛰어다니는 선배, 동료 기자들이 있기에 웬만한 우는 소리는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3주째부터 오른쪽 무릎이 이상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굽혔다 펴면 뚝, 뚝하고 무서운 소리가 났다. 조금만 서 있어도 꺼림칙하게 아파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앉을 곳을 찾았다. 참으면 참을 수 있는 일상적 통증이지만,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광화문에 가야 하기에 조금은 초조했다. 동료 기자는 아예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다음 집회에는 ‘도가니 붕괴 연합’ 깃발이라도 가져가야 할 것 같다.

이럴 때 PT를 받으러 가면 최대한 엄살을 부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괜히 무리해서 운동했다가 악화되면 돈 내고 병 얻어 오는 셈이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만나자마자 나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트레이너에게 아픔을 호소했다.

“몇 주째 광화문에 나가느라고 무릎이 너무 아파요.”
“헉. 오늘 오랜만에 하체 운동 빡세게 하려고 했는데.”

트레이너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혹시 하체운동 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죠?”
“아니에요. 진짜 아파요.”
“여기 엎드려 보세요.”

트레이너가 매트를 깔았다. 마사지를 해 주겠다고 한다. 무릎 바로 위 허벅지 부분을 주무르는데 지옥이 보였다.

회원님처럼 아파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너무 오래 서 있으면, 무릎 관절 주변 근육이 수축 상태에 익숙해져서 짧아져요. 그래서 근육 사이 공간이 줄어들어서 마찰이 생겨서 이렇게 아픈 거예요.

솔직히 무슨 말인지 반밖에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내가 틀린 정보를 기억하는 건 아닌지 확신이 없다. 확실한 건 트레이너가 무릎 양 옆을 누르자 나를 고문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아파하니까 트레이너는 폼롤러를 가지고 와서 마사지 겸 운동을 시켰다. 앉은 자세로 다리를 쭉 펴고 오른쪽 발목을 왼쪽 발목 위에 올린다. 몸을 팔로 지탱한 채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폼 롤러를 굴린다. 10회 반복한 뒤 가장 아픈 곳에서 10초 간 멈춘다. 다음은 왼쪽 발을 위로 해서 반복한다. 플랭크 자세로 같은 부위의 마사지를 반복한다.

이후에는 하체운동 대신 어깨, 등, 복부 운동을 했다. 모두 마치고 나서 트레이너가 나를 운동기구에 앉혔다. 그가 들고 온 것은 무려 골프공이었다. 그걸로 내 무릎을 한 번 더 고문했다. 아니 마사지했다. 이 날은 운동보다 마사지를 더 많이 했다.

신기하게도 다음 날부터 바로 효과가 있었다. 

무릎 상태가 훨씬 나았다. 이럴 때야말로 전문가에게 1대1로 관리 받는 게 높은 가격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도 잠을 잘못 자서 겨드랑이와 어깨 사이 근육이 아픈 적이 있었다. 병원에 가면 아마 근육이완제를 주며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칭을 해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적당한 운동, 스트레칭, 마사지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반면 전문성을 갖춘 트레이너는 정확히 어디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려주고,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동작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도움이 되는 운동도 적당한 강도로 병행해준다. 미국에서는 이런 의미의 PT(Physical Therapist)가 퍼스널 트레이닝보다 활성화 되어 있다고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의 정확한 자세나 방법을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고도비만인 사람들이나 수술, 부상의 후유증으로 재활운동이 필요한 사람들을 1대1로 관리하는 전문가가 많다는 것이다. 당연히 관련 국가자격증 등 체계가 갖춰져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마다 체육관이 있다 보니 굳이 한국처럼 헬스를 가르쳐주는 퍼스널 트레이너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월 60만원을 받고 3개월을 버텨야 '트레이너' 되는데

그러나 한국의 헬스장 트레이너들은 전문성을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알바천국, 알바몬 등에 헬스장 트레이너를 구하는 구인광고가 우르르 올라오는 것을 보면,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 체육학과나 스포츠 관련 학과를 전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월급 차이가 없다. 관련 자격증은 대부분 사설이다. 심지어 헬스장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각 트레이너 소개란에 적힌 경력이나 자격을 허위로 작성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누가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회원들은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수도권 곳곳에 지점이 있는 헬스장 체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트레이너는, 해당 헬스장의 경우 누구든지 고용되면 3개월 정도 월 60만원을 받으면서 ‘수습 교육’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운동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잡일을 하는 기간이다. 체육학과에서 4년 간 전공 공부를 했든, 전혀 관련 지식이 없든 똑같다. 60만원을 받으면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그 다음부터 트레이너가 된다. 버틸 수 없는 사람은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한다. 전문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아니다.

물론 전문성을 중시하는 체계를 갖춘 믿을 만한 헬스장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그걸 구별해 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헬스 트레이너는 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편견이 생긴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일하는 트레이너들도 있다. 몇 주만에 몇 킬로그램을 빼 주겠다고 호언장담하거나, ‘동기부여’한답시고 외모를 모욕하거나, 실패한 ‘플러팅’ 같은 것 밖에 ‘회원님들’께 제공할 게 없는 경우다. (전문성을 갖춘 트레이너라도 이런 자극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대부분의 헬스장이 트레이너 개인에게 공격적인 영업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얘기하고자 한다.)

나 같은 서민도 받을 수 있을 만큼 PT가 대중화된 것은 헬스장과 트레이너의 공급이 늘어난 영향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트레이너가 지금보다는 더 ‘전문적인 직업’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그게 소비자를 위해서도, 노동자를 위해서도 나은 방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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