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토크(Small Talk)’. 오늘 날씨 좋죠. 어디 다녀오세요? 식사는 하셨고요? 맛있게 드세요. 만나서 인사하고 떠드는 익숙한 관용구들, 별 생각 없이 나누는 의미 없는 말들. 무해하지만 무의미한 말을 적당히 다정하게 주고 받는 것.
한국에서 스몰 토크를 나누는 대상으로는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지인, 회사에서 스쳐 지나가는 직장 동료 정도가 떠오른다. 서비스업 종사자와의 스몰 토크는 흔치 않다. 미용실 정도가 예외일까. 예전에 미국에 온라인 사이트 회원가입과 관련한 사무적인 전화통화를 하는데,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일을 처리하는 동안 “서울은 날씨가 어때요?”라고 물어서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대화를 나눌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스몰 토크보다 ‘시민적 무관심’을 선호하기에, 한국이 살기 편하다고 느껴 왔다.
그들은 끊임없이 말을 건다
그러나 끊임없이 스몰 토크를 시도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PT 트레이너들이다. 그들은 어색한 침묵을 메꿔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가진 것 마냥 운동과 운동 사이의 쉬는 시간에 끊임없이 말을 건다. 그냥 숨 좀 고르면서 쉬게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트레이너들과의 대화가 스몰 토크에 해당하는 이유는 아무도 그 내용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화하는 서로가 서로의 답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대답을 잘라먹고 “자, 이제 시간 됐습니다. 다시 1세트~” 할 거면 애초에 말을 안 걸고 고요하게 쉬면 안 되는 걸까?
대화 내용이 즐겁지는 못해도 불쾌하지만 않다면 말을 않겠다. 안타깝게도 무해한 스몰 토크 기술을 가진 트레이너는 많지 않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친근함을 표현’하다가 성희롱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최근 서울대 안에서 만난 낯선 외국인 여성에게 다짜고짜 영어 단어 스펠링을 물어보고, 이후에도 영어를 가르쳐 줄 것을 요구하며 화를 냈던 남성 역시 뻔뻔하게도 자신은 ‘스몰 토크’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만난 트레이너들의 레파토리는 대강 이렇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보통 수업 시작할 때 고정 대사다.
“주말에 뭐 하셨어요?”
그리고 뭐 먹었냐고 물어본다. 식단에 대한 이 강박.
“오늘 아침에 뭐 드셨어요?”
난 다이어트 안 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오늘은 약속 있어요?”
수업 끝나고 약속 없으면 운동을 더 하고 가라는 거다.
이렇게 대화를 여는 질문들은 언뜻 들으면 무해한 것 같다. 하지만 트레이너들이 지향하는 ‘여성의 이상적인 몸’, ‘회원님을 도와야 하는 방향(=다이어트)’이 너무나 확고하고 뚜렷한 까닭에 결국 대화의 끝은 무례해진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메뉴를 캐묻고 단속하려 들거나, 술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물어보고는 한다. 물론 애초에 트레이너에게 그런 일상적인 부분을 ‘단속’해달라고 ‘부탁’하는 회원들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 내가 끊임없이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거다. 거리감이 별로 좋지 못한 대다수의 트레이너들은 대화를 뻗어 나가면서 내가 원치 않은 부분까지 쭉쭉 손을 댄다.
사람 대 사람으로 무례한 질문
트레이너와 회원 사이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개인적인 질문이 실례일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무례한 질문도 많다. 트레이너와 내가 일상을 공유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주말에 누구를 만나는지, 내가 어디에 갔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남자를 사귀는지 여자를 사귀는지 아무도 안 사귀는지, 앞으로 예정이 무엇인지 등등, 운동과 무관한 정보는 전혀 알리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내가 만난 트레이너들은 이런 질문들을 자꾸만 하고, 내가 분명한 대답 없이 흘리려고 하면 매우 해맑은 얼굴로 계속 캐묻고는 했다.
심지어는 이런 적도 있다.
“회원님, 오늘은 끝나고 운동 더 하세요.”
“그러고 싶은데 약속이 있어요.”
서로를 존중하는 성인이 주고 받는 대화라면 여기서 이 대화는 끝나야 한다.
“무슨 약속? 남자친구 만나요?”
그러나 내 트레이너들은 포기를 모른다. 자꾸 캐묻는다. 나는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라고 쏘아붙일 수도 있고, 청와대 스타일로 “그건 사생활입니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친절해지기로 했다(이런 결심은 자주 후회를 부른다). 어차피 운동하려면 계속 얼굴 봐야 하는 사이인데, 굳이 깐깐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 싶지 않았다.
“아니요. 저 병원 가야 해요.”
내 기준에 사람 간의 예의를 중시하는 성인이 주고 받는 대화라면 여기서 이 대화는 끝나야 한다. 한국은 개인이 가진 질병을 민감한 개인정보로 취급하는 사회다. 내가 만성 지병이나 부인과 질병, 우울증 치료를 하고 있다는 걸 만인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을까?
“무슨 병원이요? 어디 아프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이렇게 한 번 더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귀찮아서 거짓말을 했다.
“치과요.”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꼭 솔직한 대답을 감당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꼬치꼬치 묻는다. 트레이너는 자기가 판 스몰 토크 무덤에 빠져서 당황한 적도 있다. 그 날도 어김없이 고정 질문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안 좋아요. 찌뿌둥해요.”
“왜요? 어제 술 마셨어요? 늦게 잤죠?”
“생리 중이에요.”
본격적으로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트레이너.
“헉… 회원님… 너무 솔직하시다…”
‘네가 물어봤잖아요.’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성 전용 헬스장에서 일하면서 회원이 생리 중일 가능성을 생각조차 못 하고 당황한다는 건, 어떻게 봐도 프로답지 못하다.
스몰 토크를 넘어선 플러팅
스몰 토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트레이너의 대다수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PT를 받을 때면 어김없이 ‘플러팅’을 시도하는 트레이너들이 있다. 스몰 토크의 내용이 ‘추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주변에 운동을 하러 체육관을 찾았던 젊은 여성들 중 트레이너의 플러팅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이걸 무슨 서비스의 일종으로 교육시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경험자 A는 “잘하기나 하면 즐기기라도 하겠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B는 “트레이너의 플러팅이 즐거운 사람보다 불쾌한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라고 추측했다. C는 “PT 특성 상 그러다가 몸을 만지는 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더 기분 나쁜 포인트다”라고 지적했다.
나는 두 가지가 불쾌하다. 첫째, 아무 정보 없이 나를 이성애자로 전제한다는 것. 둘째, 아무 정보 없이 내가 자신의 플러팅에 기뻐할 거라고 전제하는 것. 두 가지 대전제의 공통된 유일한 근거는 내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여자는 남자가 추파를 던지면 좋아해. 전문 트레이너 정도로 몸이 좋으면 말할 것도 없지.” 이게 바로 일반화고 대상화다. 소비자 개개인의 특성에 대한 무지를 여성에 대한 몰이해로 덮어 버린다. 퀴어는 완전히 삭제됐다. 게다가 남성으로서 과도한 자신감이 묻어 있어 견디기 힘들다.
이외에도 내가 기자라는 이유로 시사적인 내용, 또는 그들이 시사적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연예인 성추문이 대부분이다)을 물어보다가 제 풀에 화를 내며 쌍욕을 한다든지, 일과 연관된 화제를 자꾸 꺼내서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스몰 토크의 총체적 실패 사례들이다. 운동할 때 정확한 자세와 각도, 무게를 강조하는 만큼 대화에도 신경을 써 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운동만 해도 좋겠다. 불쾌한 대화에 응해야 하는 체육관보다 침묵의 체육관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