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트레이닝
운동 방식: 가급적 매일 아침 스트레칭, 저녁 3~40분 스쿼트 또는 플랭크, 댄스 동영상, 스트레칭
취직한 직후 K는 수습 월급을 받았다. 안 그래도 희미한 월급이 70%가 됐다. 부모님과 함께 경기 남부에 살던 K는 교통비라도 아끼려고 조부모 댁의 남는 방으로 이사했다. K는 체력 증진과 체중 감량을 위해 운동을 하고 싶었다. 학생 때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PT도 잠시 했고 스피닝도 했다. 생활비 측면에서 경제적인 자립을 막 시작하는 순간에는 그런 돈이 없었다.
그래서 K는 유투브와 인스타를 뒤지기 시작했다. 일명 ‘홈 트레이닝’ 영상을 보며 스스로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홈 트레이닝의 가장 큰 장점은 돈이 안 든다는 것이다. 이마트에서 17500원짜리 요가매트를 산 게 전부다. 나머지는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할지, 무엇을 할지, 얼마나 어떤 강도로 할지.
K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출근 전에 '스미홈트(@smitruti1010)'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의 '헤이문 프로젝트'라는 홈 트레이닝 비디오와 ‘눈 뜨자 마자 따라하는 5분 스트레칭’이나 ‘아침을 깨우는 요가’ 비디오를 따라했다. 퇴근 뒤 자기 전에는 스쿼트와 플랭크를 하고, 댄스 종류의 동영상을 한 개 따라한 뒤, 마음이 당기면 추가로 ‘자기 전 요가’ 동영상을 따라했다. 그러나 스트레칭을 한 날에는 거의 요가를 하지 않았다. 하루 1시간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실제로는 30~40분 정도였다. 매일 하려고 노력했고, 거의 매일 했다.
가장 꾸준히 한 것은 스쿼트와 플랭크였다. 두 운동의 정확한 자세는 이전에 잠깐 PT를 받으며 배워서 알고 있었다. 스쿼트는 매일 5개씩, 플랭크는 30초씩 늘려가며 했다. 한창 열심히 할 때는 플랭크로 2분 30초를 버틸 수 있었다. 스쿼트는 최대 60개까지 했다. 아무래도 할머니 댁에서, 또 작은 방에서 하는 것이다 보니 가장 움직임이 적고 조용한 운동을 택했다. 스쿼트 개수와 플랭크 시간을 점차 갱신해 나가는 순간이야말로 K의 홈 트레이닝 중 최고의 재미였다.
친절한 2.5D 트레이너를 찾아서
정보의 바다 속 많고 많은 홈 트레이닝 영상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K가 가장 중시한 선택 기준은 ‘나를 두고 가버리지 않는 모니터 속 트레이너’였다. K는 10여년 전 한창 유행하던 연예인 다이어트 비디오를 따라했던 적이 있다. 당시 제일 불만이었던 점이 K가 열심히 시키는 동작을 따라하고 있는데 혼자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버린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자꾸 영상을 껐다 켰다 하면서 따라해야 하는 점이 번거롭고 불편했다. 공감하거나 북돋워주는 말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K가 가장 선호하는 유투브 또는 인스타 채널은 스미홈트(@smitruti1010)였다. 1시간짜리 영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트레이너가 동작을 함께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초보자용 영상이 있는 것도 좋았다. 한때 유명했던 모 연예인의 요가 비디오를 따라하다가 처음부터 너무 난이도가 높아서 실패했던 아픈 경험이 있는 K에게 잘 맞았다.
가끔 비슷한 동작이 질리면 유투브에서 외국 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주로 ‘줌바’나 ‘코어댄스’ 같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댄스 종류의 영상이었다. K는 취향 저격 음악과 함께 하는 신나는 운동이 취향이다. 그러나 외국에는 영상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맛보기만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했다.
슬픈 게으름의 초상
3개월이면 나름 꾸준히 운동한 것 같아, 이쯤에서 K에게 물었다.
"그래서, 효과는 어땠어?"
"없음. PT 짱."
반전이었다. 홈 트레이닝으로는 K가 원한 체중 감량 효과가 미미했다. 원인이 뭘까? K는 ‘홈 트레이닝은 의지박약인 사람에겐 안 된다’라고 단언했다. K가 보기에 운동효과를 보려면 어쨌든 체력과 신체의 한계까지 운동을 해줘야 하는데, 홈 트레이닝으로는 그게 너무나 힘들었다. 비디오 속 동작을 따라하다가 힘들어지면 안 해버리거나 은근슬쩍 강도를 현저하게 낮춰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힘들면 널브러지는 것, 그것이 인간이었다. ‘스미홈트’ 채널에서 20주 프로젝트를 순서대로 따라해 보기도 했지만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버거워졌다. K는 홈 트레이닝을 하면서 스스로의 자제력과 의지가 얼마나 약하고 약한 지 깨달아버렸다.
K는 수습이 끝나고 결국 다시 ‘PT푸어’로 돌아갔다. 아, 슬프다. 그러나 K는 만족하고 있다. 시작한 지 1달밖에 안 됐는데 이미 자신이 원하던 체중 감량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홈 트레이닝을 할 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고, 자기가 혼자 운동을 할 땐 얼마나 대충 했는지 새삼 티가 났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홈 트레이닝은 가난하지만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다. 언제든 돈이 없어지면 K는 다시 홈 트레이닝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PT를 통해 체력을 키운 다음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정기적으로 운동할 시간을 자유롭게 내기가 어려운 사람에게도 홈 트레이닝은 유용하다. 자기 전에 집에서 1시간을 투자하면 되는 일이니까. 물론 돈과 시간의 제약이 없는 만큼 스스로의 의지를 시험하게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