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 13. 복싱

알다운동취미

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 13. 복싱

신한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비용: 1달 12만원 (장기 등록 시 할인) 글러브 3~4만원대(필수), 붕대 8000~1만원대(필수), 시합용 마우스피스 1만원대, 복싱화 5~6만원대부터

운동 방식: 다대일 강습

시설: 탈의실, 샤워실

 

S씨는 3년 간 복싱을 배웠다. 어릴 때 <더 파이팅>이라는 만화를 본 이후로 항상 복싱에 로망을 갖고 있었다. 특히 필살기처럼 사용하는 어퍼컷을 배우고 싶었다. 무엇보다 뭔가를 때리고 싶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것도 잘 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운동 중에 복싱을 골랐다.

오해

복싱은 한 때 국민 스포츠였고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프로 복싱 경기의 이미지가 익숙한 사람들은 복싱을 배운다고 할 때 대부분 비슷한 걱정을 한다. 첫째,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무시무시하게 시퍼런 멍이 들고, 코가 부러지고, 망막박리가 일어나는 것이 복싱 아닌가?

프로는 그렇다. 취미는 아니다. 헤드기어와 보호대를 모두 착용하고, 프로보다 훨씬 가벼운 글러브를 쓴다. 푹신푹신하다. 물론 맞는 게 유쾌하진 않다. S씨는 특히 머리를 맞을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배나 가슴 부분을 맞으면 특히 아프다. 하지만 부모님이 걱정할 정도로 폭력적인 상황은 없다. S씨의 부모님도 처음에는 복싱을 배운다고 했을 때 심각하게 걱정을 하셨지만, 막상 스파링 영상을 보자 S씨의 활약에 즐거워하셨다고.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복싱에 대한 두 번째 이미지는 무지막지한 줄넘기 훈련이다.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해 펀치를 배우기 전에 조깅이나 줄넘기를 몇 주씩 엄청나게 시킨다는 이미지. 그러나 돈 받고 회원을 유지해야 하는 요즘 체육관들 중에 그렇게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 곳은 드물다. 줄넘기는 주로 웜 업, 쿨 다운 운동으로 활용된다. S씨가 다니는 도장은 줄넘기와 스트레칭으로 준비운동을 한 뒤, 붕대를 매고 펀치를 배우고, 글러브를 끼고 그 펀치로 미트를 때리며 연습하고, 샌드백을 때리며 연습하는 순서로 강습을 한다. 연습의 막바지에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런닝 또는 줄넘기로 쿨 다운 운동을 한다.

복싱을 배울 때 줄넘기가 필수인 건 사실이다. 복싱에서 사용하는 스텝을 연습하기 가장 좋기 때문이다. 복싱을 오래 할수록 줄넘기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유명한 메이웨더 같은 선수는 X자로 ‘쌩쌩이’를 몇 번이고 연속해서 한다.

실제

그렇다면 복싱은 어떤 운동인가? 복싱은 잘 피하고, 잘 때리면 이긴다. 링을 지켜보는 주심들이 각 라운드마다 승자와 패자를 정하고 점수를 매긴다. 기준은 머리와 상체(후두부와 등, 벨트 아래 제외)에 얼마나 타격을 적중했는지, 얼마나 경기를 지배했는지, 얼마나 적극적으로 경기를 했는지, 기술과 전술이 누가 더 우월했는지, 룰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등이다. 이를 종합해서 복수의 주심들이 누가 승자인지 결정한다. 소위 말하는 ‘판정승’이다. ‘KO승’은 복서가 다운을 당하고 10까지 셀 동안 경기를 다시 시작하지 못할 때 상대방이 승리한다는 규칙이다.

물론 시합을 하지 않고도 복싱을 즐길 수 있다. 펀치 연습은 미트와 샌드백에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다. 생활 속의 때리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펀치를 날리면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하다. 근력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체력이 쑥쑥 늘고, 잠시도 쉬지 않고 스텝을 밟기 때문에 강도 높은 유산소 운동도 된다. 특히 팔근육이 눈에 띄게 발달한다. 근육이 늘어나는 게 눈으로 보일 때는 정말 보람차다. 어느새 바위처럼 단단해진 팔뚝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펀치를 피하는 연습을 하면서 반사신경과 순발력도 훈련하게 된다. S씨는 복싱을 시작하고 생긴 가장 사소한 변화로 자기 전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다가 놓쳤을 때 한 번도 얼굴에 맞아 본 적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일 밤 스마트폰이 이마와 콧잔등을 강타하는 사람인지라 정말 신기했다!)

하지만 S씨는 사람을 때리는 게 제일 재미있다. 이렇게 말하면 S씨가 다소 위험한 사람으로 보일수 있다. 당연히 S씨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고, 예의 바르고 양식이 있는 선한 문명인이다. 그럼에도 S씨는 스스로에게 호전적이고 전투적이며 심지어, 어쩌면, 약간은 폭력적인 성향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했다. 단지 그것을 다른 영역이 아닌 오직 복싱에서, 정정당당한 스포츠 속에서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소하고 있을 뿐이다. 

시합

더불어 S씨는 승부욕도 강하다. 그래서 미트나 샌드백보다는 스파링을, 스파링보다 생활체육 복싱시합(일명 ‘생체’)를 좋아한다. 아무래도 사람과 함께 대련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 특히 대등한 실력과 체급을 상대할 때 너무 기분이 좋다. 가끔 얼굴 정중앙에 펀치가 꽂히면 정말 짜릿하다. 

시합 준비는 힘들다. 일단 5kg 단위로 존재하는 체급에 맞게 체중을 조절해야 한다. 50~55kg급 체급에 출전하려 한다면, 52kg으로 나가는 건 상당한 손해다. 복싱은 펀치에 체중을 실어 공격하기 때문에 체급이 허락하는 한 무거운 것이 유리하다. 그렇다고 56kg이 되면 신청한 체급에서 자동 실격한다. 상대는 부전승을 얻는다.

살을 빼는 건 어렵지 않다. 복싱은 아주 힘든 운동이기 때문이다. 식이조절을 병행하며 1개월에 10kg을 뺀 적도 있다. 아침에만 밥을 반 공기 먹고, 점심에는 곤약을 먹고, 저녁은 굶었다. 펀치 연습 자체도 너무나 힘들었다. 3분을 1라운드로 설정해 놓고 공이 울릴 때까지 계속해서 펀치 연습을 하는 식이다. 너무 힘들어서 말 그대로 토할 정도로 훈련하기도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시합에 나갔는데, 정말 보람이 없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 경기에 나가서 패배했을 때가 아니다. 시합 상대방이 없어서 경기 자체를 못할 때다. 상대방이 체급 초과로 실격을 당해 부전승을 한 적도 있고, 체급이 맞는 여자 선수가 아무도 출전을 안 했던 적도 많다. 그런 부전승은 하나도 기쁘지 않다. S씨는 체급과 실력이 비슷한 상대와 대등한 경기를 하는 게 늘 꿈이다. 그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여자 복서는 너무 적다.

S씨가 관람하러 간 어떤 생활체육대회에서는 여자 선수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나이를 나누지 않고 무조건 체급만 나누기도 했다. 남자 선수들은 초, 중, 고, 20대, 30대, 40대 등으로 연령을 나눈 뒤, 그 안에서 다시 체급을 나누는데, 여자 선수들은 몸무게가 비슷하다고 20대와 중학생이 경기를 하는 경우였다.

여담이지만 대한복싱협회가 규정한 생활체육 복싱경기 규칙에 따르면 남성도 여성도 모두 나이 분류를 한 뒤 그 안에서 몸무게에 따라 7체급으로 나눠야 한다. 그런데 이 나이 구분에 따른 분류의 이름이 아주 가관이다. 남성부의 상세 이름은 다음과 같다. 꿈나무부(만 11~12세), 재능부(만 13~15세), 영재부(만 16~18세), 국자감부(만 19~29세), 성균관부(만 40~49세), 대왕부(만 50~59세). 반면 여성부의 상세 이름은 정말 입에 담기도 힘들다. 큐티부(만 13~15세), 주얼리부(만 16~18세), 프리티부(만 19~29세), 원더부(만 30~39세), 퀸즈부(만 40~49세). 다시 말하지만, 대한복싱협회에서 정한 공식 명칭이 이 지경이다.

회원님에서 트레이너가 되다

S씨는 쭉 다니던 체육관에서 지난 달부터 아르바이트로 코치를 하기 시작했다. 주변 격투기 도장에 여성 트레이너는 S씨 하나다. 처음에는 어린 남자 회원들이 남자 코치는 언제 오냐, 관장님은 언제 오시냐고 물어보며 다소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S씨의 가르치는 기술이 점차 숙련되면서 그런 일은 거의 사라졌다.

반면 여자 회원들은 일부러 S씨의 근무시간을 물어보기도 한다. 특히 여성 자녀의 운동을 상담하러 온 부모의 경우 S씨를 더 믿는다. 복싱을 배울 때는 자세를 교정해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스킨십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어깨를 잡아주거나 허리를 잡아주는 경우다. S씨의 체육관 코치는 항상 먼저 양해를 구하고 붙잡기 때문에 불쾌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 S씨도 가르칠 때 그렇게 한다. 상대의 신체를 존중하지 않는 남자 코치들이 있다면 불쾌할 가능성이 있다. 여자 코치가 있다면 이런 불쾌함은 조금 덜할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취미로 하던 운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레벨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S씨는 거기까지 갔고, 마침 집 근처 다니던 체육관에서 일자리를 제안했다. 어차피 좋아하는 운동을 꾸준히 할 거라면,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분명히 이득이다. 물론 아무래도 임금 노동인 만큼 돈을 내고 할 때보다는 힘들다. 하루에 1시간 30분씩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던 운동 시간이 이제는 하루에 4시간씩 많은 사람에게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됐다. 미트를 받쳐주며 손에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빨래나 청소 같은 잡무도 있다.

그래도 그만큼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 S씨는 자신이 가르친 회원들이 오늘 하루 제대로, ‘빡세게’, 잘 운동했다는 느낌이 들 때 아주 뿌듯하다. 비록 회원님들의 근육은 다음날, 어쩌면 그 다음날까지 비명을 지르겠지만… 역시 트레이너는 회원들의 능력이 100%일 때 120%를 주문해서 실력을 향상시키는 존재인가보다. S씨는 분명히 트레이너의 재능이 있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때리고 싶다면

S씨는 근력을 늘리고 싶은 사람, 누군가를 때리고 싶은 사람, 승부욕이 강한 사람에게 복싱을 추천한다.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늘리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식이조절을 병행하면 체중도 줄일 수 있다. S씨가 가르치는 회원 중에도 의지가 강한 다이어터가 있는데,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고.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S씨가 생각할 때 복싱 체육관을 고르는 기준으로 삼을 만한 요소는 무엇일까? 첫째, 여자 코치가 있는 곳이다. 매우 드물다. 둘째, 여성 회원이 많은 곳이다. 역시 매우 드물다. S씨는 남녀 성비가 5:5인 체육관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도 최소한 자신이 이 체육관의 유일한 여성 회원인 상황만은 피하는 것이 좋다. S씨는 그런 체육관을 다닌 적이 있는데, 대등한 상대가 아무도 없는 외로움에 체육관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셋째, 시설이 좋아야 한다. 샌드백만 하더라도 펀치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원통형 샌드백 뿐 아니라 윗부분이 돌출된 어퍼컷 샌드백, 빠른 펀치 리듬과 피하는 반사신경을 연습하는 천정에 매달린 물방울 모양 샌드백, 벽에 붙은 샌드백도 있다. 이런 다양한 샌드백을 갖추고 있는지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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