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 6. 폴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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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 6. 폴댄스

신한슬

폴댄스

비용: 강습비 3개월(24회) 48만원, 폴복(필수 아님) 풀세트 약 5만원

운동 방식: 다대일 강의

 

K는 회사 내 어떤 팀장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볼 때마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건 폴댄스를 하는 모습이었다. 때로는 실루엣이 잘 보이는 사진이고, 때로는 짧은 영상이었다. 기다란 철봉에 매달려 발레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기하학적이기도 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모든 사진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턱을 당당하게 치켜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종류의 설렘을 불러 일으킬 만큼 멋진 사진들이었다. K는 특히 팀장의 근육 잡힌 몸매를 눈여겨봤다. 단순히 마르고 날씬한 게 아니라 탄탄하고 강해 보이는 점이 좋아 보였다. 찾아보니 마침 직장 근처에 폴댄스 스튜디오가 있었다. K는 똑같은 계기로 폴댄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다른 회사 동료와 함께 체험수업을 해 보기로 했다.

첫 수업은 충격이었다. 일단 ‘폴복(Poll 服)’이라고 부르는 전용 의상이 가장 놀라웠다. 상의는 팔이 다 드러나는 민소매이고 배도 드러나는 짧은 옷이다. 하의는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아주 짧은 형태로 몸에 딱 달라붙는 재질이다. 이렇게까지 몸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실 그 누구보다도 거울 앞에 선 자기 자신의 시선이 가장 가혹했다. K는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강사의 군살 없는 몸매와 옆에 서 있는 자신의 몸의 굴곡과 부피를 무의식 중에 비교하기 시작한다면 끔찍할 것 같았다. 초심자에게 몸을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이 진입장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체험 수업만 해 봐도 몸을 드러내는 것이 외모와는 완전히 무관한 실용적인 이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초심자는 폴에 매달려서 자기 몸을 지탱할 힘도 기술도 없다. 오직 피부의 마찰력이라도 이용해야 간신히 잠시라도 매달릴 수 있는 것이다. 강사는 몸을 덮는 옷을 입는 걸 말리지 않았다. 단지 스스로 힘들고 난이도가 높아져 재미가 덜해질 뿐이었다.

근육

수업 자체는 재미있었다. 1시간 수업 중 40분 정도는 스트레칭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운동이었다. 유연성과 근력을 함께 키운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시키는 대로 낑낑거리고 나면 땀도 제법 났다. 나머지 20분 동안 폴을 사용하는 수업을 했다. K는 초급반을 등록했지만 동료는 아니었다. 노출의 장벽이 생각보다 컸다.

처음에는 어떤 자세를 잡기 이전에 일단 폴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결코 쉽지 않았다. 자기 몸의 무게를 폴과 마찰한 부분으로 온전히 지탱해야 했다. 어떨 때는 폴에 쓸린 부분이 아프고 심지어 멍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음악에 맞춰 이런저런 자세나 동작이 가능해질수록 점점 재미가 붙었다. 확실히 근력이 늘어나는 느낌도 있었다.

급격한 체중 감량이나 눈에 띄는 몸의 변화는 없었다. 그건 애초에 K의 목적이 아니었다. K에겐 매일 같은 야근과 출퇴근길 지옥철을 견뎌낼 정도의 힘을 길러 줄 꾸준한 운동이 필요했다. 구체적으로는, 집에 가는 마지막 관문인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 조금만 덜 힘들어졌으면 했다. 이런 저런 운동을 해봤다. 헬스는 단조로웠다. 요가는 정적이고 졸렸다. 기본적으로 금방 질렸다.

폴댄스는 아니었다. 폴댄스의 장점은 특정한 안무라는 목표를 정해 놓고 그걸 향해 나아간다는 점이다. 특히 음악과 춤은 K가 좋아하는 장르였다. 방송댄스를 운동 삼아 했던 적도 있었다. 폴댄스는 좀 더 특이하고 유산소보다 근력운동에 가까워 힘을 기르는데 도움이 됐다.

사실은, 몸

처음에는 진입 장벽이었던 몸을 드러낸다는 부분도 K에겐 갈수록 좋은 작용을 했다. 일단 강사도수강생도 여자라 마음이 놓였다. 한 번 남자가 수업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K도 그만두고 스튜디오를 옮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남자 쪽이 시선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성차별적 현실에서 혼성 수업은 K가 감당하기엔 너무 폭력적인 환경이었다. 다행히 남자 쪽에서 곧 그만두었다.

수업시간에 강사가 몸매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폴댄스 스튜디오가 광고를 하는 톤과는 사뭇 달랐다. 계속 헐벗은(?) 자기 몸을 마주 보다 보니 익숙해지는 점도 있었다. 애초에 다들 폴에 올라가서 자세를 잡기 위해 낑낑대느라 남의 몸을 쳐다보며 의식할 정신이 없다.

결정적으로 몸이 가늘다고 해서 폴댄스를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마르고 근육이 없는 타입은 오히려 더 힘들다. 강사는 정확한 자세를 잡는 사람을 칭찬했다. 그건 몸의 부피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배를 폴에서 떼지 않고 등을 최대한 뒤로 꺾는다든가, 팔을 특정한 각도로 잘 올린다든가 하는 게 핵심이었다.

수업 막바지에 강사는 영상을 찍어주었다. K는 용기를 내서 자기 SNS에 그 영상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폴에서 최선을 다해 동작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친구들과 함께 보기로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K는 오히려 자기 몸을 더 긍정하게 되는 효과를 보았다. 

편견

K의 경험은 폴댄스가 선정적이고, 쓸데없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혐의와 거리가 멀다. 이런 혐의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도 간수의 아내가 운동으로 폴댄스 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자, 친어머니가 창녀가 되려는 거냐며 질색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단 한 명의 남자 수강생이 K를 긴장시켰던 것도 이런 편견과 사회적 분위기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성이 주체가 아니라 대상인 세계에서, 여성의 의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폴에 잘 붙어있기 위해’ 입은 옷이 ‘남자를 성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입은 옷으로 둔갑한다. 남성의 의도와 시선만이 남는다. 그것만이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K의 몸 속에 점점 두꺼워지는 심처럼 자라나는 근력은 분명히 존재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K는 그걸 안다. 운동을 하고 나면 며칠간 웃거나 기침을 할 때 배가 당기고 허벅지가 아프다는 게 그 증거다. 그래서 K는 굴하지 않고 계속 폴댄스를 한다. 세 달에 24회를 하기로 했는데 지난 달에 너무 적게 가서 이제는 3일에 한 번씩 가야 정해진 기간 안에 회차를 다 채울 수 있다. 야근 대신 폴댄스. 본의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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