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 12. 수영

알다운동웰니스

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 12. 수영

신한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비용: 주 3회 1시간 강습 8만원, 라커 5천원

운동 방식: 다대일 강습

 

산과 바다,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그 어떤 심리테스트가 물어봐도 나는 항상 바다를 택했다. 바다가 아니라면 계곡. 계곡이 아니라면 강. 강이 아니라면 수영장도 좋다. 인생의 가장 우울한 순간에도 나는 물을 보면 기분이 들떴다. 절대 참지 못하고 첨벙 뛰어 들어갔다. 바다에도 수영장에도 몸만 담그면 정말 물 만난 물 포켓몬처럼 신명을 내며 놀았다.

수영을 할 줄 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바닥에 발이 안 닿는 깊은 물에서도 겁먹지 않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물론 물살이 센 곳이나 바다에서는 까불지 말고 해안 근처에서 놀아야 한다). 호흡하는 타이밍을 안다는 것. 튜브 없이도 둥실둥실 스스로의 힘만으로 떠있을 줄 안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수영을 잘 한 것도 아니고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물이 무섭지 않다. 수영을 할 줄 아니까.

물 속에서는 내 소리만 들린다. 규칙적인 호흡 소리, 물장구치는 소리, 내가 힘겨워서 호흡과 함께 신음을 뱉는 소리… 처음 트랙을 돌기 시작할 때에는 머릿속에 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하는 자세가 맞는가, 앞 사람과 간격이 너무 벌어지지 않았을까, 뒷사람이 나한테 부딪히면 어떡하지? 그런데 트랙을 여러 번 돌다 보면 나중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든다. 몸이 힘들어서.

물 속에서 땀 흘려 봤나요

수영장에서 트레이너는 주로 “자유형 6바퀴 도세요!” 하는 식으로 어떤 영법을 몇 바퀴 돌 것인지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아예 생초보반은 발차기 기본 자세나 호흡법을 먼저 알려줄 것이다. 어쨌든 생초보반이든 마스터반이든, 한 번 배운 것은 스스로 연습해서 몸에 익혀야만 한다. 트레이너는 분명 방금 배운 그것을 몇 바퀴 돌고 오라고 지시할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열심히 시키는 대로 하고 나면, 그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한 트레이너가 몇 가지 지적이나 제안을 해서 자세를 교정해 준다.

다대일 강습에서 사람이 많다 보면 내가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아무 코멘트가 없어 초조해질 수도 있다. 그러면 트레이너에게 먼저 잘 하고 있냐고 묻거나, 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얘기해도 상관없다. 일반적으로 별다른 코멘트가 없다면 무난히 잘 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급반 이상은 대부분 일정 운동량을 채우는 게 주요 목적이다. 모든 영법을 순서대로 4바퀴씩 총 16바퀴를 쉼없이 돌라는 ‘인터벌’이 대표적이다. 배영, 평영, 접영, 자유형을 트레이너가 원하는 순서에 따라 ‘배평접자’니 ‘접배평자’니 하는 이름으로 시킨다.

수영은 묘하다. 분명 부력의 도움을 받아 둥둥 떠 있는 것이기에 중력을 이겨내야만 하는 육지에서 하던 맨몸운동보다는 ‘쉽고 편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물의 저항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운동량이 엄청나다. 물 온도가 보통 25도 정도인데, 다 돌고 나면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두근대며 몸에서 열이 나고 심지어 땀이 나는 게 느껴진다. 수온 25도의 물 속에서 운동을 했는데 땀이 나다니! 수영은 그 정도로 강도 높은 유산소운동이다. 좋은 점은 아무리 땀이 나고 힘들어도 내가 이미 시원한 물 속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뼈빠지게 운동하고 그 온도 차이가 확 느껴질 때 정말 기분이 좋다.

몸의 변화

친구 L은 2년 넘게 주 3회 이상 꾸준히 수영을 했다. 요즘은 거의 주 5회씩, 한 번 할 때마다 2km 넘게 수영을 한다. L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수영을 하는데, 2.2km를 돌고 나서 시계를 보자 총 600kcal가 넘게 소모됐다고 기록돼 있었다(체중에 따라 소모되는 칼로리가 다르다고 한다). 심지어 수영하기 전에 몸무게를 재고, 수영하고 나서 몸무게를 재면 땀 흘린 만큼 무게가 차이 난 적도 많다고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렇게 고강도 운동을 하니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L은 결코 다이어트 목적으로 수영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저 꾸준한 운동을 통해 혈압을 낮추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딱히 식이조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천천히, 지속적으로 살이 빠졌다. 옷 사이즈가 눈에 띄게 달라졌을 정도. 나도 마찬가지다. 수영을 열심히 하다가 한 3개월 쉬다가 다시 3개월 하는 작심삼월 운동인데도, 다시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몸무게가 줄었다.

근육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허벅지 근육이 제대로 붙었다. 수영은 전신 근육 운동이다. 꾸준히 하면 전신에 고르게 근육이 잡힌다. 접영을 하고 나면 등이 뻐근한데, 거의 쓰지 않는 근육을 아주 오랜만에 사용했을 때 느껴지는 그 기분이다. 수평운동이기 때문에 배와 허리 같은 코어 근육도 단련된다(단, 접영과 평영은 허리 환자에게 좋지 않고,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

자세 교정도 수영의 중요한 효과다. L은 심지어 키가 1cm 늘었다! 30대 이후에 갑자기 성장판이 다시 열렸을 리도 없고, 굽은 척추가 펴지면서 숨어있던 키가 늘어났다는 게 가장 설득력 있는 추측이다. 수영을 하면 어깨가 넓어진다는 속설도 사실은 굽어 있던 어깨가 펴지는 것을 착각한 이야기다. 당연히 어깨만 자라나진 않는다.

이외에도 수영의 긍정적인 효과는 다양하다. 체온조절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대사량이 늘어나고 감기에 덜 걸린다. 폐활량이 늘어난다. 따뜻하고 습한 곳에 오래 있기 때문에 기관지에도 좋다. 겨울에는 따뜻한 실내의 일정한 수온 속에서 운동을 할 수 있고, 여름에는 말할 나위 없이 시원하다.

트레이너

내가 만난 대부분의 수영 강사는 남자였다. 딱 한 번, 여자 강사가 가르치는 초급반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 강사는 내가 경험한 강사 중에 가장 실력이 좋았다. 당시 나는 성인이 된 후에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는 건 처음이라 다소 긴장했었나 보다. 혹시 다른 사람들의 페이스를 따라가지 못해 민폐가 될 까봐 열심히, 최선을 다해 헤엄쳤다. 그러면 운동 효과도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보고 그 트레이너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누가 쫓아와요? 그렇게 하면 몇 바퀴 못 돌아요.
수영은 우아하게 하는 거에요. 물고기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물고기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힘을 빼고, 우아하게 해보세요.

충격적인 조언이었다. 우아하게, 부드럽게, 편안하게. 내가 그 때까지 생각했던 '힘차게 불도저처럼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영의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그런데 그런 마음가짐으로 수영을 하기 시작하니 훨씬 더 잘 나아가기 시작했다. 동작은 정확해지고, 몸이 더 수면으로 떠올랐다. 힘은 덜 드는데 앞으로 잘 나아가다니.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글라이딩’ 개념을 배운 것도 이 때였다. 평영이나 접영을 할 때 발차기를 하고 나서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들기 전까지 잠시 몸에 힘을 빼고 기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방해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한 번 발차기를 한 힘으로 내 몸이 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간다. 글라이딩과 발차기 타이밍을 잘 잡아야 최대 속력이 나온다. 나는 수영할 때조차 게으르기 때문에, 너무 글라이딩을 오래 해서 속력이 멎을 때까지 둥둥 떠 있기를 좋아한다고 지적을 받는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가 어느새 물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항상 그 트레이너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수영은 우아하게 하는 거에요.’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을 다 배우고 핀을 끼고 수영하는 것까지 배워도 수영은 아직 배울 게 남아있다. 각 영법을 할 때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찾아 끝없이 자세를 교정해 나가는 것이다. 요즘은 핸드폰 방수팩 같은 것도 잘 나와서 강사가 영상을 찍어서 보여주면서 섬세하게 자세를 교정해주기도 한다.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에도 수영 자세에 대한 영상 강의며 로그가 많다. 다른 사람들의 수영 기록을 보는 것도 언제나 재미있다. 상급반에서는 다이빙 스타트나 턴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언젠가 돌고래처럼 멋지게 물 속에 뛰어들 수 있도록. 비록 지금은 무게 중심이 잘못되어 '팡!' 하는 '배치기' 소리를 내며 뛰어들고 있지만.

수영의 단점?

불편한 진실. 일상 속 운동으로 수영을 하거나 배우려면 인프라의 축복이 필요하다. 수영장은 헬스장이나 요가 수련원처럼 흔하지는 않다. 나는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다. 마포구 성산동에서 중구 종로YMCA까지 버스를 타고 편도 약 40분 이상 걸리는 여정이었다. 1주일에 한 번인데도 그렇게 가기 싫을 수가 없었다. 특히 겨울이 되면 귀찮아서 덜 말린 머리가 영하의 날씨에 얼어서 덜그럭거리기 일쑤였다. 하물며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평일에 그런 거리의 수영장을 다니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만큼 사는 곳 주변에 수영장이 있다면 절대로 그 행운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수영은 자전거와 비슷하다. 한 번 배워 놓으면 오랫동안 하지 않아도 실력이야 떨어질지언정 ‘전혀’ 못 하는 상태로 돌아가진 않는다. 운동인 동시에 기본적으로 생존 기술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물에 뜨지도 못하는 생초보라 할지라도 누구나 배울 수 있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기 때문에 중년, 노년이 되어서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커다란 장점이다. 한 번 배워 놓으면 평생 운동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수영의 가장 흔한 진입장벽은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이게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집 근처에 수영장이 있다면 머리 질끈 묶고 가서 수영장에서 샤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기도 하다. 어차피 대부분의 운동은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샤워를 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다. 그렇게 생각하면 딱히 수영만의 단점도 아니다.

수영복을 입고 다른 사람에게 몸을 노출해야 한다는 점을 진입장벽으로 여기는 친구들도 많았다. 내 경우 여성 전용 클래스를 찾아내어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 요즘은 팔 부분이나 다리 부분이 길게 나와 있는 전신수영복도 많다. 딱히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과학적인 이유보다는 노출이 덜 부담스러워서 아마추어도 선호한다.

나는 수영장에 주 3회 가지만, 딱히 매번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는다. 어차피 대부분의 시간 동안모든 사람들이 물 속에서 한 치 앞의 수영장 바닥만 바라볼 건데, 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계속 털을 뽑는 건 바보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준비운동과 정리운동 할 때 한 번 마음먹고 유심히 봤더니, 남자 강사도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왜? 혹시라도 이런 게 신경 쓰인다면 기억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안경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서 남의 겨드랑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수영만큼 좋은 운동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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