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 14.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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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 14. 에필로그

신한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왜 운동하는 ‘여자’인가

시작은 소박했다. 어디나 그렇듯 한국 사회에서 ‘사람’의 전제는 남자다. 그러니까 건강해지려고, 운동이 좋아서, 일상에 활력을 주려고 운동을 하는 ‘사람’은 남자다. 여자? 여자는 ‘사람이기 이전에 여자라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다르다. 살 빼서 ‘인생역전’을 하거나 ‘여름을 대비’해 ‘비키니 몸매’를 ‘준비’하려고 운동을 한다. 헬스, 요가, 필라테스 등 수많은 운동업계가 여자를 그런 식으로 취급한다. 그냥 인간의 기본형 중에 하나가 아니고, 그저 몸매나 외형을 가꿔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그래서일까? 운동업계는 툭하면 여성을 모욕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하려고 든다. 손님은 왕이라는데 이상하게도 왕을 모욕하고, 협박하고, 윽박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뚱뚱하고 못생기셨나요? 이제 못생기기만 하세요!”
“뼈만 남기고 다 빼 드립니다!” 

심지어 존댓말도 귀찮다는 듯이 한 글자만 거대하게 써 붙인다. 

“빼”

뭘 빼라는 건가? 정말 뼈만 남기고 장기까지 다 빼고, 나중에는 어떤 모델처럼 갈비뼈까지 빼라는 건가?

운동업계가 비만을 폄하하는 데에 여남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남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뼈만 남기고 다 빼 드린다’고 장담하는 헬스장은 없다. 헬스장의 광고가 목표하는 여남의 ‘이상적인’ 몸은 정 반대다. 남성의 몸은 있는 힘껏 키우고, 여성의 몸은 있는 힘껏 줄인다. 가늘게, 매끈하게, ‘뼈만 남기고 다 사라지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래서 여자의 운동 경험만을 기록하고 싶었다. 꼭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고, 솔직히 저널리스트로서 남자들의 운동 경험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헬스업계에서는 보통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남자를 떠올리고, 여자들은 무슨 다이어트가 아니면 운동할 이유조차 없는 존재들인 양(혹은 그래야 마땅한 존재들인 양!) ‘공략’하려 드는데, 나라도 사람의 기본 전제를 여자로 깔고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운동이 여자들의 운동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여성혐오적인 헬스 말고, 다른 운동은 어떨까? 한국에서 가장 상업화된 복합 운동 상품인 헬스 말고도, 다양한 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겠지? 그들은 운동을 하며 어떤 경험을 할까? 그 나름대로 빻은 일이 많을지도 모르고, 의외로 그런 건 없는 ‘청정 운동’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국에서 산다는 게 다 그렇듯이, 가끔은 여자라서 열 받는 일이 생길지라도, 그 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체로 기쁘고 즐거워서 꾸준하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 나름의 속도대로 천천히, 또는 급격하게, 빨라지고, 강해지고, 세지고, 파괴력 있어지는 여자들이.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여자들이 들려주는 운동 이야기는 다채로웠다. 몰입하는 경험, 조금씩 눈에 띄게 성취하는 경험, 달라진 신체능력에 자부심을 갖는 경험, 타인의 선입견 혹은 스스로에게 갖고 있던 편견을 깨는 경험이 다 들어있었다. 하나하나가 모두 여성의 성장 서사였다. 꼭 성실하고 꾸준하게 운동하는 이야기 뿐 만 아니라, 근근이 운동을 이어 나가는 이야기도, 이런 저런 운동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도, 심지어 특정 운동과 잘 안 맞아서 얼마 안 돼 그만 둔 이야기조차도 훌륭한 여성 서사였다. 실패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위해 다시 도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인터뷰를 하러 가서 그런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있다 보면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이번엔 여기까지

이번 시리즈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운동을 다루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사례를 모으다 보니 한계도 있었다. 홈 트레이닝을 제외하면 모두 돈을 내고 운동을 배우는 경험을 다루었다. 물론 전문성이 필요한 운동은 그렇게 배우는 게 자연스럽고, 잘못된 자세로는 부상을 입을 수 있으니 그래야 마땅하다. 또 바쁘고 상업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운동 방식이 가장 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을 들이지 않고도 조깅, 자전거, 줄넘기 등 맨몸으로 생활운동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찾지 못했다. 전적으로 나의 실패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어쩌다 보니 팀 운동보다 혼자서 즐길 수 있거나 1대1 대련 스포츠를 많이 다루었다. 유일하게 팀 스포츠를 다룰 수 있었던 건 ‘여가여배’를 인터뷰하면서다. 그 때 여성이 팀 스포츠를 즐기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학창시절 남자들 틈에 끼어서 운동장에 구르려면 언제나 ‘깍두기’ 취급을 당해야만 했던 수모가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했던 것이다. 안 끼워주면 우리끼리 하면 그만이다. 아니, 사실은 때로는 남자 없이 여자들끼리 하는 게 가장 쾌적하다. 특히 땀냄새 나고 몸을 부딪혀야 하는 팀 스포츠라면 더더욱. ‘청정 운동’이 탄생하는 순간! 여자들은 불평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는 이번엔 여기까지만 해보기로 했다. 다음에 또 어떤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하고, 나눠볼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 시즌 3이 시작될 수도 있다. 시즌 3를 준비하는 동안, 가능하다면 여성들끼리 운동하는 시간을 마련해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다. 혹시 <트레이너와 나 시즌 투>를 읽으며 이런 운동을 직접 배워보고 싶었다든가, 반대로 이런 운동을 가르치고 싶다든가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edit@thepin.ch로 제안을 부탁 드린다.  부족하나마 함께 '청정 운동'의 공간을 만들어 보는 시도를 하고 싶다.

그 동안 이 글을 읽은 모든 여성들이 주변의 여성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시작은 간단하다. 

“넌 요즘 운동 뭐 해?”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면 한 발 더 나가보자. 

“나랑 같이 운동 하자!” 

세상은 넓고, 운동은 많다. 그리고 모든 운동은 여자들의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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