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비용: 5개월 40회(1회 50분) 76만원
운동 방식: 횟수 제한 안에 가능한 시간대의 그룹레슨 신청. 1~6인 수업.
편의시설: 사물함, 샤워실
K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몸이 가느다랗다. 16년을 알고 지내는 동안 언제나 그랬다. 여자가 운동을 하는 유일한 이유가 ‘얇고 마른 몸매를 위해서’ 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K를 소개해주고 싶다. K는 나에게 각자 주간 운동 목표를 세우고, 운동을 하지 않는 날에는 1000원씩 저금하는 계좌를 만들어 소액 저축과 운동 독려를 동시에 하자는 천재적인 제안을 해 줬을 정도로 나름대로 성실한 운동인이다.
K가 운동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근력 거지”였기 때문이다. K는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 쉬어야 하는 유산소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2017년 3월부터 집 근처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서 너무 부담가지 않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필라테스는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호감 요소였다.
근육의 정렬
K가 제대로 찾아간 게 맞다. 필라테스는 독일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재활훈련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운동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요제프 필라테스다. 원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 포로들이 침대에 누워서 천정에 매달린 스프링 등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개발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필라테스 기구가 ‘캐딜락’이라고 불리는 침대인 이유다. K는 평소에 누워있는 걸 아주 좋아하는 친구다.
필라테스는 척추나 인대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소위 말하는 ‘속근육’의 근력을 단련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최근에는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지만 기초적으로는 그렇다. 직장을 다니면서 필라테스 강사로 ‘투잡’을 하고 있는 L에 따르면, 필라테스에서는 ‘정렬’과 균형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똑같은 복근 강화 동작을 하더라도 헬스에서 개수나 버티는 시간을 중시한다면, 필라테스는 목과 가슴의 거리 유지를 통해 어깨와 목과 척추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복근만 강화하는 정확한 자세를 중시한다. 개수나 강도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제자리에서 뜀뛰기 한 번을 하더라도 발목, 무릎, 허벅지 중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지 신경을 쓰며 정확한 자세로 해야 한다. 그래서 디스크 환자나 척추 측만증 환자에게 병원에서 추천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자연히 필라테스를 하다 보면 자신의 근육을 ‘인지’하게 되는 효과가 크다. L은 강사로 활동하기 위해 본인도 여러 곳에서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다. 어떤 강사는 등 근육을 펴는 운동을 하기 전에 L의 어깨를 보고 “오른쪽 어깨가 동그랗게 말려 있으니 그걸 먼저 풀자”라고 제안했다. 시키는 대로 오른쪽 어깨를 이완하고 나서 등 근육 스트레칭을 했더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을 제대로 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살면서 자신의 등 근육을 사용할 일이 얼마나 있나. 필라테스에서나 단련할 수 있다.
L은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나면 다른 운동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필라테스를 하기 전에는 헬스를 하며 엉덩이 근육을 운동하면 어깨나 목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복근에 힘이 들어간다. 불필요한 부분에 힘을 빼고 필요한 근육에만 힘을 집중하는 게 필라테스가 알려 준 습관이다.
절대강사를 찾아서
K가 다니는 스튜디오는 원하는 시간의 수업에 빈 자리가 있으면 신청하는 방식이다. 갑자기 일정이 생기면 2시간 전에만 취소하면 된다. 시간 운용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도 이 스튜디오의 장점이다. K가 내는 돈은 한 달에 15만원 정도. 꾸준히 재등록을 했기 때문에 해당 스튜디오에서는 저렴하게 이용하고 있는 편이다. 물론 필라테스는 지역, 유동인구, 그룹레슨인지 개인레슨인지, 등록하는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비용에 차이가 크다.
필라테스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강사와 1대1로 할 때 효과가 극대화되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섬세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근육을 느끼고 호흡을 정돈하며 해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또 몸의 균형과 관련된 개인적인 특성을 반영하려면 1대1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섬세한 지시가 필요하다 보니 강사가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에 따라 운동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L의 고백에 따르면 필라테스는 강사가 대충 하기로 마음먹으면 무한히 대충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운동이다. 솔직히 별로 운동 효과도 없는데 시간 때우려고 포함시키는 동작도 몇 개 패턴화 되어 있다고 한다. 강사가 자세히 지시하거나 공들여 시범을 보일 필요가 없는 간단한 동작에, 반복만 많은 유산소 운동 같은 게 대표적이다. 물론 중요하고 효과적인 동작도 대충 가르치면 효과가 떨어진다.
K도 운동을 하던 도중 스튜디오 강사가 전반적으로 교체된 적이 있다. 자신이 선호하던 강사가 사라졌다. 새로운 강사는 실력도 의문스럽고, K의 취향도 아니었다. 일단 강사가 세는 대로 박자와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편안하지 않고 불편해졌다. 한 시간 내내 자세만 조금 바꿔서 같은 운동을 시키기도 했다. K는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면 따라하는 기구 운동을 선호하는데, 유산소나 매트에서 하는 소도구 운동을 더 중시하는 점도 취향과 맞지 않았다. 결국 K는 3달 정도 운동을 쉬었다. 다시 선호하던 선생님이 돌아오면서 K도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강사의 실력과 취향이 모두 만족스러운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시범 수업을 듣는 것 밖에 없다. 시범 수업이 없는 경우 최소한의 횟수만 등록해서 경험을 해 보고 결정하는 게 좋다. 객관적인 실력은 자세한 후기로도 알 수 있지만, 자신과 취향이 맞는지 여부는 직접 경험해보는 방법 뿐이다. 다양한 센터에서 수업을 받아 본 L은 전국에 프랜차이즈가 있는 지점보다는 사장이 직접 강사로 나서는 ‘자영업형’을 추천했다. 아무래도 ‘규모의 경제’를 굴리는 곳은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스타일의 장사를 할 가능성이 많다는 추론이다. 또 유동인구가 많은 역 근처나 직장가 보다는 집 근처 ‘동네’ 센터를 추천했다. 직장인들이 우르르 등록하고 금방 그만두고 다시 우르르 등록하는 곳은 회원들에게 섬세한 서비스를 제공할 유인이 적다.
기울어진 세상의 필라테스
K가 다니는 스튜디오에는 강사 6명과 거의 모든 그룹레슨 수강생이 여자다. 여자만 있는 환경은 당연히 편안하다.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필라테스에는 강사도 수강생도 여자가 많을까?.
L의 가설은 흥미롭다. 필라테스를 하다 보면 강사들이 몸의 ‘라인’을 언급할 때가 많다. 필라테스는 몸이 커지는 운동이 아니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튼튼하지만 굵거나 크지 않은 몸”을 만들 수 있다. 남자들은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남자들은 등 근력을 키우다가 승모근이 발달해서 어깨가 우람해졌다고 싫은 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 여성들은 몸의 각종 ‘부위’를 나노 단위로 해체당해서 그 사이즈가 ‘적절’한지 평가받는다. 필라테스는 섬세하게 근육을 부위별로 운동하기 때문에 사회의 이런 요구에 부합한다. 당연히 상업적으로 그런 점이 부각된다. ‘라인을 잡는다’, ‘탄력 있는 몸’과 같은 광고는 여성을 타겟으로 한다.
K는 더 가늘어지거나 작아지거나 ‘라인’을 잡을 생각이 없다. 딱히 근력왕이 되겠다는 야심도 없는 친구다. 그저 안 죽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고관절이 삐끗해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다든가, 하루 종일 사무직을 하며 의자에 앉아서 만성적인 등과 어깨결림에 시달린다든가, 심지어 주말에 집에서 누워 뒹굴거리다가도 골반에서 뚜둑 소리가 나는 일을 방지해보자는 취지다. K는 생활 근력을 키우고,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 가벼운 스트레칭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필라테스를 추천한다. 1회 수업에 걸리는 시간도 길지 않아서 시간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적합하다.
요즘 K는 야근이 늘었다. 스튜디오에 연락해 운동도 잠시 정지해 놨다. 이번 달을 무사히 넘기고, 살아서 다시 운동을 하러 가면, 내년 3월까지는 열심히 필라테스를 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