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 320달러(2박 3일 숙박비, 장비대여비, 오픈워터 자격 신청비 포함)
운동 방식 : 다대일 강의
나는 물이 좋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시뻘건 고무 대야에 호스로 받은 물 속에서 찰박거리는 것도, 뜨끈한 노천 온천에 할머니와 엄마를 따라 들어가는 것도, 차가운 계곡물에 뛰어 들어가는 것도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바다는 특별했다. 바다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기가 아닌 다른 물질로 몸 전체를 감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다. 물론 매우 깊은 수영장에서도 가능하지만, 그런 곳은 많지 않으니까. 초등학교 때 YMCA에서 몇 년 간 수영을 배운 이후로는 튜브가 없어도 바다가 무섭지 않았다. 규칙적인 한편 예측할 수 없는 파도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둥실둥실 떠 있는 것도, 그 파도를 가르고 얼마쯤 나아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에게 수영은 오랫동안 운동이 아니라 놀이였고, 휴식이었다.
수영을 못하는 당신에게 추천
하지만 수영은 큰 단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물 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을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숨을 못 쉬면 일단 고통스럽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호흡 타이밍을 잡는 건 배우기 쉽지 않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물이 좋지만 무섭기도 한 사람에게 스쿠버 다이빙을 추천한다. 스쿠버 다이빙은 산소통과 함께 물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호흡을 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심해의 막막한 깊이를 두려워했던 사람도 장비를 잘 챙겨서 전문가와 함께 들어가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 실제로 나와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친구 E는 수영을 전혀 못 하고, 깊은 바다를 꽤 무서워했다. 맨 처음 입수했을 때는 패닉을 일으켜 몇 분만에 다시 배 위로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몇 번의 다이빙을 무사히 마친 후에는 오히려 공포증이 사라지고 다이빙에 푹 빠져버렸다.
공포를 이겨내고 만난 물 속 세계는 그럴 가치가 있는 곳이다. 아직도 처음 바다에서 다이빙을 했던 날 봤던 풍경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유난히 물 속이 깨끗하게 보이는 날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빛깔, 질감, 모양, 무늬의 생물들이 조용하고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고 있었다. 땅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세계. 인류가 이 세계를 볼 수 있게 된 지 채 60년도 되지 않았다. 나도 그 안에서는 땅 위에서와 다르게 호흡하고, 움직이고, 소통한다. 특히 디자인을 하거나 미적 감각에 민감한 사람들, 시각적인 자극이 필요한 사람들은 꼭 다이빙을 하길 권한다. 완전히 색다른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격증 따기
내가 다이빙을 배운 곳은 필리핀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다이빙을 처음 배운다. 어쩌면 당연하다. 열대기후 산호섬의 바다는 한국보다 훨씬 수온도 따뜻하고 파도도 잔잔하고 시야도 좋다. 물 속에서 앞이 훨씬 잘 보인다는 뜻이다. 시야는 물 속 유기물질, 지형, 햇빛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결정된다. 한국의 연안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동해의 경우 시야가 좋지만 물이 차갑다. 물 속 생물도 굉장히 다르다. 물론 한국에서도 운이 좋으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지만, 초보자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다.
해외에서 다이빙을 배우려다 보니 돈이 아주 많이 든다. 일단 비행기표를 끊어야 한다. 나는 필리핀 보홀이라는 섬으로 갔다. 왕복 비행기 값만 약 70만원. 다이빙 장비를 빌리고, 배를 빌리고, 강습을 받을 다이빙샵과 숙소를 따로 구하는 방법이 있고, 숙소를 함께 운영하는 다이빙샵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소위 ‘다이빙 리조트’라고 한다. 나는 다이버인 지인에게 소개받은 다이빙 리조트에 갔다.
다이빙을 배울 때 가장 많이 듣는 코스가 PADI(Professional Association of Diving Instructor) 라이선스 코스다. PADI는 한국 뿐 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 다이버 단체다. 사적인 기관이지만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다이버들의 네트워크다. 무엇보다 PADI 같은 단체가 있기 때문에 다이버들 전체가 스쿠버 다이빙으로 인한 해양세계 파괴에 경각심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PADI 자격증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오픈워터 다이버, 어드밴스드 다이버, 레스큐 다이버, 마스터 다이버다. 오픈워터 다이버는 말 그대로 ‘전세계의 물을 열고 들어 간’ 초보 다이버다. 18m 이하의 수심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먼저 이론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강사의 지도 하에 수영장(제한수역)에서 5회 이상 다이빙을 한 뒤 바다(개방수역)에서 3회 이상 다이빙을 한다.
오픈워터, 바다가 열리다
나는 E와 함께 2박 3일 동안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는 코스를 듣기로 했다. 2박 3일 간의 강사비와 숙박비, 장비 대여료, 공항 픽업을 포함해 인당 320달러(미화)를 냈다. 여기에 앞뒤로 1일씩 숙박과 식사를 추가했다. 다이빙을 한 후 충분한 시간이 지난 다음 비행기를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2박 3일만에 다이빙 자격을 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무겁고 복잡한 장비를 가지고 수중 18m까지 들어가는데 2박 3일만 교육을 받아도 된다고? 만약에 허술하게 교육을 받았다가 물 속에서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산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물 속에서 미아가 되어서 산소를 다 쓰고 죽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는 큰 착각이 두 가지 전제되어 있다. 하나는 오픈워터 자격증을 딴다고 완전히 혼자서 아무데서나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픈워터 자격증을 딴 뒤에는 그야말로 즐기기 위한 다이빙을 할 수 있다. 이것을 ‘펀다이빙’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다이빙은 적게는 3~4명, 많게는 5~6명이 함께 한다. 다이빙팀에는 마스터 다이버가 반드시 한 명씩 있다. 다이빙의 기초를 배운 후에는 마스터 다이버 옆에 잘 붙어 다니면서 안전하게 펀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두번째는 오픈워터 교육 과정에서 저런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비하는 법과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법을 모두 배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산소통 계기판을 미리 체크하는 법이나, 물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떨어지지 않는 법, 일행을 놓쳤을 때 해야 하는 일을 이론적으로도 배우고 실습도 한다. 결국 안전수칙은 ‘루틴’이다. 마스터 다이버 옆에 꼭 붙어서 안전하게 여러 번 펀다이빙을 즐기다 보면 몸에 익는다.
한국에서 오픈워터 자격증 코스를 배우는 경우 해외보다 기간이 좀 더 걸린다. 일상 속에서는 하루 종일 여러 번씩 다이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갔던 다이빙 리조트에는 수영장이 딸려 있어, 첫째 날 이론수업을 마친 뒤 둘째 날까지 중간중간 쉬어 가며 제한수역 다이빙을 연속해서 받고, 셋째 날 개방수역에서 오전 1회, 오후 2회로 나눠 3회 다이빙을 했다. 한국에서는 이론수업을 포함해 4회 정도 수업으로 나눠서 평일이라면 4일, 주말이라면 2일 간 제한수역 다이빙까지 완수하고, 개방수역에서의 해양실습을 따로 나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나와 E를 가르쳐 준 강사에 따르면, 한국분들이 처음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필리핀 세부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많다 보니 10명이 넘는 사람들을 데리고 교육을 진행하고, 심지어는 정해진 다이빙 횟수를 채우지 않고 자격을 발급하는 일이 남발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강습을 받게 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수시로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고 마스터 다이버와 소통해야 하는 다이빙은 더욱 그렇다. 최소한의 다이빙 횟수도 지키지 않는 곳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오픈워터와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묶어서 패키지로 교육하는 코스도 있다. 그러나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중요한 건 많은 경험이다. 오픈워터 자격증으로도 전세계 수많은 바다의 주요 다이빙 포인트를 다 갈 수 있다. 오픈워터로 여러 번 펀다이빙을 하면서 경험을 쌓은 뒤에,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통해 강이나 난파선, 18m~30m 수심에 도전하는 것이 좋다.
여자도 다이버인데요
강사는 남자였다. 전세계 다이버 성비는 잘 모르지만, 내가 만난 다이버 중 여자의 비율은 결코 절반에 못 미치지 않았다. 강사 중에도 여자가 아주 드물지는 않다. 나와 E를 가르친 강사는 교육 실력이 훌륭했다. 간결하고, 핵심과 우선순위를 잘 알아듣게 설명했다. 패닉에 빠진 E도 침착하게 달래서 다이빙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하지만 해외에서 2박 3일 간 같은 숙소에서 식당을 공유했다는 점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굳이 사적인 이야기로 대화할 일만 없었더라도 나는 그를 훌륭한 강사로만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그가 생각하는 적절한 연애 상대로서 여성의 나이 따위의 정보는 정말 알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런 이유로 나는 남자인 트레이너는 웬만하면 인간으로서 만나지 않고 트레이너로만 만나고 싶다.
더 심한 경우도 많다. 전신에 붙는 다이빙복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남자 다이버나 여자 다이버나 마찬가지다. 체온을 유지하고 물 속에서 편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일부 남자 다이버들은 이것을 여자 다이버의 몸을 품평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해도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남자 강사가 여자 수강생을 성희롱 하거나 외모 평가를 하는 경우가 가장 흔한 피해 사례다. 여자와 남자가 함께 수강하러 오면 그런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특히 수중촬영과 연결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많은 다이버들이 물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다이빙을 하며 수중촬영을 한다. 보라카이에 다이빙 여행을 가려고 정보를 찾다가 한 남성 다이버의 블로그에서 자신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여성 다이버의 몸매에 대해 한참 떠드는 저속한 글을 수십 개 발견하고 구토를 할 뻔한 적이 있다. 여성 다이버를 같은 다이버가 아니라 볼 거리, 찍을 대상 정도로만 생각한다.
당연히 모든 다이버가 그렇지는 않다. 여자를 심지어 평소보다 쉽게(!) 밥 먹듯이 대상화 하는 집단에서 남자는 크게 두 타입으로 나뉜다. ‘나도 그래도 되는구나.’ ‘난 진짜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남자 다이버들 중에 후자인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그들은 오히려 평소에 만나는 한국 남자들에 비해 아주 정중하고 무해하다. 문제는 만나기 전에는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력 있는 여자 마스터 다이버도 정말 많다! 나에게 다이버 투어를 함께 갈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그룹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당연히 여자만 있는 그룹을 고르고 싶다.
해외에서 다이빙을 처음 배운 만큼, 나에게 다이빙은 곧 휴가다. 혼자서 펀다이빙을 가면 정말 최대한 여러 번 다이빙을 할 수 있다. 모든 다이빙은 다 다른 경험이다. 완전히 같은 다이빙은 불가능하다. 같은 날 오전, 오후라도 시야가 다르고, 그 때 그 장소를 지나가는 바다 생물도 다르다. 처음 바닷속에 들어간 그 날처럼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은 아직 없었지만, 재미있는 일은 많았다. 바다 밑바닥에 꼬리를 감고 붙어 있는 새끼손가락 만한 해마를 본 적도 있고, 놀랄 만큼 빠르게 헤엄치는 바다거북도 봤다. 언젠가는 영화 <모아나>에 나오는 커다란 만타 레이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게 다이버로서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