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 5. 오버핏은 공작새의 마음으로

알다패션플러스 사이즈 패션

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 5. 오버핏은 공작새의 마음으로

김지양

오랫동안 한국의 ‘빅사이즈 의류’는 풍덩하게 큰 옷을 지칭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되어왔다.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마른 체형의 모델이 빅사이즈 여성복을 입고 촬영을 해서 판매를 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플러스 사이즈 여성들은 작고 마른 모델이 본인의 몸에 비해 큰 옷을 입고 있으니 자신들에게도 맞는 큰 옷을 생각하고 구매하거나, 본인도 그런 핏일 것을 기대하고 옷을 구매하곤 한다. 그러나 ‘리얼핏’은 기대와는 다르기 쉽고, 그사이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에 거듭 실패하고 흥미를 잃어 아예 온라인에서는 의류 쇼핑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오버핏이 오버핏이 아니잖아

내가 처음 오버핏 아이템에 도전했던 때는 온라인 쇼핑을 처음 시도할 즈음과 비슷했다. 모델이 입은 헐렁한 핏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기대하고 구매한 원피스는 가슴을 짓누르고 몸에 달라붙어 속치마로도 입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 이후로는 모델 사이즈와 제품 상세사이즈를 체크하는 것이 일종의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오버핏이 모두에게 오버핏일수는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된 사건이었다.

또한, 마른 사람들이 큰 옷을 입었을 때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과는 다르게 체형을 가리고자 하는 스타일의 패턴과 디자인이 많았다. 플러스 사이즈 여성들에게는 남자보다 가슴둘레는 넓지만, 어깨는 남자만큼 넓지 않고 키도 크지 않아야 하는 등의 세심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의 특장점인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작비를 줄여야 하므로 까다로운 공정이나 디자인의 제품은 플러스 사이즈 시장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커다란 옷으로 몸의 굴곡을 가리면 가릴수록 내 몸은 더욱 평면적이고 그 옷의 부피만큼 커다랗게 보인다는 것을 몇 번의 시도 끝에 학습하고는 한 치수 위를 몸에 걸쳐보는 것을 포기했다.

너무 마르셨는데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에게 ‘너무 마르셨는데요?’, ‘생각보다 안 뚱뚱하시네요?’ 라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나에 대한 칭찬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 입바른 말들에 고맙다고 하기를 하라는 건가, 뚱뚱해도, 뚱뚱한 사람이 말라보여도 문젠 건가 싶어 짜증이 나던 찰나에 ‘이참에 아예 뚱뚱해 보이게 입어볼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뚱뚱한 사람에게 말라 보인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뚱뚱해 보이신다고는 말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photo by another planet

그러다 이모에게 두꺼운 목폴라 스웨터를 선물 받았다. 팽창색인 아이보리색에 털실로 짜여져 가슴부분에 장식이 있는데다가 심지어 남성복이었다. 받아 든 순간부터 곰의 기운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왔다. 하얀 설원 위를 느릿하게 걷는 북극곰 말이다.

사람들은 큰 옷을 입으면 뚱뚱함의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돼지 같아 보일까 봐 걱정을 하는데, 내 경우에는 곰이었다. (이모가 또 안 입는 옷을 내게 버린다고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래도 이모의 마음을 생각해서 입어는 보자 싶어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나는 거울 속에서 곰을 한 마리 마주했다. 허연 곰을 말이다.

photo by another planet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게 썩 싫지 않더라는 거다. 옷은 부들부들 따뜻했고 편안했다. 옥죄거나 몸에 달라붙어 긴장감을 주지 않고 어딘가에 폭 안겨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손을 가릴 만큼 긴 소매를 허우적거리는 거울 속 북극곰은 제법 귀여웠고 나는 ‘큰 옷 곰 트라우마’에서 조금 편안해질 수 있었다.

새들은 위험에 빠지거나 구애를 할 때 몸을 부풀려서 몸집을 커 보이게 한다. 나는 왠지 내가 뚱뚱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 단어에서 최대한 멀어질 궁리만 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몸을 부풀어 보이게 하는 한 치수 위가 되려 뚱뚱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했다.

그날의 북극곰 스웨터는 원래의 나보다 더 크고 멋진 사람으로 보이게 깃털을 펼쳐 매력을 과시하는 공작새의 마음을 알게 했다. 날씬해 보이지도 않는 남자용 스웨터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면하게 함과 동시에 더 큰 나를 만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치수 위를 입을 때 화려한 색이나 독특한 디자인의 옷을 입을 때보다 더 화려하게 입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내 아름다움은 뚱뚱한 나에게서 나오고, 그 뚱뚱함을 한껏 보여주는 옷을 입으면 공작새가 깃을 펼치는 것처럼 자신감이 샘솟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올겨울 단 한 가지 스타일을 권한다면, 한 치수 위를 꼽고 싶다. 당당, 자신감 있는, 자존감 높은 등등의 수식어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지만, 자신을 긍정하고 싶다면 그 첫 번째는 본인의 뚱뚱함과 대면하기일 테니까 말이다.

김지양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김지양의 대체 불가능한 '대체 이런 옷'

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패션에 관한 다른 콘텐츠

플러스 사이즈 패션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