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아리 아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를 보러 갔다. 나는 호러의 장르적 특성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무서운 것은 참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예고편도 줄거리도 찾아보지 않은 채, 영화의 배경이 스웨덴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갔다. 그런데 <미드소마>의 진정한 공포는 스웨덴의 호르가에서 펼쳐지는 집단 광기나 의문스러운 살인이 아니라 대학원생 뼈 때리기에 있었다.
주인공 대니의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은 인류학과 대학원생이다. 그는 졸업 논문의 주제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한다. 대니와 크리스티안은 스웨덴의 호르가를 연구하는 친구 조쉬를 따라 미드소마 축제에 참가하게 되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 순간부터 나는 <미드소마>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대체 인류학과 대학원생이 어떻게 스웨덴으로 훌쩍 떠날 만큼 금전적 여유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주인공 대니는 학부생이다).
조쉬와 크리스티안은 학문을 취미로 할 뿐인 금수저인가? 어떤 재단의 보조금을 받았나? 물론 <미드소마>의 전체적인 이야기 줄기를 생각하면 이건 부가적인, 사소한 의문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주조연을 굳이 대학원생으로 설정할 거라면, 조금 더 현실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절대 내가 학회에 참가하고 다른 나라의 기록보관소에 갈 돈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영화가 아닌 현실 속의 미국 대학원생, 그 중에서도 유색인종 대학원생은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 또한 학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지금부터 알아보자.
1. 일단 학회에 갈 자금을 마련한다.
관심있던 학회에 지원해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자금 확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학회에 참여하는 박사생들에게 소정의 지원금을 준다. 다만 단서 조항이 많으니 학교 홈페이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1년에 1회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마저 선착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에 따라서는 한 사람이 재학 중에 지원받을 수 있는 총액이 정해져 있거나, 박사과정 몇 년 차인지에 따라 지원금에 차등을 두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학회 참석에 드는 비용을 전부 지원받을 만큼 돈을 많이 주는 학교는 거의 없다. 내가 다녔던 학교의 경우 대학원에서 최대 500달러, 과에서 최대 100달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건 아주 후한 금액이다. 내가 옮긴 학교의 경우, 1회 최대 지원금은 300달러에 불과하다. 다른 주에 열리는 학회에 가기 위한 비행기 값도 겨우 보조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학회에 지원하려면 우선 학회의 회원이어야 하기 때문에 연회비를 내야한다. 영문학 학회의 경우 대학원생의 연회비는 적게는 65달러에서 많게는 90달러까지 한다. 얼마전에 내가 참여한 학회는 학회에 지원하는 해(2017년)와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해(2018년) 모두 회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서 연회비만 두 번을 내야했다.
학회에서 발표를 할 기회가 주어지면, 학회 등록 비용을 80~90달러 정도 또 내야한다. 학회에 물리적으로 참가하기 몇 달 전에 이미 200달러 이상 써야하는 것이다. 운이 좋게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학회가 열린다면 교통비와 숙박비를 아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학회에 참여하기 위해 교통비(미국 땅덩이가 워낙 넓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 비행기를 타야한다)와 숙박비도 내야한다. 가서 굶을 수는 없으니 식비도 나간다.
그런데 학교에서 지원을 받더라도, 이 모든 비용은 대학원생이 우선 부담해야 한다. 지원금은 학회가 끝나고 각종 영수증과 학회 참석 증거를 제출한 뒤에 상환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회 지원은 학회 날짜로부터 1년전 쯤 시작한다. 상환도 즉각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가용 현금이 없으면 학회에 참여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다. 학교에서 지원금을 받기까지 신용카드 빚을 짊어져야 한다.
2. 페이퍼를 쓴다.
안타깝게도 학회 가는 비행기에서 쓰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생은 시간이 늘 없기 때문이다. 유색인종 대학원생은 제도적 인종차별 등으로 인해 남보다 시간이 더욱 없다는 것을 유념하자! 나는 박사과정 중에 내 관심분야인 아시안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강의를 듣고 페이퍼를 쓸 기회가 없었다. 낮에는 백인 남자 작가만 다루는 대학원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와중에, 밤에 따로 연구를 병행해야 했다. 그 학기에는 원형 탈모를 겪은 대신 페이퍼를 얻었다.
3. 학회 장소를 조심한다.
지원금도 받고 페이퍼도 써서 학회에 무사히 참여하게 되었더라도 난관은 남아있다. 우선 장소의 문제다. 유색인종, 특히 동양인 여성으로써 안전한 도시인지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총기난사 테러를 하는 와중에 유색인종 대학원생이 트럼프 지지자가 넘치는 주에 가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다(물리적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나는 작년에 미국 중남부에 있는 도시에서 열린 학회에서 발표를 했다. 학회 측에서는 미국 학계가 워낙 서부와 동부, 그 중에서도 특히 북동부 중심으로 작동하니 소외 받는 중부도시 학자들을 위한 장소 선정이었다고 했다.
문제는 학회 도시가 붉은색 주(red state, 선거에서 공화당 표가 많이 나온 주)에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인구의 80% 가량이 백인인 도시라는 것. 나와 함께 패널을 했던 친구들은 모두 동양인이었는데, 우리는 학회 참석을 위해 그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다양한 층위의 인종차별을 겪을 수 있었다.
학회 첫 날, 패널 발표와 토론을 무사히 마치고 해피 아워를 즐기기 위해 바에 갔다. 그 바를 통틀어 우리가 유일한 동양인 손님이었다. 거기까지라면 그저 집중되는 시선 때문에 조금 불편하고 말았겠지만, 해가 지기도 전에 술에 취한 백인 남자가 이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집적대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우리와 모두 악수를 하길 원했고 끊임없이 말을 걸려 했다. 다행히 그는 꺼져 달라는 친구의 정중한 요청에 물러섰지만, 일련의 행동만으로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4. 패널 참석자는 더더욱 조심한다.
그 뒤로는 더욱 조심해서 다녔다. 하지만 학회 안이라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인 만큼 제아무리 진보적인 학회라도 이상한 사람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상한 백인은 100% 확률로 한 명씩 있으니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내가 미국에서 참석한 첫 학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날 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작품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재현하는지,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을 비판하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같은 패널에 배정되었던 다른 발표자 미셸은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미국이 지우려 하는 베트남전의 기억을 다시 쓰며,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밝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 서로 페이퍼 내용이 유기적으로 이어져서 서로 반가워하던 차였다.
발표와 질의응답이 모두 끝난 뒤, 한 백인여자가 곧장 포디움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발표 잘 들었다는 겉치레를 3초 만에 해치운 그는 대뜸 “자신 같은 사람이” 일본의 역사와 일본계 미국 문학에 대해 박사논문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다시 말해, 백인인 자신이 동양인의 역사와 문학에 대해 논문을 쓰고, 백인중심적인 학계에 진출하여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동양인인 우리에게 물은 것이다.
맥락을 위해 첨언하자면, 미국 학계가 워낙 백인중심적이다 보니, 백인이 흑인 문학을 연구하거나 동양계 문학을 연구하면 흑인 연구자나 동양인 연구자보다 그 분야의 교수직에 고용될 확률이 높다. 나는 문학연구에 당사자성이 필수적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백인문학에 비해 여전히 비가시화 된 소수인종 문학의 경우 이런 식의 교수임용은 당연히 문제적이다. 게다가 소수인종 문학이나 역사를 연구하는 백인 연구자 중 연구대상을 대상화하지 않고 멀쩡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문제도 있다.
아무튼 그는 백인 여자로서 본인의 특권을 인식하고 있으니 동양인의 문화를 전유하는 것 같다는 죄의식이 들지만, 연구주제를 바꾸기는 싫으니 동양인인 우리에게 인정을 받아 죄책감이라도 덜어보겠다는 뻔한 심산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질문이라 포장했지만 감정노동을 요구한 것이다(크게 상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심지어 일본계도 아니고 각각 한국계와 베트남계였다!). 내가 당신은 백인이니 박사논문을 쓰지 말라고 하면 당장 박사논문 주제를 바꿀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나와 함께 있던 발표자 모두 모나리자 미소를 지으며 그냥 서문에 본인의 특권과 위치성에 대해 주의 깊게 적는 게 좋겠다는 입바른 말을 했다. 미셸과 나는 이후 절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요즘도 그 사람을 떠올리며 함께 뒷목을 잡고는 한다.
그런데 그 날의 백인 여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동양인이기 때문에, 혹은 동양인 여자이기 때문에 백인의 죄책감을 덜어주거나 소수인종 문학에 무지한 (하지만 어쩐지 학회에는 참석하고 있는) 백인을 교육시켜야 하는 감정노동을 학회마다 요구 받는다. 또는 소수인종 문학을 연구하기 때문에 백인들의 무시나 백인스플레인을 마주하는 일도 많다. 내게 한국전쟁의 역사에 대해 백인맨스플레인 하려는 백인 남자를 만난 날에는 인간에게 너무 환멸이 나서 학회장에서 드러누울 뻔한 적도 있다.
발표하는 내용을 녹취라도 할 심산인지 발표 내내 노트북으로 받아 적는 사람이나, 참고문헌 목록을 불러주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시 말해 내 연구 내용을 듣겠다는 건지 표절하겠다는 건지 모를 사람들이다. 한국인들, 그리고 한국계 디아스포라의 “한”이라는 개념을 다른 소수인종 문학에 가져다 써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사람도 만났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미드소마>에서 백인인 크리스티안이 흑인인 조쉬의 연구내용을 뺏던 순간, 주마등처럼 눈 앞에 내가 학회에서 마주친 진상 백인 연구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5. 가끔은 학회를 가지 않아도 괜찮다.
졸업 후 교수 임용이 될 때 까지 앞날이 불안하다 보니 대학원생이 되면 끊임없이 학회에 가야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가끔은 학회를 가지 않아도 괜찮다. 그 이유는 번아웃이 될 수도 있고, 금전적 문제일 수도 있고, 때로는 정치적 문제일 수도 있다.
올해 11월에 나는 친구들과 하와이에서 열리는 학회에 갈 예정이었다. 이 학회에 지원할 때만 해도 나는 아직 보스턴에 있었다. 무척 명망 높은 학회인데다가 장소까지 하와이라 기대하며 지원했다. 하지만 그 후에 나는 뉴욕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당연한 얘기지만 한 주에서 다른 주로 이사하려다 보니 들어가는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와이까지 가는 비행편, 숙박비, 그리고 식비까지 나간다고 생각하니 눈을 감아도 떠도 앞이 깜깜했다.
게다가 지난 달부터 하와이에서는 거대 천체 망원경(TMT, Thirty Meter Telescope)의 건설에 반대하는 마우나 케아(Mauna Kea) 산의 보호자(protector, 시위자들이 선호하는 표현)들이 본격적인 농성에 들어갔다.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신성한 땅인 휴화산 마우나 케아에 거대 망원경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수년 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건설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하와이 원주민들이 마우나 케아를 보호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미국인들 한 떼가 하와이에 (학회를 핑계로 한) 관광을 하러 간다는 것, 반식민주의를 공부한다면서 미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현장을 미국인으로 간다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 패널은 학회 참석을 취소했다. 가끔은 가지 않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미드소마>의 대학원생들도 이걸 알았더라면 끔찍한 최후를 피하지 않았을까? (물론 크리스티안은 쓰레기고 그의 캐릭터가 죽은 것에 나는 일말의 아쉬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