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큰일하는데 실수 좀 할 수도 있지: 헤스터 배로

알다여성 주인공

여자가 큰일하는데 실수 좀 할 수도 있지: 헤스터 배로

꽈리

다이앤 세터필드의 <열세 번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제인 에어에게 바치는 오마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설이다. 소녀와 오래된 저택, 책, 가정교사, 대를 이은 비극과 집안의 비밀에 이르기까지 고딕 소설의 대표적인 소재들을 아우르는 이 작품은 고딕 소설 팬을 위한 종합 선물 세트라 할 수 있다. 한국에는 2006년 출간되었다가 10년 뒤 비채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줄거리

엔젤필드 저택에 사는 쌍둥이 애덜린과 에멀린은 성향은 다르지만 둘 모두 바깥 세계와 전혀 소통을 하지 않고 오직 서로 뿐인 세계에 갇혀 사는 폐쇄적인 아이들이다. 폐허가 되어가는 저택에서 가정부 던 부인과 정원사 존 더 딕은 나름대로 아이들을 돌보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유일하게 변화를 이끌어낸 가정교사조차 어느날 갑자기 떠나버린다. 악화일로의 상황에서 별안간 쌍둥이 중 하나가 누가 봐도 똑똑하고 의젓한 사람으로 탈바꿈한다. 그 뒤 저택은 불타버리고 그 아이는 자라서 세계적인 작가 비다 윈터가 된다. 수십년이 지나고 주인공이자 기본 화자인 마거릿 리는 비다 윈터의 전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임종을 앞둔 윈터 여사는 처음으로 자신과 과거에 대해 진실을 말한다. 어린 시절 우연히 출생 과정에서 죽은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줄곧 죄의식에 괴로워하던 마거릿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만큼 성장한다.

야심을 앞세워 달리는 여자

유일하게 변화를 이끌어낸 가정교사,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떠나버린 그 가정교사의 이름은 헤스터 배로. 사라지고 난 뒤에는 서술자 마거릿조차 존재를 잊고 있다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역시 아주 잠깐 이후의 행적을 설명하며 상기될 뿐이다. 마거릿의 인생에서는 물론이고 비다 윈터의 삶에서도 헤스터는 결정적인 인물이 아니다. 헤스터에게 초점을 맞추면, 야심을 앞세워 달리는 반짝이는 여자가 보인다. 비록 그 과정이나 도착지가 썩 바람직하지 않을지라도.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저택에 도착한 헤스터는 먼지가 수북한 집안을 청소하고 무너진 지붕을 수리하고 야생 상태로 방치된 것이나 다름 없이 자기들만의 무법세계에 사는 아이들이 인간의 구색을 갖추도록 돌본다. 헌신적인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가정교사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이라는 겸손한 마음가짐도 아니다. 헤스터에게는 구제불능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자신이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이론을 증명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한겹한겹 알아갈수록 첩첩산중인 저택의 현실 앞에서 헤스터는 어땠는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미 반듯하고 교양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도전이 되겠는가?”

자신이 정립한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헤스터는 차근차근 마을 의사인 모슬리를 꾀어낸다. 그는 조금씩 자신의 견해를 흘리고, 방대한 지식과 비상한 두뇌를 슬쩍슬쩍 내보이면서 모슬리로 하여금 감히 여성이 의견을 갖고 그를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헤스터의 이론을 경청하게 한다. 동시에 모슬리가 그 이론의 골자를 창안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줄곧 계획해온 실험을 제안하면서는 자신은 그저 평범한 여자이므로 “한낱 가정교사 주제에 (...) 주제넘은 연구를 한 멍청한 여자 취급”을 받을 것이지만 “적절한 학식과 경력을 갖춘 분에겐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연구 논문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모슬리를 부추긴다. 여자라는 이유로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었던 유구한 역사가 이어지는 내내 무수한 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업적이 남자의 공인 양 몰아주는 것이다.

마침내 실험을 시작하고 이론을 위해 내달릴 수 있게 되자 헤스터는 여자라는 벽을 넘어 전문적이고 지적인 세계를 일군 과정에 취했다. 헤스터는 이론을 증명하고 책을 써내고 마침내 진정한 학자가 되는 야망만을 생각하느라 실험의 성과가 전혀 없다는 눈에 분명히 보이는 결과를 무시했다. 그저 실험을 시작하며 악화된 쌍둥이의 상태가 실험을 시작하기 전으로 되돌아간 것을 진척이 있다고 곡해하고 성취를 부풀렸다. 자신을 과신하고 실험의 기본 원칙을 잊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쌍둥이를 서로에게서 떼어놓는 실험 전제 자체가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나중에는 알았을까? 중요하지 않다. 헤스터는 쌍둥이들에게 도의적인 가책을 느끼지도 않았고 시간이 흐른 뒤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러 등장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헤스터는 알량한 동료의식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모슬리와 불륜적인 사랑에 빠졌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나에겐 내가 제일 중요해

그 모든 실수를 깨달은 헤스터는 무엇을 했는가? 즉시 도망쳤다. 고도로 정밀한 실험일 따름이라는 환상이 깨지자 헤스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창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피에 젖어 어쩔 줄 몰라하며 주저앉는 대신 창피를 동력삼아 순식간에 떠났다. 야망을 향해 직선으로 내달렸듯 실패 앞에서도 머뭇대지 않았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도 스미듯 빠져든 사랑도 그 순간의 헤스터를 붙잡을 수 없었다. 남은 사람들은 조롱하든 감탄하든 아무 상관도 없었다. 헤스터만이 헤스터에게 중요했다.

헤스터가 조금 더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다면 그처럼 황급히 떠나게 만든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헤스터는 가망이 없는 쌍둥이를 건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을 것이다. 헤스터가 조금 더 체계적으로 교육 받고 재능에 걸맞는 투자를 받았더라면 애초에 망해가는 저택에 궁여지책으로 불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헤스터는 경솔하고 자만심이 강하고 다소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그런 성향은 아무 문제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헤스터는 단순히 망신을 당한 한심한 여자인가? 여자가 큰일을 하는데 그 정도 부침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사회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럴 듯한 이론을 세우려 했다는 시도만으로 가치 있지 않은가.

그래도 된다

헤스터는 자신의 소견에 갇혀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다가 우스꽝스러운 퇴장을 하는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조연이다. 그러나 세속적이고 원대한 야망을 품는 여자도, 그 야망의 실현을 위해 앞만 보고 돌진하는 여자도, 그러다 실수를 저지르고 책임도 지지 않고 꽁무니를 빼는 여자도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더더군다나 훗날 결국에는 야망을 이루고 성공을 거머쥐었다며 간략한 후일담이 붙는 여자라면 통쾌함 때문에라도 절대 놓칠 수 없다.

여자는 반드시 올바를 필요가 없다. 꼭 고결함을 추구할 이유도 없다. 일을 망칠 수도 엇나갈 수도 있다. 멍청하고 비겁할 수도 있다. 그러고 싶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도 된다. 익히 알다시피, 여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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