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슨 매컬러스의 <결혼식 멤버>는 정교하고 구체적인 내면 묘사로 인물의 당위와 감정을 설득력있게 호소하는 작품이다. 흔히 ‘남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산문작가’로 칭해지는 탁월한 작가인 카슨은 15세에 심각한 열병을 앓은 이래로 많은 병을 안고서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고, 서른 살 이후에는 제대로 걷지조차 못할 만큼 끔찍한 고통을 안고 살면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1940년대 미국 남부 고딕문학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카슨 매컬러스의 반쯤 자전적인 이 소설은 한국에는 2019년 창심소에서 출간되었다.
줄거리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외롭기만 한 열두 살 프랭키는 자신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진심으로 넌더리가 난다. 오빠 자비스와 오빠의 아내가 될 재니스가 결혼식을 앞두고 집에 다녀간 후 프랭키는 한층 더 외로움이 사무쳐 자신을 마구 깎아내린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프랭키는 어디에서도 ‘우리’가 되지 못한 자신이라도 자비스와 재니스와는 ‘우리’인 것이라고 혼자 무릎을 친다. 당연히 그들 또한 프랭키와 자신들이 ‘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프랭키와 함께하는 것을 전적으로 바란다고 믿어버린다. 프랭키는 허무맹랑한 계획에 푹 빠져 결혼식 전날을 들뜬 채 여기저기 쏘다니며 자기 계획을 떠들어댄다. 이윽고 고대하던 결혼식에서 프랭키의 망상은 산산이 깨지고 프랭키는 상처만을 받은채 쓸쓸히 돌아온다. 이후 잠깐의 가출 소동과 같이 지내던 어린 사촌의 죽음, 가정부 베레니스와의 이별을 거치며 프랭키에게도 아주 약간 변화가 생긴다.
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 해 여름 프랭키는 자기 자신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그저 견디는 것조차 힘들었다. 여름 내내 덩치만 큰 아무 쓸모없는 게으름뱅이가 된 것 같았다. 프랭키는 “지저분하고, 탐욕스럽고, 심술궂고, 그리고 비참”하고, 심지어 “범죄자이기도 했다.” 프랭키의 생각이다. 열두 살의 나이에 벌써 5피트를 훌쩍 넘은 키가 부끄럽고 끔찍하게 느껴졌으며 그런 자신을 끼워주는 클럽이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 괴롭고 속상했다. 프랭키는 모든 곳이 자신을 내쫓는 것처럼 느낀다.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닌 곳에서 우왕좌왕하고만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프랭키는 자기가 남자여서 해병대원으로 전쟁에 나갔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프랭키는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일한 친구조차 이사를 가버려 이야기를 나누고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사라졌다. 프랭키는 혼자인 것이, 자신을 ‘우리’라고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자신을 찾아주는, 하다못해 찾아갈 어딘가도 없다는 것이 지독히 외롭다. 때문에 부러 말썽을 피우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댔다.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을 혐오하면서.
이거야!
난 떠나겠어
이토록 답답한 여름을 보내고 있던 프랭키에게 오빠와 오빠의 아내가 될 사람이 인사차 집을 방문한다. 그들은 외로움에 목마른 프랭키를 남겨두고 자신들끼리만 금방 떠나버린다. 프랭키에게 관심이 없는 아버지는 차치하더라도, 늘 프랭키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놀이를 하는 베레니스나 존 헨리는 없는 사람 취급하며 다른 ‘우리’를 갈망하는 못된 프랭키에게 자비스와 재니스의 결혼은 외로움을 더 긁어대는 사건이다.
그러다 별안간, 프랭키는 자비스와 재니스와 자신이 ‘우리’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오빠 부부와 자신이 함께 떠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 된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말만을 부풀려 간직하고 그렇지 않은 말들은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바꾸어버리기 일쑤인 못된 프랭키는 이 생각을 철썩같이 믿어버린다. 결혼식이 끝나면 그들과 함께 떠나서, 새 이름을 가지고 삐딱하고 볼품없는 과거는 버리고 새롭게 모험을 하며 사는 것이다! 이름을 바꾸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멋질까!
F. 재스민
프랭키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도망이다. 자기 자신이 이제껏 살아온 자신이 아닌 어떤 곳. 지금까지의 추하고 편협하고 무능한 자신을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 프랭키조차 과거의 프랭키를 던져버리고 F. 재스민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곳. 그 환상의 미래에서 프랭키는 온갖 위업을 이루고, 명성을 드높이고, 가는 데마다 사람들의 중심에 있고, 유명인사나 권력자가 앞다투어 프랭키와 친분을 나누려 한다. 그 상상 속 달콤한 세계에서 프랭키는 외톨이가 아니고, 자비스와 재니스가 내내 모험을 함께하는 ‘우리’이다. 오빠 부부와 함께 떠나는 새로운 프랭키, 즉 F. 재스민은 유능하고 멋지고 반짝반짝 빛난다. 어제까지의 프랭키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실제로 둘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과거의 프랭키는 외롭고 쓸모없고 무능하고 얄미웠다. 하지만 같이 떠나기만 한다면, 그렇게 그들와 우리가 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프랭키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고, 프랭키에게도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는 프랭키는 특별하고 눈부시다. 혼자인 프랭키가 지독하게도 아무것도 아닌 것에 반해, F.재스민은 가치있는 사람이다. 프랭키가 바라는 모든 좋은 미래를 모아 구현한 전혀 다른 자신이다.
조금씩 달라진다,
자라난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온동네를 나돌아다니며 내일 결혼식이 끝나면 이곳을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오빠 부부와 함께 지낼 거라고 떠벌려댈 정도로 깊이 몰입한 허황된 상상이 깨지는 것은 역시 그렇게도 고대하던 결혼식에서다. 상상 속의 F. 재스민은 희망으로 빛나고 자신감으로 환하며 저절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현실의 프랭키는 그저 어제의 프랭키, 그제의 프랭키, 줄곧 프랭키였던 프랭키일 따름이다. 프랭키는 자비스에게도 재니스에게도 변변히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결혼식 내내 쩔쩔매다 그들이 막 신혼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에야 비로소 자기도 데려라가며 생떼를 쓴다. 아침까지의 눈부신 재스민은 없다. 프랭키가 싫든 좋든 프랭키는 프랭키이고, 덩치만 크고 멍청하고 옹졸하고 현실에 맞서기 싫어 멍청한 망상이나 하며 도망치려 드는 프랭키다. 힘겨운 여름이 겨우 지나고 이사를 준비하는 겨울이 되어 결혼식 이후에도 크고 작은 이별과 사건을 겪은 프랭키도 여전히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프랭키다.
유감스럽게도 한번의 세찬 좌절로 인간은 알에서 깨듯 순식간에 완성될 수 없다. 프랭키는 조금씩 풍파를 맞으며 자랄 것이고 절망을 하나씩 주울 때마다 작게나마 얻어가는 것이 생길 것이다. 우리를 찾으며 근거 없는 망상으로 외로움을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던 어리석은 프랭키에게는 친구가 생긴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프랭키는 자라난다. 야무지지 못한 여자아이라도, 천천히 성장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