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테크유감: 여기어때와 <스타트업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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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테크유감: 여기어때와 <스타트업 빅뱅>

도명구

뭐가 어때, 짜증 나지

11월 30일 ‘여기어때’의 심명섭 대표가 음란물 웹하드 유통을 방조한 혐의로 위드이노베이션 대표직을 사퇴했다.

웹하드 무료 쿠폰은 왜 지폐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탐스럽게. 처음 그런 아이디어를 고안한 마케터나 디자이너는 상을 주어야 한다. 웹하드 서비스를 사용해본 적이 없는 나조차도 한 줌 집어가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그 쿠폰을 발행했던 <엠파일>, <애플파일>, <예스파일>의 실소유주’였던’ 한 남성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렇다. 저 업체들은 경쟁사가 아니라 자매회사 관계였다.

지난달 28일 숙박앱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의 심명섭 대표가 음란물 웹하드 유통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위드이노베이션의 지배회사인 위드웹은 올해 9월 20일까지 <애플파일>과 <예스파일>을 운영하는 뱅크미디어라는 회사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었다. 2017년부터 약 2년간 두 웹하드 서비스가 유통한 음란물은 427만 건. 음란물 가운데 아동, 미성년자 관련 음란물이 172 건, 불법 촬영과 리벤지 포르노는 40여 건. 그로 인한 총 수익은 52억 원이었다. MBC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이 돈이 ‘여기어때’를 설립하는 초기 자금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건이 터진 이틀 뒤인 30일, 심명섭 대표는 언론을 통해 ‘위드이노베이션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인적인 일로, 4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회사에 누를 끼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수많은 전문가가 붙어서 작성했을 이 입장문의 요지는 ‘심명섭 개인과 회사 간 명확한 선 긋기’다.

회사는 대표 일이라 모른다 그러고, 대표 본인은 지분은 가지고 있었지만 음란물 유통은 몰랐다 그러고. 지금은 그 지분마저 다 팔아버려 관계가 없다고 그러고. (11월 29일 MBC 보도에 따르면 웹하드 업체 지분은 심 대표의 형, 부인, 조카, 동창 등에게 넘어갔다.) 끝없이 꼬리를 자른다. 싹둑싹둑. 

본인이 꼬리를 잘라가며 항변하는 것은 이해라도 가는데, 옆에서 구태여 꼬리표를 떼어주려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지켜보는 마음이 심히 좋지 않았다. 한 IT 매체의 편집장은 ‘그가 웹하드 대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끝까지 지우지 못하고 회사를 위해 대표 이사직에서 물러났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적기도 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면 측은지심이 들 수도 있겠으나, ‘원죄’라는 표현까지 쓰며 불법 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목격했다. 해당 글에 달린 댓글을 통해서다. 솔직히 ‘이번에도 서로 두둔하면서 넘어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매서운 비판이 몰아쳤다.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짚고 넘어갔다. 해당 매체의 구독을 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페이스북이었기 때문에 조금 놀라웠다. 몇 년 전이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웹하드 없어지면 어떻게 사느냐고 앓는 댓글이 더 많지 않았을까? 이는 몰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낸 수많은 활동가와 정치인, 그리고 함께 소리높인 한국의 평범한 여성들이 만들어낸 변화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물론 이 웹하드 카르텔의 실체가 한 남성 직원의 ‘폭행 고발’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여전히 슬픈 지점이다. 여성들이 수많은 자료와 근거를 모아 들이밀어도 공고하기만 했던 몰카의 성이, 남성의 갑질 폭로 한 방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위드웹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사건이 터진 9월, 뱅크미디어의 지분을 정리했다고 한다. 이렇게라도 문제의 온상이 들춰지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씁쓸한 일이다.

JTBC <스타트업 빅뱅> 제작진께 고함

JTBC의 창업 경진 프로그램 <스타트업 빅뱅>의 최종 열 팀의 대표는 모두 남성이다. 심사위원도, 심지어 진행자도 모~두.

안녕하세요. <스타트업 빅뱅> 제작진 여러분. 저는 시청자입니다. (애청자까지는 아닙니다.) JTBC에 수신료는 내고 있지는 않지만, IT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 시청자로서 더 나은 다음 시즌 기획에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하여 이렇게 편지를 부칩니다. 물론 다음 시즌이 있다면 말입니다.

대한민국 창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창업 신(神)...들의 전쟁 <스타트업 빅뱅>이 어느덧 마지막 회만을 남기고 있네요. 심사위원인 투자자들이 마음에 드는 스타트업에 가상화폐 모의 투자를 한다는 컨셉이 신선했습니다. 그 장치가 극의 긴장감 조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차피 버튼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거나 철회하시더라고요. 케이팝스타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 6화를 시청하다가 스튜디오 안에 있는 일곱 명의 투자자와 열 명의 최종 결선자, 그리고 두 명의 진행자(이휘재, 조우종) 전원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말았어요. 제가 눈을 다소 세모나게 뜨고 사는 경향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차라리 안 봤으면 서로 마음이 편했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분명 억울하실 겁니다. 사실 창업에 남성, 여성을 가려서 뭐하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여성 창업자를 찾아봤는데 없었을 수도 있고, 또 여성 창업자를 출연시켰는데도 순위권 안에 들 만큼 뛰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잖아요? 남성 투자자들 기준에서는요. 108개국에서 5,770개의 팀이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제작진분들이 안일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제작진 측에서도 최종화가 남성으로만 가득 찬 그림은 바라지 않으셨겠죠. <스타트업 빅뱅>은 창업계를 고스란히 축소해놓은 미니어처 같았어요. 실제 세계에서도 여성 창업자의 수는 적고, 투자 업계는 남성으로 넘쳐나죠. 선택받을 수 있는, 그리고 선택받은 여성 창업 기업이 극소수인 것이 현실입니다. 잘 아시다시피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렇게 현실 축소판인 재미없는 예능을, 제가 퇴근 후에 굳이 TV를 틀어서 보고 싶을까요?

물이 흘러가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적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을 현실감 있게 재현해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재미는 방향을 거스르는 전개와 인물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까. 따라서 예능적 긴장감을 위해서라도, 다음 시즌부터는 여성 참가자와 투자자의 모습을 더 많이 비춰달라는 건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부자연스럽게 그리고 다분히 의도적으로요.

그렇다고 해서 여성 투자자 딱 한 명을 자리에 심어놓고는, <아메리칸 아이돌>의 폴라 압둘처럼(=온 참가자들의 인자한 어머니처럼) 활용하시면 정말 안 되는 거 아시죠. 미모를 앞세운 악녀 참가자 서사도 지겹고 재미없습니다. 그냥 비율을 맞춰 여성들을 그 자리에 두세요. 별다른 디렉션 없이도 알아서 자신들만의 드라마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한국 땅에서 창업하거나 투자자가 된 여성이라면 보통 인물들은 아닐 테니까요.

*추신 : 6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이디어 창업의 신, 왕좌의 앉을 주인공이 공개됩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내셨는데요. ‘왕좌의'가 아니라 ‘왕좌에'가 옳은 맞춤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진보하셔서 다음 시즌에는 꼭 <국내 최고의 창업 오디션>이라는 왕좌에 앉으시길 기대합니다. 이번 시즌 최종화는 항마력 부족으로 건너 뛰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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