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식 이력서 양식 대신 캐나다에서 작성했던 이력서 양식으로 작성해 몇몇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대부분은 연락이 없었다. 이력서에 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내 이름만 읽고 남자인줄 착각하고 연락을 한 곳도 있었다. 대부분의 인사담당자들은 내가 여자인 것을 알게 되자 결혼여부와 결혼계획을 궁금해 했다. 그리고 내가 이전에 전부 남성으로만 이뤄진 근무환경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지 궁금해 했다.
이력서를 넣고,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고, 가까스로 전화를 받아서는 현재 남자친구가 없고 근시일내에 결혼할 계획도 없으며, 사진은 나중에 보내드리겠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니 지쳤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몇 가지 기준이 생겼다. 우선, 나는 사진을 요구하는 회사에는 사진을 보내지도 않았고, 관심이 없다고 의사를 밝혔다. 개발자 일을 하는데 외모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경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컴퓨터 공학 지식이 부족하고 개발 실무 경험도 없는 신입인데 그러한 부분보다 사진이 더 궁금한 심리를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남자친구의 유무와 결혼 계획을 묻는 회사도 제외했다. 이런 회사는 근무 중에 개인적인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물어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결혼 계획이 없지만, 직장인의 대부분이 기혼자이고 미혼 개발자가 모여 있어도 결국 상당수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굳이 결혼 계획을 묻는지 궁금했고 동시에 그 이유를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요소를 문제 삼는 근무환경에서는 오랫동안 일하기 힘들 것 같았다.
찬물 더운물 가리지 않고
그 때 한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그 회사의 CTO가 직접 이력서를 검토하고 나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내 신상정보를 묻지 않고 바로 과제를 줬다. 내가 국비과정에서 배운 언어는 자바Java인데 그 회사에서는 파이썬Python을 쓰고 있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과제 기간을 한 달을 주었다. Django라는 프레임워크를 써서 간단하게 CRUD(소트프웨어의 기본적인 데이터 처리 기능인 Create(생성), Read(읽기), Update(갱신), Delete(삭제)를 묶어서 일컫는 말)를 구현하는 게 과제 내용이었다.
Django, Python 둘 다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지만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당시 시중에는 Django 책이 딱 두 권 있었다. 책을 빌려서 읽었는데 막상 예제를 따라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 알고 보니 그동안 Django 버전이 많이 업그레이드 돼서, 책의 설명만 보고 따라할 수 없었다. 스택 오버플로우(개발자들이 프로그래밍에 대한 질문과 답을 할 수 있는 사이트.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막혔을 때 많이 사용한다)를 매일 뒤지면서 코드를 참고해 Django 개발을 했다. git도 안 써 봤지만 bitbucket 문서를 읽고 푸시까지 끝낸 뒤 주소를 전송했다. 곧바로 면접 일정이 잡혔다.
면접장에서 CTO가 기술 용어를 사용하면서 몇 가지를 해보라고 했는데 내가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였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매우 당황해 하는 기력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기본적인 작업을 주문했는데 모른다고 하니 당황할 만 했다. 사실 거기서 면접이 중단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CTO는 MySQL 함수를 하나 가르쳐주고 데이터 셋을 주더니 이걸 활용해서 본인이 주는 조건에 맞게 아웃풋을 내라고 했다. 제한시간은 20분이었다. 아까 배운 함수를 활용해서 쿼리를 짜니 5분만에 끝났다. 그렇게 첫 회사에 취직했다. 강사가 Python 개발자는 일자리가 없다고 했는데, 나는 Python으로 서버를 개발하는 곳에 덜컥 취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