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주부 편’의 취재를 위해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는 나 대신 자취하는 친구의 방에 서비스를 신청했다. 약 4시간의 서비스 후 탈바꿈 된 집을 선물 받은 친구는 너무나 기뻐했고, 아주 적확한 답례 인사를 건네주었다.
언니, 진짜로. 이건 최고의 생일 선물이야. 언니가 6만 원을 나한테 쥐여줄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걸 이렇게 쓸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 거야.
퍽 기뻤는데, 이 말이 연재를 통해 내가 닿고 싶은 목표를 정확히 건드려 주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충동구매자의 구매가이드는 시종일관 다양한 ‘편의’를 위해 질러대는 나의 모습을 부러 전시함으로써 독자 여러분의 레퍼런스를 확장하는데 (‘저런 인간도 있는데 뭐!’ 하는 의미로) 도움이 되고자 한다. 오늘은 ‘잘 정돈된 집에서 사는 경험’을 구매한 이야기다.
전문가에게 맡기세요, 베테랑 주부 – 대리 주부
대리 주부 혹은 가사 용역 서비스를 신청할지 고민은 여러 번 한 적이 있지만 현실적 제약과 함께 다음 물음들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아 주저했다.
아, 그냥 날 잡고 내가 하면 되지 그냥 귀찮은 건데.
뭘 어떻게 해달라고 얘기해야 되고 몇 시간을 신청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까지 더러운 건 아닌데.
이 의심들은 모두 가사노동을 ‘전문영역’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나왔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한 분야의 전문가는 클라이언트의 모호한 니즈를 조직화하여 갈무리하고, 그중에서 주어진 조건 내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하여 대안을 제시, 수행한다. 가사노동도 같다. 의뢰인은 자신의 니즈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전달만 하면 된다. 그 후 전문가와의 교류를 통해 서비스 내용을 구체화하고, 가용 예산 내에서 해결을 도모하는 절차를 따르면 된다. 요컨대 가사 용역의 제공자에게도 충분한 ‘겐또’가 있으며 우리의 예산과 니즈에 맞는 적합한 해결책 제시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대리 주부 서비스는 이 과정에 있어 '어떤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 / '누구에게 신청해야 하지?' / ‘어느 정도를 지불해야 적정선이지?’ 하는 물음에 대한 정보 수집, 마우스 품팔이의 비용을 줄여주는 서비스다. 마치 ‘카카오 택시'와 비슷하게 가사노동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더 편리하게 이어주는 O2O 플랫폼인 셈이다. 결제도 플랫폼 내에서 이루어지는데, 후불 시스템으로 서비스 당일 서비스가 끝나고 나면 자동 청구된다. 중개 수수료는 개별 5천 원 정도로 주문 과정 내에서 명시된다.
대리 주부 신청하기
여성 1인 가구인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을 섭외한 뒤 대리 주부 서비스를 실제로 신청해 보았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신청은 어렵지 않았고 견적이 들어오는 것도 매우 빨랐는데, 1-2분 내로 두 세 분의 견적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서울 성동구 기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된다.
나의 경우 12평형 주택의 4시간 가사노동을 신청했는데, 비교 입찰 시 시세는 대강 6.5만 원 선이었고, 정액제로는 5만 원이 책정됐다. 가장 고민이 됐던 ‘뭐라고 요청해야 하나’ 하는 부분은 ‘화장실이나 냉장고 청소가 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로 두루뭉술하게 적었다.
대리 주부 체험 당일
서비스 당일. 실제 도착한 친구의 집은 너무 지저분해 미치겠지도, 그렇다고 ‘생활감이 없어서 걱정’이라던 친구의 말처럼 깨끗하지도 않았다. 손 닿는 곳마다 물건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는 중인, 걸음 걸음마다 발바닥에 끈적한 먼지가 붙는 평범하게 방치된 모양의 집. 아침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한다면 일주일 즈음이면 금방 나오는 집의 형태.
Before
약속시간보다 십 분 정도 일찍 매니저님이 방문하셨고, 집안의 구조와 유념해 주셨으면 하는 부분 등을 알려드리곤 집을 나섰다. 집 구조를 알려드리는 것 외에도 청소용구를 꺼내드리는 것이나, 신경 쓰이는 부분을 부탁하는 것 등의 부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비스 시작 시점에는 꼭 매니저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친구의 경우 도저히 깨서 버릴 용기가 나지 않던 산 지 5개월 된 계란을 냉장고에서 버려 주시기를 특별히 부탁 드렸다.) 자리를 비운 지 세 시간 이십분 뒤, 매니저님의 전화를 받고 돌아간 집은 몰라보게 달라져있었다.
After
우선 바닥 바닥을 옮겨가는 발걸음이 더 이상 쩍-쩍 붙지 않고 산뜻해진 것은 물론, 집이 더 넓고 아늑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실 실제로 그랬는데, 매니저님이 청소를 하는 중간중간 공간 활용 부분도 생각해 배치와 수납을 조금씩 손보았기 때문이다. 침대를 벽 쪽으로 더 붙인다거나, 거울을 약간 옆으로 밀어 공간을 더 크게 쓴다거나 하는 식의 배치 덕에 실사용 공간이 크게 늘어났다. 큰 틀에서의 정리정돈과 배치 이외에도 손 닿는 모든 곳에서 매니저님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예를들면 신발 장 위의 신발은 크기별로 가지런히 정돈 되었고, 창틀은 먼지가 닦여 더 이상 손 닿을 때 끈적하지 않았다. 네 시간 만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니! 신청 전 ‘내가 하면 되는데 뭐가 다르지?’ 했던 고민이 어이없게 느껴질 따름이다. 내가 해서는 절대 이렇게 될 수 없다. 어줍잖게 포토샵을 배운 사람과 디자인 전공자 간의 차이가 있듯, 가사노동 전문가를 두고 ‘내가 하면 되는데 굳이...' 하는 효용 측면에서의 의심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 견적 비교를 통해 경력 10년 이상의, 후기가 특출난 매니저님을 채택한 결과임은 감안해야 한다.) 더불어 매니저님이 청소한 집은 ‘이상적인 우리집’의 ‘견본’이 되어, 앞으로의 집안 청소 및 공간 활용에 일종의 가이드가되었다. 어떻게 치우고-쓰고 살면 되겠구나 하는 ‘감’을 얻은 셈.
서비스 후 매니저님과 간략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최근에는 1인 가구의 신청도 대폭 늘어 전체 주문의 3할 정도를 차지하고, 특히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이용률이 높다고 한다. 1인 가구들은 2~3주에 1회, 회당 5만 원 선으로 와서 정리하는 식으로 정기 서비스를 받는 형태를 선호하는데, 이 정도면 집이 관리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친구는 매니저님의 전화번호를 따로 저장했다. ‘아늑하고 깨끗한 집’의 효용을 유지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니 충분히 지불할 만한 비용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어쩔 줄 모르게 피곤한 나날, 어수선한 집에 들어가면서 더 우울해진다면 ‘대리 주부’는 충분히 고려할만한 서비스가 아닐까?
총평: ★★★★★
아침에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는 삶을 살다 보니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모두 부족해 집은 방치하고, 방치된 집에서는 또다시 최소한의 시간만 보내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서비스 후 만나게 된, 볼 때마다 부채감을 자극하는 집이 아닌 잘 정돈된 아늑한 집은 상상 이상으로 아늑했다. 우리는 매니저님과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바깥으로 나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참이나 방에서 뒹굴뒹굴하며 다음 일정으로 향하지 못했다.
한가지 더 큰 효용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집을 보니 ‘아 이제 앞으로는 집을 어떻게 치우고 살아야겠구나.’ 하는 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서비스 이후 다시 조금씩 더러워지고는 있지만, 적절한 원 형태를 찾지도 못했던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것부터 대강 치워나갈 때 보다는, 어떤 것이 이상적인 상태인지 아는 상태에서 집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게 상대적으로 더 쉽게 느껴지더라.
이용TIP
매니저님과의 대화를 통해 약간의 TIP을 정리해 보았다.
1. 청소 용구에 대해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기본적인 청소 용구는 진공청소기와 걸레, 수세미이다. 그 외에도 청소용구가 있는/없는 부분을 말씀드려 장비 장착이 되지 않은 채로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나의 경우 걸레가 없어 매니저님이 서비스 시 아예 챙겨오셨다. 다만 아무래도 ‘장비 빨’이 있어야 만족도가 향상되므로, 찌든 때 제거 제품이라든지 솔, 수세미 등은 가급적 구비하는 것이 좋겠다.
2. ‘무엇’을 요청하는지 대화를 통해 정한다.
앞선 부분에서도 썼지만 대부분의 매니저분들은 ‘어디가 이 집의 원흉인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요청 전에 뭘 부탁해야 하는지를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요청은 기본적인 프로토콜로 하되(평형, 시간 등) 실제 가사 서비스는 집을 보고 진단 후 진행되기 때문이다. 다만 비용을 더러움이 뛰어넘는 경우, 예를 들어 도저히 신청된 시간으로 될 집이 아닌데 비용적 한계로 인해 시간을 늘릴 수 없는 경우에는 집중해야 할 공간을 분리하여 선택하면 그곳에 집중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3. 주소는 도로명 주소로 입력하자.
매니저분들이 집에 찾아올 때 확실히 더 편하다고 하니 배려 차원에서 도로명을 기입하자.
4. 서비스 시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해당 비용을 돌려주지는 않으니 유의하자.
대리 주부 매니저를 고르기 위해 많은 후기를 뒤적였는데, 어느 분을 막론하고 불만의 내용은 거의 신청한 시간 전에 서비스를 끝내고 집에 갔다는 내용이었다(집주인 부재 시). 시간이 남았다면 마무리 시점에 다른 것을 더 요청 드릴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용 삭감은 어렵다는 것을 알아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