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VR게임을 하는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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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VR게임을 하는것이 두렵다

딜루트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유명 온라인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는 다양한 소셜 액션이 존재한다. 채팅창에 ‘/행동’ 을 치면 캐릭터들이 특정한 움직임과 함께 대사를 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종족마다 차이는 있지만 ‘/인사’를 하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는 인사, ‘/춤’을 하면 종족별 고유의 모션으로 춤을 추는 방식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주된 주제는 ‘얼라이언스’ 와 ‘호드’의 대립이다보니 상대 진영의 플레이어와는 적대적인 액션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시스템적으로도 플레이어는 상대 진영과 채팅을 할 수 없으며, 공격 외 다른 행동은 할 수 없게 설계 되어 있다. 그래서 플레이어끼리 상대 진영이 퀘스트를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기본이고, 초보자 구역에 상대 진영의 최고 레벨 캐릭터가 등장해 마을 NPC를 전부 죽여 정상적인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게임의 컨텐츠 중 일부로 통용됐다.

초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는 이러한 감정 표현을 이용한 ‘강간 매크로’ 라는 것이 존재했다.어떤 유저가 특정 소셜 액션들을 한데 묶어 마치 강간을 하는 것 같은 모션과 텍스트를 매크로로 만든 것이다.

한 유저는 ‘강간 매크로’를 당하자 GM에게 불만을 제기했고 해당 가해 유저는 실제 있는 기능을 사용하는 것인데 왜 문제인지 항의했으나 결국 게임 이용 정지를 당하게 된다. 이후 유저들 사이에서 실제로 행한 것이 아닌 사이버상 행동일 뿐인데 문제가 되는지로 논란이 일었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와우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이런 사례가 발생하면 성적 모욕감을 느낀다고 이를 공론화해 이 소셜 액션은 결국 수정되었다.

게임을 즐길 생각보다 위험을 피할 생각부터 해야 하거든요

기술의 발전으로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증강현실을 이용한 게임들이 등장했다. 포켓몬 GO 같은 게임들은 게임을 실행시킨 채 GPS상의 특정 장소에 방문하면 이벤트가 일어나는 방식으로 현실과 가상세계가 적절히 혼합되어 큰 인기를 끌었지만 길게 흥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컨텐츠의 부족 등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여성이나 아이들이 게임을 하기 위해 특정 장소에 방문했을 때 그 장소에서 안전을 보장받을수 없다는 점이 위험요소 중 하나로 꼽혔다.

특히 포켓몬 GO 이전에 발매되었던 인그레스 AR의 경우 같은 게임을 하는 여성 유저를 보고 인터넷 카페에 ‘뒤에서 껴안고 싶다’ 같은 글을 올린 유저로 인해 큰 논란이 벌어졌다. AR 게임의 특성상 거주지 근처에서 주로 플레이하게 되고 플레이하는 다른 유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사람과 유저의 닉네임을 연결지을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주로 가는 동선 등을 파악할 수도 있다. 이는 범죄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카페에서는 혼자 다니지 말 것, 으슥한 곳을 다니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많은 여성 게이머들은 더이상 게임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고 게임을 중단했다.

위와 같이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증강 현실이나 가상 현실에서 모욕감을 느끼는 사례들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변하게 된다. 과거에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간접 체험은 점점 구체적인 그래픽으로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최근 게임 업계에서도 적극 활용하는 VR(Virtual Reality)의 경우 그 우려가 더욱 크다.

섬머 레슨, 이미지 제공 : 반다이남코

얼마 전, 어떤 게임 성우의 VR 게임 스트리밍 방송이 논란이 되었다. <섬머 레슨>이라는 이름의 이 게임은 화면 속 여성 캐릭터와 의사 소통을 하며 정해진 기간동안 공부를 하는 일종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해당 스트리밍 방송에는 구석에 VR을 쓴 플레이어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는데, 플레이어는 제공되지 않는 각도의 속옷을 보기 위해 지속해서 몸을 움직인다. 모니터에 보이는 플레이어의 시야와 실제 플레이어가 치마 밑을 보기 위해 몸을 숙이고 기울이는 자세 등을 동영상에서 그대로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현실의 범죄와 겹쳐 보여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다수 등장했다. 이 사건은 나아가 해당 성우가 등장하는 게임을 보이콧하겠다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졌다.

QuiVR의 인게임 화면,이미지 제공 : Alvios, Inc.

외국에서는 VR 게임 내에서 발생한 성추행 이슈가 가 이미 불거지고 있다.

<QuiVR> 은 성벽에서 활을 쏴 좀비를 쓰러트리는 게임으로, VR을 착용하고 보이는 화면에서 손을 움직여 조작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함께 게임을 하던 남성 유저가 보이스 채팅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가 여성유저임을 알게 되자 여성 유저의 아바타를 터치하며 쫓아다닌 사건이 있었다.

이 게임은 적이 아닌 같은 플레이어에게 취할 수 있는 액션이 없었고 그것을 제지할 수 있는 운영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해당 유저는 남성 유저의 터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 속에서 유저의 아바타는 신체가 없이 팔과 머리만 둥둥 떠다니고 이 탓에 제 3자의 시선으로는 손이 공중에서 허우적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의 아바타와 자신을 일치시키기 쉬운 VR의 특성상 자신의 시야에서 움직이는 손과 남성 유저의 말은 성추행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했고, 해당 유저는 그 플레이로 인해 느낀 불쾌감을 블로그에 게시했다.

게임사는 뒤늦게 신체에 가면 손이 없어지는 것으로 그런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리했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소극적인 대응인데, 해당 기능을 사용한 가해자가 처벌받지도 않았으며 그런 시도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지만 단지 기술적으로 보이지 않게끔만 처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게임 안팎에선 ‘신체적인 피해’가 없었음에도 이 사건을 성추행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탁상공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실제 피해자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위의 사례는 온라인 게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성추행 사건들이 좀 더 현실에 걸맞게 구체화 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 익스트림3, 이미지 제공 : 코에이테크모

한쪽에서 VR에 대한 성추행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포르노 게임 외에서도 각종 훔쳐보기, 터치 가능 게임들을 발매하고 있다. 코에이테크모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 익스트림 3>의 트레일러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 캐릭터들과 어울리며 그라비아 화보를 촬영하는 게임을 홍보했다.

가상 현실을 즐기고 싶다

가상 현실이 점점 더 현실적이 될 수록 게임을 통한 경험은 좀 더 현실적이게 된다. VR을 통한 포비아 치료와 PTSD 극복 사례들 등 긍정적인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지만, 반대의 경우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기존에 사회에서 보유하고 있는 젠더적 권력이 VR을 통해 재생산될 때, 그것을 소비하는 계층은 그런 기울어진 젠더에 대해 단순히 받아들이고 즐기는 선에서 그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문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구조를 습득한다. 가상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평소에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쉽게 해 왔다. 위에서 언급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강간 매크로가 VR 게임에서 벌어진다면?

여성 게이머들은 VR 기기가 발매되기 전부터 이미 온라인 게임 도중 자신의 성별이 드러났을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AR에서도 위협적인 요소는 늘 존재해왔다. 현실적인 감각에 중점을 두고 있는 VR의 특성상 아무리 안전한 장소에서 플레이한다고 해도 사건이 생겼을 때의 충격은 실제와도 같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VR이라는 새로운 기술은 늘 그랬듯이 결국 특정 계층만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에 그치고 말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괜찮을 것이라고 느끼는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위협을 느끼고 싶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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