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여성의 전쟁: 영웅담이 아닌 현실

알다게임여성 주인공

게임 속 여성의 전쟁: 영웅담이 아닌 현실

딜루트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지금까지 전쟁을 소재로 다룬 많은 게임은 남성 주인공의 영웅 서사시가 주된 주제였다. 게임 속 주인공들은 다양한 시나리오 아래 정당화 된 이유를 근거로 얼마든지 살인을 저지를 수 있고, 주인공의 영웅담은 게임 속에서 칭송되어 왔다. 현실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게임일수록 게임 속에서 나오는 다양한 살상 무기들은 더욱 그럴싸해졌다. 얼마나 실제 기기와 흡사한 성능과 화력을 지녔는지, 실제 전투에서 역사상으로 어떻게 작용됐는지, 효과음은 실제 무기의 소리와 얼마나 비슷한지 끊임없이 연구했고 이것들은 주된 판매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다른 게임들도 그러하듯이 전쟁 게임속 주요 주인공들은 남성들이었으며 여성의 역할은 한정되어 있었다.

얼마 전부터 영웅담을 드러내던 전쟁 게임은 점차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스펙 옵스 : 더 라인>, <발리언트 하츠> 등의 게임들은 전쟁을 통한 영웅담이 아닌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This War of Mine

“현대 전쟁에서, 당신은 별다른 이유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

11 bit studios에서 발매된 <This war of Mine> (이하 TWoM)은 보스니아 내전에 모티브를 받은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많은 캐릭터들은 전부 민간인이며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채로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이다. 플레이어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이며, 살기 위해 때로는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This war of mine>. 이미지 제공 11 bit studios

TWoM의 게임 속 시간은 주간과 야간으로 나뉜다. 주간에 밖에 나갈 경우 저격수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으므로 주간에는 자신들의 거처 내부를 보수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제작한다. 야간이 되면 저격수의 눈을 피해 도시 곳곳을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무장 단체에 의해 갇힌 사람을 구출해 줄 수도 있고, 병에 걸린 부모를 돌보는 집에서 약을 훔칠 수도 있다.

TWoM 에서 조작할 수 있는 많은 캐릭터들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이나 서사에 따라 옮길 수 있는 짐의 양이 정해지고 생존을 위한 기술을 갖게 되며, 여성 캐릭터라고 해서 더 쉽게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누군가의 짐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남성 캐릭터들보다 전투 수치가 떨어지는 경향성이 존재하지만 다른 특성들로 그 점들을 보완한다. (게임의 배경과 캐릭터들이 민간인이라는 특성상 작정하고 플레이하지 않는 이상 전투는 충분히 피할 수 있다. 더불어, 전투만이 최선의 생존법이 아니기도 하다.)

변호사인 에밀리아는 직업적 특성 탓인지 정신적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미지 제공 11 bit studios

TWoM 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전쟁 이전의 삶을 가지고 있다. 게임은 각 캐릭터의 전쟁으로 인해 달라진 인생을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그곳에서 남성적인 무용담은 설 자리를 잃는다.

카티야는 전쟁 전 기자의 삶을 살았고, 전쟁이 터지고 나서 자신이 겪었던 것들을 전부 기록하여 출판하려고 한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전쟁이 끝난 이후 카티야의 운명은 크게 달라진다. 배드 엔딩에서 전쟁동안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했던 일들이 트라우마로 남아 일지를 출판하지 못한 채 태워버리고, 굿 엔딩의 경우 카티야의 전쟁 일지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크게 주목받는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의 서사는 성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이미지 제공 11 bit studios

아리카는 빈민 가정 출신의 학대받는 청소년이었다. 집 안에서는 부모에게 학대받고 바깥에서는 도둑질로 삶을 이어나가던 아리카는 전쟁이 터지고 나서 다른 생존자들에 비해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아리카는 전쟁을 견디며 자신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엔딩에서 아리카는 감옥에 복역하거나, 전쟁의 상처 탓에 누구도 믿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 상처를 딛고 어떻게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게임 속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는 크베타의 경우, 게임속에 나오는 파괴된 학교의 교장이다. 크베타의 스킬들은 전투나 수집에 특화되어 있지 않지만, 어린이들을 돌보는 데에 부가 효과가 있으며 사람들을 치료하는데도 다른 캐릭터보다 낫다. 약이나 붕대가 희귀한 전쟁 속에서 이 특성은 굉장한 도움이 된다. 엔딩에서 크베타는 자신이 가진 교육열을 계속 유지하고 (트라우마 속에서도)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변화된 삶을 견디지 못해 은퇴한다.

유저들 사이에서 소위 나쁘다고 평가받는 캐릭터들은 ‘전투’ 나 ‘수집’에 특화되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허나 앞서 말했듯이 TWoM 속에서 전투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요소이며, 제작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처럼 전쟁 속 수많은 민간인들 중에는 특출나게 강인한 사람보다는 나약하고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캐릭터들은 다양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미지 제공 11 bit studios

게임이 끝나면 다른 전쟁 게임의 엔딩과 달리 그들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마음속 한구석에 상처를 지니고 살아간다. 이것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나오는 많은 여군의 이야기와도 유사하다. TWoM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군복을 입고 적들과 싸우지 않았을 뿐이지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자들이다.

밤의 마녀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 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중

제임슨 모닝스타가 만들고 초여명에서 발간한 테이블 톱 롤 플레잉 게임(TRPG)인 <밤의 마녀들>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싸우던 소련군의 여성 비행 분대인 588야간폭격연대에 대해 다룬 게임이다.

<밤의 마녀들>, 도서출판 초여명

TRPG는 는 플레이어들끼리 모여 등장인물이 되어 상황을 제시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며 플레이한다. TWoM이 전쟁 속 민간인들 이야기를 다루며 그 속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언급했다면, <밤의 마녀들>에서는 전쟁 속에서 군사가 된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게임은 TWoM처럼 주간과 야간으로 나뉜다. 주간에는 보급을 하고, 수리를 하거나 캐릭터들과 교류를 하는 등 막사 안에서 활동을 한다. 그리고 야간에는 주간 활동을 통해 얻은 것들을 구식 쌍엽기에 싣고 출전해 독일군에게 폭격을 가한다.

<밤의 마녀들> 플레이 중 테이블

게임의 시작 때 플레이어들은 캐릭터가 전장으로 입대하는 과정을 묘사할 수 있다. 이때 제시되는 질문을 통해 플레이어는 캐릭터들이 ‘여성’으로서 전장에 참여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비행 교관이 순전히 여자라는 이유로 낙제를 시켰을 때, 어떻게 했나?”
“자기 성별로 인해 남의 호의를 입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갚았나?”

여성이기 때문에 생기는 이벤트는 이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밤의 마녀들>에서 플레이어들은 남성 군인들의 추파를 견뎌야 하고, 불균등하게 배급되는 물자를 받아야 하며, 남성 부대가 쓰고 버린 부품들을 줍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당하는 것을 견뎌야 한다.

전쟁은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밤의 마녀들>에서 캐릭터는 전투로 인한 피해로 인해 사망하거나, 징표로 인해 사망할 수 있다.

징표는 경험을 통한 흔적이다. 전쟁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전부 징표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은 캐릭터가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일정 수치 이상의 징표가 쌓이게 되면 아무리 잘 나가는 비행사라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사망하게 된다. (물론, 이야기의 진행상 캐릭터가 사망하는게 맞다고 판단되면 징표나 피해와 무관하게 사망시켜도 상관은 없다.) 아래는 <밤의 마녀들>에서 사용될 수 있는 징표 중 일부이다.

  • 친구나 애인의 죽음을 겪는다
  • 고향의 경험을 회고한다
  • 예감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

위의 징표들은 플레이 도중 나타나 캐릭터에게 전쟁을 겪는 서사를 부여한다.갑작스럽게 생긴 징표로 인해 캐릭터들의 전쟁 속 이야기는 깊어지고,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캐릭터들의 죽음은 더 큰 비극이 된다.

<밤의 마녀들>의 배경이 된 실제 588연대. 이미지 제공 NYT

TWoM과 마찬가지로 <밤의 마녀들>은 누군가의 영웅담이 아니다. <밤의 마녀들>은 전쟁에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벌였고 전쟁을 얼마나 승리로 이끌어 나갔는지보다는, 어떻게 전쟁을 겪고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남았는지, 혹은 어떻게 죽어갔는지가 주된 이야기이다.

<밤의 마녀들>에서 주된 갈등은 젠더에서 비롯된다. 게임은 전쟁 와중에 자신들이 직접 자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서 어떤 차별을 받았고 남성 군인들의 멸시를 어떻게 견디는지 끊임없이 보여준다. 여군들은 야간에는 독일군과 싸워야 하고 주간에는 아군의 사상과 싸워야 한다. 생리를 하더라도 비행은 나가야 하고 부상을 입었어도 보급에는 차질이 없어야 한다. 크게 눈에 띄는 실수를 했어도 마찬가지지만, 승리에 엄청난 공헌을 했어도 징표는 하나둘 찍힌다.

플레이어들은 <밤의 마녀들>을 통해 당시 588연대가 어떻게 전쟁을 치뤄 나갔는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현실적인 전쟁의 어려움(물자의 보급, 화력의 차이 등) 위에 추가로 얹어진 젠더의 짐은 여성에게 전쟁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해 준다.

전쟁 속 여성들의 이야기는 더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전쟁에서 개인의 이야기는 지워지고 수많은 사상자는 단순한 숫자로 카운팅된다. 이는 게임뿐 아니라 각종 매체에서도 쉽게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전쟁은 결국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이며 그 누군가에는 당연하게도 많은 여성 또한 존재한다. 그동안 많은 매체 속에서 이런 여자들의 이야기는 지워져갔고 전쟁은 단순한 무용담으로만 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여성들은 남성들과 달리 그런일을 겪고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약점이었고, 국가에서는 여성들까지 동원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치부였기에 그 사실들을 감추려고만 하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기에 각종 매체 속에서 여성들이 겪었던 전쟁에 관한 서사들 하나하나는 전부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전쟁을 겪고 살아남는 것은 남성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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