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노출도와 방어력은 비례한다.” 게임 캐릭터들은 상위 등급으로 가게 될수록 거적때기를 벗어던지고 매력적인 장비를 입게 되는데, 등급이 올라갈수록 각종 장비를 껴입는 남성 캐릭터들과는 달리 여성 캐릭터들의 노출은 점점 증가하게 되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타입의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농담이 널리 통용될 정도로 여성 캐릭터들의 노출은 게임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통용됐다. 게임 제작사는 여성 캐릭터의 특정 신체 부위를 구현하는데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이를 홍보하기도 한다.
다양한 작품의 로봇들이 콜라보레이션해 전투를 펼치는 <슈퍼로봇대전>은 매 화 프로모션 비디오에서 여성 파일럿의 가슴이 흔들리는 컷을 사용한다. 유저들은 신작이 나올 때마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어떤 작품의 파일럿이 가슴 모핑(*여성 캐릭터의 가슴이 움직이거나 출렁이는 것을 표현하는 기법을 이르는 말로 흔히 쓰인다) 이 예쁘게 나왔는지를 토론한다.
최신작인 <슈퍼로봇대전 V>는 전작인 <슈퍼로봇대전 OG - 문 드웰러즈>와는 달리 과도한 바스트 모핑을 줄이고 (아예 사라지진 않았다. 다만 줄었을 뿐이다.) 메인 캐릭터인 치토세의 컷인엔 바스트 모핑을 아예 집어넣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상당수 유저들의 반응은 위처럼 게임 진행에 관한 글 반, 치토세의 가슴 모핑이 없는 것에 대한 한탄이 반이었다.
온라인 기반 게임이라면 이러한 성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상당수의 온라인 게임들이 여름이 되면 이벤트를 열어 그 기간 동안 수영복 혹은 수영복을 입은 캐릭터를 판매한다. 세계관이 어떻건 상관없다.
모바일 게임에 나오는 귀엽게 디자인된 4~5등신 캐릭터들도 예외는 아니다. 캐릭터 디자인에 따라 다르지만, 때때로 어린아이가 유두만 가린 속옷을 입은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나는 아바타들도 존재한다. 이런 복장에 대한 집착은 나아가 그 복장 한정으로 가슴이나 엉덩이가 움직이는 모션을 집어넣기도 하고 속옷이 따로 존재하는 게임의 경우 특별히 디자인 된 속옷을 기간제 한정 아이템으로 팔기도 한다.
모바일 게임인 <언리쉬드>의 경우 캐릭터와 일러스트의 선정성으로 인해 민원이 발생하자 그제서야 등급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본 글에서는 이런 식으로 노출이나 성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 게임 혹은 캐릭터들을 몇몇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시라누이 마이로 대표되는 격투 게임 장르의 여성 캐릭터들은 유독 다른 장르에 비해 신체의 노출이 많은 편이다. 여성 닌자인 쿠노이치의 복장을 본따 만든 파격적인 복장으로 첫 등장 당시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쿠노이치형 노출 캐릭터로는 DOA의 카스미나 야야네가 있으며 공통적으로 허리나 허벅지부분의 노출이 두드러진다. 북미 수출판의 경우 마이의 바스트 모핑이 삭제되었는데 국내 게이머 및 게임잡지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라거나 마이의 캐릭터의 본질은 바스트 모핑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댔다.
실제로 모 위키에는 시라누이 마이 항목에 바스트 모핑 항목이 따로 개설되어 있으며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 유독 이러한 바스트 모핑에 대한 기술력을 뽐내거나 유저들이 바스트 모핑에 집착을 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식의 노출형 격투 게임 캐릭터는 소울 칼리버의 아이비 또한 유명하다.
지금은 유행이 한물갔지만 국내 모바일 TCG의 유행을 이끄는 시발점이 되었던 <확산성 밀리언 아서>는여성 캐릭터가 주가 되는 화려한 일러스트로 로 인기를 끌었다. 주된 수집요소인 카드는 등급이 올라갈수록 강해지며 높은 등급일수록 외형의 변화가 두드려졌다. 그리고 변화의 중요 요소에는 노출이 포함됐다. 일본 설화인 <카구야 공주>에서 모티브를 받아 만들어진 이 캐릭터는 왜 달의 사자가 이런 하반신을 입을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조차 붙어있지 않으며, 심의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다른 캐릭터들의 경우 일러스트가 일부 수정되는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되지 않고 한국판에 이 일러스트 그대로 등장했다.
유튜브의 검색창에 게임 타이틀 중 하나인 <메탈기어 솔리드>를 검색하면 유저들은 제작사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명확히 원하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소비한다. 유투브에는 해당 게임의 여성 캐릭터 샤워 씬 부분이 편집되어 돌아다닌다.
또한, 유저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인 콰이어트의 몸 일부를 확대해서 볼 수 있도록 조작할 수 있다. 게임 디렉터인 코지마 히데오는 콰이어트를 최대한 '야하게' 만들어달라고 공공연하게 주문했다. "콰이어트는 기생충에 의해 폐로 호흡할 수 없고 피부로 숨을 쉬기 때문에 옷으로 몸을 덮고 있으면 안 된다"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인 구차한 설정을 붙여서 말이다.
게임 발매 전부터 스스로를 오버워치의 대항마로 칭하며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던 <서든어택 2>는 트레일러부터 여성 캐릭터의 지나친 노출로 오히려 반발을 샀다. 김지윤의 경우 수중 침투에 능하다는 이유로 수영복을 입고 있고 미야는 스파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아이돌이라며 다리를 드러냈다. 게임이 출시되자, 미야와 김지윤의 캐릭터 사망 모션이 흡사 포르노 같다는 이유로 각종 커뮤니티에서 온갖 이미지가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논란이 점점 심해지자 넥슨 측은 두 캐릭터를 삭제했다. 하지만 서비스가 완전히 종료되고 난 이후에도 서든어택2의 여성 캐릭터들은 3D 모션이 추출되어 SFM 등의 프로그램으로 포르노 영상을 제작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김자연 성우의 페미니즘 티셔츠 펀딩 후 성우를 교체한 건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이 게임은 유저 커뮤니티 내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노출과 '야한' 모션으로 유명하다. <클로저스>는 2015년에 신규 캐릭터인 레비아를 홍보할 때 눈을 내리깔고 시선을 회피하고 있는 표정과 함께 ‘당신에게 복종하겠어요.’라 는 대사를 써 미성년자 캐릭터의 성 상품화로 큰 논란을 일으켰으며, 넥슨 측은 '레비아는 원래 사람이 아니고 몬스터이기 때문에 인간의 나이대를 적용시킬 수 없어,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게임의 문법에 익숙해지는 유저들
미디어 속 여성 캐릭터들은 당시 사회가 요구하거나 선호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러한 노출 일변도의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을 접하게 된 게이머들은 게임상에 묘사되는 노출이나 자극에 점차 둔감해지며 성적 대상화된 캐릭터 표현에 점차 익숙해지게 된다. 게임을 접하지 않았거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여성 캐릭터 소비 방식에 위화감을 느끼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 노출에 익숙해진 게이머는
- 게임이 다 그렇지 뭐 하며 심드렁하게 지나치거나
- 오히려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너네 아니냐며 분노하거나
- 이렇게 안 하면 안 팔린다며 게임사를 대변한다.
나아가 이런 식으로 기존의 캐릭터 해석법에 익숙해진 유저들은 게임사가 새로운 타입의 여성 캐릭터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기존의 방식대로 해석하려 한다.
<미러스 엣지>의 주인공인 페이스는 게이머들이 일반적로 생각하는 미형의 얼굴이 아니다. 몸매 또한 대상화된 다른 여성 캐릭터에 비해 평범하게 묘사되며 페이스의 외모 탓에 <봉선스 엣지>같은 별명으로 불리워졌다. 한 유저는 자신들이 보아왔던 ‘미형’의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에 불만을 토로하며 페이스의 얼굴을 소위 ‘한국게임 스타일의 미인’에 맞춰 고쳐 올렸다.
이런 식으로 바뀐 일러스트는 각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 여기저기 퍼져 나갔고 대다수의 한국 게이머들은 위의 스크린 캡쳐처럼 진작 이렇게 바뀌었어야 했다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이렇게 바꾼 얼굴이 더 낫다며 칭찬했다. 그 와중에 가슴 사이즈를 기존 일러스트에 비해 한 치수 업 시키고 유두를 드러내는 모양새를 추가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미러스 엣지>의 프로듀서는 게임상의 정형화된 미모의 여성 주인공을 피해야 한다며 이런 식으로 바뀐 페이스의 외모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탈리야도 이런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짙은 눈썹에 굵은 선을 지닌 개성있는 외모의 탈리야는 출시된 직후 모처럼 추가된 인간형 여성 캐릭터의 외모가 왜 그래야 하냐는 식의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된 글에도 여성 캐릭터는 예뻐야 한다는 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변화는 필요하다
여성 캐릭터의 노출과 성 상품화에 대해 문제점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시도는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지속해서 있었고 게임 업계는 비록 그 속도가 느려도 조금씩 문제가 되는 부분을 바꾸어 왔다. 과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 캐릭터에게 비키니를 입히던 블리자드는 <오버워치>로 넘어오며 여성 캐릭터의 노출을 대폭 줄이고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다. <툼 레이더> 는 라라 크로프트의 외형을 리부트하여 노출을 대폭 줄이고 과거처럼 소모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며 여성 캐릭터의 외형적인면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역할도 추가되어야 하는 등 바뀌어야 할 요소는 많지만 어쨌든 변화는 시작됐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업계의 발전은 아직 느리다. 게이머들은 ‘외국에서 게임에 쓸데없는 사상 좀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배타적인 반응을 보이고 게임 회사에서는 모바일 게임에 여성 모델들을 기용해 남성 유저들을 상대로 광고하며 여전히 성적 대상화된 여성 캐릭터들을 만들고 있다. 여성 캐릭터로 논란이 되었던 <서든어택 2>의 발매일은 2016년이었다.
유저들의 반응은 어떤가. 최근 발매된 <니어:오토마타>를 생각해보자.
메인 캐릭터인 2B는 전투 중 특정 모션을 취하면 엉덩이와 속옷이 드러난다. 제작사는 2B의 모션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게이머들은 2B가 보이면 엉덩이나 속옷과 관련된 댓글을 남겼다. 더 나아가 공개된 커뮤니티에 2B의 캐릭터 코스프레 사진이 올라왔을 때 유저들은 엉덩이를 보여달라는 댓글을 달고 그 글은 많은 수의 공감을 받는다.
많은 국내산 게임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문제 될 수 있는 캐릭터의 디자인을 변경했다는 일화가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서 자칭 ‘게임 강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건 싫건 국내 게임업계는 점차 변해야만 할 것이다.
유저들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어떤 요소를 포르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것을 현실에서 발언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인정하고 자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백 날 자신들은 게임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다 말하지만 게임 커뮤니티 여기저기서는 여성의 신체와 관련된 요소를 필수 요소 삼아 댓글로 놀이 문화를 즐기고 있다. 언제까지 이 게임은 청소년 이용불가이기 때문에 / 비인간이기 때문에 / 애초에 그런 문화니까 괜찮다는 핑계를 대며 공개된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