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이야기 전달하기: 관찰자가 되는 주인공

알다게임여성 주인공

여성의 이야기 전달하기: 관찰자가 되는 주인공

딜루트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 본 글에는 <Gone Home> 과 <Her story>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의 ‘주인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메인 캐릭터이며 사건의 중심. 사건의 해결사로 어떤 어려운 문제나 과제라도 하나하나 천천히 해결해 나가는 캐릭터. 때로는 플레이어의 자아를 투영하는 존재.

이번에 소개할 게임들의 주인공은 앞서 말한 일반적인 주인공과는 다르다. 주인공은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며 그 시야에는 어떤 가치판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의 이야기를 주인공을 통해 전달할 뿐이다.

Gone Home

<Gone Home> 게임 타이틀. 이미지 제공 The Fullbright Company

이 이야기는 거대한 악을 구하는 것도, 호러 분위기로 가득한 집에서 귀신들과 싸우며 숨겨진 이야기의 진실을 파헤치는 게임도 아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나(주인공)는 유럽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귀국일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에는 어째서인지 아무도 없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고 이따금 천둥번개가 쳐 집은 한층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열쇠를 찾아서 집의 문을 연다. 여동생은 문에 쪽지를 남긴 채 사라졌다. 자신은 그럴 수밖에 없었고, 이 이야기를 전부 듣게 되면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집 안 곳곳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찾는다. 이미지 제공 The Fullbright Company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집 안 구석구석을 뒤져가며 여동생인 샘의 일기를 찾는 것이다. 주인공이 오브젝트를 조사할 때마다 나타나는 일기는 마치 저장해놨던 카세트 테이프처럼 음성으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알린다. 주인공은 이 과정에서 부모님의 서재 등을 뒤져보고, 편지나 메모 등을 통해 얻은 단편적인 정보들로 상황을 추리하게 된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며 정보를 모으다 보면 샘이 전학 온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또래 집단의 따돌림을 받는 것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면서 샘의 일기를 하나둘 얻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진실을 알게 된다.

샘은 전학 온 학교에서 다소 괴짜 취급을 받고 지내다 로니를 만나게 된다. 펑크 로커 활동을 하는 로니를 보고 샘은 처음엔 신기함을 가지고 있다가 곧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된다. 샘은 얼마 후 로니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부모님께 어렵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부모들은 별 일 아니며 곧 금방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취급한다. 그 와중에 로니는 입대를 하게 되고, 로니는 마지막 선물로 샘에게 노래를 선물하고 떠난다. 샘은 정서적으로 홀로 남게 되자 힘들어하고. 얼마 후 로니가 전화를 통해 샘을 그리워하자 샘은 로니를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난다.

<루머 앤 루머 앤 루머> 이미지 제공 Netfilx

이런 이야기의 진행 방식은 넷플릭스의 <루머 앤 루머 앤 루머> (이하 루머*3) 와도 유사하다. <Gone Home>의 실질적인 화자는 여동생이며, 주인공은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짚는 관찰자다. 두 게임 경우 루머*3 에서, 이야기의 실질적인 화자인 해나는 자살을 한 상태이며, 자신이 자살에 이르기까지에 관한 이야기를 테이프로 남긴다. 테이프는(무지하고 평범한) 남성 주인공에게 전달되고 이야기의 진행은 주인공이 시선을 옮길 때마다 테이프를 통해 전달된다. 둘 다 현재 시점의 주인공 곁에 주된 화자가 존재하지 않고 다이어리와 카세트 테이프는 둘 다 일방적인 전달만을 할 뿐이다. 주인공은 그 메시지에 대해 피드백할 수 없다. 오직 듣기만 해야 하는 것이다.

Her story

<Her story>. 이미지 제공 Sam Barlow

<Her story> 또한 유사한 이야기 전개 방식을 가진다. 나(주인공)는 컴퓨터 앞에 앉은 경찰관이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당시 진술 영상이 보관되어있는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는 중이다. 영상은 키워드별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 순서대로 볼 수는 없다. 대신 화면 속 피해자의 아내가 진술하는 내용 속에서 몇몇 의미 있어 보이는 단어들을 찾아 데이터베이스에 검색하고, 그것과 관련된 진술 영상을 보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게임은 데이터베이스 상에 Murder와 관련된 클립을 검색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첫 번째 영상에서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살해되었냐고 묻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인 마지막 영상에서는 자신이 한 얘기들은 전부 이야기일 뿐 증거가 없지 않냐며 발뺌을 한다. 

게임의 시작은 이 영상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미지 제공 Sam Barlow

그렇다. 이야기의 시작과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이 과정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첫 번째 영상과 네 번째 영상의 날짜와 시간을 비교해 보고 빈 이야기들을 메꾸기 위해 데이터베이스 상에서 연관된 키워드들을 검색해야 한다. 단서는 화면 속 여성(해나)의 말뿐이다.

순서를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영상이 녹화된 시간과 해나의 옷차림이다. 또한 컴퓨터상의 DB 리스트 체커는 현재 보고 있는 동영상의 시간적 위치를 표시해 줘 자신이 시간상 어디 즈음인지 추측할 수 있게 도와준다.

키워드를 찾아 검색하다 보면 이상한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날의 해나는 커피 말고는 다른 음료는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또 어느 날의 해나는 차를 즐겨 마신다고 말한다. 어느 날의 해나는 남편의 부모를 이름으로 부르고, 어느 날의 해나는 남편의 부모를 ‘그의 아버지, 그의 어머니’로 호칭한다. 두 해나는 아주 닮았지만, 말투나 행동이 미세하게 다르다.

그러나 이 해나들이 하는 남편이 실종된 날의 진술만큼은 놀랍도록 일치한다.

나(플레이어)는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여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고 마지막 해나의 말은 어떤 뜻인지 찾아야 한다.

전달자가 된 주인공

이 게임들의 ‘주인공’은 주인공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돌아다니거나 키워드를 입력하여 진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따라 힌트를 얻어 나가며 점점 ‘진짜’인 이야기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게 된다.

<Gone Home>은 주인공이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얻은 정보를 통해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아빠는 JFK 암살과 관련된 음모론 신봉론자인 것을 알게 되고 엄마는 새로운 산림경비대원과 바람을 피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모님은 주인공에게 잠깐 여행을 간다는 메모를 남겼지만 다른 방의 테이블 위에는 야외에서 하는 부부 상담 프로그램에 대한 브로슈어가 존재한다. 이런 요소들은 전부 간접적인 흔적으로 제시되며 플레이어는 탐색을 통해 얻은 정보로 ‘추론’만 할 수 있다. 주인공의 목소리는 처음 음성 메시지 함에서 자신이 여행을 끝나고 돌아간다는 이야기 외에는 존재하지 않고 나머지는 전부 여동생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Her story>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나의 진술이 게임의 전부이며 과정이며 주인공이 드러나는 순간은 조사 도중 모니터에 반사되는 얼굴이 전부다. 진술은 이미 데이터베이스 상 곳곳에 흩어져 있고 뒤섞인 데이터들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대화를 통해 얻은 실마리 하나하나를 검색한다. 일종의 프로파일링인 셈이다. 

두 게임 전부 유명 게임 매체와 유저간의 평가가 갈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Gone home> 의 경우 플레이 시간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고, 이야기의 구조가 선형적이고 소재가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많은 매체 속에서 레즈비언은 보통 남성의 성적 대상화를 거친 상태이거나 남성 캐릭터와도 잘 수 있는 팜므파탈같은 캐릭터로 소비되곤 한다. <Gone Home>은 10대 레즈비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고, 게임이라는 매체로도 이런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퀴어의 서사는 이후 <Life is strange>로 이어진다. 두 게임 전부 음악이 주된 키워드로 작용한다는 점 또한 닮았다.) <Gone Home> 은 주류 게임의 흐름과 다르다는 특이점 때문에 게이머즈 게이트 사건 때 끌려 나와 조이 퀸과 친분이 있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악의적인 비난을 받기까지 했다.

<Her story> 또한 게이머들 사이에서 유사한 비판을 받았다. 이 게임은 단순한 비디오 모음집일 뿐이지 게임이 아니라는 주장이 비판의 주된 핵심이었다. 그러나 영상을 얻기 위해 몇 초간의 영상 클립에서 키워드를 추론하고 그것을 검색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그 이야기를 통해 머릿속에서 이야기의 지도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충분히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Gone home> 의 ‘주인공’은 여성이며 <Her story>의 주인공은 결말에 이르면 영상 속에서 계속 비춰주던 인물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게임에서 남성의 존재는 부가적인 존재나 소재로 언급되기만 할 뿐 직접 등장하지 않으며 게임 내내 여성 청자인 ‘주인공’은 담담하게 여성인 ‘진짜 주인공’ 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듣는다.’라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다. 어떤 스토리를 직접 ‘성취’하는 것이 아닌 ‘듣는’ 행위가, 심지어 자신이 주체가 된 성별이 아닌 이야기들이 어떤 사람들에겐 공감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기에 이 두 게임이 게임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아닐까. <Her story> 와 <Gone Home>은 여타 게임 속에서 보기 힘든 방식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누군가의 방해나 맨스플레인 없이 담담히 풀어나간, 훌륭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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