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신발 얘기를 좀 하고 싶다.
피부가 얇은 편이라 매번 새 구두를 살 때 마다 반드시 물집이 생긴다. 그래도 계속 신으면 물집이 터지거나 찢어져 생살이 드러나는데, 그 때 대일밴드나 메디폼을 붙이고 하루 이틀 그 신발을 멀리하면 곧 새살이 돋으면서 굳은살처럼 살이 변한다. 그러면 곧 자유롭게 그 새 신을 신는다. 신발에 적응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적응'이란 내가 괴로움을 참고 버텨서 신에 내 발을 적응 시키는 행위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비단 발만 그랬던 것 같지는 않은데, 어느 시점이 되기까지 나는 나에게 꼭 맞는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기보다, 차라리 나를 어딘가에 욱여넣는 것을 더 익숙하게 여겼다. 그 불편이 당연한 줄 알고 나에게 꼭 맞는 무언가가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두는 원래 불편한 거야' 같은 말들이 그를 뒷받침 해 준다.) 아마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정서를 경험할 것이다. 여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많은 것이 모두 크고 작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많은 여자들은 어지간해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
그러다 몇 년 전 인대를 끊어먹은 사건을 기점으로 나는 '나에게 꼭 맞는 제품을 찾는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그런 제품들을 손에 넣을 수는 없었다. (마음을 먹는 정도로 될 만큼 대상을 입체적으로 고려한 ‘여성용’ 제품을 만나기란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다시금 그 '적응'을 겪어야 할 때, 그 과정을 조금이나마 스무스하게 만들어주는 제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지금 소개하는 바디글라이드 역시 그런 류의 제품이다.
바디글라이드 : 피부 접촉면의 마찰력을 줄여 쓸림과 물집을 방지하는 왁스 바
바디글라이드는 피부의 마찰력을 줄여 피부가 계속 닿아서 생기는 쓸림/물집 등을 방지하는 제품이다. 수영 전 물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사용할 만큼 물과 땀에 강해 여름철에 사용하기 적합하다. 바디글라이드 바디를 기본으로TPO에 맞추어 바디/풋/싸이클 등의 제품이 있으나 관련 성분 차이가 크지는 않고(천연 오일을 더 추가하거나 점성을 더하는 정도로 보인다. 전 성분을 참고하려면 이곳), 왁스 바의 크기가 용도에 맞게 제작된 듯 보인다. 여름철 허벅지 쓸림을 방지하는 차원에서는 BODY를, 신발 물집과 쓸림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Foot을 구매해 약 이 주일간 사용해보았다. 결론적으로 추천한다!
바디글라이드 : 바디 | 추천 정도 ★★★☆
만들어진 미의 기준이긴 하지만, 허벅지 사이가 뜨는 체형인 Thigh Gap이 선망의 대상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이 허벅지 쓸림의 짜증남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허벅지가 큰 사람의 불편은 여름이 되면 더욱 커진다. 단순히 옷 고르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정도를 넘어 일명 허안, 허벅지 안쪽 살이 서로 마주치며 짓무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대부분 짧은 하의를 입게 되어 살이 서로 부딪히는데, 땀으로 끈끈한 만큼 더욱 쉽게 습진이 생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교복을 입을 때부터 이 허벅지 쓸림의 고통을 자주 겪어왔는데, 베이비 파우더 등으로 예방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아 여름에는 치마를 멀리하고 허벅지 밑 부분까지 가려주는 팬츠를 고수하곤 했다. 습했던 지난 주, 바디글라이드를 사용하고 치마와 숏 팬츠를 입어 보았다.
장점 : 사용성이 좋고 오래간다. 허벅지 안 쪽에 슥-슥- 서너번 발라주는 것으로 준비가 끝난다. 옷 안쪽에 묻어도 옷감에 손상이 가지 않기 때문에 마르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고, 사용설명서에 쓰인 5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지속된다. 씻지만 않는다면 출근할 때 발라준 부분이 퇴근할 때 까지 다소 약하게 나마 지속된다.
단점 : 허벅지가 안 쓸리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이 좀 놀라웠는데, 막으로 코팅된 느낌을 주면서 미끄럽게 마주친다. 기분 나쁘게 끈적이는 것은 아니고 잘 흡수가 안되는 크림을 잘 흡수시킨 후 남은 잔 미끌거림 같은 느낌이다. 니베아 인 샤워 바디로션과 비슷한 미끌림인데 좀 더 눅진한 느낌이다.
총평 : 처음에는 허벅지 마찰이 다소 미끄럽게 일어나는 느낌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이번 아이템은 실패인가 싶었는데 사용하지 않은 날 아쉬워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특히 땀이 많이 난 날에 피부가 불쾌하게 짝 붙는 것을 방지해주고 자연히 습진도 생기지 않는다. 여름철 에브리데이 아이템으로 추천. 특히 이런 아열대 기후성 여름이라면.
바디글라이드 : 풋 / 추천 정도 ★★★★
앞서 이야기 했듯 나는 물집이 잘 생기는 피부에, 인대까지 끊어먹어 구두를 잘 신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면 바로 요즘 같은 비 오는 날이다. 비오는 날 빗물을 흘려 보내기 위해 높은 샌들을 신으면, 하중과 빗물에 발이 부어오르고 스트랩은 더더욱 옥죄어온다. 끔찍하지만 질퍽이는 신발을 신고 1시간 넘게 통근하는 것보다는 살짝 덜 끔찍하니까. 폭우가 내리던 날, 한 쪽 발에만 바디글라이드 풋을 바르고 출근해 밤 12시에 들어왔다. 결과는 아래 사진과 같다.
장점 : 보시다시피 바디글라이드를 도포한 쪽은 확실히 덜 배기고, 물집이 생기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도포하지 않은 왼쪽은 하중이 쏠려 약지와 중지 발가락 부분에 물집이 살짝 잡혀있지만, 오른쪽은 그렇지 않다.
또 지속력이 매우 좋은데, 출근시간부터 퇴근하기까지는 충분히 버틴다. 12시가 넘어 도착하더라도 점심시간 쯤에 한 번 더 도포하는 정도로 충분히 제 기능을 했다.
물에 강해 비 오는 날에도 사용할 수 있는 점도 플러스.
단점 : 살짝 미끄러운 느낌이 들기 때문에(미끄러질 정도는 아니다.) 발목 스트랩이 없는 힐의 경우 오히려 앞코로 발이 쏠려 발에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총평 : 새 신발에 적응하며 피를 보기 보다 스무스하게 랜딩할 수 있는 제품. 사용기한이 넉넉하니 초반만 사용한다 하더라도 구매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에서 서술한 단점 등을 고려하면 높은 힐보다는 샌들, 또 맨살과 마찰하는 부분이 많은 슬립온이나 레인 부츠 등을 사용하는 상황에 더 유용할 수 있겠다.
구매가이드를 연재를 핑계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조의 힐난을 친구들로부터 듣고 있다. 사실이다. 이번에 득템한 두 제품 역시 나의 사리사욕, 편하게 치마를 입고 샌들을 신으려는 욕구를 한껏 충족시켜 주었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스스로를 편하게 해주는 욕구를, 나를 위한 제품을 찾고 싶다는 바람을 양껏 충족했으면 좋겠다. 구매가이드가 정말로 약간의 가이드가 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