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퀴어 2. 젠더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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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퀴어 2. 젠더와 사랑

[웹진 쪽] 무지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누군가와 있으면 자연스럽게 감정을 갖는다. 좋다, 싫다, 별로다, 아무 느낌 없다, 매력적이다 등등.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호감이 생긴다. 호감은 꾸며낸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매력을 억지로 뽐낸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이 내 안의 스위치를 눌러 불이 들어오는 것에 가깝다. 물론 다른 이도 호감이 생길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이 결정적일 것이다. 상대방도 나를 매력적으로 보고 호감을 느끼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서로 감정을 주고받으며 점차 서로에게 빠져든다.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도 있지만 극복하며 다가간다. 사귀자고 고백하기도 전에 이미 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나의 첫 여성 애인과 이런 방식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대화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고 제스처나 옷차림, 말투 등에서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남성들에게 고백 받아 사귀기도 했는데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 금방 헤어졌다는 이야기, 자신이 여성에게 어떻게 끌리는지 등등. 여성인 그가 다른 여성에게 연애감정을 느낀다는 데에 동질감이 있는데 나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어서 궁금했다. 오래, 긴 시간을 함께했다. 어느새 연애를 하고 있었다.

개인의 차이

여성을 사귀는 것과 남성을 사귀는 것의 차이점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 내 대답이다. 차이는 남성과 여성에 있는 것이 아닌 개개인들에 있었다. 사귀었던 사람들이 전부 달랐으므로 나와의 관계도 제각각 달랐던 것이다. 연애하는 모습이 성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추측하는 이유는 성별에 어떤 고유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남자답고 여성은 여성스러우니 연애하는데 있어서도 익히 (드라마나 주변 커플들을 통해) 아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에 빠진 이들을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좌표 위에 위치시킨다고 하면 하나로 고정되지 않았다. 내면, 행동, 감성, 사회적 자아, 취향 기타 등등 세분화된 항목에서 제각각 위치가 달라졌다. 남성이라고 전부 남성적이지 않고 여성이라고 전부 여성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대기업을 다녔던 남성 애인의 경우 사회적 자아는 마초적이고 거칠었는데 내면은 여리고 섬세했다. 반면 사회적 기업을 다녔던 여성 애인의 경우 행동이나 말투는 타인을 배려하고 다정다감해서 부드러웠는데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뚝심이나 행동력은 기백이 넘쳤다. 여성스러운가 싶으면 남성스러웠다. 그렇게 내가 사귀었던 사람들의 남성, 여성 유형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각자가 다르니 그들과 맞부딪쳐 발생한 나와의 관계도 전부 달랐다. 그러니 남성과 연애할 때와 여성과 연애할 때로 나눌 수 없었다.

나의 경향

두 성별을 다 겪고 보니 오히려 ‘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나의 경향성을 알게 됐다. 상대방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나는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원피스나 치마 같이 여성성이 극대화 된 옷을 입었다. 처음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낯설었다. 상대 여성은 나보다 키도 작고 이목구비도 예쁘고 나이도 어렸다. 어떻게 꾸미는 것이 그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것인가.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무엇일까. 따지기도 전에, 그는 평소 내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었다. 레이스와 리본이 달린 옷들과 함께 수수한 옷들도 입는 내 평소 스타일 말이다. 기쁘게 내 스타일대로 입고 다녔다. 과거 남성과 데이트 할 때는 보호받고 싶어서 여려보이게 입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보면 내가 보호해주었으면 보호해주었지 보호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제야 남성 애인에게도 ‘여자’로 보이고 싶어서가 아닌 그저 내 취향대로 입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남성 애인이든 여성 애인이든 나를 대하는 커다란 경향성이 있는데 그것은 나를 ‘여자’로 대한다는 것이었다. 차가 오면 길 안쪽으로 보호하고, 데이트 비용을 자신이 더 많이 내려하고, 앞으로 자신이 나를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남성만 만나봤을 때는 내가 여성이고 상대방은 남성이니 성별에 따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에게서도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여성인 그가 ‘남성처럼’ 나를 책임진다고 말한 것이다. 만나는 여성마다 그러는 것을 보고는 결국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성격이나 살아가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위태롭고 연약해 보여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와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여성들이 나에게 끌려하니 말이다. 상대방의 능동성은 나의 연약하고 위태로운 성격, 수동적인 면을 충족시켜줬다. 남성들과 연애할 때나 여성들과 연애할 때나 그랬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여성’으로 대하는 것은 편안했지만 한편으로는 갈등했다. 나 또한 한 명의 성인이라고 반감을 나타냈다. (대부분 실패했지만) 데이트 비용을 반씩 부담하려 하고 집에 데려다 준다는 것을 거부했다. 남성이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가부장적 문화처럼 보였던 것이다. 여성 애인도 나에게 그렇게 행동하자 여성조차 ‘남성성’을 흉내 내는 것인가 생각했다. 너도 나와 같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거절했다. 다 내려놓으면 편한 것을, 본능을 거스르려 애를 쓰는 것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나는 수동적이고 제 앞가림을 잘 못하는 사람이니 그저 상대방에게 기대도 되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 물었다. 대답은 ‘그럴 수 없다’였다. 상대방이 나를 책임진다고 할 때마다 휩쓸려가는 느낌이었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고 나를 지키려는 본능 또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이고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복속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떠올렸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수동적이면서도 주체적이고자 했다. 매 순간의 행동들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때는 민들레 홀씨같이 한없이 연약한 모습이 나오기도 했고 어느 때는 이순신 장군같이 강한 모습도 나왔다. 그 모든 면이 나였다.

일러스트 이민

해방감은 어디서 왔을까

남성과 연애할 때도 이런 방식이었다면, 어째서 여성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해방감을 느꼈을까. 성별의 차이가 아닌 나 자신의 문제라고 했지만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외모, 스타일, 사회적 지위 같은 조건들에서 로맨틱한 끌림(‘연애감정’이라는 단어는 연인이라는 계약 관계를 내포하는 느낌이라 피했다)을 느낀다. 나도 분명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긴 하겠지만 결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사랑에 빠지려면 그 사람과 내가 통하는 지점이 있어야 했다. 고유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그 이야기에 공명하는가가 사랑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성별도 조건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의문이 들었다. 그가 여성이어서, 남성이어서 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들을 듣고 내가 끌렸다면 나는 그 사람이 여성이어서, 남성이어서 사랑한 것 아닐까? 레즈비언의 성적 지향 이야기에 많이 끌리긴 하지만 남성의 경우에도 그가 가진 독특한 사고방식, 삶의 경험 이런 것들에 매혹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별은 그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틀을 마련하고는 어느새 사라졌다. 그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여성, 남성’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동해왔다. 성별이라는 틀과 그를 넘나드는, 남성이지만 남성성에서 벗어나고 여성이지만 여성성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들. 나는 그런 점에 매력을 느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대방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인식되지 않았다. 치마를 입고 있든 바지를 입고 있든, 머리가 짧든 길든 상관없어졌다. 그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매력을 부추길 뿐이었다.

이 때문에 여성과 처음 연애 할 때도 무언가가 크게 바뀌었거나 달라졌다고 느끼지 못했다. 나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연애를 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욱 위화감을 느꼈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나 연애하는 모습은 상대방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다르지 않은데 왜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왜 이성애자에서 벗어나 범성애자(상대방의 성별에 상관없이 로맨틱한 끌림을 느끼는 퀴어)가 ‘되었다’고 느끼는가.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생겨먹었던 것 같은데 왜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은가. 이전에도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연애를 했는데 인연이 닿지 않아 남성들만 사귀었던 것이라면, 왜 여성과 사귐으로써 자유로움을 느꼈는가.

규칙 밖이어서

고민하다보니 실마리가 잡혔다. 그것은 나의 사랑을 사회와 가족이 받아들이는 방식 때문이었다. 남성 애인의 경우에는 가족들에게 얼마든지 밝힐 수 있고 공공장소에서 가벼운 스킨십을 할 수 있으며 회사를 비롯한 공적인 자리에서 애인 관계라고 밝힐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 애인인 경우에는 거의 모든 일이 불가능했다. 가족들에게 밝힌다고 상상해보면 저절로 드라마 같은 상황이 떠올랐다. 뒷목잡고 쓰러지는 부모님과 전환 치료를 받게 한다고 정신과에 억지로 끌고 가는 모습 말이다. 학교나 회사에서 소수자라는 것을 들켰을 때 받을 린치나 폭력, 부당해고 같은 불이익들도 그려졌다. 정체성을 들키는 것은 삶이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다는 공포와 연결되었다. 남성과 사랑할 때는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는데 같은 성과 사랑하자 알게 되었다. 사랑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주류의 지배를 받아왔다는 사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사랑 규칙이 있고 이 틀에서 벗어나면 제재를 당할 수 있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느낌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칙 밖으로 나갔다는 느낌이었다.

이토록 두려운데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서까지 연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과 뜨겁게 사랑하고 관계도 잘 맺을 수 있으면서 왜 굳이 남성이 아닌 다른 성별의 사람과 사랑하려 하는 것일까. 매력적인 남성을 적극적으로 찾거나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일 아닐까. 나의 여성 애인이, 친구들이, 누구보다 나 자신이 수차례 질문했다. 답은 너무도 명확했다. 왜냐하면 관계는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 관계들은 연인, 친구, 지인 등의 이름으로 ‘내가’ 자리매김한 것이 아니었다. 나와 상대방이 부딪쳐 무엇이 될지는 나도, 상대방도, 그 누구도 몰랐다. 친구라고 해도 같은 친구는 세상에 아무도 없고 사랑 또한 같은 사랑은 전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관계들은 전부 달랐다. 내 의지로 관계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기보다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들도, 심지어 쌍둥이조차 부모와의 관계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두려움과 자유로움

일말의 의심이 남았다. 관계가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친구와 애인의 선을 명확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면서까지 사랑을 할 바에는 내 선에서 단념했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무리 어떤 사람에게 성적으로 끌려도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서 내색하지 않고 혼자 넘어가거나 사랑하지 않아도 상황에 맞춰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그것이 사람들에 대한 예의와 도덕적 책임을 지는 일 아닐까. 하지만 혼자 간직한다고 해도, 이미 내면에서 발생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눈치를 못 챈다고 해도 인정을 안 한다고 해도 외부로 표출하지 않아도 혼자 삭히기로 결정해도 이미 발생해버린 것이다. 마음을 숨기거나 버리는 과정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점철됐다. 고통 받음으로써 마음이 생겨버렸다는 것을 오히려 더 생생히 실감했다.

내면에 솔직함으로써 마음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모나지 않게 살아갈 것인가. 어느 쪽이든 희생과 고통이 따랐다. 양심에 솔직하기를 택하면 사회와 부딪치는 고통을 겪어야 하고 사회에 맞춰 살고자 하면 마음을 부정하는 고통을 겪는다.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삭히고 남성을 만나면 될 일이라는 말은 나 자신을 속이라는 말로 들렸다. 한 여성과 뜨겁게 사랑하고 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두려움과 함께 자유로움이 넘실거리는 큰 파도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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