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을 할 때 점심시간에 나온 회사원들 테이블을 훔쳐보고 엿들으며 생각했던 게 있어요. 회사의 점심시간은 스몰토크 대잔치라는 거였죠. 엄청 쓸데없고 무용하고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는 거 있잖아요. 주로 등장하는 소재는 연예인, 점심 메뉴, 미세먼지, 그 밖에 짧게 소비되는 사회 이슈들 등등등. 그때는 정말 이해가 안 됐거든요? 왜 좀 더 유용하고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야, 싶었어요. 근데 회사에 들어와보니 알겠더라고요. 언니들이 진짜 똑똑했던 거란 걸요. 회사 사람들과 스몰토크 이상의 대화는 나누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회사를 다니다 보니 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점심시간에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이거 너무 맛있다(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저 연예인 너무 잘생겼다(뭐 아무 말 하는 거죠), 저녁에 비가 와서 차가 막힐 것 같다(거의 혼잣말 수준이죠) 이런 거요. 침묵하고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야 할 때면 최대한 제 생활을 추측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말을 하곤 했어요. 제 생활을 공유하기 싫었거든요.
뭐 그렇게까지 하냐고요? 언니들도 아시죠. 회사에서 얼마나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은지. 아니, 진짜 다들 일이 없어도 너무 없다니까요? 영화를 봤다고 하면 누구랑 봤냐(알아서 뭐 해요?), 어디서 봤냐(영화관 사주나?), 남자친구 아니냐(왜 이성애자라고 생각해?), 꼬치꼬치 캐묻잖아요. 남자 사람 친구라고 하면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냐, 그 친구는 마음 있어서 그런 거다, 왜 안 받아주냐, 불쌍하다 하면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오지랖의 향연.. 오지랖이 지구를 덮고도 남겠더라고요. 저는 점점 회사에서 묵언수행을 하게 됐죠. 정말 어떤 날은 “안녕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만 한 적도 있을 정도였어요.
나는 말이야
하지만 제가 간과했던 건 바로 그분들의 입이었죠. 나중에 알게 됐어요. 그분들이 별 관심도 없는 남의 얘기를 꼬치꼬치 캐묻는 건 결국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란 걸요. “은순씨, 어제 뭐 했어?” “그냥 집에 있었어요” “집? 젊은 사람이 저녁에 집에만 있으면 어떡해~ 나는 어제 저기에 이거 보러 갔다가 여기에 저거 보러 갔는데 너무 좋더라~ 참, 그러고 어느 식당에 갔는데 거긴 맛이 별로 없더라. 파스타가 맛있다던데 파스타는 영 별로고 블라블라” 뭐 대충 이런 식인 거예요. 저는 졸지에 그분의 퇴근길부터 자기 전까지의 일과를 들어야 하는 거죠. 물어본 적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는데요.
뭐 이 정도는 그냥 반응을 안 하면 그만이에요. 어차피 그때 제 사수는 윗사람을 떠받들지 않으면 안 되는 병(성격과 체질과 적폐의 답습이랄까요)이 있었거든요. 저는 입을 닫고 커피나 들이키면 그만이었죠. 진짜 최악은 일대일로 갑자기 클라이막스를 털어놓는 분들이었어요. 왜 막장드라마 같은 거 보면 먹던 오렌지쥬스 뱉기 직전에 하는 말들 있잖아요. “사실 혜진이 당신 딸이야” “사실 회장님 네 아버지야” 같은... 것까진 아닌데(제가 그분들 딸이면 저는 죽었을 거예요) 본인 인생사를 터는 거죠. 그것도 회사에서 서로 얼굴과 말을 튼 지 네 시간 만에 그랬다니까요? 제가 입사했던 날이었으니까요.
궁금하지 않아요
제가 들어갔던 팀은 새로 만들어진 팀이었어요. 심지어 팀장조차 그 회사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죠. 어쨌든 그럼 첫날이니 아주 이상하고 어색해서 탈출하고만 싶은 점심시간을 가져야 하잖아요? 모두가 서로를 제대로 마주하던 첫날이라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그날 갔던 카페는 모든 게 기억이 나요. 팀장과 다른 팀원이 시켰던 메뉴, 앉았던 자리, 누군가의 굉장히 재미없던 농담, 팀장이 안경을 치켜올리던 모습까지요.
그날이 이렇게 자세히 기억나는 건 시킨 음료가 나오기 전까지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려던 다른 팀원의 농담이 굉장히 재미가 없었고(“날이 좀 풀린대요~ 누가 묶었는지 궁금해요~” 정말 뭐라는 건지.) 음료가 나오자마자 팀장이 갑자기 이혼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에요. 2년 전에 이혼을 했다고 했어요. 뭐 그럴 수 있지, 싶었지만 이후 나온 얘기들은 더 가관이었어요. 왜 이혼을 했는지, 당시 배우자를 어떻게 만났는지, 몇 살이었는지, 어떻게 만났는지, 이혼을 한 이유는 뭐였는지, 이혼 과정이 얼마나 번거롭고 고통스럽고 귀찮은지.. 농담을 하지 않은 다른 팀원과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어요.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거든요.
이혼을 했다는 사실이 싫다는 게 아니에요. 살다 보니 안 맞아서 이혼할 수도 있죠. 그런데 팀장이 처음 만난 팀원들한테 자기 사생활을 굳이 털어놓을 이유가 있나요? 듣는 사람은 대체 무슨 죄예요? 저를 비롯한 팀원들이 굳이 타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어야 할 이유가 대체 뭔가요? 아랫사람이란 이유밖에 더 있나요? 회사에서 만난 사람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보다 더 싫은 건 그걸 듣는 거예요. 저는 정말 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고요.
로봇이랑 일하는 게 낫겠어
어쩌면 그나마 회사에 있는 점심시간(어쨌든 개인 시간은 맞는지라 분하지만요)이라 다행일 수도 있어요. 당시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다른 팀 팀원은 쉬는 날마다 상사의 연락을 받았어요. “오늘은 상수동에서 떡볶이 먹었는데 여기 맛있더라~” “오늘은 왕십리에서 돈까스 먹었는데 별로더라~” 이런 메시지랑 사진을 띡 보내요. 정말?? 갑자기??? 진짜 어쩌라고?? 맛집 지도는 혼자서 작성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그걸 자기 팀 사람들한테 일일이 연락해서 알려주는 걸까요?
전에 이런 얘기를 별로 안 친하고 나이 좀 있는 지인의 지인이 있는 술자리에서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대체 왜 회사 사람들한테 이러쿵 저러쿵 별얘기를 다 하고 주말에 연락하냐고요. 진짜 이해를 못하겠다고요. 근데 얘기를 듣던 지인의 지인이 그러고 있더라고요. 주말에 등산하면 등산했다고 단톡방에 올린대요. 저랑 다른 지인들이 기겁하며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하니까 그 정도도 못하면 회사 생활을 어떻게 하냐고, 그건 그냥 로봇이랑 일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더군요. 저는 그냥 로봇이랑 일하는 게 4838292390배쯤 더 나을 것 같다고 했고요.
아예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고 사실 이해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요. 일단 자신의 직급이 높으면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고요.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과 굉장히 친하다는 것도 본인의 착각일 수 있어요. 직급이 높으니까 잘해준 걸 수 있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 그런 자각을 못하나봐요. 그냥 본인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이라 다들 잘 대해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진짜 웃겨요. 회사 밖에서 만났으면 말도 안 섞었을 사람들인데 말이죠.
언니들도 아이유 <삐삐> 들어보셨죠? 저는 이 노래가 나왔을 때 회사 사람들한테 한 2만 번쯤 강제 청음을 시키고 싶었어요. “호들갑 없이 인사하고 서론 없이 시작하는” 기계적인 사이를 유지하고 싶었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이거였어요. “당신의 비밀이 뭔지 저마다의 사정 역시” 사양한다는 거요. 정말 더 알고 싶지 않아요. 선 좀 넘지 말자고요, 제발. 선 넘으려고 깜빡이도 켜지 마세요. 사실 저희 회사가 아니었다면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