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2. 먼지의 딸들

알다영화여성 주인공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2. 먼지의 딸들

삐삐 롱스타킹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서울에서 무려 20년 간 여성 영화만 줄창 보는 축제가 꾸준히 열렸다. 멋진 일이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로 열린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을 소개한다. 페미니즘 고전 영화부터 세상을 바꾼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 영화인들의 작품 세계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을 위한 선물 같은 영화들이다.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먼지의 딸들(Daughters of Dust, 1991)>

줄리 대쉬 감독

픽션


시간은 지금, 이라고 말하는 순간 과거가 된다. 지금을 담은 과거의 시간을 ‘기억’에 담아 차곡차곡 쌓았다가 필요한 때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불현듯 여름밤의 별처럼 우루루 쏟아지기도 한다. 

그런 날이었다. 영화제가 열리는 신촌 메가박스 광장에 도착하여, 안내를 하는 젊은 페미니스트와 광장 귀퉁이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리플렛을 뒤적이며 담배를 물고 있는 관람객을 보는 순간. 1999년 2회 여성영화제가 열리는 동숭아트센터 마당에서 나를 맞이하던 그녀들과, 구석에서 만사 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를 무는 기억을 소환시켰다. 

시간이 기록한 기억의 소환

쏟아지는 별은 아름답기라도 한데, 그 기억 속 나의 내면은 그렇지 못했다. 그 때 나는 IMF를 마주한 한국의 첫 비정규직 노동시대를 맞은 여성 노동자였다. 그렇지만 사투리를 고치지 않는 게으른 '여'직원이라(남자직원은 사투리 교정을 요구받지 않았다)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한 채 해고를 당했다. 나름 여기저기 노동 관련 상담을 해봤으나, 노동계 쪽에서도 부당해고를 증명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등, '정답'을 상담 받고 싸움조차 포기한 패배의 기억까지. 

나의 세기말 99년은 부모세대와의 단절, 사회로부터 내쳐짐과 무관심, 생존의 과제를 끌어안고 도시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우울함이었다. 지금 저 광장의 귀퉁이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에게 내 기억이 덧씌워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되었고, 10년의 시간이 두 번 가까이 돌아가도록 깊숙하게 짙은 외로움과 그림자의 흔적이 남아있었던가. 쏟아지는 이른 한여름의 햇살에 눈이 부셨는지 찔끔찔끔 눈물이 났다. 누가 볼까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영화관의 어둠으로 숨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먼지 가득한 깡통에 담긴 낡은 물건의 딸들입니다"

줄리 대쉬 감독의 <먼지의 딸들>은 1900년대 초 미국 남북 전쟁이 끝나고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들이 북쪽으로 이주하던 시기를 다룬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가족, 아니 한 부족의 이야기가 2시간 여 동안 펼쳐진다. 1807년 미국은 법적으로 노예거래를 금지했지만 밀수하듯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이보족을 시먼스 아일랜드 섬에 숨겨두고 목화 염색 등 노동을 착취했는데, 본토와 분리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보족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 

그들은 100년 간 자신들의 관습, 노래, 몸짓, 언어로 이보족의 문화를 유지하며 손바닥이 염색 물감으로 물들어 버린 노동을 견뎠다. 그러나 근대화의 욕구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는 젊은 세대의 이주를 부추겼고, 이제 내일이면 이보족의 어른인 니나의 자손들이 배를 타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을 안내할 비올라(기자이자 기독교로 개종한)와 옐로우 메리가 섬으로 돌아왔다. 옐로우 메리를 환영하는 임신한 욜라와 니나와 달리, 친척들은 수군거렸다. 욜라는 임신하기 전 강간을 당한 상태였고, 욜라의 남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위태로운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니나는 힘들어하는 자신의 증손자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혹여 누구의 아이인지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니냐. 아이는 부족에게 온 신의 선물이다. 욜라는 너의 아내이지 너의 소유가 아니다.

욜라는 남편에게 자신을 강간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린치가 수시로 일어나는 섬에서 남편이 복수를 하다가 다칠까봐 걱정한다.  욜라에게  옐로우 메리는 본토에서 출산 직후 놓쳐버린 아기, 불은 젖 때문에 백인가정에 유모가 되어 젖이 끊어질 때까지 일한 고단한 시간을 담담히 전한다. 이보족은 만찬을 준비하고 떠날 사람들을 위한 이별의 시간을 가진다.

옐로우 메리는 자신은 자랑스러운 여자이며 이 섬에서 니나와 함께 살고 싶다며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라고 눌러놓은 감정을 터트린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욜라는 그녀가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한다면 여기 지금 나는 어떠냐고, 옐로우 메리를 받아들여 하는 이유와 니나를 존중할 것을 강렬한 목소리로 호소한다.

떠나기 전에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후회할 거예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옐로우 메리도 사랑하세요. 그녀는 우리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우리 어머니의 일부인 것처럼요. 많은 이들이 혼자서 겪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겪고 감당하고 있어요. 우리는 다양한 일과 삶을 선택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훌륭한 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하세요? 우리는 할머니의 먼지 가득한 깡통에 담긴 낡은 물건의 딸들입니다.

부두교인 이보족의 관습으로 니나는 작은 천에 담은 조상의 머리칼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섞어 꿰맨 부적을 성경과 단단히 묶는다.

남아있는 우리는 떠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마라. 내 영혼이 가득한 이 손에 키스를 하렴. 너희들에게 힘이 될 것이니.

니나가 살았던 19세기 말, 욜라가 산 20세기 초,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인간은 역사의 길을 따라 주변부에 여성을 배치했으며 폭력과 소외, 혐오를 더했다. 니나와 옐로우 메리, 욜라가 겪은 일은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난다. 집단은 개인이 견디는 상처를 내버려두고 돌보지 않거나 묵인하거나, 혹은 버리는 방식도 여전하다. 집단 속의 개인이 받은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니나와 욜라는 영화에서 그들의 문화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상처받은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못본 척 피해서 도망쳐봐야 마찬가지다. 사고방식을 바꾸라. 둘째, 욜라는 미국의 신이 여성을 간음하고 죄를 짓게 만드는 죄 많은 존재라고 여기는데 어디를 가든 괴롭지 않겠냐고 기독교 문화에 영원히 죄인이 될 것이냐고 반문한다. 셋째, 우리는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은 낡은 깡통 속 먼지 가득한 물건들에서 태어난 좋은 여자들이며 서로를 지키는 힘을 전해주는 관계 속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카메라는 뮤직비디오처럼 흑인여성의 여러 표정, 감정을 클로즈업 한 장면을 화면에 담는다. 이야기가 연결되기 위한 컷이라기보단 기억과 시간을 담는 것처럼, 니나의 깡통에 담긴 낡고 오래된 것들이 이어주는 연대처럼. 감독은 여성의 얼굴과 머리카락, 그녀들의 옷자락이 바다의 바람과 닿는 순간들을 섬세하게 담는다. 온통 흑인 여성의 클로즈업으로 가득한 영화를 본 적이 있나. 나는 맹세코 처음이다. 

책상 서랍 속 할머니의 염주 가방을 꺼내다

여성 감독의 섬세한 포착 덕분에 부두교 할머니 니나의 떨림과 체념, 혹은 슬픔과 축복의 과정에 내 할머니가 얹힌다. 새해 첫날이면 장독대와 화장실 부뚜막, 우물에 촛불을 켜고 가족의 평안과 무탈을 비는 할머니. 근대화 된 도시 한가운데에서 할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 과거의 신들에게 오늘의 우리를 부탁했다. 

기도를 올리고 온 할머니의 무릎을 배고 할머니의 젖을 꼬물락 만지던 어린 내가 물었다.

할매, 저 촛불은 왜 키는데? 나는 쪼매 무섭다.

할머니는 일하는데 걸리적 거리는 귀찮은 손녀의 손가락을 뿌리치지 않고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시며 말했다.

니는 저 불이 무섭나? 저래 일 년에 한 번, 이 집과 자손을 돌봐달라고 부탁 드리는 기다. 세상 만물에 다 신이 들어있고 어디를 가도 지켜보고 있데이. 그렇게 연결되는 기다.

할머니가 믿었던 신이 나를 돌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 서랍 깊숙한 곳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염주가 있다. 살아 계시는 동안 매일 새벽에 일어나 염주를 돌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할머니의 등과 손가락은 무한한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 사람이 어떤 모습이건 사랑받아 마땅하며, 나 역시 그렇게 사랑받는 아이라는 사실을. 자라면서 아들과 딸의 차별 때문에 수도 없이 울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사회와 구조적인 차별과 성폭력, 여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있는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 서걱거리고 손가락질이 난무하는 곳에 ‘나’라는 존재의 귀함을 잊지 않고 물을 흘려 생명을 유지하도록, 상처 받은 여인들의 마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의 근본에 할머니의 사랑이 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수용 받고 사랑받는 경험이 주는 힘. 상처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지만 과거의 고통에 매몰되거나 외면하지 않는 옐로우 메리와 욜라처럼,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힘 말이다. 

극장 밖으로 나와 여성영화제의 과거와 기억이 담긴 연표를 보았다. 2회 영화제를 보러간 나의 과거, 나의 기억, 3회, 4회, 5회……. 그때 같이 갔던 사람들과 하던 일들, 마음의 상태들이 연표를 따라 니나의 깡통에서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그리고 오늘. 20세기 초반의 흑인 여성의 기억을 담은 영화 한편과 마주한 오늘의 나를 깡통에, 할머니의 염주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기억해, 당신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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