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캐치프레이즈로 21년 간 여성 감독, 여성 배우, 여성 영화들을 소개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돌아왔다. 2019년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예년보다 다소 늦은 8월29일부터 9월5일까지 열린다. 8월3일부터 9월30일까지는 텀블벅 펀딩을 통해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는 '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있다. <핀치>가 여성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 여성영화제가 배출한 감독들, 여성영화제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20년에 대해 들었다. 네 번째 인터뷰는 2009년 제11회 아시아단편경선 수상작 <내게 사랑은 너무 써>를 연출했고, 2019년 제21회 여성영화제 트레일러를 연출한 전고운 감독이다.
여성영화제와 첫 만남을 기억하는지?
와, 그게 언제였지? 아마 2005년이었을 것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자막팀 자원활동가로 시작했다. 그 다음해인가, 다다음해인가부터는 정식 스태프로 돈을 받고 자막가 일을 했다. 당시에는 그냥 영화에 관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고, 영화를 많이 보고 싶었던 나이였다. 씨네21에서 여성영화제 자원활동가 모집 광고를 보고 “어, 이거 하고 싶다”하고 무작정 지원했다.
자막가 활동을 정말 좋아했다.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웃음). 자막가는 취향하고 상관없이 영화를 엄청 많이 무분별하게 본다. 하루에 8시간은 계속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 자막을 만들어야 하니까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봐야 한다. 그게 저한테 영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되게 도움이 됐다. 제 인생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봤던 시기였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것도 좋았다. 어둠을 좋아하니까. 여성영화제에서 자막가 일을 시작한 건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다(웃음).
자막가는 사전 자막 작업도 하지만 영화제 현장에서 다양한 언어로 된 자막을 영화에 맞춰서 스크린에 쏘는 역할도 한다. 이제는 디지털화 되면서 많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릴을 사용해서 상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릴이 바뀔 때마다 영화 속도가 미묘하게 바뀌면, 그에 맞춰서 자막 속도도 조절해줘야 한다. 당시에만 해도 한 줄에 몇백원씩 받고 그랬다. 그래서 우디 앨런 영화 같이 말이 많으면 작업하기는 죽겠는데 돈은 많이 벌어서 좋았다(웃음). 반대로 대사가 적으면 편하긴 한데 돈은 별로 못 받고 졸리고. 졸면 큰일난다. 완전 사고 치는 거다. 디지털 시대인 지금도 자막가는 아직 있다. 지금은 한 줄 당 페이를 주는 방식이 아니고 좀 더 제대로 시스템이 체계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성영화제에서 자막 일을 하면서 영화를 잔뜩 봤을 때는 ‘이게 뭐지’ 싶은 것도 있지만 놀라운 것도 많았다. 지금 와서 다시 찾아서 보려면 볼 수가 없는 영화들이 많다. 정확히 제목이 기억 안 나는데, 어떤 남미 쪽 여성 감독님 특별전을 했을 때 봤던 영화의 첫 장면이 돼지 불알을 따는 모습이었다. 그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가 가진 에너지, 감독이 가진 에너지가 되게 강하다는 게 한 번에 전해졌다. 어디서도 보지 못하고 여성영화제에서만 봤던 영화다. 이런 것 때문에 자막가 일을 했던 거 같다.
자원활동을 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나?
불쌍한 사람들이다(웃음). 밥도 잘 못 먹는단 말이에요. 영화와 영화 사이에 시간이 부족하니까, 주먹밥 먹으면서 이동하고 그랬다. 이번에 펀딩을 확실하게 해 주셔서 자원활동가들이 좀 더 행복한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도 여성영화제는 자원활동가들을 잘 챙겨주는 편이었다. 밥이라도 더 갖다 주고, 섬세하게 챙겨주는 느낌이 있었다. 다른 영화제는 신경 잘 안 쓰는 데도 더러 있다. 돈 주니까 알아서 하겠지, 하는 분위기보다는 아무래도 돈은 안 받지만 나라는 존재에 고마워하고 있다는 그 마음이 느껴지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밥을 잘 챙겨주면 다 전해졌던 거 같다(웃음).
2009년 제11회 여성영화제 아시아단편경선에서 <내게 사랑은 너무 써>로 수상하셨다. 당시 소감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사실 그 후에 장편 <소공녀>로 여러 상을 받았을 때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상을 받았다는 사실보다도 여성영화제에서 내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식이 그랬다. 그 전에는 다른 영화제에 많이 내보내지도 않았지만, 조금씩이라도 상영된 적이 없었다.
극장에서 제 영화가 처음 실린다는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서 끊고 나서 오열했다. 서초동에서 길을 걷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아직도 그 길이 어딘지 기억난다. 연기 훈련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서 연기 코치님이 저를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냐고 했다. 누가 죽은 줄 알았다고(웃음).
<내게 사랑은 너무 써>는 대학교 졸업작품이었다. 그 전까지는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되게 쪼그라들어 있는 상태였다. “졸업영화도 찍었는데, 뭐 하고 살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치 “너 영화해도 돼”라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었다.
과한 말일 수도 있지만, 여성영화제가 없었으면 지금 영화를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좋은 이력도 됐고, 거기서 좋은 동료를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 광화문시네마를 만들었다. 만약 여성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지 못했고 상을 받지 못했으면 학교에 갈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한다. 저한테는 되게 컸다. 제가 건국대학교 영화과 1기라서 선배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제에 빚이 있다. 감사하고, 친정 같은 느낌이다. 영화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웃음). 사람이 춥고 배고프고 힘들 때 손길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제가 갈 곳이 없을 때 여기서 비를 피하라고 해 준 곳이 여성영화제다.
2019년 제21회 여성영화제 공식 트레일러. 연출 전고운 감독은 "여성영화제는 저에게 편하면서도 재미있는 친구 같은 존재"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저희 부모님도 제 영화를 처음 보신 게 여성영화제였다. 2009년 당시 제 영화가 상을 받았다고 해서 두 분이 울진에서 상경해서 신촌 아트레온 앞에 왔을 때 아버지의 감개무량한 표정(웃음). 저희 아버지가 좀 감상적이시다. 저는 약간 냉혈한이고(웃음). 우리 딸이 이렇게 큰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는구나, 하는 감상에 젖으셔서(웃음). 저는 다른 건 기억 안 나고 아트레온을 바라보던 부모님의 고개 각도만 기억난다.
그 때 당시 제 영화가 첫 섹스를 하는 영화고 성폭행이 등장하는 영화다. 두 분이 보시고 말이 없으셨다. 약간 커밍아웃하는 느낌이었다. 저한테는 되게 큰 용기였다. 그 때는 더 보수적인 시절이기도 했고.
관객 입장에서 여성영화제의 매력은 무엇일까?
여성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만 모아놓은 것. 보통 극장은 찾아봐야 되는데. 여성영화제는 이런 감독도 있고, 이런 시선도 있고, 이런 소재도 있고, 그런 게 너무 신난다. 그 영화가 재미있고 재미없고는 두 번째인 것 같다. 일단 있어야 판단하니까.
2018년에는 단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단편영화가 장편영화에 비해 그렇게 취향이 잘 맞는 편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따끈따끈하고 ‘힙한’ 단편을 봐서 좋았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찍는 감정들, 얘기들, 배우들을 보는 게 즐거웠다. 평소에 관심은 있는데 영화로는 잘 볼 수 없는 소재들이 많이 나왔다. 예를 들면 면도하는 여성이라든가.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런 소재는 반갑다. “면도 귀찮지…” 이렇게 공감하면서 보는 거다(웃음).
물론 아직도 여성영화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끼리는 늘 주시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 저도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상 받으신 분이나,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영화들을 체크한다. 그렇게 서로 암묵적으로 지켜보고 있는 장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감독이자 동시에 여성이라는 사실이 어려울 때가 있는지?
일단 수가 적으니까.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고 미국도 그렇지 않나? 전세계적으로 그렇다. 다행히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아직 구석구석까지는 아니어도, 전세계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이미 다 알겠다는 듯이 “아~ 여자 주인공~?” 이러지는 않는다. 완벽히 없어지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내 면전에서 그러지는 않는다(웃음).
예전엔 그런 걸 대놓고 느꼈다.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 여성 주인공이 메인인 영화가 관객수가 적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많이 만들어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없는 와중에 몇 개 겨우 만들었는데 관객 수가 적다고 여자 이야기는 힘들어, 이렇게 나오는 게 힘들다.
영화감독은 리더이기도 하다. 여성 리더가 겪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을 것 같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여자 감독들에 대한 농담들이 좀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에 네 컷 만화로 여자 감독이 연출하는 것에 대해 약간 뭐라고 했더니 가서 울고 있는 장면이 실린다든지. 그런 걸 보며 “난 절대 울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도 했다. 여자들이 조금만 자기 주장을 해도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세다’고 비난하는 프레임이 여자 감독들한테도 잘 씌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공녀>를 찍으면서 많이 타협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이기 싫어서. 소위 말하는 ‘미친년’ 프레임에 들어가면 이 바닥에서 일을 못 할 거 같았다. 저도 적잖이 예민한 사람인데 많이 안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밤마다 술 마시면서 혼자 풀고. ‘여성성’이라는 게 있다면, 저는 많이 거세했던 것 같다. 그게 어떨 때는 서글펐던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저도 치마 좋아하거든요? 다리가 예뻐서(웃음).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냥 안 입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식으로 제 취향을 하나씩 차단했던 것 같다. 뭐 입어도 안 입어도 되지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차단이었으니까. 웃음소리도 더 커진 것 같고. 일단 잘 웃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 좋아하니까. 리액션도 발달하고.
남자 감독들은 뭐… 만약에 너무 까다롭고 그래서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영화만 잘 만들고 흥행에 성공하면 계속 하니까.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일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
요즘은 공기가 많이 바뀐 걸 느낀다. 사실 이런 말을 꺼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편해졌다. 예를 들어 듣기 싫은 농담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제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요새는 바로 ‘조용히 해라’ 이런 식으로 경고할 수 있고.
예전에는 ‘페미니스트’라는 말 자체가 무슨 낙인 같았다. 심지어 잘 돌아다니는 말도 아니었고. 설사 도마에 오른다 해도 엄청나게 공격적으로만 쓰였다. “너 페미니스트냐?” 마치 “너 빨갱이냐?” 하는 식으로… 저는 당시에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잘 몰라서 내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그냥 제 생각을 좀 강력하게 말하면 “너 페미니스트냐?” 이런 말을 들었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사회 분위기가 됐다. 그런 말을 한다면 “너 되게 후진 말을 하고 있어”라고 정정해 줄 수 있을 거 같다. 그게 정말 달라졌다.
물론 지금은 어떤 면에서는 페미니즘 담론도 과도기이기 때문에 과열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측면이냐면, 저도 창작을 할 때 조금은 눈치를 보게 되는 거다. 성적인 얘기를 아예 하면 안 될 거 같다는 느낌. 혹시라도 논란이 될 까봐 겁이 나는 거다. 그런데 인생에서 성이라는 건 중요하고,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까지 포함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니까, 그렇게 피할 주제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람들의 관심이 페미니즘에 모여 있으니까 그런 거고, 이런 분위기가 만드는 변화가 있는 건 사실이다. 저는 거기에 되게 고마워하는 게 있다.
앞으로 여성영화제가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는지?
저는 그냥 제가 정신 차리고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무엇에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영화제는 알아서들 잘 하시겠지(웃음). 각자의 일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걸로(웃음). 그러다 만나면 반가운 거고. 여성영화제는 만날 수 있는 계기로서 그냥 계속 있어주는 거, 그 자체가 되게 중요한 것 같다. 아직도 여성영화제가 있기 때문에 저를 보고 “아, 얘가 그 10년 전의 꼬마~” 하면서 반가워하고, 10년 만에 다시 만나고, 이런 게 있더라.
다음 인터뷰의 주인공은 권김현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입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