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 말고 꺼져!>
2015
다큐멘터리
2018년 6월 6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방해 말고 꺼져! : 게임과 여성(아래 GTFO)>이 상영되었다. 2015년도에 제작된 GTFO가 상영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서울 국제 영화제에서 한 번, 그리고 2017년 FeGTA에서 한 번, 그 외에도 여성영화와 관계된 행사에서도 몇번 상영된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실이 GTFO 를 계속 상영하게끔 만들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관람하게 만드는가?
2016년 이후로 끊이지 않았던
게임 업계의 여성 혐오
2016년, 한국에선 왕자는 필요 없다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한 장으로 성우가 계약해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지금도 게임계의 여성 혐오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남성 게이머들은 게임사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SNS를 사찰하고 괴롭히기 시작했으며, 국내 대형 게임 제작사 중 몇 곳은 이들의 손을 들어줘 SNS상에 페미니스트 인증을 한 직원을 해고하거나 그들의 작업물을 게임 내에서 배제하기에 이른다.
게임 제작사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반 페미니즘 세력의 주장은 점점 증폭되어 단순 팔로우나 비슷한 단체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들을 페미나치, 메갈리안 등으로 라벨링을 하고 괴롭히고 있으며, 최근 국내의 대형 게이머 커뮤니티인 인벤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페미니즘 사상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지를 올린다. (놀랍게도 이들은 각종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와 같은 게시물이 올라왔을 땐 전혀 제제하지 않았다.)
GTFO는 이런 현상을 한발 먼저 겪었고, 지금까지 겪고 있는 외국의 게임 업계와 유저들 의 이야기이다.
판에서 버티기
총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GTFO는 게임 마케팅 속에서 여성성은 어떻게 그려졌는지, 게임 속 여성들은 어떻게 묘사되는지, 여성 게이머들은 어떤 존재로 대해지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어릴 때부터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존재하지만 여성 게이머의 비율은 점점 줄어든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그 현상을 ‘판에서 버텼다’고 표현한다. 그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쉽게 게임을 추천하면서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없다. 게임을 하면서 마이크를 켰다는 이유만으로 유저들에게서 받은 메시지들은 상당히 공격적이고 무례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남성들만 있을 때는 당연하게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몇몇 남성 유저들은 여성 유저에게 일어나는 일이 진짜인지 의아해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여성 유저들이 관심을 얻기 위해 조작한 일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성 게임 개발자의 사정은 어떠한가? 드래곤에이지 2의 메인 작가 중 하나인 제니퍼 헤플러는 게임이 전작과 다른 분위기로 나오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5년 전 초보 작가 시절에 했던 인터뷰(게이머이고 동시에 워킹맘일 때, 게임 할 시간이 도저히 없어서 가끔은 전투가 스킵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인터뷰, 게임 엔딩을 보기 위해 몇십 시간을 투자하기엔 때로는 버겁다는 내용이다.)가 어떤 유저들에 의해 발굴되고 그 것으로 끊임없이 괴롭힘을 받는다.
네가 전작을 모독하고 게이 로맨스를 끼워 넣었기 때문에 시리즈 자체를 망쳤다는 내용외에도 자식을 납치하겠다는 협박성 댓글까지, 다큐멘터리 속에서 제니퍼 헤플러는 자신이 받았던 악성 댓글들을 무덤덤하게 읽으며 아직까지도 그때의 일에 대해 언급하며 괴롭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 하나가 시리즈의 방향 전체를 결정하는게 아닌데도! 그들은 그저 만만하게 욕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사건이 밝혀지고 제니퍼를 괴롭힌 유저들은 게임계 내 외부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면 지금, 비판에 힘입어 현재의 게이머들은 좀 더 성숙했을까? 아쉽게도 매스 이팩트:안드로메다가 발매되었을때 발생했던 사건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
게이머라는 웃기는 특권 의식
다큐멘터리는 말한다. 게이머들은 자신이 게이머라는 사실에 대해 일종의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 나가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특정한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데도, 게이머들은 자신이 게이머임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어떤 자신감마저도 보인다고. 그 특권 의식의 기반은 남성 전용 클럽에서 기인한 것으로 자신들이 허용하는 여성(보통 자신에게 고분고분하거나 자신보다 실력이 낮거나 자신을 추켜올려주거나 하는 타입)이 아니면 자신의 씬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 외의 의견은 자신의 것을 공격하는 적대행위로 받아들인다.
그런 씬에 들어와 즐기려는 여성들은 두 가지 선택만 할 수 있다. 그것들을 괜찮다고 여기고 별일 아닌 것으로 넘겨 버리거나,공론화하고 일을 크게 만들거나.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그것을 영영 즐길 수 없게 되고 그 판을 떠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게임하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야 한다. 일종의 자기보호이자 검열인 셈이다.
다큐멘터리 속의 많은 여성 게이머들은 말한다. 피아노를 잘 치는 원숭이처럼 취급받는 게 아니라 자신을 그냥 다른 이들과 같은 평범한 게이머로 취급해주기를 바란다고. 그러나 이 별것도 아닌 발언마저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아직 갈 길은 먼 듯하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평론가의 평가와는 달리 유저 리뷰 스코어가 매우 낮은데, 특히 1점대에 점수가 몰려있다. 마치 누군가가 공격이라도 한 것처럼.
그저 게임을 비평했기 때문에
GTFO의 상영이 끝나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제공한 동시 통역과 함께 아니타 사키시안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아니타 사키시안은 강연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유명해진 이유는 페미니스트이기 때문도 아니고, 킥스타터를 진행해서도 아닙니다, 5년 동안 해왔던 페미니스트 프리퀀시 활동때문도 아니고요. 제가 유명해진 진짜 이유는 게임 캐릭터를 비평하는 리뷰를 하고, 게이머게이트 사건에 연루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수없이 많은 괴롭힘의 당사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니타는 ‘이제 신물나, 온라인 괴롭힘의 대가’라는 강연의 제목답게 발언을 이어갔다.
이런 얘기를 그동안 정말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온라인의 괴롭힘도, 밖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거나 공격당할까 걱정하는 것도, 제가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될까 걱정하는 것도 신물납니다. 그럼에도 제가 수많은 곳에 갈 때마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제가 겪은 일들을 겪는 다른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제가 입은 피해와 그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고 다닐 것입니다.
아니타가 처음 펀딩을 시작했을때, 아니타는 기존의 페미니즘 이론이 상아탑 안에만 갇혀 있고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현상에 대해 염증을 느꼈고 어려운 내용을 배제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 했다. 그 대상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할수 있는 매체들 중에서 게임을 골랐다.
그래서 아니타는 킥스타터를 시작한다. 대단한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게임 속 여성 캐릭터를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보기 위한 내용의 펀딩을 하려 한다고 소개글을 올리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펀딩을 요구한 것이지 강매를 진행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다고 생각했던 남성 게이머들은 그것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니타에게 악성 댓글을 달고, 그의 개인적인 신상을 유포하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게임 마케팅 대상은 18세~35세의 백인 남성들이고, 그들 또한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자라왔다. 게임은 그들만의 문화가 되었다. 누군가가 여성 캐릭터들을 조금만 더 실제 사람처럼 다뤄달라는 주장을 했을 뿐인데 그들은 아니타가 자신들의 게임을 빼앗기 위해 나타난 존재인 것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들에게서 게임을 빼앗으려고 한 적이 없는데도.
이런 괴롭힘이 일종의 유행이 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신기함을 느끼고 별다른 생각 없이 단순한 재미를 위해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괴롭힘을 단순 놀이로 삼고 그 사이 죄책감은 희석된다. 누구나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한 혐오 발언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공간에서 안전하게 존재할 권리를 파괴당하고 인간적인 존엄성을 침범당한다. 매번 강도 높은 협박들을 겪다 보면 물리적인 피해를 받지 않았더라도 정신적인 상처가 누적되어 트라우마가 생기고, 이것들은 스트레스가 되어 결과적으로 물리적 질병들에 노출될 가능성이 올라간다. 아니타 또한 그들에게 영향받은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마음적으로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
게임 밖으로 튀어나오는 혐오
아니타는 이런 경향에 대해 “이런 현상은 기존의 기득권인 기독교인이자 이성애자 백인들의 범죄적 우월주의에서 비롯됩니다. 많은 이성애자인 백인 남성들은 “표현의 자유” 라는 말로 자신들의 혐오 발언을 정당화하고 그것에 대해 지적받았을 때 자신들이 억압받았다고 말합니다.” 고 언급했다.
미국에서 게이머게이트 사건은 결국 트럼프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과 연결되었다. 그들은 트랜스젠더 혐오, 여성 혐오, 유대인 혐오 등 각종 혐오를 이용했고 정치인들은 그것을 공화당의 정치적 담론과 연결시켰다.
크리스티나 호프 서머스가 주장하는 Factual feminism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백인들을 포용하고 가해자들의 “표현의 자유” 발언에 힘을 실어주어 온라인상에서 게이머들이 혐오 표현을 마음껏 게시할수 있도록 도와줬고 결과적으로 이런 혐오 발언들은 온라인이 아닌 실제 세계까지 넘어갔다.
아니타는 강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게임속 문화는 더이상 게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가 아니라고, 게임의 문화는 결국 사회의 문화를 대변하고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를 대변한다고.
기관들이 이것들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내지 않는 한, 사람들이 직접 연대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사람을 찾고, 서로를 이해하고 여러 억압에 함께 목소리 내고 나서야 한다고. 혼자서는 변화를 일으키려는 행동을 하는 게 무서울 수밖에 없다고.
혼자는 힘드니까, 함께 가자
아니타는 많은 사람이 게임이나 온라인상에서 괴롭힘으로 피해를 받았을 때 여러가지 이유로 쉽게 넘어가고 일이 복잡해진다는 이유로 침묵을 지키려고 하지만,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개인이 발언하면 그 발언을 깎아내리는 존재들이 나타날 것이지만 함께 연대하고 한데 모여 자신들의 피해를 하나둘 털어놓고 그것들을 서로 지지해준다면 서로가 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겪었던 피해를 다시금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아니타 사키시안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하고 강조한다. 혼자만 겪었던 일이 아니라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이것들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어수선하고 매일 사건이 끊이지 않는 한국 게임계에서, 아니타 사키시안의 강연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언젠가 게임이 특정 계층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대중적이고 별 것 아닌 문화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