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최삼: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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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최삼: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이자연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사진 조아현

그를 알기 전까지 나는 힙합을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오로지 돈 자랑과 자의식과잉, 여자를 액세서리로 취급하는 가사만이 남은 이 장르를 어떻게 즐기는지 도통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삼의 곡을 처음 듣던 날, 불변의 진리를 깨달았다. ‘역시 장르는 죄가 없지.’

9월, 최삼의 싱글 [미트콘드리아]의 앨범 소개는 이렇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 호흡 과정이 진행되는 세포 속에 있는 세포 소기관으로 몸 속으로 들어온 음식물로 ATP(에너지원)를 합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중략) 미토콘드리아는 독자적인 고유의 DNA가 있으며 모계로부터만 이어받는다.” 그의 음악에 중심에는 늘 여자가 있다. 살면서 한번쯤은 우리의 얼굴이었던 여자들. 그의 음악을 면밀하게 들여다 보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었다.

거참 한치 예상을 안 벗어나 참 그럴 줄 알았지

뭐 기대한 내가 할 만큼 했다 더 들어야지

머릿속엔 뭐가 있니?

그래 네 힙합, 랩이 그냥 그 정도겠지

머리 싸맸다는 가사가 네 여친 어쩌고

그 몇 년 만에 나왔다는 가사가 네 여자 저쩌고

여자 없이 못사는 애들이 쿨한척하네 cool

돌아가는 눈이 한심해서 못 보겠다고

몇몇 여자애들 내게 적대적으로 굴어

알아 누가 걔네를 후려치는지 다 들려

잘 들어둬 난 걔네가 홍일점이 아니라

너네보다 위에 있는 사장 되길 바래

나는 죽고 싶어 했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죽게 만든 네가 살기 좋아지는 동안

이제 안해 난 지겹게 꼭 끝까지 살아

나 대신해서 살려 했던 너희 전부 죽일 거야

지금 내가 죽는다면 그냥 또 개죽음

내가 누굴 죽인다면 실검1위 찍을걸

그럼 내가 둘 중 하나 골라야 된다면

어느 것을 고를까요?

- 최삼, [Chicken Game] 중

 

올9월 싱글 앨범 [미토콘드리아]를 발매하시고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항상 똑같아요. 음악 작업하고, 집에 있고(웃음). 하는 게 뭐가 많지는 않네요.

앨범 소개가 인상적이었어요.

미토콘드리아의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게 됐어요. 관련 자료를 보는데 제가 처한 상황이나 페미니즘의 관점으로나 비유적으로 잘 맞는 것 같아서 이걸 가지고 곡을 써보고 싶더라고요.

[Chicken Game]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어느 날 문득 제가 피해를 받은 상황이나 저의 잘못이 아닌 것들에 왜 내가 죽고 싶어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원래 죽고 싶어해왔고 그게 저의 정체성 중 하나였거든요. 왜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지 고민해 봤어요. 그땐 내가 이상해서, 내가 사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결론을 내렸죠. 그런데 점점 음악을 하고,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제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저처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제야 '왜 내가 죽고 싶어했을까?' 라는 질문이 크게 와 닿더라고요.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곡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가장 큰 출발점이기도 해요.

사진 조아현

가사 내용을 읽다 여성 살인범 사건도 문득 떠올랐어요. 세상이 유난히 떠들썩했잖아요.

그런 부분도 생각했죠. 사실 대부분의 사건이 그렇잖아요. 내가 죽으면 잠깐 사람들한테 시끄럽겠지. 하지만 내가 누구를 죽인다면? 그 해 내내 떠들지 않을까? 더더욱 왜 정말 내가 죽고 싶어 했나 강하게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게 합해진 거죠.

리스너의 직접적인 반응도 있었나요?

보통 메일이나 SNS로 피드백을 주세요. 그런데 이번 앨범이나 저번 [Taboo] 앨범 같은 경우에는 저를 몰랐던 분들도 연락을 많이 주시더라고요.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거죠.

스토리텔링이 구체적인 가사 덕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음율을 맞추다 보니 애매하게 표현하는 가사들도 많은데 최삼의 곡은 눈 앞에 장면이 그려지거든요.

저는 가사에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에요. 가사를 쓰기 전 가장 먼저 하는 게 누군가에게 얼마만큼, 어디까지 전달을 할 수 있는지, 그 사람이 얼마만큼 받아들이기를 내가 바라는지를 생각하는 거예요. 주변에서 가사를 고민 없이 쓰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해요. 그러면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합합에 대한 고민이나 자기 능력치를 올리는 데에 가사는 포함이 안 되는 건가 싶거든요. 물론 다양한 이유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안에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크잖아요.

힙합에서 가사를 빼놓을 수 없는 거죠.

대화를 해보면 깊은 고민 없이 쓰는 게 보이거든요. "그 가사는 굉장히 혐오적인 표현인데 이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쓴 거야?" 하고 물으면 "별 생각 없었는데?" 하고 쉽게 답해요. 그 친구들이 말하는 힙합 문화는 리얼함이 굉장히 중요한데 정작 그게 부족한 거죠. 그때부터 같은 힙합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더 공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한 거죠. [Chicken Game]의 두 번째 벌스를 보면 그게 그대로 담겨있어요. 왜 네 랩 가사에는 여자 어쩌구 밖에 없냐고요. 하나도 리얼하지 않은데 리얼하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잘 안 갔어요. 저들의 리얼이 뭐지? 노골적으로 쌍욕을 하면 리얼한 건가?

그러게요. 마더 퍼킹하면 리얼한 건가?

문제는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만약 현실에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나랑은 전혀 안 맞지만 '그래, 정말 리얼이구나' 할 텐데, 그렇지가 않으니까 더 가짜 같은 거죠.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만 노골적이어도 과격하다고 하잖아요. 앨범에 대해 그런 반응이 오기도 하나요?

아예 저를 모르는, 저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쉽게 하죠. 제 주변에 딸도 있고 아내도 있는 기혼남성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없는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딸 외모 평가를 한 거예요. 어떻게 그 얼굴에서 그 얼굴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역시 와이프를 예쁜 사람을 만나야 딸도 예쁘구나. 참을 수 없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완전히 뒤집어 엎었어요. 그 자리는 그렇게 끝났어요. 분위기를 상당히 망쳤죠. 더 놀라운 건 나중에 그분이 다른 곳에서 저의 사상이 무척 불순하다고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 상황에서 화를 낸 건 저 하나뿐이었는데도요. 그때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또 그런 질문을 많이 듣기도 했어요. “너 메갈이야?”

메갈 없으면 어쩔 뻔 했을까요.

그럼 그 뒤로 이런 대화가 이어져요. 메갈이 뭔데?, 일베 같은 거 아니야?, 일베가 뭔데? 그렇게 더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줘요. 없어진 사이트의 회원이었다는 걸 묻는 거냐, 아니면 여성 인권을 생각하고 위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칭하고 싶은 것이냐. 이런 과정을 지나면 다 이해를 하죠. 관심도 없고 몰랐던 거라 이야기를 하면 결국 자신의 생각이 그 맥락과 맞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데뷔 초창기였던 2014년과 2015년의 앨범들은 지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라고요.

많이 달라졌죠.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주변의 눈치를 아주 많이 봤어요. 대구에서 음악을 시작했거든요. ‘싸이퍼’라고 길에서 래퍼들끼리 랩을 하는 게 있는데 당시 여자 래퍼는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모여서 랩을 할 때 제가 여자라는 점을 굉장히 주목하더라고요. 남초집단에 여자가 한 명 있으니까요. 저는 그때에도 머리가 짧고 옷도 지금이랑 별 차이 없이 검정색 티와 바지를 입었어요. 그리고 남자 래퍼들은 저에게 “왜 랩을 해?” 라고 자주 물었죠. 너희가 좋아하는 걸 나도 똑같이 좋아할 뿐이라고 답하면 이해를 잘 못하더라고요. ‘굳이? 왜?’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이었다면 어쩌라고, 하고 넘길 텐데 그때는 저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거죠. 그래서 여자 래퍼들을 더 찾아보고 공부를 했는데 대부분 두 콘셉트로 나뉘더라고요. 섹시 콘셉트거나 혹은 소위 ‘비치Bitch’라고 하는 썅년 콘셉트. 이게 제일 인기가 많았어요. 그 역시 남성에게 어필을 하는 게 강했던 거죠. 근데 저는 그걸 할 수 없었어요. 저에게 없는 것이기도 하고 리얼하지도 않은 것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목소리를 높이는 거였어요. 어떻게든 목소리를 높이려고 했어요. 메시지 보다는 목소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던 거죠.

어떤 시점부터 변화가 생겼나요?

제가 다닌 학교는 예술대학교여서 힙합과가 있었거든요. 많은 동료들이 같이 졸업을 했는데, 다른 과목은 성적이 안 좋아도 전공인 힙합은 계속 장학금을 받았어요. 주변에서 칭찬을 계속 받으니까 저도 제가 잘 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힙합씬에 직접 나왔더니 혹평을 이만큼이나 받는 거예요. 그때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여자라서 더 주목을 받았고 평가에 관대하지 못했단 걸 몰랐어요. 여자치고는 잘 한다는 말이 너무 싫었어요. 데뷔 앨범을 내고 저를 엄청 욕했던 래퍼가 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제가 잘 하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 팬이었던 사람들이 그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에 제가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며 기뻐하더라고요.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했던 거네요.

너무 당혹스러웠죠. 저 사람이 나보고 잘 했다고 하면 내가 잘하는 건가? 굉장히 불쾌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이 저를 정말 후배라고 생각했다면 뒤에서 얘기할 게 아니라 저에게 직접 말을 해줬어야죠. 그냥 SNS에 올려버리니까 제가 계속해서 도마 위에 올라가는 거예요. 나는 인정받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정리가 차츰 됐어요.

실제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댓글을 보면 “최삼이 남자 래퍼 몇 명 씹어 먹었다”라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이게 과연 칭찬일까, 결국 기준이 남자라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숫자 자체가 적으니까요. 힙합씬 자체가 작잖아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인데 여자 래퍼의 경우 비슷할 테지만 듣기 싫어도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돼 있어요. 남성 래퍼들이 서로를 경쟁자인 것처럼 부추기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남자들이 그렇게 판을 만들어요. 자기들 크루가 있으면 여자는 딱 한 명만 포함시켜서 그 여자를 여왕으로 만드는 걸 시스템화해요. 외국도 똑같고요. 왜 그렇게 하냐고 물으면, “여자가 한 명 이상이면 싸움이 꼭 난다” 하더라고요. 그제야 알았어요. 아, 그래서 그렇게 나한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했구나. 그때부터 걸러 듣기 시작했어요.

여성 래퍼들 사이의 이야기가 와전된 채 전달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까 그 사람의 노래가 별로라고 한마디 할 수는 있거든요. 그런데 마치 그게 사람이 별로인 것처럼 전달이 되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오해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져서.

사진 조아현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도 심사위원은 전부 남성이에요. 보시기도 하나요?

집에 TV가 없어서 일일이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곤 해요. 주변인들이 관심이 많거든요. 다른 건강한 방향으로 더 확장됐으면 좋겠지만 방송이고 사업이니까 아마 불가능하겠죠. 그래도 힙합 하는 친구들이 스스로 덜 다치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결국 다치거든요. 그 뒤처리가 안 돼서 우울증도 걸리고 힘들어 하고.

Mnet <언프리티 랩스타>를 계속해서 고사했다고 들었어요.

그때가 초창기였는데, 여혐 문제가 가장 크게 불거진 <쇼미더머니4>가 나온 뒤였어요. 제작진이랑 이야기를 할 때 제가 가장 처음으로 물었던 게 그 지점이기도 했고요. 힙합 문화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향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여기서 정의하는 힙합과 내가 생각한 것에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거기 나가도 될지 모르겠다고요. 그랬더니 <쇼미더머니>랑은 아예 관련이 없는 부서라고 신경 쓰지 마라고 하시더라고요.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 감독과 연출자가 맞다는 거예요. 혼란스러웠죠. 두번째로 만났을 때는 이미 저도 정보를 얻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계속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방송하지 않을 거다, 진짜 힙합을 위한 거다라고 하는데 시선이 다르기도 했고요. 또 거절했죠. 그랬더니 제작진이 안 나오는 건 받아들이는데 다만 힙합 문화에 우리가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조언을 얻고 싶다고 저를 다시 부르더라고요.

세번째 만남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그 미팅 자리에서 또 저를 섭외하려 하는 거예요. ‘집이 잘 사세요?’, ‘부모님한테 효도하고 싶지 않으세요?’, ‘힙합씬에 있으면 당연히 돈 필요하지 않으세요?’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때 이 사람들은 내 거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단순히 재미 없을 것 같아서 고사한 게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하고 제 의사를 표현한 거거든요. 방송을 해도 저를 존중해주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 이후에는 국장님이 오셨어요. 그들은 나한테 관심있는 게 아니라 그냥 방송을 하고 싶은 거였던 거죠.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사진 조아현

‘페미니스트 래퍼’라고 할 때 대두되는 래퍼로 꼽혀요. 그 부분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나요?

부담감 같은 건 없고요. 어렸을 적부터 이상하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듣고 살아와서 그런지(웃음). 그때는 내가 도대체 뭐가 이상한가 했지만 그 이상함이 지금은 명확해진 거죠. 옛날에는 공연 섭외 제안이 무척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섭외하는 분도 저를 섭외할 때 마음을 먹고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 이어지니 그럴 일도 아닌데 저도 미안해지고, 그 친구들도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미안해해요. 서로 미안해 하죠.

2018년 혜화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사람들 입장곡으로 최삼의 노래가 나왔어요. 이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저도 거기에 있었어요. 아주 뻘쭘해 하면서 있었죠(웃음). 그 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걸 알아서 놀라진 않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는구나 싶었어요.

시위 갔을 때 감정은 어떠셨어요?

맨 처음 집회에 참가한 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였어요. 그 상황을 계속 접하다 보면 마음이 아주 답답해져요. 할머니들은 똑같이 앉아 계시고, 사람들은 그 뒤에 똑같이 서 있고, 경찰들도 똑같이 있고, 문은 똑같이 닫혀 있고요. 그게 반복되다 보면 아주 답답하고 열 받거든요. 뭘 할 수 없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시위에 갔을 때 사람들이 갑자기 확 많아지니까 연대감이 굉장히 강하게 들었어요. 다함께 노래 부르고 소리도 외치고 퍼포먼스를 하면서 해방감도 들었죠. 사실 밖에 있으면 다수가 페미니즘을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계속해서 나를 소수로만 느끼다가 그 안에서 절대적인 다수가 되니까 벅찼어요. 중요한 경험이었죠.

공연하실 때 페미니스트 팬들을 만나기도 하나요?

초반에는 서로의 성향을 잘 모르니까 몰랐는데, 편지를 종종 주시거든요. 내용을 보면 인권 이야기가 많아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준다는 걸 알게 돼요.

힙합씬 안에도 변화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느껴요. 2~3년 전만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눈치를 많이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처음에 불편했어요. 제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다들 알잖아요. 조금만 찾아봐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니까요. 그래서 힙합 하는 남자애들이 저를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할 거라는 편견이 먼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남자애들이 저를 만날 때 쑥스러워 하면서 자신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다는 걸 어필해요. 많이 바뀌었구나 싶죠. 힙합하는 친구들 중에도 페미니즘을 인지하고 있지만 꺼내기 무서워서 못 하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아무래도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대부분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여자들이 페미니즘에 비판하는 지점과 남자들이 비판하는 지점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해도의 깊이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남자들이 “과격한 페미니즘은 옳지 않은 것 같아.” 라고 했을 때, 얘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돼요. 사실 힙합퍼들도 힙합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이야기를 맨날 들어요. ‘합합은 양아치만 하는 음악이다’, ‘쟤네는 섹스하고 마약 하는 소굴에만 있다’. 자신도 그런 편협한 시선을 경험하며 지냈으면서 어떻게 페미니즘은 편협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어요.

최근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유튜브 채널은 옛날부터 했는데 한동안 쉬었어요. 제가 TV를 안 나가니까 팬들이 공연장에서 볼 수 없는 일상을 방송으로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고민하다가 직접 찍는 걸 생각했어요. 사실 특별한 게 정말 없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작업하고 자고. 뭘 올려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한 곡이 있어요. [농구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중학생 때 이야기예요. 농구를 무척 좋아했는데 야외에 있다 보면 피부가 까맣게 타잖아요. 팔이 반은 타고 반은 그대로 하야니까 애들 사이에서도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어느 날은 학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옷이 왜 그래?"하고 물어서 "옷 아니고 살인데요." 했더니 주변 아이들이 “농구 해서 그렇대요.” 하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여자애가 뭔 농구를 하노." 하면서 지나가시더라고요. 옆에 친구들은 막 웃고요. 그때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당시 농구장이 집 근처에 있어서 자주 갔었거든요. 혼자 노는데 제가 너무 재미있게 하니까 친구들도 와서 같이 놀았어요. 원래 같이 하면 더 재미있잖아요. 친구들이랑 저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제가 숏컷을 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주변으로 제가 남자를 따라하는 것처럼 얘기를 하는 거예요. 머리 짧고 농구 하면 남자인가?, 내 친구들도 다 농구 하는데 왜 자꾸 나한테만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어요.

빼앗긴 운동장이 떠오르는 이야기예요.

그 농구장에 자주 농구를 하러 오던 남고생들이 있었어요. 저희에게 안 좋은 눈빛을 몇 번 주곤 했는데 그날은 농구공으로 제 등을 팍 맞춘 거예요. 너무 놀라서 큰 상처를 받았죠. 아마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여자애가 까불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돌이켜 보면 제가 여자라는 사실이 그 상황을 만든 거예요. 이제는 농구를 하지 않아요. 운동을 좋아하고 잘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런 일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어요.

노부부가 남자애냐, 여자애냐 묻는 부분도 인상 깊어요.

실제로 있던 일이에요. 그런데 그건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에요. 그 남고생들도 "쟤 남자? 여자야? 저런 스타일 제일 싫다." 이런 말을 했었어요. 들으라고 하는 얘기죠.

사진 조아현

현재 하자센터에서 청소년들의 랩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청소년 직업 체험인 <비커밍 프로젝트>에서 힙합 문화와 랩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있어요. 1년 반 정도 진행했고, 14세에서 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있죠. 아이들의 성향은 제각각이에요. 스스로 선택해서 오는 경우에는 힙합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상태고요, 그렇지 않으면 힙합이란 걸 아예 처음 듣는 경우도 있어요. 이 경우에는 설명을 해주면 신기해 하지만 막상 해보라고 하면 부담스러워하고 창피해 해요. 못하겠다고 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자기만의 가사를 쓰라고 할 때엔 진지하게 자기 소개, 꿈 이야기, 좋아하는 것들을 담으려고 해요.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오는 경우에는 그 분위기가 확 다르죠.

어떻게 다른가요?

굉장히 시끄럽고 질문도 많아요. 무엇보다 가사를 쓰라고 하면 기성 래퍼들의 것과 굉장히 비슷하게 써요. 돈 얘기, 여자 얘기, 차 얘기. 기성 래퍼들이 이 광경을 보고 반성을 해야할 것 같아요(웃음). “이게 진짜 네 얘기니? 네가 면허를 딸 수 있니? 네가 번 돈이 아니지 않니?” 이런 질문을 계속 옆에서 건네는 역할을 하죠. 그게 멋있다고 인식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부분의 문제 중 하나는 힙합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자기를 소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한다는 거예요. 자기 얘기인 데도 계속해서 이렇게 써도 되는지를 물어요.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자기를 표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최삼이 궁금해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제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신경 써서 쓰고 싶어요. 그런 노래를 계속해서 만들 거고요. 제 노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요. 궁극적으로는 파이를 넓혀가고 싶어요. 여성 래퍼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남자 래퍼들 눈치를 안 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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