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또 한 해가 가고, 온다. 매해 같은 일상이지만, 수십 년을 반복해도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렇게 살아도 살아도 삶이 낯선 우리와는 상관 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변한다.
음악계 역시 마찬가지다. 2016년 한 해가 그랬듯 2017년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익숙한 것들을 보내고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며 슬프고 기쁠 것이다. 여기, 그렇게 또 한 해를 흘러갈 당신이 2017년 꼭 주목해야 할 다섯 명의 젊은 여성 음악가들이 있다. 주력 장르도 활동 무대도 모두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90년대에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씨피카(CIFIKA)
창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는 없는 재능을 타고난 누군가를 동경하는 동시에 질투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추측을 참이라 가정할 때, 씨피카는 아마도 생의 대부분을 바로 그 동경과 질투의 대상으로 살아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음악을 좀 해 볼까 생각한지 1년 반, 이제 막 첫 EP [INTELLIGENTSIA]를 내놓은 이 신예 음악가의 노래의 중심에는 더 없이 명확하게 구축된 젊은 예술가의 탄탄한 자아가 놓여있다. 타고난 우아와 몽환적인 일렉트로 비트 사이로 두려움과 기대, 소통과 헌신, 비전과 혼란, 사랑, 편협과 계몽 등 그가 노래하고자 한 다양한 테마들이 가득 차 쏟아 내린다. 음악과 더없이 어울리는 이미지와 영상도 꼭 함께 체크해보기를 권한다.
슬릭(SLEEQ)
2012년 5월 믹스테입 [WEEKLY SLEEQ]을 공개하며 활동을 시작했던 그가 새삼 주목 받은 건 참 요즘 시대다운 이유였다. 한 인터넷 영상매체를 통해 공개된 던말릭과의 프리스타일 영상에서 한국 힙합신에 팽배한 여성혐오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자신을 ‘이 바닥에 제대로 된 Female MC’이자 ‘이 바닥의 제대로 된 Hell of Feminist’라 정의한 슬릭의 모습은 분명 2016년 한국 음악신이 꼭 기억해야 할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에 하나 더 기억해 뒀으면 하는 건, 그가 지금껏 우리가 만나온 어떤 여성 MC와도 다른 매력적인 가사와 랩 스킬을 구사하는 무척이나 준수한 MC라는 점이다.
백예린
박지민과 함께했던 15&에서 솔로 미니앨범까지, 백예린을 들을 때면 ‘팝 뮤직(Pop Music)’이라는 단어가 무의식적으로 떠오른다. 듣고 자란 가요도 지금 팝 시장에서 유행하는 스타일도 아닌 알기 쉽고, 기분 좋고, 리듬이 출중한 바로 그 ‘대중음악’. ‘팝’이라는 카테고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주파수를 본능적으로 훑어나가는 듯한 그의 보컬과 악곡에는 늘 감탄하게 된다.
더욱 안심되는 건 훌륭한 음악적 파트너 구름이 함께라는 것. 듀오 치즈와 밴드 바이바이배드맨 소속으로 프로듀서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와의 협업 아래 ‘우주를 건너’와 ‘Bye bye my blue'가 탄생했다. 다음은 또 어떤 본능적 터치로 우리의 마음을 건드릴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황소윤 (새소년)
아직 정식으로 발매한 노래 한 곡, 앨범 한 장 없다. 어딜 가나 밴드 소개에는 단 한 줄, ‘세계적인 밴드 새소년입니다’가 적혀 있을 뿐이다.
도무지 뭘 믿고 추천하는 거냐 의심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단언한다. 많이도 필요 없다. 딱 한 번, 한 번만 들어보면 왜 돌아오는 한 해 밴드 새소년과 프론트우먼 황소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말 밴드를 결성한 뒤 이제 갓 1년. 아직 무어라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입과 손끝을 통해 흘러나오는 모든 소리가 참을 수 없이 매력적이라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안다영 (안다영밴드)
음악은 이 땅에서 ‘다르다’는 것을 긍정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몇 안 되는 분야다. 안다영의 음악에서 처음 받았던 인상 역시 바로 그 ‘다르다’였다. 다만 스스로 의아했던 건, 안다영의 음악이 특별히 독특하다거나 실험적인 음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잔잔한 감성과 폭발하는 자아가 수 없이 교차되는, 어쩌면 익숙하디 익숙한 포스트 록의 한 갈래. 그러나 그의 음악은 지금껏 쉽게 여성의 몫으로 치부되어온 감성의 섬세한 갈래를 예의 연약함이나 부드러움이 아닌 거칠고 강한 터치로 긁어내는 방식을 택했고, 그 균열은 안다영의 음악 속 특별한 ‘다름’을 만들어냈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단단한 단어가 무수히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