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킴의 듣는 영화 5. 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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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킴의 듣는 영화 5. 니나

미즈킴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자유를 노래한 검은 목소리

<니나(Nina, 2016)>

클래식 음악은 과거에 비해서는 대중 친화적 장르가 되었지만, 여전히 클래식을 연주하는 흑인 연주자를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심지어 인종 차별이 심각했던 1940년대는 어땠을까? 많은 흑인들이 클래식 음악에 접근할 수 없었을 뿐더러, 재능이 있더라도 “얼굴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무대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재즈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니나 시몬(1933~2003)’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그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음악가였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뉴욕 줄리아드 음대에서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 드뷔시를 공부하며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에 지원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한다. 니나 시몬은 향후 인터뷰에서 “당시 인종차별의 충격을 절대 극복하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지만 집안이 가난했던 그는 돈을 벌어야 했고,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음악밖에 없었기에 동네의 싸구려 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는 클래식이 아닌, 이른 바 ‘악마의 음악(the devil’s music)’을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니나 시몬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그의 본명은 유니스 웨이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시작한 재즈를 통해 그는 당대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떠오르게 되고, 그의 데뷔앨범에 실린 ‘I love you, Porgy’는 빌보드 탑 20위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다.

'I love you, Porgy' 라이브 1960. 이 노래는 니나 시몬이 레코드 회사로부터 녹음을 거부당하고 노래할 기회가 없었던 말년 시절에 영국 샤넬 광고 삽입곡으로 수록되면서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해준 곡이다.

영화 <니나>(2016)는 니나 시몬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다. 스타 뮤지션의 삶을 다룬 영화는 보통 그가 ‘어떻게 최고가 되어 가는지’, 혹은 ‘어떻게 추락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니나 시몬의 전성기가 아닌 미스터리하게 남아 있는 말년을 집중적으로 다룬 점이 흥미롭다.

혁명가

니나 시몬은 혁명가였다. 그가 최고로 추앙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1960년대는 미국 사회에서는 수많은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흑인 인권을 위한 운동이 열리던 시절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적극적으로 운동에 가담했고 1963년 버밍햄에서 발생한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건으로 어린 소녀를 비롯한 20명의 흑인들이 사망하면서 문제작 ‘Mississippi Goddam(망할 미시시피)’를 발표한다. 핍박 받으면서도 감히 누구 하나 ‘망할 미시시피’라는 말을 외칠 수 없었던 당시 흑인들에게 니나의 노래는 그야말로 큰 반항을 일으켰다.

Alabama's gotten me so upset
Tennessee made me lose my rest
And everybody knows about Mississippi Goddam
앨라배마 때문에 정말 화나
테네시 때문에 불안해

망할 미시시피에 대해선 모두가 알지

Mississippi Goddam 라이브

하지만 그의 노래가 더 과격해질수록 그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 또한 극심해졌다. 정치적 메시지가 다분한 그의 노래는 금지곡이 되고 음반사에서 음반 판매를 거부하는 등 음악계의 기피 대상이 된다.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면서 흑인 인권운동이 쇠퇴하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자유”를 외치던 그의 꿈도 꺾인다. 결국 좌절과 분노를 이기지 못한 그는 “미국은 실패한 나라”라며 자국을 떠나기에 이른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미국을 떠난 그는 아프리카와 유럽 등지를 유랑하며 ‘구제불능의 삶’을 이어간다. 본래 괴팍하기도 하거니와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는 망명 후 극심한 조울증과 편집증에 시달렸다. 돈이 떨어지면 근처 클럽에서 하루 3백 달러를 받고 공연을 했는데, 관객이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지 않거나 말소리를 내기라도 하면 고함을 지르며 공연장을 뛰쳐나갔다.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거나 총을 쏘는 극도의 폭력성까지 보였다. 그는 대체 무엇에 그리 분노했던 걸까. 영화는 좌절한 니나가 어떻게 다시 재기에 성공하는지, 매니저 클리프턴과의 우정을 통해 그가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블랙페이스' 논란

영화는 사실 개봉하기 전부터 ‘캐스팅’과 관련해 극심한 논란에 시달렸다. 니나 역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가모라’로 이름을 알린 조 샐다나가 연기했는데, 개봉 전 영화 예고편을 본 흑인들은 이 캐스팅에 격분했다. 비교적 피부색이 밝은 조 샐다나가 니나 시몬처럼 보이기 위해 피부를 검게 칠하고 가짜 코와 이를 붙이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캐스팅이 니나 시몬을 모욕했다는 비난의 목소리 탓에 영화 개봉이 미뤄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조 샐다나가 너무 예쁘기도 하거니와 노래를 너무 ‘평범하게’ 부른다는 점에서 니나 시몬을 연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는 논란의 중심이 그의 노래나 개성이 아닌 ‘피부색’에 있다는 점에서 흑인들에게 색을 통한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민감한 이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논란이 되었던 영화 <니나> 예고편.

“제게 자유가 뭔지 말한다면 두려움이 없는 거예요. 전혀 두려움이 없는 거요. 두려움 없이 반평생만 살 수 있다면 … ”

니나 시몬의 삶과 음악은 우리에게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존엄하게 살기 위해 자유는 무엇보다 중요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을. 이상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현실. 내가 꿈꾸는 나와 너무도 괴리되어 있는 현실의 나. 억압된 자유는 곧 커다란 내면의 괴물이 되어 그의 정신을 집어삼켰다. 니나 시몬이 겪어야만 했던 자신과의 싸움은 과연 개인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관람 전, 니나 시몬의 삶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What happened Miss Simone?> 감상을 추천한다. 니나 시몬의 삶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다뤘을 뿐 만 아니라, 니나 시몬 본인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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