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킴의 듣는 영화 8. 미라클 벨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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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킴의 듣는 영화 8. 미라클 벨리에

미즈킴

일러스트레이션 : 이민

장애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랑의 노래

<미라클 벨리에(La Famille Belier, 2014)>

2001년, 미국에서 한 청각장애인 레즈비언 커플이 자신들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청각장애를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여긴 이 커플은 여러 가지 노력 끝에 5대째 청각장애인 가족에게서 정자를 받아 원하던 청각장애 아들을 얻는다. 일부러 청각장애아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이들의 선택은 도덕적으로 많은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장애를 고의적으로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이에 부모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차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실격 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2018) 참조)

장애를 안고 사는 삶은 과연 잘못된 삶인가? 장애를 개인이 지니는 하나의 특별한 정체성으로 볼 수 있을까? 에릭 라티고 감독의 <미라클 벨리에>는 청각장애를 지닌 가족과 함께 사는 고등학생 폴라(루안 에머라)의 성장 이야기를 그린 프랑스 영화다. 어느 시골 마을,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폴라는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다른 고등학생처럼 학교를 다니며, 동시에 농장을 운영하는 가족의 치즈 장사를 도맡아 한다. 학업과 가족일을 병행하다 보니 수업에서 졸기 일쑤인 폴라는 우연한 기회로 교내 합창부에 가입하게 된다.


청각장애 가족들 사이에서 자란 그에게 노래란 아득하고 어려운 일이었을 테다. 합창부에서 난생 처음 큰 소리로 노래해 본 폴라는 의외로 엄청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음악 선생님은 파리에 있는 합창학교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폴라는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는 오직 수어를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는 가족들과 세상의 유일한 연결고리였기 때문이다. 가족들 역시 폴라가 자신들과 떨어져 파리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 일종의 ‘배신감’까지 느낀다. 가족들의 만류와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에 절망한 폴라는 결국 오디션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네가 태어났을 때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정말 많이 울었어.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정말 미워했거든. 네 아빠가 날 위로했지. 걱정하지 말라고. 마음으로는 너도 농인이라고. 널 농인처럼 키우려고 했어. 운이 좋으면 진짜 안 들리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일러스트 이민

장애를 안고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청각장애 가족과 함께 사는 소녀의 이야기라니, 설정만 보면 너무도 우울한 영화일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는 귀여운 코미디 영화에 가깝다. 가족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젊은 시절 미인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미모의 엄마는 매사 감정에 솔직한 여인이다. 피부병이 나을 때까지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의사 앞에서 남편에게 수어로 “입으로 해줄게” 하며 키득거리기도 한다. “장애는 나의 정체성”일 뿐이라며 시장 선거에 출마한 아빠는 막무가내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수어를 가르쳐주겠다며 누나의 친구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동생 또한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다.  

이처럼 벨리에 가족들은 청각장애를 지닌 채 불쌍하게 살아가는 비정상인이 아닌, 성욕 왕성하고 유쾌한 보통 사람들로 그려진다. 가족들에게 ‘괴상한 사람들’이라며 지청구를 하다가도 키스를 퍼붓는 폴라의 삶은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되레 사랑으로 가득하다. 음악에 열정을 느끼지만 가족들을 떠나기 어려운 폴라의 심적 갈등과 가족들의 반대는 여느 평범한 가족의 고민처럼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음악으로 전하는 마음

귀가 들리지 않으니 가족들에게 음악이란 여전히 ‘침묵’이다. 딸이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 해도 들을 수 없으니 그 진가를 알기 어렵다. 세상과의 연결고리였던 딸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너무도 두려운 일일 터이다. 학교 합창단 발표회날 폴라의 무대를 보기 위해 찾아온 가족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의 반응을 살피며 공허한 박수를 보낸다. 영화는 들리지 않는 노래를 듣는 가족들의 심정을 느껴보라는 듯 노래 도중 소리를 지워버리기도 한다.

영화에서 폴라가 부르는 노래 대부분은 70년대를 누빈 샹송의 거장 ‘미셸 사르두(Michel Sardou)’의 음악이다. 프랑스인이 좋아하는 인물 5위에 오를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는 그의 명곡들은 작품 속에서 폴라의 상황과 심정을 대변하며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음악영화의 감동을 더욱 따스하게 비춘다. 특히 결국 딸의 선택을 지지해 준 부모를 위해 폴라가 오디션장에서 수어와 함께 부른 ‘비상’의 노랫말은 긴 여운을 남긴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사랑하지만 가야만 해요…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날개를 편 것뿐

영화 <미라클 벨리에>는 픽션이 아닌 실화에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다. 청각장애 부모를 둔 프랑스 공연 예술가 베로니크 풀랭의 자전적 소설 <수어, 소리, 사랑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베로니크는 불러도 듣지 못하는 부모를 위해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과 같이 농인 부모를 둔 건청의 자녀들을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세계적인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에 따르면 수어는 하나의 언어로서 완벽성과 고유성을 가진다.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이들은 ‘공간’을 언어에 사용하기에 음성언어를 쓰는 사람보다 복잡한 공간 패턴을 훨씬 더 풍부하게 이해하고 이를 의사소통에 활용하는 특수한 인지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곧 수어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보조언어라기보다 ‘공간을 다른 눈으로 인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또 다른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미셸 사르두의 'Je Vais T'aimer'(당신을 사랑하리)

극중 폴라가 부르는 'Je Vais T'aimer’ 좋아하는 남학생 가브리엘과의 듀엣곡으로 편곡했다.

완벽한 수어와 노래실력을 선보이며 제40회 세자르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은 루안 에머라의 연기도 일품이다. 영화는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폴라의 성장기를 통해 장애를 불편한 비정상성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고유한 특질로서 바라보도록 한다. 그 시각의 전복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진정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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