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미즈킴씨 7. 34세 이슬씨

생각하다30대여성의 삶

80년대생 미즈킴씨 7. 34세 이슬씨

미즈킴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저는 서울 광진구에 사는 이슬입니다.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일러스트 이민

하루 일과

아침 6시, 8개월된 둘째 아이가 일어나요. 아침 분유를 조금 먹이고 이유식 중탕을 해둔 뒤 가족들 아침 식사를 준비해요. 8시가 되면 둘째에게 이유식과 분유를 먹이고, 4살 첫째를 깨워 아침을 먹인 후 어린이집 갈 준비를 해줘요. 남편이 첫째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며 출근하고 나면, 둘째 낮잠 시간이 됩니다. 둘째를 재우고서 밀린 집안일을 해요. 청소, 빨래, 젖병 소독, 설거지 등을 하고 두 번째 이유식 중탕을 해요.

아기가 깨면 이유식과 분유를 먹이고 잠깐 놀아줘요. 날이 좋으면 유모차를 끌고 산책 겸 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도 해요. 시간이 되면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하는데 기껏해야 일주일에 하루 정도네요. 집에서 이유식을 만들고 저녁 준비도 하려면 빠듯하거든요.

집에 돌아와 둘째 분유를 먹이고 나면 첫째 하원할 시간이에요. 첫째를 데리고 와서 놀이터에서 조금 놀게 하고 집에 오면 6시쯤 돼요. 둘째 목욕을 시키고 마지막으로 분유 먹이고 재운 후 첫째 저녁을 차려줘요. 첫째와 저녁을 먹고 있으면 남편이 퇴근하고 저는 운동하러 나가요. 운동하고 오면 잘 준비를 마친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고 10시에 재워요. 지난달까지만 해도 둘째가 새벽에 2번은 깨는 통에 거의 뜬눈으로 지샜는데 이제는 통잠을 자서 그나마 많이 여유로워졌어요.

육아휴직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선택’이라는 단어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출산하니 당연히 그렇게 됐다고 해야 하나? 36개월까지 아이와의 애착 형성이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이 중요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도 컸고 아이를 기관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 선택했어요. 내년에는 남편이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할 예정이에요.

남편의 육아휴직

보통 아이 아빠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의 엄청난 호응이 동반돼요. 

“아빠가 혼자 아이를 볼 수 있어요?” 
“대단하시다, 가정적이신가 봐요.” 

반대로 엄마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는 반응이 달라요.

엄마가 당연히 애를 키워야지.

엄마도 처음 하는 '엄마'일인데 성별에 따라 엄마, 아빠에 대한 사람들의 육아 기대치가 다르다는 사실이 뼈아프네요.

첫째 때도 남편이 5개월가량 육아휴직을 했어요. 덕분에 남편이 육아를 줄곧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주부의 삶을 겪어봤으니 육아와 집안일을 혼자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노동인지 깨닫더라고요. 육아를 엄마의 몫으로만 두지 않아줘서 참 고마워요.

친한 친구가 아이를 낳아 육아휴직 중인데 친구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아기만 보고 싶다.

남편의 바람에 친구는 이렇게 말했어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아기와 떨어져 있고 싶다.

혼자 육아를 해보지 않은 이상 육아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아빠의 육아휴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아빠의 육아휴직을 사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줬으면 해요.

30세에 결혼을 하는 게 목표였는데, 계획대로 30세에 했다고 들었어요. 30세에 결혼을 하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어렸을 때는 ‘30’ 이라는 숫자가 엄청 큰 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30살이 되면 큰 어른이니 많은 미션을 성공해야 한다고 믿었지요. 그 중 하나가 결혼이었어요. 직장이 생겼으니 그 다음은 결혼, 그리고 출산.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저였다면 아마 이것저것 대보고 따지다가 결혼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육아의 기쁨과 슬픔

아기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제일 큰 기쁨이에요. 목도 못 가누던 둘째는 어느새 기어 다니며 온 집안을 헤집어 놓고 있어요. 첫째는 그런 둘째를 쫓아다니며 “그건 만지면 안 돼, 먹지 마!” 하며 잔소리를 하는데 이런 모습들을 보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하지만 문득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우울해지더라고요.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출산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 늘어진 살들... 결혼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모습이 눈앞에 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변해가는 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게 아직도 많이 힘들어요.

일러스트 이민

왜 선생님이 되었나요?

처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 저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어요. 그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방송반을 하며 아나운서를 꿈꾸게 되었어요. 사뭇 진지하게 아침 방송을 진행했던 제 모습이 떠오르네요. 대학교에 들어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스터디도 하고 학원도 다니며 준비를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방송국 시험을 보러 다녔는데, 제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어요. 카메라 앞에 서서 대본을 읽는데 겨우 10초 걸리더라고요.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몇 시간 만에 모두 테스트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요. 시험을 보러 다닐수록 자신감도 떨어지고 지치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 길이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진짜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취업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원한 첫 회사에 덜컥 합격한 거예요. 제 적성과는 상관없이 불안함에 했던 지원이라, 결국 입사 포기 메일을 보내고 말았어요.

그 후 이른바 ‘취준생’ 생활을 하며 미디어 콘텐츠 관련 대기업에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인턴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나름 자유분방한 곳일 거라고 나름 기대했던 저는 뒤통수를 아주 세게 맞았어요. 첫날부터 인턴들은 옷차림을 지적받고 정시 퇴근한다는 비아냥도 견뎌야 했어요. 업무는 매일 똑같았고 지루했어요. 정규직 전환을 해준다던 회사는 인턴 10명 중 1명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했습니다.

다시 직업에 대한 저의 고민이 시작되었죠. 영어영문학이라는 저의 전공을 살려 기간제 교사로 일해보기로 결정했어요. 마침 대학 시절 교직 이수를 해놓기도 했거든요. 운이 좋게 사립 고등학교에 합격해 기간제 교사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사실 저는 교사라는 직업이 저와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교탁에 서서 첫 수업을 하는데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어요. 

‘이거다. 이게 내 길이다.’ 

그렇게 기간제 2년 후 시험 준비를 해 1년 만에 바로 임용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교사가 제 천직이라 생각해요. 수업할 때의 저는 정말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쳐요. 아이들이 교원평가에 ‘수업이 재밌다, 영어에 관심이 생겼다’ 등의 좋은 이야기들을 써 줄 땐 참 기분이 짜릿해요.

비교적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이지만 커리어에 대한 불안이 없을 수는 없겠죠.

사실 첫째를 임신하기 전에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영어 교사로서 전문성을 높이고 싶었고, 어쩌면 먼 훗날 교사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교육에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임신, 출산, 육아휴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대학원 진학은 저 멀리 가버렸네요.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거나 비사범대에서 교직 이수를 하면 2급 교원 자격증이 나와요. 이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만 교원 임용 시험을 치룰 수 있어요. 시험에 합격한 뒤 학교에서 근무한 지 3년이 되면 1정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이 연수를 받아야만 1급 교원증을 받을 수 있어요. 이 연수 점수가 승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교사들 사이에서는 매우 중요한 연수로 인식되고요.

그런데 저는 벌써 교사가 된지 8년이 지났는데 계속된 출산과 육아휴직으로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네요. 복직해서 저보다 한참 어린 교사들과 그 연수를 같이 들으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이라서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부러워하는데, 이게 커리어적인 측면에서 따져본다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

서비스직. 요즘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교권추락 관련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올 만큼 선생님은 감정 노동이 심한 직업이에요. 일과 시간에는 수업 준비에, 아이들 지도, 행정 업무에 시달리다 퇴근 후에는 학부모 민원에도 시달리지요. 지난주에는 알고 지내던 어떤 선생님께서 학부모의 심각한 교권침해로 인해 과호흡이 와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어요. 결국 병가를 냈고 2학기에도 복직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래도 교사는 방학이 있잖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해요. 심지어 저희 남편마저도요. 하지만 교사에게 방학은 수업 연구를 위해서 꼭 필요해요. 무기력하고 의지 없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수업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학기 중에는 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행정 업무가 지나치게 많아 수업 준비에 에너지를 다 쏟지 못하거든요.

심신 안정을 위해서도 방학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춘기 아이들은 항상 에너지는 넘치는데, 예민하고 불안해요. 그런 아이들을 계속 마주하고 있으면 감정소모도 심하고 같이 지치고 날카로워져요. 학부모님들도 방학 동안 아이들과 24시간 붙어있으면 힘들다고 말씀하세요. 그런 아이들 30명을 몇 달 상대하고 있으면 진이 빠지지 않겠어요? 방학은 심신 안정을 위한 일종의 회복 기간이기도 하지요. 방학을 그저 교사가 노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된 후 학생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제가 있는 지역의 아이들은 유독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학생들이 많아요. 불우한 가정환경과 어려운 생활 탓에 심리검사를 하면 우울증, 자살 징후를 보이는 아이들도 많고요. 흡연, 음주, 절도 등 사건 사고도 참 많이 일어나요.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머리로는 ‘안 됐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내 자식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들었죠. 하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아이들도 부모들에게 ‘존재만으로도 가슴 벅찬 아이들이구나’ 싶어 더 안타깝고 보듬어 주고 싶어졌어요.

일러스트 이민

요즘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첫 번째는 아이들이요. 저를 끝없는 노동의 나락으로 밀어 넣으면서도 미소 한 방에 그 모든 걸 수긍하게 하는 존재예요. 두 번째는 육퇴(육아퇴근) 후 맥주 한 캔이요. 어렸을 때 짱구 만화에서 짱구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맥주 한잔을 하며 기뻐하는 장면을 보고 의아해한 적이 있어요. 모든 일과를 마치고 샤워 후 들이키는 맥주 한 캔, 이제 그 어른의 맛을 이해하게 되었네요.

대한민국에서 30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우리 80년대생들은 학교에서 남녀는 평등하다, 남녀 역할은 구별되어 있지 않다며 양성평등을 익히고 자랐어요. 그런데 직접 겪어 본 사회는 여전히 그렇지 않았지요. 결혼을 하고 나니 그 사실이 더 명확해졌고요.

“여자가 애를 키워야지, 남자가 집에 있으면 되나”
“여자가 무슨 큰일을 한다고” 
“부엌에 남자가 들어오면 집안을 망쳐”
“결혼하면 여자는 출가외인이야. 시댁이 우선이지” 

아무리 우리가 고학력자이고 더 나은 능력을 가졌어도 성별 때문에 받게 되는 이러한 태도들은 여전하네요. 웹툰 ‘며느라기’에 보면 그런 장면들이 참 많이 나오죠. 시가 제사상을 여자들만 차리는 장면, 여자 남자 상을 따로 차려 밥을 먹는 장면, 사위는 대접받고 며느리는 일하는 장면 등등. 이 웹툰이 많은 공감을 얻은 건 아직도 이런 상황들이 우리 주변에 만연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다고 나 하나쯤 목소리를 내봤자 변하는 것이 없다고 믿으면 다음 세대 여성들도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지 몰라요. 제 딸을 위해서도 저는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그 방법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스며든 성별 고정관념을 짚어주고 의식적으로 바꿔주려 노력하면 젠더 의식 수준이 높아지겠지요.

그 일환으로 저희 학교는 작년부터 학생 번호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어요. 보통 남학생이 1번부터, 여학생은 31번부터 시작하는 학교가 많아요. 이 방법이 남녀간 선후가 있다는 차별 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학생 번호를 가나다순 정렬로 바꿨어요. 이러한 사소하고 작은 물방울이 모여 언젠가 바위를 깰 수 있다고 믿어요.

30대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아직 젊은 30대에 참 안 어울리는 단어인데 저의 목표는 ‘건강 찾기’입니다. 슬프게도 두 번의 제왕절개가 저에게서 참 많은 걸 앗아갔어요. 원래 첫째 아이를 수중 분만으로 낳으려고 했는데 42주가 다 되도록 진통도 없고 아이가 뱃속에 둥둥 떠 있어 내려올 생각을 안 했어요. 결국 힘들게 제왕절개를 했어요. 그 때문에 둘째는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택해야 했고요. 두 번이나 아래 근육을 끊어 놓으니 이제 배에 힘을 거의 줄 수가 없어요. 빈혈도 생겨서 얼마 전부터는 철분제도 처방 받아 복용 중이에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필라테스도 시작했어요. 열심히 운동해서 출산으로 약해진 건강을 빨리 회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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