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김사월: 비로소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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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김사월: 비로소 혼자가 아니었다

이자연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뮤지션 김사월은 '김사월X김해원'의 1집 [비밀]로 데뷔했고 이듬해 솔로 앨범 [수잔]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아티스트다. 이어 '2016년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수상하며 김사월만의 아름다운 가사와 음률이 많은 이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어쩌다 새어 버린 몽롱한 새벽에 있는 것만 같다. 곧 동이 틀 시간. 김사월은 그렇게 눈을 뜬다.

사냥하는 자는 숨는다

아마 표정 때문이겠지

누구나 알아채는

웃기는 붉은 늑대

이유도 없고 마음도 없이

누군가를 가지려 하네

누구나 알아채는

웃기는 붉은 늑대

누구라도 상관없어

당신이 좋겠어

누구라도 상관없어

당신이 좋겠어

누구나 알아채는

- 김사월, [붉은 늑대] 중에서

 

김사월의 첫 싱글 [붉은 늑대]가 발매됐어요. 그 뒤로 요즘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사실 싱글은 처음이라 어느 정도의 시간이나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해야할 걸 드디어 했구나, 하는 느낌이었죠. 그것보다는 6월까지 올 반 년 동안 천미지 씨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었는데, 편곡과 녹음을 무탈하게 마치고 앨범도 잘 나와서 그게 후련해요. 편안함을 만끽하며 일상을 즐기고 있죠. 그 전에는 일상 없이 작업만 했었거든요. 이제는 커피도 마시고(웃음).

사진 조아현

자기 앨범을 작업하는 것과 누군가의 앨범을 프로듀싱 하는 데에 마음가짐이 많이 다른가요?

아무래도 제 거는 제 마음에 따라 작업할 수 있잖아요. 망해도 내 건데, 하면서 넘길 수도 있고요. 근데 이번 앨범은 천미지 씨의 첫 앨범이었고, 가수에게 첫 앨범은 오래 기억에 남거든요. 좋은 기억이 되길 바라서 더 열중했던 것 같아요.

두 분이 친구라고 들었어요.

네. 중학교 친구인데 서울에서 다시 만났어요. 중학생 때에도 같이 음악을 좋아해서 친해졌었거든요. 1집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많이 반영되기 마련인데 그 친구 만큼은 짱친이라고 확신해서, 짱친의 권한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저희는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랜 친구예요.

사월 님의 청소년기가 궁금해졌어요.

자기 확신이 없는 타입의 아이였고, 수줍음도 콤플렉스도 많았어요.

수줍음이 많았어요?

네. 그런데 참 신기하네요. 초반에 데뷔했을 때에는 ‘수줍음이 많아요.’ 하면 그러시구나 했는데 요즘에는 안 믿으시더라고요. 이제는 수줍음이 많이 없어졌나 봐요. 정말이지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노래를 부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기타를 치면 좋겠다, 곡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제 목소리를 가지고 사람들 앞에 나설 줄 몰랐거든요. 받아들여지지 않을 줄 알았어요. 여성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여성 동료들이나 여성 창작자들을 보면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사회이기도 하고요.

다른 가수들과 협업하며 작업도 하고, 영화 <땐뽀걸즈>나 드라마 <시크릿 마더> OST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고 다양해졌을 것 같아요.

그런 역할에 제가 쓰임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나를 선택했다니!’ 라는 것만으로 기뻐서 좋은 역할을 해내고 싶어지거든요. 끝나고 나서 작업물을 보면 아티스트가 어떤 세계를 꾸리고 싶었고, 내가 이래서 필요했다는 게 느껴져요. 좋은 작업 뒤에 기쁨이 몰려오죠.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다는 게 무척 행복해요.

내 안에서의 변주가 필요한 거네요.

그런 것도 있죠. 보통 가수들은 곡을 받을 때 설레는 순간도 있고, 이 곡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궁리하는 순간도 있어요. 그런 때를 느끼는 것만으로 풍족해지는 기분이에요.

이번 싱글 [붉은 늑대]는 기존의 곡들보다 좀 더 경쾌한 느낌이 들어요.

지난 2집 같은 경우에는 넘실넘실하고 밝은 노래들이 많아요. 그런데 하나의 앨범으로 실으려고 하다 보니 너무 리드미컬 하거나 올드한 사운드는 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에는 싱글이니까 얘가 마음껏 튀어도 괜찮잖아요? 제가 최근에 제일 좋아하는 사운드와 비주얼을 담았어요. 가사 내용도 최근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고요.

자기를 담은 거네요.

저는 데뷔 초에 제가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했다면 조수석에 해원 씨가 함께 동석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더라고요. 해원 씨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아직도 그런 줄 아시는 것 같았어요. 이런 맥락의 평론도 많았고요. 그렇다 보니 앨범을 낼 때마다 해원 씨의 그늘을 어떻게 거둘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물론 1집에 저희는 죽이 잘 맞았고, 최근 작업을 같이 했을 때에도 좋았어요.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김사월 X 김해원’의 잔상이 아직 남아있나 봐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이쯤 되면 저도 독기가 생기는 거예요. 이번 [붉은 늑대]에서도 그런 평을 받았어요. ‘단순한 가사다. 그런데도 이 노래가 좋게 들리는 이유는 편곡의 힘이다. 김해원의 기타 소리.’ 그 기타 제가 친 거 거든요!

사람들이 신촌 골목으로 들어간다. 한잔하기 위해, 하룻밤 상대를 위해, 춤추기 위해,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어쩌면 진실된 사랑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신촌 골목으로 들어간다. 신촌 거리의 욕망은 분명하다. 사냥하는 자와 사냥 당하는 자. 어둠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입을 벌린 신촌 거리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신촌을 환멸하고 환멸에 중독되었다.

- [붉은 늑대] 소개문 중에서

[붉은 늑대]의 소개문이 인상 깊었어요.

신촌 자주 가세요? 주로 어디서 노시나요?

홍대 쪽에서 주로 놀고, 신촌은 영화관 갈 때에만 가는 편이에요.

신촌을 자주 안 가는 이유가 있나요?

음, 저랑 코드가 안 맞는 것 같아서요.

저도 문화적, 생활적, 미(味)적 욕구가 홍대와 합정에서 대부분 충족되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제가 신촌에 가는 이유는 거기서 느끼는 것이 있어서겠죠. 신촌은 대학가여서 그런지 홍대처럼 헌팅을 목적으로 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하지만 언제든지 사냥을 할 수 있는 기류가 만들어지는 곳이죠. 저는 학생이 아니고, 그런 목적으로 우르르 가는 일도 거의 없어요. 그런데 새내기들의 옷과 화장, 앉아서 담배 피는 모습에서 어쩐지 그런 게 느껴져요. 처음 신촌을 왔을 때 이런 게 젊은이들의 짝짓기인가 싶어서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점점 갈 수록 제가 그 사냥터의 모습과 가능성을 눈 여겨 보게 되더라고요.

어떤 사냥의 가능성이요?

어느 날 친구가 굉장히 취했던 적이 있었어요. 부축을 하면서 걸어가는데 저희가 길을 걸으면 모세처럼 길이 삭 뚫리면서 저희를 쳐다보는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있는 여자라는 거죠. 그때 너무 소름 끼쳤어요. 사냥터의 느낌을 그때 받았어요.

글로 보았을 때에는 이성이 서로를 사냥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포식자와 먹잇감이 있는 사냥이군요.

제가 사냥을 한다고 하더라도 주도권을 동등하게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의 사냥과 그들의 사냥은 물리적인 힘이 다르죠.

가사가 갑자기 떠올라요. ‘누구라도 상관없어. 당신이 좋겠어.’

붉은 늑대의 입장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사냥감은 어떤 누구라도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누군가로 지칭되는 사냥감인 사람은 어떤 사람도 아니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가사를 썼어요.

하루 중 [붉은 늑대]를 듣기 좋은 시간은 언제일까요?

밤 10시에서 12시 사이가 술집들이 가장 핫할 때잖아요. 술 마시러 가는 길에 노래를 들으면 완전 짱 센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뮤지션 김사월과 보통 날들의 김사월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 둘이 완전히 섞여버린 지 너무 오래됐어요. 이제는 거의 분리가 안 돼요. 쉬어도 일을 생각하면서 쉬고요. 그나마 운동할 때 좀 좋아요. 옛날에는 그게 고통일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사진 조아현

가사에 일상어가 많아서 평소에도 단어 수집을 자주 하실 것 같았어요. 크고 작은 영감을 간직하는 게 피로하지는 않나요?

피로하죠. 그래서 영감을 특정한 어디에서 받는 편은 아니고 평소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받는 편이에요. 누군가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써먹고.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모아서 노래로 만들어요. 약간 도둑질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웃음).

멜로디가 전반적으로 몽중에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술에 취하든, 분위기에 취하든, 감정에 취하든 무언가에 취해있는 걸 즐겨 하시나요?

저는 수줍거나, 엄청 들떠있거나 둘 중 하나에요. 중간이 없어요. 처음에 수줍다가도 예열이 되면 갑자기 오버하고 발랄해지죠. 너무 오버했다고 하면 푸시시 수줍어지고. 사실 몽환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아름다운 상상을 많이 하는 유형도 아니고요. 그 보다는 사운드적인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어떤 소리가 공간에 울려서 반사되는 것에 대한 신비감이 있거든요. 소리를 조정하는 걸 좋아하죠.

보통 작업은 어떻게 하는 편인가요?

작사는 핸드폰 메모장에 해요. 원래 손으로 직접 쓰는 걸 좋아했는데 잘 안 돼요. 생각을 따라가는 타자의 속도가 편하거든요. 메모장에 한 두 줄 써 놓고, 그게 모이면 조립해서 노래를 만들어요. 이상하면 버리고 좋으면 가지면서요. 언제나 명작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매일 만들다가 어느 날 좋은 거 나오면 그거 쓰고, 자꾸 마음에 안 드는 게 나오면 그걸 다시 부수어서 하나로 조합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노래를 부르면 또 즉흥성의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일본어랑 영어가 섞인 외계어로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면서 무드에 맞게 코드를 붙여 나가면서 완성해요.

초창기와 비교했을 때, 요령이 생긴 부분이 있나요?

예전에는 원하는 게 있어도 스스로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작업을 하거나 합주를 할 때에 제가 A를 원하면, “A를 합시다.” 라고 말해 놓고서도, B가 진행돼 버리면 ‘내가 틀린 거겠지?’ 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게 필요하고 또 좋더라고요. 그게 아주 효율적이라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거든요. 저의 마음을 잘 믿지 못했던 거죠. 지금은 거기에 감정을 안 쏟기 위해서 “A를 원하니까 이걸로 합시다.” 해요. 이전에는 남들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망설였다면, 서툴러도 제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표현하죠.

여성들은 그런 자세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지나치게 미안해 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자신의 의지를 잘 드러내는 방법을 견지하는 거요.

저도 그걸 너무 갖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어요.

사진 조아현

[젊은 여자] 당시, 사월 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의문이 많았던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근래 인터뷰에는 이전보다 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어요. 지난 2년 동안 물음표가 느낌표로 전환된 걸까요?

2년여 전에 그런 질문을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여성 뮤지션으로서 활동하면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나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어서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는거예요. 그래서 저는 “없다고 한다면 딱히 없고, 있다면 모든 게 차별이었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제가 더 이상 어린 나이의 여자가 아니게 되면서 그 세계가 더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불편한 것이 있을 때 ‘말해도 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우리 모두 불편한 거 맞아요. 우리 다 얘기해요.’ 하고 바뀌었어요. 그 사이에 다양한 친구들도 생겼어요. 젠더 감수성이 비슷하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과 연결된 거죠. 힘들었던 일이나 의문을 함께 나누면서 더 힘을 갖게 되었어요.

이전에 “강인한 여자를 동경하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보았어요. 여기서 강인함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당시 ‘강하면서 여리고 당당하면서 때론 비관적이기도 한 사람들’이라고 했든요.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여성은 강해야만 한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어떨 땐 강하고 또 어떨 땐 비관적인 보통의 모든 여자들이 멋있다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플레이리스트로 꼽았던 목록 이름도 <나의 멋있는 여자들> 이었죠. 그들은 넘어져서 울고 있어도 멋있고, 당차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도 멋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Spechless] 하지 않겠다가 화두잖아요. 우리가 계속 서로의 상황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멋진 여자들인 것 같아요.

그 리스트에 여자 아이돌 노래도 많았어요.

아이돌이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고 소비하기 쉽다고 해서 그들이 가벼운 활동을 한다거나, 예술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술과 상업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이고, 예술성을 띠면서 아이돌같고 상업적인 것도 많잖아요. 저는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자 아이돌을 무척 좋아해요. 그런데 예전에는 여자 아이돌이면 다 좋아했다면, 요즘에는 솔로 여자 아이돌의 매력을 더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보아, 선미,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있던 거군요.

옛날 말이긴 한데, 그들을 보면 디바라는 말이 떠올라요. ‘디바’라는 말이,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움의 폭을 넓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에 관해 묻고 싶어요. 배우들도 노래를 들으면서 감성을 충전하고, 뮤지션도 영화를 보면서 충족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일종의 상호작용인 셈이죠. 영화 속 인물들 중에서 ‘나의 멋진 여자들’이 있을까요?

저는 영화를 덕질하듯 봐요. 영화 한 편에 꽂히면 그것만 보는데, 보통 영화는 여성 캐릭터들이 어떻게 곤경에 처하거나 고통을 느끼는지 보여 주잖아요. 그래서 그 캐릭터가 좋다고 말하기 쉽지가 않아요. 이 세상과 맞닿은 고통을 계속 느끼는 인물들이거든요. 영화가 좋았다거나, 공감이 간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인물을 꼽으면 그들이 계속 고통스러워야만 제가 좋아할 수 있는 것 같아서 힘들어요.

지난 3년 동안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한 명의 여성으로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사건도 있을 것 같아요.

아마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사건 이후로 제가 변해가는 걸 많이 느꼈고, 그때 정말 많이 울었거든요. 당시 네가 아니고 나일수도 있었다는 말을 많이 했잖아요. 나를 대신해서 그 사람이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아서, 부채감 때문에 더 이상 미적지근하게 있을 수 없게 된 거예요. 그 이후에 정확하고 강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 저는 세게 말하는 유형은 아니에요. 그런데 트위터에서 리트윗이라도 하면 어떤 커뮤니티에서 “김사월도 메갈이네.” 하는 글이 올라오더라고요. 물론 이제는 그런 비난 하나 받는 것보다 한 사람 살리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아요. 그런 말도 들은 적 있어요. “페미는 맞는 것 같은데 탈코 안 한 거 보면 완전 페미는 아니다.”

페미니스트 감별사요(웃음)?

그러니까요, 감별사! 몇 나쁜 남자들의 말을 따라하면, “요즘 여자들은 페미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유행처럼 따라하는 거야. 페미 티셔츠 입어도 진짜 페미 아니야.” 라고 하는데, 이 흐름을 어떻게든 흐리게 만들려고 남자들이 노력하는 걸 보면 흥미로워요.

사진 조아현

노래를 통해서 여성들과 어떻게 연대하고 싶은지 궁금해요.

자매애라고 해야 할까요. 여성으로 살며 느낀 감정으로 쓴 노랫말로 향유자들을 만나서 “아!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 라는 공감을 주고 받고 싶어요. 저도 그런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최근에 가장 힘든 건 옷이에요. 여름옷은 정말 사기 힘든 것 같아요. ‘길거리에 있는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몸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는데 거기에 맞춰서 다들 또 작아져요.

유아복 같죠.

네. 공연복은 제가 직접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걸 사려고 피팅룸에서 옷을 다 입어보고서 하나도 안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올 때에 제가 이 사회에 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장에서 만든 옷들이 나한테 안 맞는 구나. 여성에 몸에 대한 제약을 사회가 주는 건 너무 오랜 일이라 제가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뮤지션 오지은을 무척 특별히 여기는 것 같았어요.

전에 사석에서 오지은 님을 몇 번 뵌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놀라서 가만히 있는데도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싱어송라이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오지은 님의 음악에 큰 의미를 갖고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저도 모르게 노래마다 당시의 저를 기억해 뒀나봐요. 노래를 들으면 과거의 제가 떠오르고, 제 곁에 있어주던 노래들도 기억나요. 그걸 만든 사람이 내 눈앞에 있다는 게 놀라서 눈물이 났어요.

이번 공연에 좀 더 마음이 동했나 봐요.

최근 공연은 피아노와 보컬로만 진행하셨어요.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왜 이러지?’ 하면서 마음이 들썩거리는 거예요. 첫 곡으로 [화]를 부르는데 갑자기 첫 소절에서 통곡을 하게 되라고요. 그 곡들이 살아서 내 마음에 들리는 게 감격스러워서 그때 많이 울었어요. 흑흑 아니고, 어흑흑 어흑흑. 공연이 끝나고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어요.

어떤 게 그렇게 마음 속에서 일렁였을까요?

10대 20대를 보냈던 사람들이 [화]를 들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스스로 에너지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해주는 노래가 없었잖아요. 여성 화자가 난 널 보면 화가 난다, 갈아 먹고 싶다, 널 보면 내 권위가 없어지는 것 같다,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엄청 몰입하게 된 것 같아요.

음악적 롤 모델도 궁금해요.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한 명을 꼽기는 어렵지만 저런 게 아마도 예술가이지 않을까, 하고 처음 느꼈던 것은 엄정화 씨예요. 모든 컨셉에 맞춰서 변신하는 게 굉장해요. 사람들이 그로부터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걸 자기가 완전히 소화해내면서 음악과 비주얼을 모두 장악하잖아요. 언제나 실험하는 것도 너무 멋져요.

김사월을 한계 짓는 어려움이 있나요?

저는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갖고 싶은 걸 위해 노력하면서 가지게 된 몇 가지가 있어요. 몇 장의 앨범을 갖고 있고, 친구도 있고, 저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생겼죠. 제가 갖고 있는 것을 놓치기가 싫어서 더 과감하게 행하지 못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조금 후회할 것 같은 건 해요. 그래서 언젠가 더 과감해질 거예요. 조금 실망시키게 되더라도 할 것 같아요. 2집의 경우도 더 못된 사운드가 나오길 바랐는데, 제 기준보다는 평이한 사운드가 나왔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 지지고 볶는 사운드를 하고 싶고, 할 계획인데 분명 모든 이들을 충족시키긴 어려울 거예요.

앞으로의 공연 계획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반기에 두 번 정도의 공연이 예정돼 있어요. 한 번은 열광적인 공연으로, 또 하나는 따뜻하고 위로하는 공연으로 구성할 거예요. 다 말해버리면 재미 없으니까 여기까지만(웃음).

앞으로의 김사월을 말씀해 주세요.

아직 파괴를 덜 해서요. 좀만 더 부수고 싶어요. 그 다음에 다시 옛날 초창기처럼 현악기 나오고 아름다운 거 하고 싶고요. 당분간은 부술 게 많아서 좀 만 더 부수고 오겠습니다!

사진 조아현

김사월을 만났던 주의 토요일에는 그의 공연이 있었다. 무심하게 기타를 둘러 맨 그는 또 무심하게 말했다. “오늘 화장을 안 했어요. 만약에 화장을 안 하고 싶은데 해야 되는 분들이 있을까 봐. 오늘 김사월이라는 사람이 공연을 했는데 화장을 안 했던데? 그러면 되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안 했어요.” 사람들의 손뼉이 마주쳤고 그래서 소리가 났다. 더 이상 무심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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