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통계청(INSEE)에서 재미있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 한 해 동안 프랑스에서 출생한 아기의 60%에 해당하는 77만 명이 혼인관계 밖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도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아직도 혼외자의 존재 여부가 터부시되는 한국 사회의 시선에서는 기함할 만한 일이라 할 수밖에. 역시나 프랑스라는 나라가 익히 알려진 것처럼 문란(!)해서 그런 것일까 ?
프랑스도 처음부터 이렇게 혼외자의 비중이 컸던 것은 아니다. 1954년 프랑스에서 태어나는 혼외자는 전체의 5.9%에 불과했으며, 1976년에도 8.5%로 비교적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말 및 1980년대 초부터 급격하게 증가 추세를 보여 1990년에는 30.1%, 2000년에는 42.6%, 2010년에는 54.1%를 기록했다. 사회배경 면에서 1968년의 5월 혁명을 떠올리게 되는 지점이다. 이른바 ‘68혁명’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교육, 노동, 여성, 반핵, 반전, 퀴어 등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고, 결국 프랑스에 존재하던 모든 권력과 권위가 전복되는 계기가 되었다. ‘68혁명’ 때 10대 및 20대 초반이었던 이들이 아이를 낳기 시작한 시기와 혼외자 비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족'은 뭘까?
사회 제도 면에서도 그 이유를 살펴 보자. 한국에서 ‘가족’이란 «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을 지칭한다. 즉, 혼인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 ‘가족(famille)’은 « 혈족관계 혹은 연합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집단 »으로 정의된다. 여기에서 ‘연합(alliance)’이란 이성 혹은 동성 간의 결혼일 수도, 동거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또 동거는 단순히 그저 같이 사는 것일 수도 있고, 이른바 팍스(PACS)라 불리는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일 수도 있다.
이 ‘시민연대계약’은 간단히 말하면 동거하는 두 사람에게도 결혼에 견줄 만한 법적 보호와 혜택을 보장하는 제도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성(姓)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간단한 절차를 거쳐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동거인과 함께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 이 새로운 형태의 제도는 동성 커플에게 ‘결혼이라는 (신성한) 제도를 허락할 수 없다’는 1990년대 프랑스 사회의 선택이었으나, 이성 커플 중에서도 이 ‘시민연대계약’을 선택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결혼보다 제약이 강력하지 않다는 사실이 이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결국 이 새로운 제도가 가족 형태의 다양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와 동시에 단순 동거에 대한 인식 역시 달라졌다.
이제 동거는 연인의 관계가 발전하는 단계 중 하나로 인식되며, 프랑스에서는 두 사람이 실제로 함께 살아보지도 않고 시민연대계약이나 혼인 계약 (프랑스에서는 실제로 결혼에도 ‘계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에 서명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결국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나누는 삶을 정당화 및 합법화하는 기준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가 지니는 제약과 혜택에 대한 두 사람의 선택이 되었다. 비혼 커플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당연히 혼외자의 증가로 귀결되었다.
혼자 아이 키운다고?
걱정은 사회가 덜어준다
이런 프랑스이기에 편부모 가정에 대한 시선이 한국과는 다르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시선은 사회 전체가 편부모 가정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 혹은 남성은 다음과 같은 지원을 받는다.
먼저 정부는 아동의 보호자의 소득 수준과 거주 형태 등 여러 요건을 고려하여 보조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한다. 또한 20세 미만의 한 명 이상의 아동 및 청소년의 보호자에게 매달 정해진 금액을 지원하는데, 2018년 현재 한 명의 아이가 있다면 119.11유로 (약 15만 5천 원), 두 명은 238.22유로 (약 31만 원), 세 명은 357.33 유로 (약 46만 5천 원)를 지급한다. 세 명 이상의 아동 및 청소년을 돌보는 성인에게는 별도의 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한다. 병원이나 약국 등 의료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표도 아동 및 청소년의 나이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5년 이상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6세 이하의 아동을 혼자 키우는 경우, 소득 수준에 관계 없이 보육 교사 혹은 보모에 드는 비용은 국가가 책임진다. 10세 이하의 아동을 혼자 키우고 있고 구직 중이라면, 아동 돌봄도 국가가 보조한다. 또한 아동을 돌보기 위하여 일을 그만 두거나 노동 시간을 줄이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6세 이상 18세 이하의 아동 및 청소년을 둔 보호자의 경우, 신학기에 일정 금액의 보조금을 받는다. 학용품이나 준비물 등을 구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학교 급식비 역시 지원되는데, 아동 및 청소년이 다니는 학교가 부담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주택보조금 역시 여러 형태로 지원받는다. 또한 월세가 저렴하고 시설 관리가 용이한 공공주택에도 우선 순위로 입주할 수 있다. 세 명 이상의 아동을 돌보는 보호자라면 이사에도 국가가 지원금을 지급한다. 가스와 전기 요금에도 사용할 수 있는 수표도 지급되는데, 아동의 수와 보호자의 사정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전화 요금의 경우에도 저소득층만 가입할 수 있는 요금제 (최대 10유로, 약 1 300 원)가 따로 있다.
프랑스에서는 편부모 가정의 여가 활동도 지원한다. 18세 미만의 아동 및 청소년이 세 명 이상인 가정이라면 기차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스포츠 및 여가 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 수표를 발급한다.
아이도, 아이를 키우는 어른도
포기하지 않는 사회
이래서야 프랑스에서 너도 나도 혼외자를 키우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위에서 언급한 편부모 가정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지원은,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보호자라면, 그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프랑스라는 나라 역시 이상향과는 거리가 먼, 그리고 요즘 들어 점점 더 멀어 지고 있는 곳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태도 만큼은 참으로 부럽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미혼모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과연 편하기만 한 것일까 ? 다음 편에서는 실제로 프랑스에서 미혼모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기로 하자.
참고
<르피가로> 2018년 9월 4일자. ‘2017년, 프랑스 신생아 10명 중 6명이 혼외자 ( En 2017, six bébés sur dix sont nés hors mariage en France)’.
<르몽드> 2018년 9월 4일자. ‘프랑스 신생아 10명 중 6명이 혼외자, 유럽 최고치 (Six enfants sur dix naissent hors mariage en France, un record en Eur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