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하는 여자 5. 내가 두 명이 될 순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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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하는 여자 5. 내가 두 명이 될 순 없어서

효규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구글캠퍼스 포 맘스'에서는 창업에 관한 이론을 8주 동안 배우고 마지막 9주차에 실제 밴처캐피탈(아래 VC) 관계자들 앞에서 자신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걸 데모데이라고 부르곤 한다. 데모데이가 이 수업의 가장 하이라이트였다.

회사에 다닐 땐 매일 함께했지만 출산 후에는 쓸 일 없었던 파워포인트를 정말 오랜만에 켜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사업에 대한 내용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구성이 가장 좋을까? 해외 시장 분석을 언급하는게 좋을까? 아이템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가 좋을까? 실제로 발표 연습을 하면서 말이 너무 늘어지지 않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정말 사무치게 기뻤다.

구체적인 기획을 보여주고 싶어 손으로 직접 기획안을 그렸다. 몇 번이나 다시 그리고 고쳤던가.

떨리는 마음으로 데모데이 발표를 했다. 제 시간에 마친 것만으로도 정말 뿌듯했다. 운이 좋게도, 나와 비슷한 아이템에 이미 투자한 VC가 있었다. 그 분들은 시장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고, 시장 접근방법에 대해서도 좋은 피드백을 주었다. 우려할 만한 지점도 함께 지적 받았지만, 나의 사업과 비슷한 아이템이 투자를 받아 엑싯(Exit, 사업 성장으로 투자금이 회수되는 것)까지 성공했다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정말 기뻤다. 가능한 사업이라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조금씩 창업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내가 두 명이 된다


진짜로 사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나의 시간을 재구성해야 했다. 우선 ‘일하는 나’의 시간부터 확보해야 했다. 나에겐 아이가 있다. 그래서 나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었다.

  1. 아이를 누군가가 봐준다
  2. 내가 두 명이 된다

잠을 더 줄이는 것처럼 신체적 가혹행위를 감수하며 정신력과 체력을 갈아넣는 건 이미 지금의 육아노동에서도 충분히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창업교육을 들으며 마주한 ‘돌봄노동’이 주는 가치를 깨달은 나는 8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했다. 특히, 함께 교육받으며 이미 창업한 이들이 들려준 조언은 아이가 24개월이 될 때 까진 적어도 집에서 엄마 품에서 키워야 한다고 믿어왔던 나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

‘차라리 일찍 보내서 천천히 적응시키는게 훨씬 낫다. 그래야 애가 어린이집이 당연한 줄 안다.’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키운다. 육아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어린이집에 보내서 자유시간을 확보한 당신이 행복해지는게 아이에게도 더 좋다.’
‘어린이집 폭행 등 안 좋은 사건도 많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왠만한 엄마들보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아이를 훨씬 잘 본다. 전문가는 전문가다.’

9주 내내, 이미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준 조언들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대기번호 200번

어린이집 찾기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내고 싶다고 해서 바로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린이집에 남는 자리가 있어야 아이를 보내는데 국공립 어린이집은 대기 200번대가 기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영영 연락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국공립 어린이집을 포기했다.

다음으로 민간어린이집이나 가정어린이집을 찾아 대기가 없는 곳들 위주로 신청을 넣기 시작했다. 아이를 남이 돌봐 주어도 잘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을 창업교육을 들으면서 얻었기 때문에, 엄마로서 나름의 깡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대기가 없으면 그 어린이집이 별로라는 의미는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직접 가서 판단해보면 될 일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신청한 어린이집 중 한 곳에서 ‘이렇게 빨리 온다고?’ 할 정도로 빨리 연락이 왔다. 직접 원에 가보니, 좁긴 하지만 아이도 적었다. 무엇보다 영아(0~4세)들만 받는 곳이라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적응기간을 거쳐 계속 보낼지 결정하는데 선생님들이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게 느껴졌다. 게다가 나와 상담을 주고받았던 그 분이 마침 내 아이의 담당 선생님이라는 이야기에 망설임 없이 바로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

"어린이집 갈까?"

늘 나와 함께 해 오던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니 매우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이들이 전해주는 행위들이 뒷받침되니,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어린이집 갈까?” 라고 물으면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신발을 나에게 쥐어 줬다.

처음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풀타임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우선 일주일에 2-3번 정도, 2시간 정도만 보내기로 했다.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할 때만 조금 길게 보내고, 그 외 일하는 전날과 다음 날에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고 가정보육을 했다. 4살까지 다녀야 하는 곳인데, 시간을 들여 적응시키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8개월 부터 18개월 정도까지는 가끔씩 어린이집에 보냈다. 덕분에 안정적으로 아이는 어린이집에 적응했고 나는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었다.

잃고 얻은 것

물론 고비도 있었다.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들은 자기 엄마가 왔는지 보려고 우르르 나온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걸 보고 마음이 아픈 나도 너무 싫었고, 남을 함부로 동정하는 기분이 들어 한동안 힘들었다. 이사로 인해 환경이 바뀌었을 땐 아이가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기도 했다.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울음소리가 그칠 때까지 밖에 서서 우는 일도 있었다. 나 없이 행복하게 웃는 아이의 사진을 전송 받을 때에도 나는 울곤 했다. 그렇게 아이도 울고 엄마도 울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서 ‘아, 잘 지내고 있구나. 덕분에 나도 나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날들이 늘어났고, 나는 이 모든 것들에 조금씩 감사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존재 때문에 나는 많은 성취를 잃었다. 하지만 그 이후 내가 이루어 낸 모든 성취 또한 모두 아이 덕분이다. 출산 후 내 인생에 깔리던 배경음악이 바뀌었다. 늘 우울한 음악만 흐르다가, 교육을 들으며 높은 음계의 경쾌한 음악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한때 아이를 왜 낳았을까 후회했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의 자존감은 자라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사업을 위해 ‘일하는 나’의 시간을 조금씩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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