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잘 할 순 없어요.
일이든 육아든 하나만 선택하세요.
창업을 하면서 들었던 조언들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특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조언은 ‘주 양육자의 자리를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육아 대신 일을 선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창업 교육을 들으러 갈 때마다 선배들은 이렇게 말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잔인하다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에 나도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과연 육아를 ‘진짜로’ 놓을 수 있을까?
창업, 육아, 둘 다 놓지 않기
나는 창업교육을 받을 때부터 일과 육아를 병행했다. 특히, 이 창업교육은 아이와 내가 함께 갈 수 있는 몇 안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었다. 애를 안고, 업고, 달래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도 된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창업교육은 내 안에 가지고 있던 막연한 벽을 서서히 부수는 것만 같았다.
교육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를 혼자 어디엔가 두고 온 적이 없었다. 어차피 나는 아이를 두고 올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친정과 시댁은 모두 이동 동선에서 무척 멀었고, 어린이집 입소 대기는 기약이 없었다. 아이는 늘 자신에게 집중하는 주 양육자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가끔은 엄마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도, 아이가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창업교육을 아이와 함께 수료했다.
친구들은 늘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가 100일만 되면 넌 애를 어딘가에 맡기고 일하러 갈 거 같아.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일 욕심이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네 살이 된 지금, 아이를 여섯 시간 이상 어린이집에 보내는 날은 한 달에 2~3일 정도다. 나는 아이와 함께 있다.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해서 모자란 시간을 채운다. 일을 오래 하면 그 다음 날엔 반드시 스케줄을 비워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스케줄이 늦게 끝나면, 등원도 늦게 시킨다. 오후 4시쯤 일을 마치면 아이가 실컷 놀 수 있게 놀이공간으로 데려간다.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임한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온전하게 시간을 쏟는다.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아이를 종종 데리고 나간다. 또는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아예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다.
창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육아로 풀고,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를 창업으로 푸는 이상한 선순환이 내 삶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끔 힘들고 지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육아가 즐겁게 느껴졌다. 잠깐, 육아가 즐겁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미친 건 아닐까?
그래, 내 새끼 예쁘다
나도 나 스스로에게 정말 많이 놀랐다.
아이가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잠들도록 하는 것을 수면교육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이와 내가 살갗을 부비면서 자는 게 더 좋아서 늘 같이 잠들곤 했다. 훗날 아이가 알아서 혼자 자겠다고 할 때까지 나는 늘 아이와 같이 잠들기로했다. “아이고, 수면 교육하는 거 참 힘드네…” 라 말하면서도, 아이가 내가 없으면 잠들지 못하는 그 순간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고, 나 또한 아이의 쿰쿰한 머리 냄새를 맡으며 자는게 좋았다. 이제는 내가 수면 교육을 따로 받아야 할 판이다.
그래. 내 새끼 예쁘다. 정말 예쁘고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리고, 아이는 그런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한다. 나도 아이를 그렇게 사랑할 수 없는데, 아이는 그렇게 한다. “이건 이래서 안 돼요”, “저건 저래서 별로예요” 같은 이야기를 사업을 하며 어른들에게 주궁장창 듣다가도, 내 아이만큼은 뭘 조금만 해줘도 다 신기하다고 해주고, 다 고맙고 다 사랑한다 말해주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에게 마음이 간다.
나는 아이에게 더 많은 걸 주고 싶다는 욕구가 늘 샘솟는다. 그러면서도 내 안에선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기쁨에 취하지 않도록 애쓰는 마음도 공존한다. 아이를 지나치게 많이 사랑하지 않도록, 내가 아이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애쓰려 한다. 이는 어쩌면 아이가 나의 발목을 잡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아이가 있는 건 프로페셔널하지 않은가
아이가 한없이 좋은 만큼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 어디를 데려가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더 좋아할지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걸 넘어 점점 더 많아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고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해 주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는 내가 가끔은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한번은 프리젠테이션을 하러 가야 하는 날이 있었다. 어린이집은 방학이었고, 친정은 교사인 엄마가 학기 중이라 서울로 올라올 수 없었다. 1시간도 안되는, 단 15분 발표를 위해 ‘누군가 아이를 맡아야 한다’라며 남편에게 반차를 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현장에 연락해보니 접수와 안내를 도와주는 스태프가 있다고 했다. 그 스태프에게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지, 아이에게 유투브를 틀어주기만 하면 되니 아이를 잠시만 지켜만 봐줄 수 있는지 부탁하려 했다. 그런데 함께 발표를 하기로 한 언니 창업가가 나를 말렸다.
그렇게 하면 관계자들에게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을 거야. 창업가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단점이기도 하니 굳이 아이가 있는 걸 드러내지 마.
그 언니는 자신이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했다. 그에게 우선 고마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째서 아이가 있는 건 프로페셔널한 일이 아닌 걸까?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은 일류, 육아는 2류, 살림은 3류
누군가는 후회할 거라 했다. 창업을 위해 시간을 쏟다가 육아에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못하면 아이도, 나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누군가는 양육자이고자 싶어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말라고도 했다. 가뜩이나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여자인데 아이를 키우는 일이 행복하다 말할 거면 가서 애나 보라 할 거라고.
나에게 창업과 육아는 모두 중요한 ‘일’이다. 둘은 맞물려있다. 육아를 하는 나를 하찮게 보는 것도 지겹다. 나는 주양육자가 됨으로써 내가 얻게 되는 새로운 능력과, 나의 발전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육아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믿는 것은 육아에 관한 사업을 하는 ‘창업가’인 나에게도 필요하다.
생각이 정리되었을 즈음 나는 이 문장을 종이에 프린트 해 벽에 붙여두었다.
일은 1류, 육아는 2류, 살림은 3류
아무리 생각해도 육아를 일류로 해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는 즐겁지만 정말 힘든 일이다. 일을 일류로 하는 거보다 더 힘든 것이 육아를 일류로 하는 거라 생각했다. 세상에 어떻게 육아를 일류로 해내지? 한계를 일단 받아들여야한다. 그래서 2류라고 썼다.
하지만 일만큼은 일류로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다 자란 성인들과 하는 커뮤니케이션도 자신 있고, 아웃소싱이 가능한 부분도 분명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모두 따져보니 일 만큼은 일류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림은 3류 라는 문장은 사실 넣지 말까 하다가, 아예 삼류로 하겠다는 선언을 피력하기 위해 함께 작성했다. 내가 삼류라고 선언하면 남이 대신 해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육아와 창업을 모두 중요하게 여기기로 한 뒤, 나를 둘러 싼 상황들을 다시 돌아보고, 우리 회사의 목표치를 이렇게 조정해보았다.
- 우리는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다. 창업을 하는 사람은 적고, 그 중에서 여자는 더욱 적으며, 그 중에서도 대표가 주양육자인 경우는 더더욱 적을 것이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우리의 목표치를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 우리가 정의한 ‘육아와 창업’ 모두 중요한 것임을 이해관계자들에게 충분히 이해 받아야 한다.
- 투자를 받기에는 ‘육아와 창업 모두 중요’함을 알리는게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뛰어 넘고도 투자를 받을 수 있을만큼 강점을 가진 서비스를 만드는게 가장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 적은 시간에 가장 높은 효율을 거둘 수 있는 생산방법이나 경영기법에 대한 관심을 두고 학습해 나간다.
- 목표치는 단기적으로 낮아질 수 있으나, 이상은 그대로 둔다. 꿈을 작게 조정하지 말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다.
- 창업과 육아에 너무 많은 신성함을 넣지 않도록 한다. 둘 다 중요하고 현실적인 일이지만 주객전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한다.
최근 여성의 날을 맞아 열린 여러 행사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아이가 먹을 간식, 아이에게 보여줄 영상을 다운받아 놓은 아이패드, 기저귀, 물티슈 등 바리바리 짐을 싸서 갔다. 아이는 이런 행사에 자주 참여해봤기 때문에 성숙하게(!) 자신의 영상을 보며 조용히 있었다. 중간중간 소리를 내거나, 영상을 큰 소리로 보고 싶어했지만, 나름 조용했다. 지금도 아이를 무릎에 앉혀두고 글을 쓰고 있다. 당연히 키보드를 두드리면 글자가 쓰이는 신비로운 현상에 무엇 하나 얹고 싶어 화면에 손을 대곤 하지만, 그랬다간 무릎에서 내려온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가만히 안겨있다 장난감을 가지러 간다.
육아와 창업, 둘 다 잘 할 수 있느냐고? 얼마나 잘 할지는 모르겠는데 못 할 건 없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여성을 더 이상 후려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