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처음 브래지어를 살 때는, 솔직히 설렜다. 왠지 모르게 그것을 착용하는 게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인 것만 같았고, 나는 스스로의 조숙함에 만족스러워하며 주니어 브래지어를 입고 다녔다. 물론 그렇게 브래지어를 입기 시작한 지 십 수 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과거의 나를 보며 묻는다. 그 때의 넌, 왜 그렇게 브래지어를 좋아했어?
브래지어를 향한 증오의 노래
그것은 내 복장을 제한한다.
무슨 옷을 입어도, 옷을 입기 전에 입을 속옷부터 신경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브래지어를 하기는 하라면서, 또 흰 티셔츠 안에 검은 브래지어를 입기만 해도 야하다느니 걸레라느니 잔뜩 검열이나 당하는 모순은 뭐란 말인가. 결국 어디에나 받쳐 입어도 무난한 살색 브래지어로 내 속옷 옷장의 한 켠은 가득 차고는 했다. 예쁜 속옷? 좋지. 하지만 예쁘면서 거슬릴 때는 존재감을 마법처럼 감추고, 자신들이 관음하고 싶을 때에만 드러나는 마법의 속옷 같은 건 없어. 현실은 그냥 시궁창일 뿐이다.
그것은 땀이 찬다.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목적이 유두를 가리는 것이라면 유두를 가리기만 하면 되는데, 어찌 된 것이 브래지어는 유두, 가슴 전체, 목덜미와 등판까지를 천으로 감싸버린다. 여름이고 뭐고, 사계절 내내 땀이 안 찰리 없다. 브래지어를 하는 것 만으로, 항상 살이 쓸리고 땀이 차서 가슴에 땀띠가 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그것은 돈이 든다.
브래지어는 소모품이다. 조금 싼 브래지어를 사면 영락없이 사이즈가 안 맞거나 답답하거나, 피부의 어딘가가 쓸려서 한두 번 입고는 그냥 버려두게 되고, 결국엔 절대로 싸다고 말할 수 없는 값을 내고 그나마 내 가슴에 맞는 브래지어를 사 입게 된다. 그렇게 사도 자주 입다 보면 금세 해지고. 결국 못해도 3~6개월에 한 번씩은 브래지어를 두, 세개씩 사고, 버린다.
그러니까, 브래지어와 함께하는 인생은 제법 비참하고 증오스러웠다.
6천원짜리 해방
니플 커버를 사용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모 드럭 스토어에서 할인 판매하는 것을 평소에 가지고 있던 호기심으로 덥썩 집었을 뿐이다. 왠지 모르게, 똑같이 유두를 가리는 역할을 하는 데도 ‘노출이 많은 옷을 입거나, 수영복을 입을 때 사용하세요!’ 등의 홍보 문구를 달아놓은 니플 커버는 ‘그런 때가 아니면 입을 수 없다'라는 사회적 선언이 달린 것처럼 느껴졌다. 수영은 커녕, 여름이 되면 에어컨 아래에 붙어 있는 것 밖에 하지 않는 나는 그래서 니플 커버를 쓸 일도, 살 일도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게 우연한 것이 인생을 바꿔 놓는 법이다.
그저 출근할 때 입는 평소의 옷차림에, 브래지어 대신 니플 커버를 붙여 보았다. 착용법은 간단했다. 실리콘 니플 커버에 붙어 있는 비닐 포장을 떼어내고, 단단히 유두 위에 니플 커버를 붙이면 끝이다. 쓴 다음에는 물에 씻은 후, 말리면 다섯 번 정도를 더 쓸 수 있다고 설명이 적혀 있다. 혹시나 떨어지진 않을지, 처음의 착용감에 조금 걱정이 앞섰지만 유두 위에 커버를 부착한 후 꾹꾹 몇 번 더 누르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움직임에도 별 무리 없이 붙어 있을 것처럼 안정적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빈 느낌. 이렇게 나가도 되는 건가, 싶었다. 옷의 태를 거울로 살펴 보니, 평소와 뭔가 다른 것 같기도, 또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니플 커버를 붙인 부분만 조금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긴 했는데 내가 워낙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일 거라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하루,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니플 커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내 유두에 잘 붙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유심히 내 가슴께를 바라보며 브래지어를 했는지, 안 했는지 평가하는 불상사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집에 돌아와서야, 어. 아무 일이 없었네.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 주 내내 니플커버를 착용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흰 셔츠나 옷도 조금 더 자유롭게 입을 수 있었고, 혹시나 끈이 보일까 신경 쓰이던 어깨가 파인 옷들도 손쉽게 입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름 내내 나를 괴롭히던 가슴 아래의 땀띠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니플 커버를 사서 갈아치우면서, 여름 내내 브래지어가 아닌 니플 커버를 하고 다니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다니기를 두어 달, 브래지어에는 이제 영 손이 가지 않는다. 브래지어를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사라지고 나니, 브래지어를 해야만 하는 수많은 다른 이유들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옷의 ‘라인'을 잘 잡기 위해서, 가슴 모양을 예쁘게 모으기 위해서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한다? 내가 내 옷의 선을 어떻게 잡든, 당신이 알 바는 아니다.
가슴 모양 역시, 내가 보기에만 예쁘면 된다. 조금 축 처져 있으면 어때. 상체의 한 가운데에 살덩어리가 달렸는데, 중력이 있으면 처지는 게 당연하지.
보기 불편하다? 당신이 내 가슴을 유심히, 3분 정도 바라보며 판별하지 않는 한 내가 브래지어를 입었는지, 니플 커버를 붙였는지 당신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대체 왜, 나는 그 세월 동안 브래지어를 입고 살아 왔지? 드럭스토어에서 우연히 구입한 니플 커버는 결국 브래지어의 근본적인 존재에 대해 내게 질문을 던지도록 만들었다.
얼굴을 내놓기 위해 유두는 가려져야 했고
여성이 브래지어를 입는 것이 당연해진 역사적 시기는, 어처구니없이 당당하게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세계 1차 대전 때 여성의 노동력이 가시화되면서 코르셋이 대중적으로 브래지어로 대체되고, 1930년대엔 지금은 익숙해진 A, B, C, D 등의 ‘컵' 사이즈가 부착된 대량 생산 브래지어가 처음 등장했다. 그렇다. 현대사에 여성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면서, 브래지어도 함께 그 얼굴을 내밀었다. 당연한 것처럼.
브래지어의 빠른 상업화와 함께, 1964년에 푸시업 브래지어의 모태인 원더브라가 등장하고, 1967년에 검은 레이스로 만든 브래지어가 팔리기 시작하면서 브래지어의 존재는 더욱 모순적인 것으로 변했다. 이유 없이 신체를 가리는 것에서, 신체를 적당히 가리면서 더욱 여성이 ‘섹시'해 보이도록 돕는 것으로.
문제는 ‘왜 그래야만 하는가?’에 대해 여성들에게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왜 집 밖에 나갈 때는 브래지어로 당연히 존재하는 신체 부위의 실존을 애써 부정해야 하는가? 그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답했다. 브래지어는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1968년부터 일찍이 브래지어는 ‘자유를 향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영예를 안았다. 그렇다. 애초에 왜 입는지 알 수 없는 속옷을, 우리는 그 때도 입어 왔고, 지금도 입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그게 이상하다거나, 다른 방법을 제안하기 전까지는 감히 의문을 품지도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오랫동안 내 몸에도 가해졌던 억압은 6천원짜리 니플 커버 하나로 순식간에 바사삭, 부수어져 버렸다. 그만큼 어떠한 타당한 이유도 없고, 고리타분한 억압을 벗어던진 값으로는 충분히 괜찮았다.
유두 대법관 여러분께
물론, 니플 커버를 붙이는 것도 내면화된 억압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행동일 수도 있겠다.
여성의 유두에 가해지는 억압이 싫으면, 벗고 다니지 그래? 그럼 고마울텐데. (히죽히죽.)
… 그렇게 말하는 당신 때문에, 니플 커버를 붙이는 걸로 타협하는 거다.
내가 니플 커버를 붙이든, 유두를 드러내 놓고 다니든.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 자연스러움을 부작위로 뒤집어 놓고, 연예인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몇 배로 확대해서 유두 노출이네, 아니네 판결할 시간에 부디 자신의 유두나 한 번 내려다보길. 그 유두는 지난한 해방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내 유두보다 어디가 아름다워서 그렇게 내다 놓고 다닐 수 있는지.
그리고 일말의 부끄러움이 든다면, 부디 니플 커버 비슷한 무언가라도 사서 붙이고 다니길 바란다. 사실, 미적인 감각에서 억압되어야 할 것은 남의 유두가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지를 열심히 판단하고 있는 유두 대법관 여러분의 유두일 가능성이 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