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를 결정했을 당시 난 임신 5주에서 6주로 넘어가고 있었고, 이미 생활에 불편을 느끼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많아졌으며 눕고만 싶은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입덧이 시작되면 주변인들, 특히 가족들이 알아차리는 건 시간문제기에 불안했다. 그런 이유로 임신중절약인 미프진의 배송 기간과 여차하면 세관에 걸려 못 받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나는 남자에게 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예약하라고 일렀다. '내가 지금 이런 상태이고, 앞으론 어떤 상태일 텐데, 너도 뭐라도 해라'하는 생각에서였다. 남자는 병원 예약에 성공했고, 이틀 후 나와 남자는 서울로, 남자가 찾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블링...
안녕하세요, 저는 ‘자의에 의한 성교’를 했던,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이지 않은 낙태를 함으로써 ‘낙태율 급증,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훼손, 생명 경시 풍조 확산’에 일조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애인과의 섹스였고, 피임을 제대로 했건 말건 임신을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을 자의적으로 없애버린 범죄자입니다. 강간에 의해 생긴 아이는 없애도 되고, 사랑하는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이는 없애면 안 된다며, 살아도 되는 아이와 죽어도 되는 아이를 나누던 분들, 모두모두 안녕하십니까?...
저는 뼛속부터 천주교인입니다. 부모님 두 분도 성당에서 만나시고 결혼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가지자 마자 아버지는 매일 아침 새벽 미사를 나가셨습니다. 당시에는 성당이 많지 않았어요. 먼 길을 버스로 움직였어야 했기 때문에, 몸이 무거운 엄마는 집에서 매일 기도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아직도 저를 포함한 동생들을 위해 기도하러 조용히 매일 아침 새벽 미사를 나가시고요. 제 세례명도 부모님이 다니시던 성당 수녀님 세례명을 본땄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절 잉태하고 계셨을 때부터 많은 기도를 받기도 했어요. 어렸을 적 병을 앓는 바람에 조금 걱정스러운 상황도 있었지만 많은 분이 기도를 해...
제목을 이렇게 시작하려고 써 놓고는 깜빡이는 커서만 한 30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해 SNS를 중심으로 '#XX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이어졌고, 이를 통해 생존자들은 각종 업계에서 만연하게 벌어졌던 성폭력을 집단의 목소리로 끄집어냈다. 그러나 유독 '언론사'에 대한 이야기는 공론화되지 않았다고 느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쉽게 글이 이어지지 않는다. 지난해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새로운 집단에서의 고발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양 달려들고 해시태그가 붙어 올라오는 글들을 열심히 엮어 기사로 송출하기에 바빴다. 이런 기사를 미친듯이 써댄 각종 언론사와 기자들은 줄곧 각종 성범죄에 짐짓 엄중한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