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은 회사 운영 방향의 중요한 지표다. 국내 개인 병원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체계적이고 사업적으로 변하고 있고, 내가 담당한 병원의 원장도 매출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전 직원을 동원해 마케팅 모니터링을 꼼꼼하게 하는 편이었다.
산부인과의 매출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성병, 성형수술, 임신 검사. 성병은 워낙 흔한 데다가 치료를 위해 며칠 간 통원을 하는 경우도 있고, 성형수술이야 수익이 크니 그렇다고 쳐도 임신 검사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의외였다. 주변에 임신을 하거나 출산을 한 지인들에게 보통 임신 기간 동안 통원을 하거나 출산을 하는 병원은 까다롭게 고르거나 아예 종합병원 산부인과를 선택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차가 있다.) 게다가 개인 병원에는 출산 후 입원 시설도 미비하기 때문에 집 근처 병원을 다니다가도 출산일이 임박해오면 큰 병원으로 옮긴다고 알고 있다.
'자연스럽게'
낙태 권하기
임신 관련 키워드에 산부인과들이 예민한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낙태 시술 때문이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을 때 어떤 산부인과에서 어떻게 검진을 받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상담을 하며 시술을 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낙태 시술이 불법이기 때문에 성기 성형수술처럼 직접적으로 ‘우리 병원이 잘 하니까 얼른 수술을 받으러 오세요~’라며 홍보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많은 산부인과들은 임신 관련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글에 낙태가 가능한 임신 주수, 임신 증상 관련 정보들을 넣고 마지막에는 24시간 상담 가능한 카카오톡 아이디나 전화번호, 진료 시간들을 노출해 ‘여기서는 당신이 원하는 시술이 가능할 수도 있으니 상담해 보세요!’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술 금액은 병원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낙태가 가능한 병원’이라고 노출이 잘 되면 현금으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산부인과의 성수기(!)는 여름 휴가철 직후다.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병균이 생기기 쉽고, 많은 연인과 가족들이 여행을 가는 시기라 성병이 발병하기에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어디 성병 뿐이겠는가? 피임에 실패하거나, 피임약을 먹었지만 임신의 불안감에 떠는 여성들이 사후피임약을 처방 받거나 임신 상담을 받으러 오는 철이다. 하지만 내가 맡은 병원은 휴가철이 훌쩍 지났는데도 매출이 감소 수치를 보여 긴급 회의가 열렸다. 지난 해에 비해 아래로 뚝뚝 추락하는 매출 그래프를 보며 원장이 던진 말은 이러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피임에 대해 너무 잘 알아.
그 말을 해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의실 안을 채운 사람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남자였고, 원장의 말에 모두들 웃음으로 일관했다. 여기에 있는 남자들은 임신 ‘위험’이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거겠지? 회의 이후로 나는 무기력해졌다. 이런 병원을 위해 그 어떤 영향력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부정적인 일이건, 긍정적인 일이건 상관없었다. 내 연봉을 지금보다 두 배로 높여준다고 해도 이런 병원의 마케터로 명함을 내밀거나 이직 포트폴리오에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인공임신중절 수치는 감소하고 있다. 원인은 피임실천율 증가, 사후피임약 처방 건수 증가, 만 15~44세 여성의 지속적 감소 등이다.
외과의 주 수입원은 수술이다. 하지만 외과의들이 수술로 돈을 벌고 싶다며 사고가 나길 바라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계획에 없는 임신은 사고다. 산부인과에서도 수술로 돈을 벌고 싶다며 많은 여성들이 임신을 하길 바라면 안 된다. 수술 집도는 의사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여성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검색창에 ‘산부인과 낙태’를 검색해보자. 지식in부터 각종 카페에는 산부인과에서 낙태가 가능한 지를 묻는 글들이 넘쳐난다. 꼭두새벽에 작성한 글부터 급하다는 말머리까지, 몇 줄의 글에서도 임신 ‘위험’에 놓인 여성들의 다급함과 간절함이 느껴진다.
낙태로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지 말라는 헛소리들 사이에 의사 답변이 달려있는 경우가 많으나, 그 답변들도 결국은 산부인과에 방문해 상담을 해보라는 이야기뿐,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위와 같이 ‘일부’ 산부인과는 돈이 되는 낙태 시술을 포털 검색, SNS 등으로 은밀하게 홍보하고 권유하면서 여성의 권리는 존중하지 않은 채 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악용하고 있다. 특히 낙태 수술은 몸에 끼치는 후유증이 상당하며 부작용과 합병증의 위험이 있는 수술인 만큼 여성들은 수술에 대해 더욱 면밀히 알아보고 고려할 수 있어야 하나, 낙태를 한 여성들을 불법을 저지른 죄인으로 만드는 법으로 인해 오늘도 산부인과는 돈을 벌고 여성들은 고통받고 있다.
어딘가 잘못됐다, 크게.
여성의 개인적인 고민을 내려놓아야 할 곳에서 오히려 책임을 지우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잘못됐다.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 웨딩검진부터 성기 성형수술과 낙태까지. 이 모든 것은 내가 걱정하고 부담을 가져야 할 일이 아니다. 자궁경부암의 주원인이자 주로 성관계로 인해 감염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는 남자가 먼저 감염되어 여자에게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여자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무료 접종을 시행하고, 산부인과에서는 여성에게 검진 패키지를 할인한다며 열심히 홍보한다. 결혼하고 섹스해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할 땐 언제고, 이럴 땐 마치 섹스를 여자 혼자 한다는 것처럼 군다.
나는 내가 산부인과를 찾을 때마다 동네 내과를 가듯 편안한 마음으로 가길 바란다. 물론 편안한 산부인과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SNS를 찾아봐도 8할이 산부인과에서 직접 올린 홍보글 또는 산부인과에서 일반인인 척 위장하여 홍보하는 것 같은 글 뿐이기 때문이다. 지역 카페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참고하면 확률은 좀 더 높겠지만, 바이럴 직원들은 그곳에도 침투해있다. 아이디를 사서 칭찬글을 쓰거나 가짜 후기글을 쓰는 경우는 종종 있다. 온라인 상의 후기는 되도록 믿지 않는 것이 좋다. (불호 후기는 믿어도 된다. 과잉 진료 이야기가 있다면 반드시 피하라.)
결국 동료 여성에게
조언 구해야만
그렇다고 나의 개인 SNS에 ‘XX동 산부인과 어디가 제일 친절하고 좋아요?’라는 질문을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조차도 민감하게 여기는 내 자궁과 성기는 사생활로 취급될 권리가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부인과 만큼은 주변 여성들의 조언을 구하는 게 그나마 가장 믿을 만 할 것이다. 산부인과 진료 경험이 있는 지인의 말을 한 번 듣는 게 100개의 온라인 후기를 읽고 서치하는 것보다 낫다.
실제로 산부인과에서 체인 병원을 개원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지역이 신도시다. 대부분의 신도시는 연령대가 비슷한 여성들이 활발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입소문에 가장 강하다. 한 번 상승세를 타고 나면 비교적 쉬운 영업장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철저하게 평가된 병원들을 꾸준히 다니는 비율이 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벽을 뚫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지역 주민들, 혹은 병원이 주거지와 조금 멀어도 괜찮다면 직장 여성 동료나 여성 지인들에게 반드시 물어보자.
더 많은 여성의 발걸음을 붙잡기 위해서는 산부인과의 주된 존재 이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마케팅이 필요하다. 산과, 일반부인과, 비뇨부인과 등 여성의 건강과 삶에 직결되는 진료 과목들은 배제한 채 성기 성형수술이나 불필요한 검진을 필수 사항처럼 제안하는 산부인과는 단언컨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오래 살아 남게 되더라도 과연 그곳을 산부인과라고 할 수 있을까?